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65화 (65/869)

제65화

#65. 벳푸 온천 여행

오세영의 글루미 선데이 연주는 남다른 감동을 주는 데가 있었다.

김세민은 처음엔 같은 소절이 자주 반복되어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같은 음이라도 피아노 소리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매번 다르다고 느꼈다.

“잘 치는데요?”

“그래? 난 피아노를 잘 모르니까…… 그래도 뭔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오라버니.”

“응?”

“오늘따라 말이 잘 나온다?”

“뭔 소리야?”

“오세영 씨 연주가 그렇게 듣기 좋아요?”

“너도 참, 그냥 그렇다는 거지. 가게 바쁠 때 오세영이한테 대타 좀 부탁하면 되겠네.”

“안 돼요. 여기는 내 새로운 밥줄이란 말이에요, 호호호.”

“아, 참, 언제 출발할지 정했어?”

“주초에는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거든요? 월요일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오는 게 좋겠어요.”

“그러지, 뭐.”

* * *

김세민과 서연희는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있었다.

“야~ 난 태어나서 비행기는 처음 타 본다, 너는?”

“난 예전에 학교 졸업하고 친구들이랑 제주도 갈 때 타 보고는 처음이네. 와, 저기 밑에 바다 좀 봐요! 색깔이 어쩜 저렇게 파랗지?”

“어디, 어디.”

비행기를 처음 탄 김세민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바다는 정말이지 새로운 풍경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연희도 오랜만의 여행이 즐거운 듯 후쿠오카로 가는 2시간 내내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는 김세민은 괜히 뿌듯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하카타역으로 갔다.

벳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함이었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저기 빵 가게가 있네. [투란도르] 저게 가게 이름인가? 기차 타고 가면서 먹을래요?”

“그러지, 뭐.”

이것저것 예쁘게 생긴 빵을 잔뜩 사 들고 기차표를 끊었다.

벳푸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도착해서는 버스 투어를 따라 지옥 온천 순례도 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동네도 돌아다니다가 미리 예약을 해 둔 세이카이 료칸에 도착하니 저녁 즈음이었다.

각 방마다 노천탕이 별도로 되어 있는 점과 노천탕에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스기 냄새가 진동을 하는 온천물에 목욕도 하고 료칸에서 차려 준 저녁도 먹었는데 정갈한 음식이 김세민의 입에 꽤 잘 맞았다.

“내일 갈 때 선물로 화장품을 좀 사다 달래.”

“뭐? 누가 그런 부탁을 해?”

연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김세민을 쳐다봤다.

“양 형사가. 부국장님이나 외사과장님 사모님들 좋아하신다고. 시세이도라고 알아?”

“알아.”

“요즘 인기가 장난이 아니래. 이왕 온 김에 세트로 몇 개 가져가야겠어.”

“……그러시던지.”

“연희 너도 몇 개 골라 봐. 내가 다 사 줄게.”

“오라버니, 요즘 잘나가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돈 많이 써도 돼?”

“무슨 소리야?”

“잘나갈 때 아껴야지. 난 됐으니까, 양 형사가 이야기한 것만 사고 우리 돈 아끼자. 아직 집도 없는데 괜히 허세 부릴 것 없잖아? 안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 근데 네가 무슨 말 하는지는 알 것 같다. 공항에 오니까 맨날 잘 나가는 사람들만 봐서 그런지 마음이 좀 붕 뜨는 느낌이기도 하거든, 괜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 그래서 솔직한 심정으론 빨리 발령이 났으면 싶기도 해. 일선에 가서 사람들 틈에 부대끼면서 살아야 좀 사는 맛이 날 텐데 말이지. 면허 시험장도 그렇고 공항도 그렇고, 나하고는 안 맞는 것 같더라고.”

그때 호텔 프런트에서 손님이 기다린다는 연락이 왔다.

“누구지?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김세민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 * *

바다가 보이는 라운지에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체격으로 하여금 주위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제가 김세민입니다만, 혹시 절 찾아오셨습니까?”

