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30. 도시락에도 리베이트가 있다
“돌격!”
데모대가 흩어지자마자 중대장은 느닷없이 돌격 명령을 내렸다.
“스톱! 스톱! 정지해! 천천히 걸어가!”
뛰어가려는 대원들을 김세민이 막았다.
“지금 뛰면 대원들이 숨이 차서 금세 지쳐 버립니다. 방독면 한번 쓰면 최소한 5, 6시간은 버텨야 하는데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고요.”
“그런가? 난 몰랐네. 방독면 쓰고는 한 번도 작전을 안 해 봤거든.”
“우리는 포위된 중대를 구출하는 게 목적이지, 데모대를 검거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됩니다.”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뭐 현장 경험도 있다며? 그래, 다음은 뭐지?”
김세민은 전원에게 작전 계획을 지시했다.
“가스 지프차 가운데 위치하고 좌측에 1소대와 2소대 1, 2분대, 우측에 2소대 3, 4분대와 3소대, 방패 조는 앞으로! 뒷열은 방패 조의 허리띠를 단단히 잡아라. 분대장들은 근접하면 사과탄을 던진다. 별도 명령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마지막 세 발은 남겨라. 그건 우리 후퇴용이다.”
일단 대열을 정비해서 공업탑으로 내려갔다.
간간이 길옆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와 돌을 던지고 도망갔지만 숫자도 얼마 안 되고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공업탑에 가까이 가 보니 기동대 1개 중대가 완전히 포위되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다.
최루탄이 떨어지면 저 꼴이 나는 것을 김세민은 이미 현장에서 많이 봐 왔던 터였다.
“SY 발사 준비!”
“발사!”
‘뻥뻥뻥!’ ‘피유유융’ ‘빠바바박! 파파팍!’
최루탄이 터지고 새로운 기동 중대가 다가오자 포위망이 풀렸다.
데모대도 다 흩어졌다.
* * *
“다들 괜찮습니까?”
“아휴! 죽다가 살아났네요. 어디서 왔습니까?”
“아, 우리는 서울 청담서 방순대입니다. 거기는 어디서?”
“우린 부산에서 왔습니다. 부산 기동 3중대입니다. 도착은 어제 했는데 아침에 도시락 하나 먹고 나온 뒤로 하루 종일 두들겨 맞기만 하고 도망 다녔습니다. 하여튼 이 새끼들, 지독한 놈들입니다. 다들 노가다 하던 놈들이라 힘도 세고 볼트나 너트 같은 걸로 새총을 만들어 쏘지를 않나, 신나로 화염병을 만들어 던지고……. 여기 길에 한번 보세요. 보도블록이 전부 깨져 있죠? 투석전까지 벌어집니다.”
“어쨌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 * *
“거100종실! 여기 2007중방장!(중대장).”
“여기 종실!”
“공업탑 상황은 현재 종료. 1003물넷 하고는 열두시 했음.”
“아, 칠팔! 칠팔! 수고했어요. 오늘은 더 이상 상황이 없으니 일단 부대는 숙소인 염포중학교 체육관으로 가고 중방장과 행정계장은 울산 시청으로 종넷(도착)하도록.”
“칠팔.”
다시 자망 무전으로 버스를 불렀다.
“170짐마(버스)! 여기 행정계장.”
“…….”
“170짐마! 여기 중방장!”
무전을 안 받는다.
고의로 그러는지는 어떤지는 모르나 이번에 돌아가면 운전 요원은 반드시 의경으로 교체해야겠다고 김세민은 굳게 마음먹었다.
“일단 시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무전해 보고 연락이 되면 소대장님은 염포 중학교로 가서 휴식하고 계세요.”
“난 염포 중학교가 어딘지 모르는데.”
옆에 있던 부산 중대장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아, 우리 집합 장소가 바로 옆에 염포 고등학교 강당입니다. 같이 가시죠, 내가 길은 알아요.”
“잘 되었네요. 근데 우리 운전반장들이 무전을 안 받아서 언제 올지…….”
소대장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내 이 새끼들을 그냥…….’
김세민은 마음 같아선 운전반장 놈들을 당장에라도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일단 시간을 좀 더 끌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김세민은 지휘망 무전을 잡았다.
“거100종실! 여기 2007물넷장!”
“여기 거100!”
“2007물넷이 서울에서 와서 여기 울산 지리를 모릅니다. 안내 경찰을 한 명 지원 바랍니다.”
