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 인력 개발 주식회사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현장은 북한의 오일철 중좌가 책임지고 정리하겠다고 해서 아가씨들만 데리고 철수를 했는데 모두 해서 21명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납치된 아가씨들이 제일 많았고 나머지는 대구나 부산 심지어는 진주에서 납치된 아가씨들도 있었다.
태국 경찰과의 마찰도 없지는 않았는데 일단 우리가 기자 회견이라든지 국제적인 이슈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고 아가씨들의 출국도 허가를 해 주었다.
다만 김세민 영사는 추방 조치를 한다고 하였다.
일단 아가씨들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확인하고 각자의 납치 경위에 대한 진술서도 받았으며 추후 출석해서 진술하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박 수사관의 유골함을 들고 서울에 돌아왔다.
특히 연희의 충격이 컸다.
박 수사관의 유골을 부산의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용호동 성당 옆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하고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다 읽고 난 연희는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울었다.
연희는 옛날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한동안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겨울 끝자락의 천주교 공원 묘역은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해군 작전 사령부가 위치해 있는 곳이라 푸른 바다와 해군 함정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박 형, 이제 이곳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랄게. 그리고 종종 시간 나는 대로 내려 올 테니 소주나 한잔해.’
김세민은 그렇게 마음으로 박민호를 보냈다.
며칠 뒤 안기부에서 [존경스런 별] 제막식이 있다고 해서 연희와 이문호 검사를 비롯한 평소 박민호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안기부 현관 로비 한쪽 벽에 검은색 별들이 새겨져 있고 마지막 한자리는 천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저게 바로 박민호의 별이구나.’
3차장이 단상에 올라왔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여기 또 한 사람의 별이 이곳에 영원히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고인이 된 식스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았던 사람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김세민 씨!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 자리에서 밝혀 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에도 김세민은 담담하게 말을 했다.
“대한민국 만세! 였습니다.”
“그럼 오늘 이 자리에서 고인을 기리는 뜻으로 우리 다함께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외치면서 이 제막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3차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그때 별을 감싸고 있던 천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박민호는 서른일곱 번째의 존경스런 별로서 영원히 여기에 남을 것이었다.
* * *
다음 날 공항에 출근해서 조회가 끝난 후에 별도로 직원들과 모임을 가졌다.
“앞으로 따와이는 각자 알아서 해, 이제 나한테 부탁하지 마.”
“뭐! 김 형!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전에 나하고 약속한 것도 있잖아!”
“발령 나기 전에 인신매매 사건 배후를 빨리 밝혀야 돼, 시간이 없어. 아무튼 그런 줄 알라고.”
“그냥 서강경찰서에 사건을 이첩하면 안 되나? 꼭 직접 해야 돼?”
누군가가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봐, 우리 책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야. 실종된 여자들이 공항을 통해서 출국을 했다는 점. 그리고 약에 취한 애들을 옆에서 아줌마들이 부축해서 데리고 나갔는데 누구도 그걸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서강이나 청담서에 양 형사가 몇 번 찾아가서 사건 접수를 하려고 해도 그놈들이 안 받아 주는 것도 현실이고. 다들 일선에 있을 때 서로 사건 던지고 떠넘기고 하는 것 수도 없이 많이 봐 왔잖아?”
“아니, 그러면 수사는 수사대로 하고 따와이는 따와이대로 하면 되잖아! 김 경사만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러면 우리도 무지 곤란하다고.”
“그럼 도와줄 거야?”
“뭐?”
“만약에 이 일을 도와주면 평소처럼 당신들 모찌를 해 주지.”
“허어, 참…….”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됐어, 원래 양 형사하고 둘이서 하려고 했었어. 앞으로 모찌는 알아서 잘들 해 보라고. 양 형사, 가자.”
그러고 나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합의안을 갖고 왔다.
“김 경사! 우리도 같이 수사하기로 다 뜻을 모았어. 그러니 옛날처럼 모찌는 그대로 하는 걸로 하자.”
“얼씨구, 진짜 열심히 할 거야?”
