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63. 신문지 밑에 봉투 넣는 소리는 10리 밖에서도 들린다
김세민은 아침에 병원에서 어머니 퇴원 수속을 밟느라 평소보다 약간 늦게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100호실장인 오종택 주임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김 형사! 아침에 부국장님이 찾으셨어.”
“부국장님이요?”
“그래. 수배자가 있어서 강서 경찰서에 인계하러 갔다고 내가 일단 둘러대긴 했다. 아무튼 빨리 전화 드려봐.”
“예. 무슨 일이지?”
김세민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실장이 김세민의 팔을 잡았다.
“나가서 전화하지 말고 여기서 그냥 경비 전화로 해.”
“예?”
“밖에서 직원들이 보면 좋을 거 없잖아? 괜히 이러쿵저러쿵 말만 나오지.”
‘……자기가 궁금해서 그러나 본데.’
직원 핑계를 댔지만 부국장과 김세민이 무슨 관계인지 어지간히 궁금한 눈치였다.
뚜르르륵-찰칵!
-제1부국장실 권민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100호실 근무하는 김세민 경사입니다.”
-아, 네, 김 부장님. 아까 부국장님이 전화하셨어요. 잠시만요.
뚜-뚜!
“부국장님, 공항 100호실 김 경사 1번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 돌려.
뚜-뚜-뚜!
-아, 김 경사! 나 부국장이야. 근무는 할 만한가?
“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이상 없는 거 맞아? 이번에 그쪽 안기부 애들하고 마찰이 좀 있었다던데, 잘 수습은 된 거야?
“네, 사소한 것이라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박 수사관이 부탁한 일도 잘 마무리가 되었고요. 그러니 저도 이제 여기서 나가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뭔 답답한 소릴 하고 있어. 인사가 어디 자네 마음대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게 아니지 않아? 시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움직여야 모양이 괜찮지, 괜히 혼자 움직이면 꼭 뭐 100호실에서 잘못해서 쫓겨나는 것 같이 보인단 말이야. 이왕 좋은 자리 갔는데 한번 잘 지내보더라고. 자네 자리는 나중에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해, 알겠지?
“……그 말씀하시려고 전화를 하신 겁니까? 다른 뭐 하고 싶으신 말씀이라도 계신지요?”
-아냐, 그런 거 없어. 난 박 수사관이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 자네가 잘 지내는가 궁금해서 안부 전화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근무나 잘하라고. 자, 그럼.
딸깍!
부국장은 자기 할 말만 하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뭔가 느낌이 싸한데, 아무래도 수상하군.’
김세민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실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별일 없습니다. 그냥 안부 전화였습니다.”
“안부전화? 경무관이 일개 경사한테 안부 전화를 했다고? 김 경사 진짜 빽이 보통이 아니구먼! 나도 좀 잘 봐줘~.”
“아이고, 주임님까지 왜 이러세요? 남은 지금 심각한데.”
김세민은 아무래도 촉이 이상해서 양 경장을 밖으로 불러내 의논을 했다.
“양 형사, 넌 경기도경 국장실에 있었으니 잘 알 거 아니야? 이게 단순한 안부 전화로 보여?”
“절대 아니죠. 그 양반이 얼마나 바쁜 체하는 양반인데.”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글쎄요…… 여기 오시고 나서 부국장님한테 인사는 하셨어요?”
“인사? 했지. 오기 전에 신고하고 왔잖아.”
“……그거 말고.”
“혹시, 봉투 말하는 거야?”
“당연하죠.”
“야야, 일개 경사가 경무관한테 봉투 들고 다녀도 되는 거야?”
“일개 경사라니요?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100호실이란 자리가 밖에서 볼 때는 안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높은 사람이 굳이 안부 전화를 할 때는 다 바라는 게 있어서 하는 겁니다.”
“니 말이 맞다. 어딘지 찜찜하다 했었는데 바로 이거였구먼.”
“너무 신경은 쓰지 마세요. 일단 제가 알아보고 오후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건 뭐,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면 좋을 텐데 툭하면 선문답이니…… 답답하네.”
“원래 계급이 높아지면 다 그러는 거예요. 높은 사람들은 자기 약점 잡힐 소리는 절대 안 하거든요. 밑에서 알아서 기어야지.”