“아, 칠팔! 칠팔!”
무전을 듣던 경남 도경국장이 펄펄 뛰었다.
“아니, 외지 병력한테 안내 경찰도 안 붙였어? 이 지휘망 무전은 지금 청와대나 본부에서도 다 듣는단 말이야!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 거야!”
“엇, 아까 울산서 백차를 하나 붙이긴 붙였습니다만…….”
경비과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변명을 했다.
“거기 백차한테 안내하라고 무전해 봐!”
“여기 거100인데 잠잠전 날 때(조금 전) 상고한 2007물넷장, 거기 옆에 있는 순마한테 안내 부탁하기 바랍니다.”
“벌써 다 도망갔습니다.”
어차피 위에서 지금 무전은 다 듣고 있을 터인데 한번 엿 먹어라 싶은 마음에 바른 소리를 해 버렸다.
그때 무전기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짐마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목소리를 들어 보니 우리 운전반장이다.
김세민은 머리끝까지 신경질이 나서 무전에다 대고 쌍욕을 퍼부었다.
“그냥 오지 마, 이 새끼들아! 니들은 인민군 X대가리보다 더 나쁜 새끼들이라고.”
어차피 여기서는 서울 자망 무전을 들을 사람도 없고 들어 봤자 같이 지원 나온 서울 중대장들뿐일 텐데 하는 생각에 그냥 욕을 해 버렸다.
“중대장님, 갑시다!”
김세민은 지휘 지프차에 올라타고 울산 시청으로 갔다.
* * *
경남도경이 창원에 있어서 그런지 경찰 지휘 본부는 시청 상황실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기동대 중대장들이 작전 회의를 하는 동안에 각 중대 행정계장들은 따로 회의를 했다.
도경 경리계장이 나와서 설명을 했다.
“오늘만 도시락을 도경에서 일괄 지급하고 내일부터는 한 끼에 삼천 원씩 계산해서 현금으로 나눠 줄 테니까 각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식사를 해결하라는 방침입니다. 지금 밖에 도시락 업자들이 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직접 현금을 지불하고 식사를 배달 받으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가스를 사용한 중대는 나중에 가스탄 사용량을 보고해 주시면 추가로 지급을 하겠습니다. 숙소는 불편하더라도 체육관이나 학교 시설 외에는 단체로 들어갈 데가 없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엔 왜 저렇게 하는지 궁금했으나 지나가는 말을 들어 보니 개별 급식을 하는 이유는 출동 나온 부대들이 복귀해서 도시락 품질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우선 열흘분 식사비를 받았다.
10만 원 권 자기앞 수표로 1350만 원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밖으로 나오니 수십 명의 도시락 업자들이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셨죠? 저희 업체 도시락이 울산에서 최고입니다. 여기 사진 보시면 매 끼니마다 불고기가 올라갑니다. 국도 따로 나가고요. 어떻습니까? 괜찮죠?”
“뭐…… 사진으로만 봐선 잘 모르겠는데. 일단 며칠 먹어 보고 결정하기로 하지요. 결제는 매일 저녁에 그날분 정산을 하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뭐 또 남았습니까?”
“다른 중대도 다 그렇게 합니다만, 밥값에서 20%는 제가 간부님들 판공비로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에 오늘 밥값을 다 받으셨지 않습니까? 미리 결제를 해 주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가만, 지금 사장님 말은 우리한테 밥값에서 20% 떼고 미리 결제를 해 달라 그 말씀인가요?”
“정확하십니다. 역시 서울에서 오신 분이라 그런지 계산이 정확하시네요.”
“서울은 뭔 서울……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밥이나 제대로 해서 주십시오. 대원들 밥값 가지고 장난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세상 구석구석까지 다 리베이트 판이라고 생각했다.
* * *
숙소인 염포 중학교 체육관으로 복귀했다.
매트리스에 1인당 담요 석 장이 전부였다.
베개도 없어 방석복을 베고 자야 할 판이었다.
‘이거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잠자리가 엉망이군.’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고생한 대원들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김세민은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때마침 운전반장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저 새끼들이.”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김세민은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같은 경사이자 선임 소대인 1소대 부관이 그걸 보고 김세민을 달래기 시작했다.