“아, 김세민 씨! 반갑습니다. 저는 후쿠오카 경찰서 형사부 순사부장 미와라고 합니다.”

‘경찰이었어?’

“반갑습니다. 옆에 계신 분도?”

“저는 마코토라고 합니다. 미와 부장과는 고향 친구로 지금은 야마구치조에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두 분 다 한국어가 유창하시네요?”

“부산 초량에 있는 일본 영사관에서 3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우리 경찰서에서는 제가 한국통으로 통한답니다.”

“저도 사업차…… 필요해서 배웠습니다. 이 친구보단 못합니다.”

‘……야쿠자가 사업이라…… 알 만하군.’

“근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라시아 박 사장을 잘 아시죠?”

“네.”

“박 사장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여기 오시면 잘 모시라고요. 근데 사모님하고 같이 오셨더라고요? 또 내일 바로 가신다고 해서 그냥 인사만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일부러 찾아오시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박 사장하고도 잘 아시는 사이인 모양이죠?”

“제가 몇 년 전에 도쿄에서 사고를 좀 치는 바람에 한 1년 정도 서울로 피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 사장 신세를 많이 졌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 친해져서 의형제까지 맺었더랬죠. 그 뒤로도 지금껏 연락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일본 여행은 처음이십니까? 좀 어떠셨습니까? 숙소는 마음에 드시는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여기 시설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기가 싫을 정도입니다.”

“여기 료칸은 한국의 100호실 직원들이 자주 다녀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오실 때마다 저희들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상호 정보 교환도 하고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힘든 협조 사항이 있으면 같이 의논도 하고 그러죠. 정부의 정치적인 방향과는 상관없이 이제까지 물밑에서 잘 협조해 왔습니다.”

“아, 그런 거라면 물론입니다. 저도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돕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선물을 좀 준비해 봤습니다.”

미와 부장이 큰 쇼핑백 여러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다 뭡니까?”

“하하…… 열어 보시면 압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 참,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모처럼 사모님하고 편히 쉬시는데 방해해서 송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에 서울에 오시면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방으로 돌아온 김세민이 커다란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오자 연희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게 다 뭐야?”

“박 사장 아는 사람이 온 거였어. 선물이라고 주고 가는데? 나도 뭔진 몰라, 네가 한번 뜯어봐라.”

쇼핑백을 뜯어본 연희가 [어머!]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

“이거 전부 시세이도 화장품이야!”

“뭐?”

쇼핑백에는 시세이도 화장품 세트가 총 25개나 들어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남자 것도 있어. 오라버니 쓰라고 넣었나 봐. 어디 보자…… 남자용이 5개, 여자용이 20개인데?”

“뭔 여자용을 그렇게 많이 넣…… 가만.”

김세민의 뇌리에 퍼뜩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왜 그래?”

“잠깐만.”

‘100호실…… 경찰…… 야쿠자…… 박 사장?’

“잘됐네. 내일 선물 산다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근데 어떻게 우리 생각을 다 알았을까?”

“양 형사!”

“뭐?”

“틀림없어, 그 자식이 박 사장한테 얘기했을 거야.”

“그래? 마음이 고맙네, 거기까지 신경도 다 써 주고. 오라버니 나중에 출근하면 가서 고맙다고 꼭 말해?”

“고마운 거 좋아하네. 다 지가 모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응? 뭐라고 했어?”

“……됐다. 말을 말아야지.”

다음 날은 아침 일찍 나와서 어제 못 본 곳을 몇 군데 간단하게 구경하고 오후에 비행기를 탔다.

“근데 있잖아, 오세영이 왜 그렇게 불러?”

“또 오세영 이야기야?”

“아니, 왜 오라버니한테 ‘우리 세민 씨’ 이렇게 부르냐고. 미친 거 아니야?”

“……입버릇이 그런가 보지.”

“아니, 난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그렇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기다! 난 질투하고 매달리고 그러기는 정말 싫어.”

“무슨 소리야? 그거 다 오세영이 저 혼자 하는 소리야.”

