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42. 자동차 학원은 더 개판이다
다음 날부터 면허 시험장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접수대 창구 뒤에 앉아서 신문을 보거나 앞에 앉아 있는 접수대 아가씨들과 농담 따먹기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직원들이 무슨 일인지 다들 정문이나 출입구 앞에서 서성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님 낯선 사람을 데리고 면허 시험장 구석구석을 안내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 이거 진짜 정신없네. 내일부터는 하루에 다섯 명만 불러야겠어. 업무도 봐야 하는데 돼지 오리엔테이션까지 하려니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국제 면허를 담당하는 손진수 경장이 들뜬 말투로 이야기했다.
“야! 넌 어째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아주 신이 났어?”
범칙반 김재수 경장이 핀잔을 줬다.
“난 어제 오랜만에 집에 가서 편하게 잤어. 사실 그동안에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 한번 안 보고 막 찍어 줬잖아? 여기가 무슨 공장도 아닌데 말이야. 근데 우리 김세민 부장님 오시고 나서 딱 기준을 정해 주신 거잖아? 반드시 본인을 데리고 와서 교육을 시키라고. 또 문제가 되더라도 검찰이 어떤 식으로 수사에 들어가는지 짚어 주시고 말이야.”
“그게 그렇게 되나?”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 신의 한 수지 뭐야? 어쨌든 그 양반이 시킨 대로 하면 우리가 잘못한 건 티 날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야! 언제 김 부장님이 우리 보고 해 먹으라고 했어!”
“야, 김 부장 성격에 니들 맘대로 판 벌여서 해 먹어라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하겠냐? 그게 그 소리지. 해 먹더라도 돼지 본인을 데려와서 잘 교육시키고. 말썽 안 날 사람만 골라서 조금씩 해 먹고. 맘 편하게 여길 떠나고. 뭐 그런 얘기 아니겠어?”
“……니 뇌 구조가 정말 궁금하다.”
“뭐, 앞으론 우리가 알아서 기어야지. 어쨌든 난 어제부터 맘이 놓이더라. 우릴 지켜 줄 김 부장님이 관리반 서무 부장으로 든든하게 계시지. 안 들키고 돼지 잡는 기가 막힌 방법까지 일러 주셨지. 난 김 부장님한테 끝까지 충성할 거다.”
“그건 그렇고, 어제 기능반 정재도 경사 얼굴 봤냐? 완전 김 부장님한테 쫄아 가지고. 그 새끼 평소에도 우리한테 와서 지 기능반에 있다고 얼마나 지랄했냐? 원칙도 없고 돈 더 주면 더 받아 주고…… 아무튼 그렇게 돈에 환장한 새끼는 처음 봤다.”
“이번에 된통 걸렸으니 그냥 넘어가진 않을 듯한데……. 근데 김 부장이 말은 저렇게 해도 정 경사를 고발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그럼 우리도 같이 X되는 거 아니야?”
“원래 형사 출신들이 의리 하나는 끝내 주잖아. 그렇게 직원들 다 보는 앞에서 쫑코를 줬으니까 정 경사 걔도 알아 처먹어야지. 아가리 하고 찌그러져 있으면 별 문제는 없을 거라 본다.”
“아가씨들도 어제 그거 보고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더라. 그동안 기능반에 당했던 거 생각하면 한 방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다고 기뻐서 회식까지 했대. 웃기지 않냐?”
“뭐, 졸지에 우리 관리반 위상이 맨 위로 순식간에 치솟은 거지. 이제 이 탄천 시험장 권력 순위는 관리반, 기능, 학과 순이다. 킥킥킥!”
관리반 직원들이나 아가씨들도 다들 김세민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 * *
김세민이 탄천에 온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민원실 넓은 사무동으로 들어오니 다들 일어나서 ‘부장님, 안녕하세요?’ 하고 합창을 한다.
김세민을 쳐다보는 눈빛에 다들 정감과 신뢰, 존경이 가득 묻어났다.