“물론이지! 수사하라고 하는 것은 철저히 할게. 전부 다 합의를 했어.”
“좋아, 그러면 남 경장.”
“예.”
“네가 차트 솜씨가 좋으니까 벽에다 매일 수사 진행 상황을 정리해. 그리고 거머리파 조직도도 그려 놔. 맨 위에 거머리파 두목을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물음표로.”
“단서는 없습니까?”
“몸에, 특히 팔목에 거머리 문신이 있어. 또 인력 개발 회사를 통해서 여자들이 룸살롱 소개를 받았고 업소가 전부 강남이야. 우선 아가씨들을 데리고 같이 태국까지 갔던 아줌마들부터 추적해 보자.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여기 모인 인원 포함해서 총 몇이나 되지?”
“30명쯤 될 겁니다.”
“30명이라…… 그럼 10명씩 3개 반으로 나누자. 1개 반은 여기 사무실에 대기하면서 그날 당직 근무를 하고 나머지 2개 반은 외근을 나가자고.”
“외근은 어디로 나갑니까?”
“인력 개발 회사부터 탐문하고 다음에는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갔던 아줌마들 순서로 조사해 나갈 거야. 그리고 이거, 아가씨들 진술서거든? 각자 팀 별로 나눠 줄 테니까 다시 한번 만나서 납치된 경위를 상세히 들어 보라고. 이놈들 아지트부터 빨리 찾아야 해. 그리고 전 경사팀은 수고스럽겠지만 목포로 내려가서 밀항 루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줘, 목포에도 필시 이놈들 아지트가 있을 거야. 뭔가 건지면 즉시 연락하고. 대신 전 경사팀은 원하는 만큼 내가 모찌를 들어 준다. 난 오늘부터 매일 심야에 이 아가씨들이 납치되었던 장소에서 양 형사하고 둘이서 잠복을 할 거다. 한 번에 끝낼 놈들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걸려들 거야.”
“야! 이게 다 뭐야! 여기다 무슨 형사계 사무실이라도 차렸어?”
100호 실장이 나와서 기가 찬다는 듯 빈정거렸다.
“애초에 실장님이 관할서로 사건을 이첩해 줬으면 이러지 않아도 됐잖아요.”
“아이씨…… 나도 마음이야 그러고 싶었지. 근데 이놈들이 뭐 하러 우리 사건을 받아 가겠어? 김 경사, 그냥 덮고 가면 안 돼?”
“사람이 이 건으로 몇이나 죽었는데 사건을 덮습니까? 정 덮고 싶으면 절 다른 데로 내쫓으시든가요. 아무튼 전 이 사건 꼭 할 겁니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맘대로 해! 순사가 사건 한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매일 잠복을 해야 하니까 오후에 출근할 거야. 남 경장은 여기 관리반을 맡아서 수사 나간 직원들 보고 사항 있으면 받고 전달도 해 주고. 수사 사항은 여기 보드 판에 수시로 정리하고 수사 회의는 매일 오후 5시에 사무실에 있는 사람만 하기로 하자. 계속 수사하는 사람은 회의 때문에 들어올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저도 형사계 근무 경력이 있으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그래, 고마워.”
자리에 앉아 양 형사와 인력 회사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누가 앞에 와서 섰다.
“사수님! 안녕하셨어요?”
“응?”
고개를 들어 보니 조연희였다.
“아니, 조 양! 아니지 조 순경! 야, 정말 그렇게 정복 입고 있으니 사람이 달라 보이네. 경찰에 들어왔다고 얘기는 백두산 형한테 들었는데…… 반갑다 야, 어서 이리 앉아.”
“섭섭해요. 저 여기 온 줄 아시면서 부르시지도 않고…… 며칠 동안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러네, 내가 일복이 있는지 할 일이 태산이라 잠시 네 생각을 못 했다. 근데 갑자기 어쩐 일이야?”
“저 여기서 일하면 안 돼요?”
“뭐?”
