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24. 합동 음주 단속 2
김세민은 휴게소로 들어가 차를 화물차 임시 주차장에 세웠다.
다행히 주차된 차는 없었다.
“내려 이 새끼야!”
뒷덜미를 잡아 끌어내리니 갑자기 두 무릎을 꿇는다.
“내가 아까는 술이 취해서 실수를 했네. 내 이렇게 빌 테니 제발 한 번만 봐줄 수 없겠나? 내가 십년 만에 승진해서 본부에서 창원지부장으로 인사 발령 났는데 그래도 다시 서울에 오려면 계속 안테나를 서울 쪽에 세워 놓고 있어야 하거든? 오늘도 사실 친구라고 했지만 같은 회사 선배 부친상이야. 응? 한 번만 봐주게.”
“근데 이 새끼가 끝까지. 내가 니 쫄따구냐? 왜 반말을 까. 재수 없는 새끼.”
“…….”
“야, 맞장 뜰 깡다구 없으면 꼬리 내려. 병신 같은 새끼.”
* * *
순찰대 사무실에 들어와서 경비 전화로 안기부에 전화를 걸었다.
“안기부 당직실 부탁합니다.”
교환한테 말을 하는데 남자가 총알같이 달려와서 김세민의 팔을 붙들고 통사정을 해 왔다.
“이거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나 옷 벗어야 돼요. 박강수 경사님, 제발 한 번만 나 살려 주시오.”
남자는 또 무릎을 꿇으려고 한다.
“여기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꾸 왜 이래요?”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시오. 부탁입니다.”
“하…… 그러면 서울 안기부에 당신 신분 확인해 줄 사람 있습니까? 누가 당신 신병 인수해 가면 나도 없었던 일로 하지요.”
남자는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다.
“아 박 수사관! 나야 나, 창원 지부장! 그래. 지금 빨리 좀 고순대 사무실로 좀 와서 나 좀 빼줘. 자세한 얘기는 와서 해, 아무튼 빨리 와.”
전화를 하는 동안에도 단속된 운전자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안 되겠다 싶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 눈도 있고 하니 여기 대장실에 잠시 앉아서 일반 손님인 것처럼 하고 있어요. 당신 부하 오면 확인하고 보내 줄 테니.”
남자를 대장실에 앉혀 두고서 문을 닫았다.
밖에서 전부 면허증만 받고는 그냥 돌려보내는데 그걸 전부 다 보게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 경장, 저 친구 밖으로 못 나오게 잘 감시해.”
“네 알겠습니다. 또 나가시게요?”
“아직 실적이 없어. 뭐라도 한 건 해야지.”
“다녀오십시오.”
사고반 직원들이 받아 놓은 면허증이 수북하다.
저걸 어떻게 다 처리하려고 저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 *
다시 단속현장으로 왔다.
“홍 경장, 사고반에 가 보니 면허증이 수북하던데 그거 다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냥 갖고 있으면 전부 다 선 달아서 연락이 와요.”
“그러면?”
“솔직히 같은 경찰관이 선 달고 오면 제일 좋죠. 그 사람이 봉투를 가져오거든요. 말썽 나도 자기가 책임질 테니 우리한테 불똥이 튈 염려는 절대 없으니까. 공무원이 선 달고 오는 게 최고예요.”
“높은 사람이 선 달아도?”
“이게 참 신기한 게. 높은 사람도 자기 체면이 있어서 그런지 다 봉투 하나 주고 오라고 코치를 해 줘요. 그리고 이거는 전부 다 훈방하는 거잖아요? 봐주는데 말썽 날 일은 없어요. 더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참, 아까 안기부 직원 그 사람은요?”
“대장실에 앉혀 놓고 나왔어.”
“김 부장님 대단하시던데요? 아까 따라가다 봤는데. 갓길에 무릎 꿇려 놓고 아주 혼을 내던데요?”
“반쯤 죽여 놓으려다 참았어.”
“잘 참으셨어요. 아 저기 또 하나 걸렸네요.”
단속된 차가 이쪽으로 오더니 창문이 스르르 열린다.
“아 박강수 경사시네. 수고해. 나 연합 박 기자야. 같은 종씨네~ 그럼 수고하고.”
하면서 차를 빼서 도망치려고 한다.
“이 새끼가, 오늘은 전부 다 양반학교 졸업한 놈들만 걸리네.”
김세민은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어이 거기 막으면 어떡해! 죽고 싶어!”
“한번 밀고 가 봐. 이거 아주 웃기는 새끼네.”
차에서 내리더니 PRESS란 로고가 크게 인쇄되어 있는 기자증을 꺼내 들었다.
“나 연합이라고.”
“그래서 뭐.”
“이 새끼 봐라. 니 점심에 쥐약이라도 처먹었나? 순사 나부랭이가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눈 안 깔아?”