“어! 좋은 아침! 아니, 뭐 좋은 일 있어?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거야 보스께서 출근하시는데 당연히 예의를 표해야 정상인 거죠.”
적성 검사 담당인 김한수 경장이 씩씩하게 말을 걸어 왔다.
“야, 주임님이 계시는데 보스는 무슨 보스?”
“아닙니다. 어제 저희들 회식하면서 앞으로 관리반에서는 부장님을 보스라고 부르기로 만장일치를 보았습니다.”
“에이, 집어치워, 야, 남이 들으면 무슨 조폭 조직인 줄 알겠다.”
“어쨌든 존경합니다. 보스!”
“저게 진짜.”
김세민의 자리도 아침부터 깨끗하게 청소와 정돈이 되어 있고 책상 위에는 꽃병까지 놓여 있었다.
“어! 웬 꽃병?”
“보스께서 어떤 꽃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실내이기도 하고 여기 담배 연기가 워낙 자욱하니까 스킨답서스를 골라 봤어요.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조 양! 너까지 놀리냐? 쪽 팔리게 보스가 뭐냐?”
“어제 직원분들하고 아가씨들이 다 모였는데 만장일치로 보스라고 부르기로 했대요. 이 늑대소굴에서 단번에 보스로 올라서신 거죠. 이제 이 탄천에서는 보스 말이 곧 법이에요.”
‘하…….’
“그리고 오늘 주임님께 학원 감사건 결재 올렸습니다.”
“주임님이 국장 결재까지 들어가는 거야?”
“아뇨, 주임님은 교통과장님까지만 결재받으시고, 부국장님과 국장님 결재는 장장님이 다녀오실 거예요.”
“그렇구먼. 그럼 결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결재 나기 힘들 것 같아요.”
“왜?”
“학원 연합회에서 명절만 되면 국장님부터 직원들 전부 다 인사를 하거든요? 저한테까지 상품권이 돌아올 정도에요. 그런데 결재가 쉽게 나겠어요?”
“학원 감사 이야길 먼저 꺼낸 건 너잖아. 그럼 넌 그걸 알면서도 왜 감사하자고 했는데?”
“그건…… 보스께서 새로 오시고 해서 한번 규정대로 한다는 인상을 심어 줄 필요도 있고, 혹시라도 나중에 학원이 언론 등에 문제가 돼서 원성을 받을지 모르잖아요? 그거라도 해 놔야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뭐 그런…….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나 할까요?”
‘일리는 있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보통 담당자한테만 덤터기 씌우고 책임은 책임대로 떠넘기면서 높은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거든요.”
“너 애가 꽤 똑똑하다?”
“저 애 아니에요! 스물다섯인데 무슨? 제 친구들은 벌써 결혼해서 애까지 낳은 친구도 있단 말이에요.”
“그래도 넌 내 동생보다도 어리니 애는 애다.”
“보스께서 애라면 애 해야죠, 뭐.”
“아니, 근데 너 자꾸 보스, 보스 할래?”
“저만 그러나요? 나중에 보세요. 다들 보스라고 할걸요? 이제 물릴 수도 없어요.”
“나 참!”
* * *
교통과장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홍범식 관리 주임을 쳐다보았다.
“근데 이거 지금 자동차 학원 감사 한다고 하면 국장한테 한 소리 듣지 않을까?”
“김세민이 말이 이거라도 해놔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방치했다는 비난도 면할 수가 있고, 검찰 범죄 정보과에서도 자동차 학원을 내사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답니다. 우리가 미리 사전에 예방 차원에서 점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미리 업무 보고서를 넣어 둘 테니 참모 회의 때 한번 거론해 보세요. 만약에 국장님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서랍에 넣어 두면 되고 갖고 오라 그러면 결재받고 시행하는 거죠. 그리고 과장님도 여기에 사인하시구요.”
“나도 해야 돼?”