“알아서 긴다고?”
“솔직히 부장님이 무슨 이야기 하시는지는 알겠어요. 부국장하고 밑에서부터 같이 커 온 사람들이야 자연스럽게 출입도 하고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닌 다음에야 사실 경사 계급 달고 경무관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좀 그렇죠. 근데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하고 못한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제가 경기도경 국장실에 있을 때도 인사철만 되면 국장실에 경사나 주임들도 들어오거든요? 그러고 나서 인사이동 되는 걸 보면 그 사람들은 다 서울 근처로 발령이 나는데 나머지는 전부 민통선 근처나 강화도, 완전 시골 같은 데로 가서 구르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어차피 인사권을 그 양반들이 갖고 있으니 우리가 알아서 잘 모시면 결국 우리가 편하다는 거죠.”
“음…….”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저도 근무할 때 보면서 느낀 건데, 왜 우리야 비간부이고 쫄따구니까 브로커 만나서 따와이도 하고 그러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럴 수가 없잖아요? 솔직히 큰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서 신문 보고 TV나 보다가 퇴근하는 게 일상이더라고요. 물론 어떤 사람은 스폰서가 많아서 자주 위문 공연도 받고 하는데 다 그런 건 아니니까, 안 그런 사람들은 그나마 생색이라도 낼 곳이 자기가 챙겨 줬던 아랫사람들뿐인데 그마저도 인사를 안 오면 괘씸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죠. 그냥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보스도 어쨌든 여기서 마음 놓고 따와이 하잖아요?”
“그래, 니 말이 맞다, 내가 생각이 짧았네. 먼저 부속실 직원들부터 한번 만나 봐야겠어.”
“일단 제가 가서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그게 더 깔끔해요.”
“오케이, 너만 믿는다?”
“걱정 마세요, 보스 체면 안 깎이게 잘하고 올게요.”
* * *
양 형사는 오후쯤 시경에 들어가서 부속실 김명수 경장을 만나고 왔다.
표정이 밝은 것이 일이 잘 풀린 모양이었다.
“어떻게 되었어?”
“좋은 정보가 있어요. 부국장님 사모님이 최근에 골프 레슨을 받는데 골프채를 좀 좋은 걸로 장만하고 싶어 하나 봐요.”
“그래서?”
“전에 그린 골프 숍 기억나시죠? 김 경장한테 사모님 모시고 거기로 가라고 했습니다. 오늘 비디오 촬영해서 일본에 보내면 어디 보자…… 일주일이면 도착하겠네요. 일단 그건 그렇게 하면 되고. 생각을 해 봤는데, 부국장님은 아무래도 보스가 직접 들어가서 봉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야이씨…… 나 같은 쫄따구가 경무관한테 직접 봉투를 건네? 난 자신 없다.”
“에이, 아까 다 이야기했잖아요. 뭐 어때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보스도 출세하려면 그런 거 미리미리 연습 좀 하셔야 돼요. 봉투 들고 다니는 거 쪽팔린다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냥 네가 가서 좀 전해 주면 안 되냐?”
“모르시는 말씀. 봉투를 일대일로 주고받아야 받는 사람이 안심도 하고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죠. 그리고 우리가 시경 외사3계 소속이니 이왕 하는 김에 외사과장이랑 3계장 김동수 경정한테 봉투도 하나 만들자고요,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난 잘 모르겠다.”
“지난번 작전 때 외사 범죄 수사대를 우리가 들먹였으니 미리 이렇게 해 놔야 밤에 두 다리 뻗고 잘 잔다구요, 항상 계산은 정확히 해야겠죠? 그리고 부속실 아가씨하고 수행하는 김 경장한테도 봉투 하나씩 돌려야 돼요, 일종의 입막음용이죠. 다 우리가 여기서 마음 놓고 모찌 할 수 있게 밑밥을 깔아 두는 작업입니다.”
“하이고, 잘났네!”
김세민이 코웃음을 치자 양 형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왜, 전에 이문호 부장님도 그러셨잖아요? 남은 기간 열심히 따와이 하라고요. 저는 그냥 명령을 따르는 것뿐입니다만?”
“에라이 미친놈아, 어디 갖다 붙일 데가 없어 거기다 갖다 붙이냐?”
