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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19화 (119/146)

#119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주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었다. 유리온실 같은 곳에 이렇게 햇빛이 끊임없이 비춘다면 내부는 찜통이 될 게 뻔했지만 그 안에는 에어컨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어 아주 서늘하고 쾌적했다.

이 또한 저들의 위대한 산물인 마정석으로 인한 선물이었다.

마정석은 정말 조금의 흠도 없는 완벽한 산물이었다. 석탄도 석유도 원자력도 늘 세상을 좀먹는 찌꺼기가 나왔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건 큰 문제 덩어리가 되어 갔다. 하지만 마정석은 그딴 자원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 출력도 컸고 사용하고 난 뒤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이 그저 예쁜 돌멩이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 돌멩이는 시간이 지나면 기화되어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남자는 아름답게 조경된 내부를 거닐며 손안에 있는 마정석을 보다가 바닥에 만들어져 있는 인공 개울로 던졌다. 그 안에는 아직 사용하지도 않은 마정석들이 모래알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진행 속도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더디다는 말이군.”

“죄송합니다.”

남자는 송구하단 듯 고개를 푹 숙이는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제 뒤를 조심히 따라오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참, 그때 알아보라고 한 건?”

“아, 여기 있습니다.”

고생 하나 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하얗고 잘빠진 손안에 서류 몇 장이 들어왔다. 그 안에는 시현과 태운의 사진들이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량차오샤는 시현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제 볼을 몇 번 긁적이고는 씩 웃었다.

“그때 좀 제대로 작업해 놓을 걸 그랬나?”

“그렇다고 해도 그때 량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대로 먹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그랬겠지. 아 그래도 좀 아깝단 말이지.”

량차오샤는 대체 뭣 때문에 저자가 레이첼의 무명에 협조를 시작하게 된 건지 의아해졌다.

‘뭐에 넘어간 걸까. 조금 아쉬워…. 아니, 더 많이.’

사실 처음 그자를 대면했을 때는 남달라 보이긴 했지만, 어차피 대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정도의 능력자들은 제 주변에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나중에 한 조사에서 힘겹게 만들어 낸 대업의 시작이 정시현에 의해 깨부숴졌다는 게 밝혀졌다. 그다음은 분노였다. 무척이나 화가 났다. 이것 하나로 모든 일이 망가진 건 아니었지만 꽤 시기가 밀려나고 그 외에 잡다한 방법을 많이 써야 했으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능력과 그가 움직여 온 것에 대한 탐욕과 흥미였다.

자신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밑바닥에서도 아주 밑바닥 벌레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신분도 없고 돈도 없고 범죄를 저지른 이들만 모인다는 구룡시에도 자신은 들어가 살지 못했다. 웃기지 않은가 그 밑바닥 인간들도 자기들만의 사회를 꾸겨 외부인을 배척한다는 게.

그러다가 자신은 아주 특이한 내림을 받게 됐다. 어쩌면 선택받은 것일지도 몰랐다.

처음 꿈에 보인 것들은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이제 약도 안 했는데 미쳐 가는 건가 무섭기도 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꿈처럼 똑같이 이루어지자 량차오샤는 그제야 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는 정말 장님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제게 주어진 능력으로 미친 듯이 움직였다. 신분을 바꾸고 주변을 장악하고 빠르게 단체를 키워 갔다.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종교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경계심을 흐트러트렸다. 그것이 제게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됐다.

그러나 제게도 일을 방해하는 악역, 이 나타났다. 주인공에게 당연히 있는 일이었고 자신은 그 소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니까 시현은 자신과 조금 비슷했단 말이다.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능력을 발현하고 강해지고 본인을 위해 힘을 발휘하는 게 말이다.

“정말 나와 참 잘 어울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때 단 둘뿐이었던 유리온실 같은 공간으로 다른 사람이 급히 걸어 들어오더니 손에 들린 서류를 건넸다.

“량차오샤 님,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하아… 그러니까. 이래서 능력 좋은 애들이 필요한 건데.”

량차오샤는 상념을 거두고 제 손에 들린 서류를 읽었다. 그리고 안에 적힌 내용이 끝나 갈수록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그러니까 그곳에 있던 조각이 전부 다 사라졌다고?”

“예….”

“하!”

“그리고 그곳에 이미 모든 헌터들이 밀집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이 조금 비틀어졌다. 량차오샤는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트리곤 손에 쥔 서류를 구겨뜨렸다.