“그래야 나중에 조그만 면책 사유라도 됩니다. 나도 감사하려고 했는데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 못했다. 뭐 이런 할 말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세민이 이 친구, 형사 출신치고는 제법 영리해. 요즘 면허 시험장 분위기 좀 어때?”
“아, 그 친구 오고 나서 분위기 많이 달라졌죠.”
“직원들끼리 싸운 거 말하는 거야? 그런 얘기가 들리던데?”
“과장님 안테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이 사람아, 내 목이 거기에 달렸는데, 그럼 편안히 발 뻗고 누울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지금은 다 정리됐고?”
“개기는 직원들 단칼에 제압하고 김세민이 손아귀에 다 들어갔습니다.”
“그래? 소문대로 대단하구먼. 그러니 청담서장이 안 내놓으려고 안달을 했지. 일단 학원 감사 이 건은 먼저 업무 보고를 넣어 봐. 내일 아침 참모 회의에서 운을 슬쩍 띄워 보고 눈치를 한번 보지 뭐. 학원장 이 사람들도 한번 정신 차려야 돼.”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아침 서울시경에서 참모 회의가 열렸다.
“어이! 교통과장!”
“네! 국장님!”
“이거 자동차 학원 감사건 말이야. 꼭 해야 돼? 하게 되면 시끄럽지 않을까? 연합회장이 이번에 어디더라…… 맞아, 국회의원 공천 신청도 했다면서.”
“네, 동대문 병입니다.”
정보과장이 대답을 했다.
“사실 정보 파트에서도 벌써 파악을 하고 있는데 학원에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
“우선 규정을 안 지키고요, 시설도 엉망인 데다가 무허가도 난립을 하고 수강비를 턱없이 바가지를 씌우니까 시민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그건 다 아는 얘기잖아? 내 말은, 생전에 한 번도 한 적 없는 감사를 한다고 하면 이 사람들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일개 경사가 가서 뭘 어떻게 하겠냐 이 말이야. 여기 과장들도 다 알겠지만 저 사람들 명절 때나 과, 서장들 경조사 때 빠짐없이 챙겨 주고 휴가비까지 받아 쓰는데 느닷없이 감사한다고 하면 우리한테 감정을 갖지 않겠어?”
“…….”
“다들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고. 그냥 덮고 지나가는 게 좋아? 아니면 이참에 제대로 한번 군기 잡아야 하나?”
“우리가 저 사람들한테 용돈 받아 쓰는 것은 지들 해 먹는 것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입니다. 한 달 수강료를 수십억씩 거둬 먹는데 정작 학원생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투자도 안 한단 말이죠. 면허 시험장에서도 컴퓨터 채점기 좀 설치하라고 몇 번이나 공문을 보냈는데 콧방귀도 안 뀌더랍니다. 말 나온 김에 그 김세민 경사한테 한번 맡겨 보시죠. 뭐 대형 사고야 치겠습니까?”
정보과장이 제법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교통과장 편을 들어 주었다.
“그래?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구먼. 다른 의견은 없어? 수사과장 당신 생각은 어때?”
“저도 정보과장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경찰이 가만히 있으면 저놈들이 우리 존재감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네놈들이 누구 덕에 해 먹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줄 필요는 있습니다.”
“다들 같은 생각인가 보군.”
“생짜배기로 쳐들어가기보다는 약간 밑밥을 까는 게 어떻습니까? 명분도 세우고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보안과장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어떻게?”
“시민들이 자동차 학원에 대한 불만이 많다. 선거를 앞두고 그것이 여당의 정책 연구소나 안기부 등을 통해서 지금 공론화가 되고 있다. 검찰에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으니 이참에 예방 차원에서 점검하는 것이다. 그런 내용들을 학원 연합회에 흘려주고 전부 감사에 협조하라고 구두로 통보하는 것이죠. 뭐 따로 공문을 발송할 필요는 없어 보이고요. 그 정도만 해도 저놈들이 그동안 했던 짓들이 있으니까 겁을 찔끔 먹을 겁니다.”
