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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0화 (130/146)

#130

겉으로만 보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오로라 같은 푸른 빛의 너울이 하늘 위를 수놓고 그에 맞춰 이곳을 두르고 있던 반투명한 막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대며 확장을 예고하고 있었으니까.

“신의 광산? 다음에 오는 건 내일일 텐데…?”

물론 시현은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분명 저들이 만들어 놓은 서류 안에는 다음 신의 광산의 이동은 내일쯤 있을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시현은 무언가 일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걸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쿠웅.

다시 한번 빛이 대지를 향해 내려쳤다. 경황이 없던 아까와는 달리 그 빛이 내려치는 쪽이 정확히 눈 안 가득 들어왔다.

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시간이고 자시고 일단 지금 이동해 온 것은 네 번째 신의 광산이었다. 그 말은 량차오샤가 함께 왔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네 번째 광산이 이동해 오는 날짜가 변경되며 처음의 계획이랑은 달라졌지만 어쨌든 절반의 확률이었다.

‘그렇지만 량차오샤를 없앤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이 멈추지 않는다면?’

잘 생각해야 했다. 목표는 단순히 량차오샤를 없애는 게 아니었다. 신의 광산들을 파괴하고 저들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후에 있을 전투도 중요하고 그것을 크게 방해할 몬스터의 수급 또한 급하게 막아야 할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했다. 현재 아주 멀쩡하다 못해 더욱더 강해진 태운과 예전의 힘을 다 찾은 자신이 갈라져서 움직이는 것. 하지만 시현은 해답을 알면서도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스승님, 여기서 갈라질까요?”

“뭐?”

그때 제 마음을 안다는 듯 태운이 먼저 그 말을 꺼내 들었다. 시현은 믿기지 않는 말에 벙벙한 얼굴로 반문을 하곤 현란하게 빛나고 있는 허공에서 시선을 떼어 태운을 바라봤다.

따로 움직이잔 말을 제가 아닌 태운이 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시현은 뭔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 않을게요.”

“그렇지만….”

“하하, 스승님은 자꾸 잊으시는 것 같은데 제가 더 강합니다.”

“…알아. 안다고.”

시현은 작게 숨을 폭 내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가까이에 있던 태운의 손이 몸을 두르고 감싸 왔다.

아무리 자신이 태운이를 아낀다지만 이렇게 미친 과보호를 하던 것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건가 저 자신이 조금 한심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방금 꿈틀거리기만 하던 경계막이 눈에 띄도록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이잉-

그때 주변을 수놓는 거대한 소음들 사이로 작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시현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현재 밖에서도 변화가 눈에 띄게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들어갈 방법을 찾았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대략 몇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때맞춰 온 아군의 소식에 딱딱하게 굳은 시현의 몸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과 태운은 따로 움직여야만 했다.

시현은 몇 번 숨을 몰아쉬고는 태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조심해.”

“스승님도요.”

“무리하지 말고.”

“그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입 맞, 웁.”

태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입술이 세게 맞닿았다. 사실 반쯤 장난을 담아 꺼낸 말이었건만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태운은 그 커다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순식간에 휘몰아치고 떨어져 나가 시현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뽀뽀 수준의 접촉이었건만 벌써 좀 붉어진 피부를 뽐내고 있던 시현은 으휴 하며 제 머리를 벅벅 쓸더니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조심해.”

마지막 말이 아련하게 들릴 정도로 빠르게 사라진 시현의 뒷모습을 보던 태운은 결국 푸흡 하고 웃음소리를 내곤 얼마간을 그 자리에 서서 큭큭댔다.

***

강원도라는 지역 특성상 주변은 수많은 나무와 풀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것은 태운의 움직임을 조금도 막지 못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갈려 나가듯 길을 막는 모든 것이 거의 바스러졌기에 누가 보면 저 앞에서 무언가가 길을 정리해 주고 있는 건가 싶어질 정도였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그 또한 눈에 담을 수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풍경이 마치 실뭉치를 풀어놓은 것처럼 길게 늘어져 이게 나무인지 돌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은 왜곡되어 보였다. 그만큼 태운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빨랐다.

그 상태로 숲을 뚫고 가던 태운은 어느 곳에 다다라 가자 점점 속도를 멈추고 빠르게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내려쳐진 천둥과 번개가 보통의 자연현상이 아님을 알리듯 주변의 내기들이 우글대며 들끓고 있었다. 태운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는 거침없이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대면하는 순간 그 새끼를 죽여야겠습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요. 죄송해요. 스승님.’