청산유수처럼 떠드는 양 경장한테 꿀밤을 한 대 먹였지만 김세민은 내심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아파라……. 아무튼 참새만 조심하면 됩니다, 참새가 무서운 거거든요.”
“공항에서 웬 참새를 찾아?”
“민원부서 나오면 우리가 제일 착각하기 쉬운 게 우리가 따와이 하는 것, 높은 사람들이 절대 모를 것 같지만 전부 다 알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겁니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부국장님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참새들은 어디나 다 있게 마련이거든요? 조직 내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되려나…….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해 먹는 걸 시기하는 사람들은 엄청 많다고 보면 될 거예요.”
“그도 그렇겠군.”
“뭐 고민할 일도 아닙니다! 그래 봤자 골프 백 두 개만 들어다 주면 되는데요 뭐.”
“그린 강 사장하고는 잘 이야기했어?”
“얘기했더니 자기가 사모님 빽하고 부국장 봉투까지 신권으로 5백 준비한대요. 대신에.”
“대신에?”
“이번 주에 백 다섯 개만 들어다 달래요.”
“…….”
“괜찮죠?”
“에라이…… 난 모르겠다. 니 마음대로 해라.”
양 형사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이야기했다.
“우리 이제 엄청 부자예요! 지난번에 술도 잔뜩 가져다 놨죠, 장 사장 롤렉스도 팔리는 대로 우리 몫은 자동으로 떨어질 테고, 봉투 까짓것 몇 푼 된다고 위에서 보채면 달라는 대로 주면 되고. 매일 요즘만 같으면 진짜 얼마나 좋을까?”
“아, 참, 100호 실장은 월대 안 줘도 되나?”
“실장님은 따로 월대 없고 대신 실장님 아시는 분들 모찌 해 주면 자기 몫은 알아서 챙겨 갑니다.”
“간단해서 좋네. 그럼 언제 부국장실에 들어가지?”
“일단 퇴근하고 제가 [그린]에 들를게요, 내일 오전 중이 어떨까요? 10시쯤이면 참모 회의도 다 끝나고 아마 하루 중에서 제일 한가할 것 같은데.”
“……네가 내 짝지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뭘요.”
“사실 난 아무것도 몰랐어, 그런 방면에는 완전 젬병이거든. 근데 혹시 빠꾸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진짜 젬병 맞네요.”
“뭐? 이게!”
“농담이에요, 농담. 대부분 비슷한데, 높은 사람 방에 가면 소파가 있죠? 소파 앞에는 테이블이 있고. 그 테이블에는 항상 그날 나온 신문 여러 개가 순서대로 놓여 있거든요? 그게 신문 보시라고 놓아둔 것도 있지만 봉투 가지고 온 사람들더러 신문 밑에 살짝 넣어 두고 가라고 깔아 놓는 거예요.”
“뭐? 진짜 그것 때문에 다 보지도 않는 신문을 종류별로 깔아 놓는다고?”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방에 들어가서 짧게 인사만 하시고 다른 이야기는 일절 하지 마세요.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봉투를 꺼내서 신문지 밑에 살짝 놓고 오면 됩니다. 봉투에 이름 같은 것도 쓰지 말고.”
“이름도 안 쓰고, 준다고 말도 안 하고 슬쩍 밀어 넣고 나온다면서? 그러면 내가 줬는지 남이 줬는지 무슨 수로 알아?”
“제가 전에 모시던 국장님한테 들었는데요, 체면상 직접 받기가 좀 그래서 먼 산이나 보고 있는 척 하는 건 맞는데 높은 사람들이 한두 번 봉투 받아 보는 것도 아니고. 신문지 밑에 봉투 들어가는 소리는 10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
“또 이 이야기도 했어요. 어차피 서로 민망한 자린데 알 거 다 알면서 쓸데없이 이상한 소리 하는 놈이 제일 열받는다고. 그냥 제가 정리를 해 드릴게요. 들어가서 인사한 다음에 ‘사모님 백은 일주일 후에 일본에서 알아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딱 그 말만 하세요. 그리고는 봉투를 신문 밑에 밀어 넣고 재빨리 나오시면 됩니다. 아셨죠?”