“좋아 굿! 그거 괜찮네. 그렇게 하자고. 교통과장 결재 올리라고 해. 내가 직접 검토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 * *
“이게 전부 그 김세민인가 하는 친구가 낸 아이디어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에 너무 학원을 방치해 놓았으니까 담당자가 새로 바뀌었을 때 한번 감사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보기보다는 똑똑한 친구네. 이번에 울산 사태 때도 김세민이하고 서대문 방순대장. 이 두 사람이 공업탑에서 필사적으로 막아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 난리 블루스가 났을 거야. B.H(청와대)에서도 말이 있었으니까 경무과장은 내가 다른 데 가더라도 잊어 먹지 말고 김세민이 하고 정우진이 꼭 승진시켜 줘. 지금 정권이 두 사람한테 빚을 졌다고 민정수석이 그러더라고, 각하도 알고 계신대.”
“네, 명심하겠습니다.”
* * *
“보스! 교통과장님 전화입니다. 1번입니다.”
조 양이 막 출근해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김세민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1번은 경비 전화 라인이다.
‘저게 아침부터 또 보스 타령이야?’
“충성! 경사 김세민입니다.”
“응. 그래, 고생하지? 아침에 참모 회의에서 보고 드렸네. 국장님이 감사를 하라고 하시거든? 나중에 장장 보고 결재 들어오라고 전달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 있나? 오히려 우리가 자네한테 감사해야지.”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 나가서 말썽나지 않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말하는데 실수 없도록 신경은 써야 할 거야. 광일 학원장이 이번에 아마 여당 공천을 받을 거 같아. 군 장성 출신이고 파워가 여당 내에서도 막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
“충고 감사합니다.”
“뭐 물론 자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이 사람들, 학원 한답시고 노른자 땅에 수만 평씩이나 차지하고 앉았잖아? 가만히 숨만 쉬어도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요즘 같으면 이미 다들 수백억대 부자야. 다시 말해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감당 못 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명심하고 말썽 없이 잘해서 경찰의 위상도 제고하고 그러라는 국장님 지시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김세민이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조연희가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보스! 과장님이 뭐래요?”
“조 양 너! 하여튼 너 때문에……. 난 이제 X됐다.”
“왜요?”
“자동차 학원 말이야! 그 사람들이 그리 잘나간다며? 윗사람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가만있어 봐, 너 괜히 내가 처음 오니까 뽐뿌질해서 나 골탕 먹이려고 그랬지?”
“에이, 아니에요. 전 그냥 학원들이 저리 개판 치는데 가만 놔두는 게 속상해서 그랬죠 뭐. 이제 보스가 새로 오셨으니까 한번 길을 들이는 게 맞지 않나 싶어 그런 거죠.”
“야, 내가 진짜 부탁인데……. 너 나중에 학원 감사 가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보스 소리 좀 하지 마라.”
“네, 알았어요. 저도 그 정도 통밥은 있어요. 보스!”
“이게 정말?”
“호호호! 보스! 커피 한 잔 드릴게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탕비실로 뛰어간다.
분명 사람을 놀리는 것 같은데, 딱히 밉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같은 남자끼리는 투지가 불타는데 여자한테는 의외로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약점인가?’
* * *
면허 시험장 기능반 정재도 경사는 며칠 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와서 오늘만 벌써 ‘명랑(진정제)’을 몇 알째 삼키고 있다.
김세민이가 던지고 간 구속된 브로커 최인식의 돼지를 잡을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합격 도장 찍어서 면허증 만들어 주면 되는데 김세민이가 본인이 직접 면허 시험장에 오지 않으면 접수조차 안 해 주겠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었다.
보태서 그 응시 원서의 주인들이 전부 지방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사람인 데다가 원서에는 전화번호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소지로 출석 요구서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인지라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니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