완전 적반하장이다.
오늘 실적은 이걸로 해야겠다 싶었다.
김세민은 경적을 꺼내 ‘삐이익’ 하고 불었다.
단속하는 직원들에게 두 팔을 들어 X자 신호를 보냈다.
“이런 미친 기자 나부랭이 새끼가. 니 여기서 순순히 측정할래, 아니면 한 대 처 맞고 시작하든지.”
“어어! 순사가 사람을 치려고. 와 이거 요즘도 이런 순사가 다 있네. 이거 이거 특종이야 특종.”
“이런 미친 새끼가. 지금 어디서 난장을 까. 요즘 세상에 너 같은 양아치 기자도 아직 있네.”
김세민은 남자의 기자증을 확 뺏었다.
“뭐야 이거, 경동일보 출입증? 이 새끼가 기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새끼 차에 태워. 오늘 단속 실적은 이 새끼 하나로 끝내자.”
* * *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일반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사이비 기자만 정식으로 피의자 심문 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음주 측정을 거부한다는 수사 보고서를 첨부하고 도로 공사에 파견 나와 있는 보건소 간호사를 불러 채혈을 하도록 했다.
“당신, 채혈도 거부하면 면허 취소는 물론이고 검사한테 지휘 받아서 영장 칠 거야. 알아서 해. 자 이름!”
“조경수.”
“직업!”
“언론인.”
“뭐! 언론인! 당신 사이비 기자잖아! 사이비 기자.”
“아니 경찰관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몰라? 당신 직업란에 사이비 기자라고 적었다. 나중에 보여 줄 테니 보던지. 전과!”
“그런 거 없습니다.”
“홍 반장, 이 친구 C조회 좀 프린트 해 와.”
“네.”
“나이!”
“…….”
“나이! 너 정말 한 대 맞고 시작할래?”
“여기 조회 나왔습니다. 와우, 별이 다섯 개인데요?”
“이거 뭐야? 전부 사기에 폭행에 지금 수배 중이잖아? 빨리 수갑 채워!”
“자, 손 이리 앞으로 내세요.”
두 손에 수갑을 채우니 그제야 고분고분해졌다.
“야, 이 양아치 새끼야. 너 그동안 저 가짜 기자증 들고 다니면서 얼마나 등쳐먹었냐?”
“저거 가짜 아닙니다. 다 돈 주고 산 겁니다.”
“에라이 이 미친 새끼야. 돈 주고 산 기자증이 무슨 진짜야?”
“아닙니다. 지방지는 돈이 없어 우리 같이 기자증을 돈 주고도 사고 실제 기자 협회에 등록까지 시켜 줍니다. 매달 우리가 경동일보에 사용료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근데 너 아까는 연합이라고 그랬잖아?”
“아 그거야 지방의 모든 기사가 연합을 통해서 중앙으로 취합이 되니까 아무래도 연합이라고 해야 먹어 주지요.”
“근데 수배까지 있는 놈이 아까는 왜 그리 큰소리 탕탕 쳤어?”
“이제까지 단속에 걸려도 큰소리치면 다 넘어가더라고요.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재수가 없으려니 별 희한한 놈한테 걸려 가지고…….”
“뭐 희한한 놈?”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설마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데 때리시려고요?”
“우리 박 부장님은 형사 출신이라 성질나면 주먹이 먼저 나갑니다.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홍 경장이 옆에서 슬슬 바람을 잡는다.
그때 사무실로 누군가 들어왔다.
거침없이 들어오는 폼이 공무원 같다.
그것도 끗발 좋은 부서에 있는 사람 같았다.
몸매도 단단해 보였고 특히 눈매가 아주 매서웠다.
서슬이 시퍼렇게 해서 들어와서는 대뜸 묻는다.
“여기 박강수 경사가 누구요?”
“X발 남의 관공서에 와서 말을 놓으려면 팍 놓고, 올리려면 올릴 것이지. 어째 양반도 못되고 상놈도 못 되는 얼치기 학교를 나왔나.”
김세민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니 서로 순식간에 몇 초간 눈이 뒤엉켰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것은 맹수의 세계와도 같다.
상대가 나보다 약하다 싶으면 사정없이 뭉개려고 들지만 일단 서로가 눈빛을 교환해 보면 상대의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마련이다.
체격이며 동작을 보고 싸움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다.
수초간의 탐색전 끝에 상호 간 파악이 끝이 났다.
상대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안기부 박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신분증을 꺼내어 김세민에게 보여 주었다.
국가 안전 기획부 2S 3D라고 적혀 있었다.
‘2처 3국? 그럼 대공 요원인데?’
“잠깐 이리로 오시죠.”
대장실로 안내를 했다.
“아니 지부장님!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하는 건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뭐.”
“여기 신병 인수증에 사인해 주시고 나가시면 됩니다.”
