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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51화 (51/146)

#51

지이이잉-

달칵.

하정은 이제 막 프린트되어 나와 아직 따끈한 에이포 용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벌써 한 뼘 정도 쌓여 있는 종이 뭉치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일반인들은 사실 헌터부에서 일하고 헌터라고 한다면 게이트 공략만 하는 줄 알지만 일단 하정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헌터이기 이전에 어쨌든 반쯤 공무원이기도 했으니까.

주변을 잠깐만 돌아보더라도 전투와 맞닿아 있는 이들이 지내는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잉크 냄새가 진하게 날 것만 같은 장소였다.

하정은 옆에 내려 둔 종이컵을 들어 올리며, 또다시 빠져나오고 있는 프린트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선배!”

며칠 내내 빡세게 작업했던 서류가 슬슬 완료되어 가고 있는 와중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경진 씨.”

“이거 그 한일동 사건 사이코메트리 결과 보고서예요. 그때 부탁하신 거.”

“고마워요. 내가 이따가 커피 한잔 살게요.”

“예? 아, 괜찮은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일 끝나고…”

하정은 제 손안에 들어온 서류를 휙휙 넘겨 봤다. 그리고 제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남자 후배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개인적인 대화를 차단했다.

“그럼 이따가 봐요!”

“엇, 선배!”

하정은 프린트가 끝난 서류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는 가차 없이 등을 돌린 채 바쁘게 발을 놀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종이들과 펜, 여러 겹 겹쳐 쌓여 있는 종이컵들을 손으로 슥 밀어 낸 뒤 그나마 정리된 공간 위에 들고 왔던 서류와 보고서를 나란히 내려놨다.

“후우… 자 보자. 대체 뭔지.”

사락.

남색의 파일철에 정리된 보고서가 한 장 한 장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하정의 미간도 슬슬 좁아지고 있었다.

제 관할 업무가 아니라서 바로바로 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웠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후배들한테 부탁까지 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건 시현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침입자가 정확히 시현이의 이름을 언급했다라… 그리고 우리 쪽에 사이코메트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텐데 빌런 연합이라고 언급했고, 그러다 그들끼리 전투가 시작됐다.’

“같이 온 놈들끼리 대체 뭐 때문에 삔또가 상했을까.”

사이코메트리란 주변의 물건들을 만져 그 안에 담긴 단기 기억을 읽는 능력이었다.

물론 만화 같은 데에서는 한계 없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협회 내부의 조사원은 하루에 몇 번 쓸 수 없었기에 결과가 나오는 데 무척 오래 걸리는 업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오랫동안 기다렸던 결과에는 아주 자세한 내용은 없었고 그저 침입자와 시현의 관계성이 60 퍼센트로 추측된다고 쓰여 있었다.

하정은 세상 억울하고 분노에 찬 얼굴로 복수할 거라고 다짐하던 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친구가 거짓말을 더럽게 못 한다는 사실도.

“에휴, 씨발. 뭐 어떻게 되는 거야?”

가뜩이나 흐트러져 있던 빨간색 머리칼이 다시 한번 거칠게 흔들렸다.

60 퍼센트라고 하면 딱히 높은 수치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이 보고서의 60 퍼센트는 의미가 조금 달랐다. 여기서는 50 퍼센트를 기준으로 절반 이상이냐, 이하냐, 극단적으로 판단이 나눠지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시현을 믿지만 어쨌든 결과에 따라 그의 근처에 수사관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다시금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제가 아는 시현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을 텐데, 그 일에 차질이 갈까 봐 조금 걱정도 됐다.

“당분간 자중하고 있으라고 해야 하나… 쯧.”

하정은 의자에 몸을 푹 묻고선 손가락 사이에 끼운 볼펜을 까딱거리다가 금세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친구는 말을 드럽게 안 들어 처먹을 것 같으니 조금 더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알아봐야만 했다.

-물건들에서 추출한 기억이 10 퍼센트 정도 맞지 않음.

그리고 보고서의 말미에 있는 이 문장도 자꾸만 마음에 걸렸고, 말이다.

똑똑똑.

잠시 후 하정의 발이 반투명한 유리문 앞에 멈추어 섰다.

“들어와.”

그리고 노크하자마자 들려온 인기척에 하정은 망설임 없이 유리문을 부드럽게 열고 들어갔다.

“하이.”

“…이하정? 네가 웬일이냐?”

제가 있던 사무실과 크기만 조금 다를 뿐 내부는 서류들과 파일철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게 일에 치이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하정은 그 익숙한 내부에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박철 부장이라고 쓰여 있는 명패만을 한번 흘끗 본 뒤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오랜만이다. 나 뭐 좀 하나 물어보자?”

“에휴, 넌 진짜 입사할 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이렇게 똑같냐?”

“어 그게 내 장점.”

“그래 그러시겠지. 됐다. 뭔데 말해.”