“행정계장, 아까 일은 말이지. 내가 여기 운전반장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오늘따라 무전기 감도가 안 좋았대. 그러니 그냥 넘어가는 게 어때? 여기까지 와서 우리끼리 얼굴 붉혀 봐야 좋을 것도 없고.”
“뭐, 됐습니다. 그까짓 버스 없어도 됩니다. 울산 바닥 그렇게 넓지도 않은데 내일부터 뛰어다니면 되는 거죠. 그냥 운전반장들 전부 서울 올라가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이참에 서장님한테 보고해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야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뭐 하십니까?”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는 게 어떻겠어?”
그러자 김세민은 조금 떨어져 있던 중대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중대장님! 오늘 낮에 저하고 같이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이거 보고도 가만히 계실 겁니까? 빨리 서장님한테 지휘 보고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합니다.”
그러자 운전반장들이 사색이 되어 김세민에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김 부장. 우리가 잘못했어. 내일부터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똥 누러 갈 때도 무전기 꼭 챙겨 가지고 갈 테니까……. 오늘 일은 그만 넘어가기로 하세.”
나이가 많은 남명덕 경장이 먼저 꼬리를 팍 내렸다.
평소에는 월남 파병 다녀온 얘기를 무용담이랍시고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으며 폼을 잡더니 오늘은 웬일로 먼저 꼬리를 내렸다.
“하…… 이게 마지막입니다. 다음에는 경고도 안 할 겁니다. 경찰에 계속 남아 있고 싶으면 다들 지휘권에 스스로 걸어 들어오세요.”
“지휘권에 뭐가 어쩐다고?”
“조직에 들어온 이상 본인 스스로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세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꼭 누가 억지로 시키거나 고함을 치기 전에 자기 일은 스스로 찾아서 좀 하자고요.”
“야, 우리 계장님 이제 보니 머리에 정말 든 게 많으시네. 어려운 문자도 쓰시고.”
“뭐? 당신 방금 뭐라 그랬어.”
“아니아니, 비웃는 게 아니고. 정말로 감탄해서 그래요. 서장님이 왜 기를 쓰고 데려오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구먼.”
자리에 있던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는 눈치였다.
방금 전 한 말은 김세민이 군에 있을 때 사관학교를 나온 신임 소대장이 평소 귀에 닳도록 한 말이었는데 세민에게는 그 말이 비수처럼 심장에 파고들어 늘 따라다녔다.
‘스스로 지휘권으로 걸어 들어가서 자신의 권위를 지킨다.’
김기연 소대장의 훈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도시락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문제가 많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밥이 너무 적었다.
김세민도 배가 고픈데 한창인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반찬도 양이 적었고 이게 기간요원들 리베이트 주려고 이러나 싶으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하는 수 없군.’
일단 어제 받은 격려금을 헐어서 빵하고 우유를 사고 삼호냉동 김병수 과장한테 전화를 했다.
-네, 형님! 울산 가셨다면서요? 고생이 많으시겠는데요. 근데 웬일이세요?
“김 과장, 전에 내 얼핏 들으니 울산에도 냉동 창고가 있다면서?”
-맞습니다. 여기보다 두 배는 크죠. 근데 무슨 문제라도?
“경남 도경에서는 돈만 주고 알아서 도시락을 배달해 먹으라는데 먹어 보니 양도 너무 적은 데다가 반찬도 형편없고, 이러다간 내가 대원들한테 밥값 떼어먹는다는 소리 들을 판이야. 울산에 김 과장 회사가 있으니 아는 도시락 업체 좀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예산은 한 끼에 3천 원 잡고 하루 세 끼니까 150명 해서 하루 135만 원인데.”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수소문해서 사람을 보내죠. 지금 계신 위치는 어딥니까?
“여기 염포 중학교 체육관이야.”
-아~ 압니다. 중학교랑 고등학교 같이 붙어 있는 곳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지금 연락해 보고 다시 전화 드리죠.
“고마워.”
-별말씀을요. 몸조심하세요.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밖에서 누가 찾는다고 해서 나가 봤다.
“어머니 도시락의 최호식이라 합니다. 김병수 과장님한테 직접 연락을 받았습니다.”
김세민은 남자가 내미는 명함을 받고 인사를 했다.
“저는 울산 삼호냉동에 일하는 근로자들한테 매일 도시락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5천 원짜리인데 아주 먹을 만합니다. 매일 돼지 불고기를 상추하고 쌈 싸서 먹을 수 있도록, 아예 반찬통 하나 밥그릇 하나 따로 준비하고요, 국도 매일 종류를 바꿔서 배달하겠습니다.”