“근데 걔가 오라버니한테 그래? 오라버니가 틈을 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먼저 연락한 적도 없고 몇 번 우연히 만났던 것뿐이야, 괜히 쓸데없는 상상하고 그러지 마.”

“정말?”

“쳐다볼 때마다 내가 설레는 여자는 서연희 너뿐이야.”

“그렇게 말해 주니까 나 갑자기 너무 행복하다.”

그러면서 연희는 김세민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왔다.

* * *

대놓고 휴가를 갔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연희와는 공항에서 헤어지고 그 길로 곧장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다들 김세민을 보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

‘웬일로 날 반기지?’

“김 부장! 일본 잘 갔다 왔어?”

“김 부장! 바로 출근하니까 너무 피곤하지 않아? 내가 어깨라도 좀 주물러 줘?”

‘……모찌 때문이었구먼.’

“하하…… 아닙니다. 뭐 저한테 부탁하실 거라도?”

“크~ 역시 김 부장이야, 눈치가 백 단이라니까? 내가 꼭 챙겨 줘야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모찌 하나만 부탁해. 대신 김 부장 몫도 두둑하게 챙겨 줄게.”

그래도 어쩌랴, 이문호 부장이 열심히 따와이를 해야 작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모님 골프 백이 오늘 들어와요.”

양 형사가 옆에 와서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저녁에 백 받아서 그린에 가요. 시세이도 화장품 한 세트 가지고.”

“박 사장한테 시세이도 화장품 얘기한 거, 네가 그랬지?”

“네.”

“넌 무슨 애가!”

“……그럼 뭐 어때서요?”

“뭐?”

“요즘 사모님들한테는 그게 최고예요. 아무 소리 마시고 오늘 저하고 그린에 가요. 가서 부국장님 사모님한테 인사하고 화장품 세트 건네주면 아마 내일 바로 부국장님한테 전화가 올걸요? 그러니 내일은 좀 일찍 출근하세요. 아셨죠?”

청산유수처럼 나불거리는 양 형사의 말에 김세민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부국장 사모님 혼마 골프 백을 찾아서 퇴근길에 그린 골프 숍으로 갔다.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공항에 근무하는 김세민 경사라고 합니다.”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 사실은 이 혼마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거든요? 이거 너무 감사해서 어쩌죠?”

“아닙니다. 그리고 이거…… 일본에서 들어온 화장품 세트라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머! 세상에! 이거 [시세이도] 아니에요? 골프 백만 해도 제가 미안한데 이런 것까지 받아도 되나 모르겠네? 호호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은 벌써 화장품 포장지를 뜯고 있었다.

“음~ 너무너무 향이 좋은 것 같아요. 오늘 신혼 기분 좀 내야겠는데?”

부국장 사모는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에 웃음에 떠나질 않았다.

“김세민 경사라고 했지요? 나중에 바깥양반 집에 오면 내가 잘 말해 놓을게요. 우리 자주 만나요?”

인사하고 문을 나서자 수행하는 김명수 경장이 잽싸게 트렁크에 골프 백을 싣고 김세민을 보더니 한쪽 눈을 깜빡거렸다.

‘이제 또 차 타고 가면서 사모님한테 내 얘기로 뽐뿌질을 하겠지. 뭐, 어쨌든 욕 안 들어 먹는 것만 해도 다행인가?’

그때, 갑자기 삐삐가 진동을 했다.

디이이잉! 디이이잉!

번호를 보니 신명식 수사관이다.

‘갑자기 뭐지?’

김세민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전화를 했다.

“네, 신 수사관님! 김세민 경사입니다.”

-아! 일본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지금 좀 뵙고 싶은데요. 저는 지금 시저스로 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거기서 뵙죠.”

-아, 김 경사님도 오늘은 호텔 뒷문으로 해서 들어오시죠. 꼬리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세민은 신 수사관과 시저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양 형사, 신 수사관이 지금 좀 보자고 하는데 난 시저스 들렀다 갈 테니 먼저 가.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 * *

호텔 후문으로 들어가 지하실을 두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고 나니 시저스 입구가 나왔다.