하정은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내젓는 동기의 얼굴을 보며 씩 한번 웃고 입을 열었다.

“이번 한일동 습격 사건 있잖아.”

“……어, 왜.”

“물건끼리 10 퍼센트 안 맞는다는 게 뭐냐?”

“그거 파지 마.”

“뭐?”

그러나 무언가를 더 물어보기도 전에 친구의 말이 갑작스레 튀어나오자 천하의 하정도 멍청하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냥 넘기라고. 어차피 세입자한테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될 거고 집주인한테 보상금도 나올 거야, 그만해.”

“야 이 새끼야, 너 미쳤냐?”

“어, 그러니까 이만 가라. 이 사건은 이미 끝났다.”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황당함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자신이 비록 이 친구를 오래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초 일반 각성자 그룹에 묶여 여태 함께 지내 왔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친구는 이딴 모습을 보여 주던 사람이 아니었다.

“나 곧 외근이라서 나가 봐야 해.”

하정은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말을 술술 내뱉는 동기의 모습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은 나름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임하던 사람이었다. 비록 돈도 적게 주고 일도 많았지만, 그걸 상쇄할 뿌듯함이란 게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순간 자신이 속한 이 단체에 불신감이 솟아났다.

하정은 쫓겨나듯 사무실에서 나와 얼떨떨한 얼굴로 문 앞에 멍하니 섰다. 그리고 어금니를 콱 내리 물고는 제 청개구리 심보를 툭툭 건드는 상황에 눈빛을 불태웠다.

그리고 거침없이 발을 옮기며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정시현

순간적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손끝이 흔들리는 듯했지만, 마음을 먹은 하정의 손길에는 이제 망설임이 없었다.

***

서울로 향하는 차 안은 침울해 보일 정도로 무척이나 내려앉아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현의 옆에 기대어 있는 태운을 뺀다면 말이다.

“일단 서울에 가면 저는 먼저 김성빈 대장부터 만나 보려고 해요.”

“그래요. 저도 갑자기 하정이한테 연락이 와서 잠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친구요.”

규민은 어느새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에 또 추가로 세 명이 더 실종 된데다가 김성빈 대장까지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 남들이 잘 모르는 안전한 집을 알려주긴 했지만, 일단 만나서 얼굴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유준이 같은 경우는 바로 집에 가. 그리고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 얼굴 비추고. 온갖 언론이 네 행방을 보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유준은 자세한 내용까진 전해 듣지 못했지만 늘 활달하던 규민이 조용하게 있자 사태의 심각성을 얼추 느꼈다. 그래서 눈치를 보며 있는 도중 넘어온 제 얘기에 바짝 허리를 세우고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많이, 위험한 건 아니죠?”

시현은 예전과는 달리 거리낌 없이 말을 해 오는 유준을 향한 기특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으나 제 손가락 사이사이 얽혀 있는 흰 손가락을 보며 그저 어설프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뜬금없이 일이 터져 버린 바람에 태운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하려던 건 처참히 망했다.

뭐라고 말할지 열심히 정리해 놨던 것도 이제는 반쯤 날아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또 선을 긋기에는 자신이 잘할 자신이 없었고.

‘또 가출하면 어떡하냐고.’

절로 한숨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시현은 이제 만성이 되어 버린 듯 능숙하게 속으로 삼키며 제게 기대어 있는 태운의 머리에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조금만 생각을 푸니 원래의 모습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애초에 자신은 무언가를 깊고 길게 고민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시현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도 태운에게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형님! 말씀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 벌써요?”

시현은 순간 눈을 번쩍 뜨고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고작 30분 정도가 지나 있었지만, 그새 깊게 잠이 들었던 건지 아직 눈앞이 몽롱했다.

-야 도착하면 조심히 여기로 와라.

-미친놈아 또 연락 바로 안 되지?

-수사관 붙을 수도 있다. 최대한 돌아 돌아서 와.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정이 보낸 톡을 확인하자 그나마 남아 있던 졸음기도 싹 날아가는 중이었다.

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느새 제 품에 안겨 있다시피 한 커다란 덩치를 바르게 세워 앉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톡을 읽어 내렸다.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수사관?’

수사관은 하정이 아니었던가? 대체 왜 제가 쫓기듯 감시를 당할 거라는 건지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씨발… 내 돈, 내 집, 내 안락함….”

시현은 조금 초점이 흐려진 듯한 눈을 한 채 작게 웅얼거렸다.

그리고는 으득 이를 즈려 물고는 재빠르게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태운에게 전음을 날렸다.

{태운아. 신호하면 기척 숨기고 따라와.}

{예.}

드르륵

넓은 도로에 잠시 정차하고 있던 차의 뒷문이 열렸다. 수많은 인파가 지나다니는 대학가로 훤칠하게 큰 두 남자가 내려섰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에 묻혀 휩쓸리듯 걸어 다니던 둘의 신형이 어느 순간, 마치 바닥으로 꺼진 듯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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