“와아, 솔직히 진짜 자신 없는데. 이거 머리가 지끈지끈하네……. 그냥 부속실 직원 시켜서 대신 전달하면 안 될까?”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그랬다간 배달 사고가 날 소지도 있고 나중에 증인이 될 위험도 있고, 그럴 바엔 차라리 입 싹 닦고 안 가는 게 더 낫습니다. 정 불안하시면 예행연습을 몇 번 해 보죠.”
“봉투 찔러 주기 예행연습을 한다고?”
“왜요, 우리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하기 싫으세요?”
“내가 언제 하기 싫댔어?”
* * *
연습은 VIP 응접실에 내려가서 하기로 했다.
양 경장이 소파 앞에 신문을 두고 앉아 있고, 김세민은 들어가서 거수경례를 했다.
“부국장님 덕분에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 그리고 사모님 골프 백은 일주일 후에 일본에서 들어오면 제가 여기 수행하는 김 경장 편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고 김세민이 봉투를 꺼내려고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양 경장이 일어나더니 창가에 서서는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그 동작은 봉투를 내는 쪽이나 받는 쪽이 어색하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 때 김세민은 재빠르게 신문지 속에다 봉투를 밀어 넣었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는 동작까지.
양 형사 성화에 한 10번은 넘게 한 것 같았다.
다음 날.
김세민은 연희가 사 준 양복을 입고 넥타이도 신경 써서 매고는 시간에 맞춰서 시경에 들어갔다.
부국장실에 들어가니 부속실 아가씨가 반갑게 맞아 준다.
“김 경사님 어서 오세요. 부국장님은 국장님 방에 잠시 가셨는데요.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네, 그리고 이거.”
“네? 이게 뭐예요?”
“얼마 안 되지만 식사라도 하십시오.”
그러면서 봉투를 두 개 꺼내어 권민희와 수행하는 김명수 경장에게 주었다.
“어머,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호호…… 차 한잔 드려요?”
“아니, 차는 되었습니다. 이따가 부국장님 방에서도 금세 나올 테니까 차 내오실 필요 없습니다.”
“아, 참, 어제 사모님 말입니다. 그린 가셔서 스윙 자세 촬영 다 마쳤습니다. 굉장히 좋아하시던데요? 이제 나도 혼마를 갖게 되었다면서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옆에 있던 김명수 경장도 웃으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 부국장이 쿵쿵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세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부국장에게 경례를 했다.
“충성! 경사 김세민, 부국장님께 용무가 있어 왔습니다.”
“어, 왔어! 그래, 그래, 들어와. 권 양 여기 차 좀 갖고 와.”
“네.”
김세민은 일어서는 권민희를 보고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차는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방에 들어서서 소파 앞 탁자를 보니 정말 신문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좀 앉지.”
부국장은 김세민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더웠는지 웃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건다고 창문 쪽으로 갔다.
‘지금이 찬스다.’
김세민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부국장님께서 염려해 주시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모님 백은 일주일 후에 올 겁니다. 도착하는 대로 김 경장 편에 보내겠습니다.”
그리고는 품에서 봉투를 꺼내어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신문지 밑에 밀어 넣었다.
부국장은 신기하게도 뒷짐을 진 채 계속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행연습과 너무 똑같아서 몸에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먼. 수고하고.”
김세민은 문을 닫으며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 갑니다.”
“네, 부장님, 안녕히 가세요.”
“김 부장님 또 뵙겠습니다.”
부속실 직원 둘이서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하는데 처음 들어올 때와는 180도 딴판인 모습이었다.
다음은 외사과장 엄기호 총경의 방에 갔다.
들어가니 여기도 탁자 위에 신문이 가지런히 대여섯 부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장실에도 언제나 신문이 놓여 있었지.’
높은 사람들에게 탁자 위 신문은 그저 따와이를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세민은 아까와 똑같이 신문 사이로 봉투를 밀어 넣고 경례를 붙이고 나왔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충성!”
“…….”
외사과장은 대꾸도 않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외사 3계장 김동수 경정 방에도 신문지는 있었지만 김세민이 봉투를 꺼내자 직접 손으로 받는다.
“이제 간 지도 얼마 안 되는 사람이 뭘 이런 걸 들고 와? 100호실은 어때, 좀 지낼 만해?”
김세민은 차라리 이 사람처럼 복선 없이 대해 주는 상사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