“좋긴 한데, 우리가 예산이 한 끼당 3천 원이라서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동아자동차에서 일하는 하청 근로자들한테도 어차피 납품을 하고 있거든요. 반찬 몇 가지 더 놓는다고 해서 특별히 경비가 더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그래도 금액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저…… 다른 업체들이 리베이트 얘기를 하죠?”
“어떻게 아십니까?”
“이 바닥이 좁거든요. 3천 원짜리 도시락을 20% 리베이트 주면 개당 2,400원짜리가 되는데 거기에 업체 마진이 30%는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러면 의경들이 먹는 도시락은 실제 1,500원에 맞춰야 하니 부실할 수밖에요. 정 미안하시면 서울에서 같이 온 중대장들한테 저희 소개나 한번 해 주시지요. 대신 저희들은 리베이트는 못 드립니다.”
“당연하지요. 대원들 먹는 밥값에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제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김 과장님이 주말쯤 해서 울산에 위문 공연 오신다고 했으니 그때 뵙겠습니다.”
“위문 공연요? 그럴 시간은 없는데.”
“동아는 무조건 주말에 쉬거든요. 이 사람들도 주말에는 데모 안 할 겁니다. 지들도 가족들 데리고 놀러 다녀야 하니까요.”
“네? 놀러 다닌다고요?”
“그럼요. 다 돈 때문에 데모하는 건데. 거기다가 재야 단체니 인권 변호사니 하는 사람들이 끼어들어 판이 커진 것이지. 원래 이 사람들 요구는 민주화 이런 게 아니고 그냥 임금 인상이거든요.”
“알 만하네요……. 그럼 내일 아침부터 납품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예, 한번 드셔 보세요. 실망시켜 드리진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새로 도시락이 배달되었다.
전날 먹은 도시락과 비교해서 다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밥은 별도 용기에 따로 담아 왔고 생선조림에 돼지 불고기에 상추까지.
대원들이 좋아하는 햄도 전을 부쳐서 반찬으로 나왔고 국은 무려 쇠고깃국이었다.
어제까지 묽은 콩나물국만 먹다가 쇠고기 국이 나오니 다들 신이 났다.
‘부대원 사기가 먹는 것 하나로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 * *
이틀간은 의외로 가두 진출 시위가 없었다.
다들 노조 사무실에 모여서 투쟁 선포식을 하거나 회사에 대한 성토를 하는 등 차분한 냉각기를 가졌고 진압 부대도 동아 중공업과 자동차 정문을 틀어막으며 시내 진출을 막는 것 외에는 조용했다.
중대끼리 모여 있다 보니까 자연히 서로가 먹는 도시락에 관심이 갔다.
당연히 청담 중대 도시락에 다들 관심이 쏠렸다.
“아니, 쟤네들은 부자 동네라서 그런가, 저 도시락 좀 봐라. 무슨 일식집 도시락 같지 않냐? 서장이 돈을 많이 줬나 봐.”
대원들이 수군거리자 이웃한 서대문 방순대장이 건너와서 사연을 물어 왔다.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그냥 행정계장 아는 사람이 울산에서 도시락 공장을 해서 싼값에 먹는다고 알려 줬더니 너도 나도 같이 하자고 청을 넣는 통에 사흘 만에 지원 온 100개 중대 가운데 절반 넘게 어머니 도시락과 계약을 했다.
하루 매출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본다며 최 사장이 싱글벙글한 건 말할 것도 없다.
* * *
4일째 되는 날 미포 삼거리에서 예비대 역할을 맡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동아 중공업 정문에는 30개 중대가 틀어막고 있었다.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르게 제목이 출정식이었다.
‘밖으로 나온다는 말인가?’
“밥 왔다! 밥 먹자!”
대원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요새는 다들 끼니마다 바뀌는 도시락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중대장은 지휘차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고, 소대장들도 제각기 버스에 앉아 책을 들고 있었다.
대원들은 밖에 나와서 밥 먹는다고 다들 방석복 상의는 벗은 채 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행정계장님! 저거 보세요! 담 넘어오는데요?”
“뭐?”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정문으로 진출하다가 진압 중대에 막힌 중공업 근로자들이 미포 삼거리에 있는 담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수천 명은 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