“아니 이거 꼭 법대로 해야 하는 겁니까? 이러면 곤란해집니다. 한번 봐주시지요?”
제법 기가 많이 꺾여 보였다.
“일단 지부장님은 잠시 나가 계세요. 제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난 별로 할 말 없는데. 박 수사관님도 들어오다 보셨겠지만 기자도 법대로 처리하는데 안기부 직원이라고 우리가 봐주면 저 기자가 가만있겠습니까?”
“우리 지부장님도 젊을 때는 흑색 요원으로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나갈 때만 기다리지만 옛날에 한가락 했던 가락은 있어서 성질이 나면 말을 함부로 하고 그러시죠. 우리 박 경사님이 한 번만 선처를 해 주시지요. 저래 봬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은 조용하게 모시고 나가십시오. 며칠 지나 보고 별말 없으면 안기부에 기관 통보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큰 신세를 졌습니다. 이거는 약소하지만 식사라도 하시고…….”
박 수사관이 봉투를 꺼낸다.
아무리 그래도 안기부 직원한테 봉투를 받을 수야 있겠나 싶었다.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돈 받고 봐줬다는 소리는 듣기 싫습니다.”
“그렇습니까……. 근데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 박 형도 보통 눈빛이 아니던데. 운동을 오래 하셨나 봅니다.”
“뭐 그냥 동네에서 굴러먹던 놈이죠. 운동은 무슨. 자 어서 돌아가십시오, 저 기자 친구가 보기 전에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 무전이 나왔다.
“123호 순마! 여기 에이동 종실.”
홍 경장이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빼 들었다.
“여기 123호.”
“상행선 80K 지점에 통고!”
“아 칠팔 칠팔. 사고래요. 빨리 가요.”
“그래 알았어. 박 경장, 이 사이비 기자 나머지 조서 좀 받아 줘.”
“네, 다녀오십시오.”
‘웨에엥’ ‘와앙 와앙’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사고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 가니 벌써 마이카 기사들이 올라와 있다.
“아니 쟤네들은 어떻게 우리보다 더 빨리 오는 거야?”
“쟤들도 다 우리 무전을 듣고 있어요.”
“응? 우리 무전을 듣는다고?”
“그럼요. 세운상가 같은 데 가면 경찰 주파수 잡아 주는 무전기는 얼마든지 살 수가 있어요. 지네들 밥그릇인데 죽기 살기로 하는 거죠.”
5중 추돌 사고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사고 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홍 경장이 말을 꺼냈다.
“제가 어제 안테나를 세워 보니까 다음 주에 발령이 날 것 같아요. 부장님도 아마 이번에 기동대로 가시는 것 같던데요.”
“그래, 차라리 잘 되었어. 아 그리고 이거 깜박했네. 그저께 우리 음주 단속한 것. 일성주택 심 사장 있잖아? 중앙지검에 명 검사가 백만 원 줬어. 오십씩 나눠 갖자.”
“야, 정말이에요? 정말로 키워서 먹은 게 맞네. 어때요? 제 말 맞죠?”
“맞거나 말거나 간에……. 나는 검사한테 돈 받아 본 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아니에요. 부장님은 카리스마가 있어서 검사들도 안 주고는 못 배길걸요?”
“아휴, 이 아부쟁이. 그리고 안기부 지부장도 그냥 보냈다.”
“잘하셨어요. 이제 나갈 때 다 되었는데 몸조심해야지요.”
사무실에 돌아오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응?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낮에 두 번이나 단속이 되었던 도배장이 아저씨가 가족과 함께 나무 의자에 앉아 있고 어린 딸은 인형을 끌어안고 울고 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는 거야?”
“양재 톨게이트에서 나가다가 음주에 걸렸어요.”
“지금 처리하는 거야?”
“네. 대장님이 직접 단속하셨어요.”
김세민은 상기된 얼굴로 남자에게 다가가 따져 물었다.
“아니 아저씨, 제정신입니까? 어쩌다가 또 단속이 된 겁니까!”
“어이구 경찰관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집에 가는데 딸아이가 현장에 제 인형을 두고 왔다고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다시 돌아가서 가져오려고 톨게이트 나가다가 단속이 되었지 뭡니까. 전 올 때 단속을 했으니 갈 때는 단속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또 음주 운전을 하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머리가 띵해 왔다.
아까 자신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옆에서 덩달아 울고 있는 딸과 아내를 보니 김세민은 불현듯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아마 1년은 면허증이 없어 밥줄이 끊길 것이고 예전 우리 집처럼 매일 끼니 걱정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겠지. 저 아이는 나중에 커서도 자신 때문에 가정이 무너져 내렸다는 죄책감에 얼마나 괴로운 세월을 보내야 할까……. 예전의 나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회의감이 물밀듯이 밀려오자 김세민은 가라 명찰을 뜯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