원래라면 충분히 이 바뀐 환경을 체크하고 안으로 진입해야만 했다. 하지만 태운은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시현에게 무리하지 않겠다 몇 번이고 말을 한 상태였지만 태운은 몇 번 손톱을 탁탁 뜯고 입술을 깨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향할수록 공기가 후덥지근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강원도에선 보기 힘들 법한 넓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치 남만 같군.’

매끈한 나무통과 처음 보는 과일들, 그리고 점점 물러지는 땅에 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아까 기억해 두었던 신의 광산 위치를 더듬으며 말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무들의 행렬을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예전에 레이첼이 설명해 줬던 신의 광산들의 특성을 떠올렸다.

“…하, 건물 같은 게 아니라 이 환경 자체가 신의 광산의 범위였군.”

“그래 맞아.”

그때 아주 낯선 목소리가 기척도 없이 들려왔다. 태운의 손속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기 전부터 소환해 내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그러자 몇십 년은 튼튼하게 살아왔을 것 같았던 거대한 나무 서너 개가 둔중한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살점의 감각이 없다.’

하나 제 검에 걸린 감각에는 사람의 기척 따윈 없었다.

“너였군.”

그리고 그것을 다시금 확신시켜 주듯 아까와 조금의 변화도 없는 느긋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귓속을 파고들어 왔다. 태운은 이제 검을 쓰지 않고 사방으로 내기를 퍼트리며 주변을 날카로운 눈으로 빠르게 살폈다. 하나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목소리는 계속 윙윙대며 제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정시현이 아니라 네가 열쇠였어.”

멈칫.

그러나 낯선 이의 음성이 만들어 낸 시현의 이름이 태운을 멈칫하게 했다. 태운은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을 건 목적이 있을 텐데?”

“내가 너를 다시 네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태운 또한 이번만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얼굴을 와그작 구겨트릴 수밖에 없었다.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나름 제 딴에 꽤나 좋은 제안이랍시고 던진 말일 테다. 하나 태운에게는 최악의 제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왔는데 다시 시현과 떨어져 돌아갈 수 있다고? 이 새끼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시현이 이 사실을 알면 다시 자신을 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나.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지금처럼 죽어 가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개고생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저야 이 모든 고생이 상관없었다. 하지만 시현은 아주 크게 상관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때와 같은 선택할 수도 있겠지.

태운은 사실 제게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걸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다른 방법이 생겨난다니 그럴 순 없었다. 죽더라도 스승님의 곁에서 죽어야지 어디 있는지 알면서 다시 떨어진다니. 그것이 제게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참… 이딴 새끼가 어떻게 말로 사람들을 홀렸다는 건지.”

“뭐?”

“사람을 설득하고 싶었으면 그에 맞는 조건을 가지고 오셨어야지, 이 씨발 새끼야.”

태운은 들고 있던 검을 아래로 축 내려트리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점점 검은색 내기들이 꾸물대며 한 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해 봤던 건데. 이제 눈치를 챘네.”

게이트 안에 다른 게이트를 만드는 것. 신의 광산도 어쨌든 게이트였다. 그 안에 다른 게이트를 연결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도 한번 해 봤던 것이었다.

검은 내기들이 손으로 모여들다 못해 뚝뚝 떨어져 나와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떨어져 나온 비정형의 내기들이 점점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작은 단검의 형태였다. 온통 검은색인, 조금의 빛조차 투과할 수 없을 것 같은 새까만 단검들이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아주 불길하고도 두려운 기운이 뭉게뭉게 풍겨 나가기 시작했다. 발끝만 그 범위 안에 들여도 순식간에 존재가 지워질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때를 기준으로 느물대던 말소리가 뚝 끊겨 있었다.

“더 떠들어 봐.”

태운은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그거 아나? 응집석은 따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

“무슨 개소리를.”

그 순간 공간이 미친 듯이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태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공간이 이렇게 쭈그러들고 종국에는 그 안에 있는 자신마저 압착되어 버릴 것이라는 걸. 태운의 눈이 한 지점을 향해 고정되었다.

방금 이 공간이 쪼그라들며 아주 미세하게 기척이 느껴졌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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