그 조각들은 지금까지 공산품처럼 찍어 대던 응집석들과는 궤를 달리한 넋들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온갖 의지와 마법을 섞고 그걸 안정시키기 위해 수천의 제물을 바치고 그 안정화된 응집석을 조각내는 데에 또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이용해 신의 광산들을 한데 뭉치는 일만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원래의 목표는 아마존에 있는 신의 광산 쪽으로 다른 것들을 옮기고 융합시키는 것.

신의 광산은 다 각자 따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문’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존재지 않나. 그러나 그 원래의 문은 온전히 이 세상에 박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대업을 위해 세상에 미친 듯이 마력을 풀어 농도를 조절하고 문을 옮기기 위해 응집석을 만들어 낸 것이었건만. 최종단계에서 턱 하니 막히자 급격하게 분노가 차올랐다.

“방법이 없다. 최종 장소를 바꾼다.”

“예?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곳으로 응집시킨다. 이동시킬 수 없다면 그쪽으로 우리가 가야겠지.”

량차오샤는 아마존에 미리 준비해 둔 물자들과 그곳과 미리 연결해 둔 공간들, 미리 설정해 둔 응집석들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다 보내 죽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이 세상엔 인간이 너무 많으니까. 그분들이 오셔서 만든 더 좋은 세상에 살 자격이 있는 거 우리밖에 없으니 행복하게 희생하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지시를 들은 이는 들어왔을 때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분명 제가 들의 지시 내용이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을 희생시키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음에도 그건 당연한 거다 하는 표정과 태도였다.

량차오샤 또한 조금의 죄책감도 얼굴에 남아 있지 않았다.

***

그저 조금 높이 올라왔을 뿐인데도 아래에서 진득하게 뒤엉키던 공기와는 꽤나 달라서 순간적으로 숨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시현은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아래를 빠르게 분석했다.

꽤 힘을 강하게 주어 올라왔기에 하늘 높이 떠오른 시현의 눈에 이쪽 부근의 형세가 얼추 들어왔다. 아직 많아 보이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정말 눈에 띌 정도로 개미무리의 밀집도가 줄었다. 그러자 일대일 대인 전에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거나 근거리 직업을 가진 헌터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원거리거나 마법을 쓰는 이들은 멀리 떨어져서 계속 마법을 던지고 있었지만 가까이 붙어서 전투를 해야 하는 헌터들은 지겹도록 몰려드는 물량 공세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나 시현과 태운 덕분에 점점 상황이 나아지고 있었고 전투에 가속도가 붙었다.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른 자들은 큰 확률로 대형 길드에 속해 있고 입으로만 찡얼대던 이들의 감독을 받고 있을 테니 이곳에 당도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이 앞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이 아주 능력이 달리는 이들은 아니었다.

촤악.

시현은 다시 검을 움직여 앞에서 다가오는 개미들을 썰고 다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규민과 유준, 태운의 위치를 확인했다.

‘중간에는 유준 규민, 태운이는 오른쪽 끝쯤이고.’

자신이 있는 위치도 외쪽의 끄트머리였다.

그렇다면 태운과 자심이 아예 또 외곽으로 빠져서 다시 밀고 들어오며 처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시현은 태운에게 전음을 날리고는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몸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리고 개미들 무리의 끝으로 떨어져 내리며 허공에 검강을 날렸다.

그러자 이미 죽어서 동강 난 개미들과 이제 막 잘려져서 나눠진 몸통들이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뿜어져 나온 피는 시현이 덮어쓰기 전에 검막을 쳐서 막아 내고 다시 퉁겨져 앞으로 쏘아져 나간 시현의 몸은 쉬지 않고 그것을 반복했다.

중간중간 전투를 하고 있던 헌터들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어차피 제 한몫은 하는 사람들이었다. 제가 신경 써 줘 봤자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어!’

그러나 그때 저를 보며 멍하니 있던 헌터의 뒤쪽으로 B급 체액 개미가 은밀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시현은 작게 혀를 차고는 움직이려 했던 방향 말고 왼쪽으로 몸을 꺾어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헌터의 뒤에 있는 개미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천근추를 이용해 떨어진 시현의 몸은 마치 총알 같았다.

쐐액 하는 소리와 흐릿한 형태는 붉을빛을 남기며 개미에게 틀어박혔다.

쿠웅!

사람이 떨어진 거라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개미는 머리가 반쯤 내려앉은 채 몸을 쭉 늘어트리고 있었다. 시현은 역수로 잡아서 찔러 내린 제 검을 망설임 없이 확 뽑아 들고 갑피 위에 난 징그러운 솜털들 위로 체액을 쓱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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