‘이건 꼭 무슨 간첩들 접선하는 느낌이군.’

안내를 받아 방으로 가니 신 수사관 외에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이거 급하게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바로 소개부터 하죠, 이쪽은 대륙 상사 전무를 맡고 있는 윤정학 수사관입니다.”

“반갑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국군 포로 이인수 말입니다, 북한을 탈출했답니다.”

“뭐라고요?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다만 저희들한테 연락이 오기를 이미 일주일 전에 북한을 탈출했고 러시아로 가기 위해 지금 하얼빈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얼빈요?”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같은 공산권이 아닙니까? 왜 그리고 가는 거랍니까?”

“아직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일단 박 수사관이 하얼빈으로 가고 있으니 곧 추가로 연락이 오겠지요.”

“그럼 박 수사관이 데리고 입국하는 겁니까?”

“그게…… 박 수사관 생각은 좀 다른가 봅니다.”

“다르다니, 뭐가 어떻게 말입니까?”

“태국을 통해서 정착을 시킬 생각인 모양입니다.”

“태국요?”

“예. 사실 알고 보면 태국은 북한의 입김이 통하지 않는 아시아의 몇 안 되는 나라이지요. 국왕이 통치하는 독재 국가로 보이지만 우리와는 깊은 인연도 있고요. 58년도에 정식 수교를 했고 6.25 때는 전투병까지 파병시켜서 우리를 도와준 반공 국가입니다. 사실 이번에 증인 가족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2차장이 북한 쪽에 소스를 준 것이 아닌가 저희가 의심하고 있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증인이 아닌 포로 당사자이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써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을 안전하게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태국 이야기가 나온 것이고요.”

“……계획이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 급히 오시라고 한 겁니다. 이번에는 김 경사님이 태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 경찰 주재관으로 좀 나갔다 오셔야 되겠습니다.”

“대사관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통상 대사관에는 정부 각 부처에서 삼삼오오 파견을 나가 있는데 태국에도 경찰 주재관 두 명이 있습니다. 근데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지 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을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크게 바쁘지는 않은 곳이라서 결원 보충을 안 해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여기 공항은 정원이 초과되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한 사람 정도 태국 대사관에 파견을 보내도 별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태국 대사관에도 안기부 요원들이 있습니까?”

“있지요. 해외 파트인 1차장 산하이니 우리 편이라고도 언뜻 생각하기 쉽지만 정보기관의 특성상 누굴 믿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냥 한 달 정도 코에 바람 넣는다고 생각하시고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수사관하고는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게 언젭니까?”

“어제 암호 통신을 주고받았습니다. 한 달 후에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인 치안콩에 있는 메콩강 다리에서 위성 무전기를 가지고 매일 주간과 야간 11시에 신호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난수표이고요 먼저 저쪽에서 박 수사관의 번호인 식스를 여섯 번 키를 잡았다 놓았다 하면 김 경사님은 기침을 하고 키를 세 번 잡았다 놓았다 하면 박 수사관이 번호를 불러 줄 겁니다. 그 번호를 받아 적어서 난수표에 있는 한글을 찾아서 풀어 보면 내용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2차장 산하 요원들이 방해를 할 거라고 봐야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탈출 사실이 역으로 북한에서 우리 정부 고위층에게 통보가 되었나 봅니다. 우리 정부가 절대 돕지 않겠다는 확약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중국 공안에서도 찾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붙들려도 북으로 송환되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건 그렇겠군.’

“만약 그렇게 되면 다른 포로들도 더 위험해집니다. 이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와야 우리가 약점도 쥐고 북한도 앞으로는 남아 있는 포로들을 함부로 처형하거나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제가 태국에 가서 그쪽 안기부 요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저하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보안이 새 나가면 박 수사관 목숨이 위험해지니까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신 수사관과 헤어지고 집으로 온 김세민은 자리를 깔고 누웠다.

몸은 피곤한데 생각이 많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내가 안기부 요원이야 경찰이야. 정말 헷갈리게 하네…….’

이런저런 생각에 밤새 이불을 걷어차던 김세민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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