“양 형사님한테 들었어요. 납치 사건 수사를 하신다면서요? 여자들 납치 사건이니까 당연히 여경이 있어야 아줌마들 몸수색도 하고 위장 근무도 하고 그럴 수 있겠죠?”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결정된 거죠? 저 언제부터 일해요?”
“글쎄, 여긴 외사과에서 발령을 내 가지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말은 꺼내 볼게.”
“그럼 사수님만 믿고 갑니다. 호호호.”
조연희는 손을 흔들면서 뛰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김세민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오후에는 양 형사를 데리고 강남 인력 개발이란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법 큰 사무실에 여직원 두 명이서 상담을 하고 있었고 대기 소파 의자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신분증을 보이고 주인을 찾았다.
소장실이란 팻말이 붙은 문이 열리더니 키가 작고 눈이 기분 나쁘게 옆으로 째진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나와서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긴 어떻게 오셨는지요? 일단 들어오세요.”
소장실은 제법 회사 사장다운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대형 책장에 책도 가득히 꽂혀 있었는데 전형적인 사기꾼 냄새가 났다.
‘이런 놈들한테 신사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바로 찔러 들어가야 뭔가 허점을 드러낼 거야.’
“우리 사장님도 바쁘실 텐데 바로 물어보지요. 우린 시경 외사과에서 나왔습니다. 최근에 아니 요 몇 년 동안 태국이나 동남아에 아가씨들 팔아넘겼습니까?”
“아가씨를 팔아넘기다니요? 그 무슨 사람 잡을 소리를 합니까?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내가 여기서 소개쟁이를 한다고 해서 이리 사람을 막 무시하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너무 과잉 반응을 하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구먼.’
김세민은 소장을 계속 추궁했다.
“그럼 여기서 소개 받아 룸살롱에 취직한 김미정, 양은숙. 송지은, 하선숙, 박미옥. 이 다섯 아가씨 말입니다, 태국까지 성매매로 팔려 갔거든요? 서류는 다 갖고 계시겠죠? 한번 확인해 보십시다.”
“난 전혀 모르는 이름입니다. 그 아가씨들은 여기 오지도 않았어요.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들어와서 사람 범죄자 취급해도 되는 겁니까? 난 선량한 시민이라고요. 소개비도 안 받습니다! 자선 사업이에요.”
“아까 밖에 보니까 사람이 꽤 많던데, 어떻게 이름만 듣고 확인도 한번 안 해 보고 모른다고 할 수가 있을까? 우리 사장님 뭐 어디 천재 출신이요? 거 장부나 한번 봅시다!”
양 형사가 말꼬리를 물고 들어갔다.
“허 참, 왜 이러세요! 영장 가져왔습니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만 나가 주세요.”
“그럼 내일 영장 가져와서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죠. 양 형사! 그만 가자.”
김세민은 이만하면 충분히 찔러 보았다고 생각하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왜 그냥 나오세요? 더 추궁하면 뭐라도 나올 것 같은데요?”
“벌써 영장 운운하는 것 좀 봐! 저 새끼, 별이 몇 개 되는 것 같다. 일단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틀림없이 나중에 저 새끼 퇴근할 때 중요한 서류는 가져 나올 거다. 그때 덮쳐야 돼.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남 경장한테 전화해서 박 경사 조 이리 나오라고 해. 난 영장 받아 올게.”
“그렇게 금세 영장이 나와요?”
“한번 얘기해 봐야지.”
김세민은 가까이 있는 신석3동 파출소에 들어갔다.
“수고하십니다. 경비 전화 좀 쓰겠습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김 부장님 아닙니까?”
소 내에 있던 누군가가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아! 제 경장! 여기 있었어? 반갑네.”
자신이 방순대에 있을 때 소대 부관으로 같이 근무했던 제천수 경장이었다.
0번을 누르자 교환이 나왔다.
-청담서 3번입니다.
“중부지검 부탁합니다.”
-기다리세요.
띠리리릭…… 철컥!
-중부지검 5번입니다.
“김아영 검사님 부탁합니다.”
뚜르르륵…… 딸각!
-네, 김아영 검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공항 100호실 김세민 경사입니다.”
-어머! 태국에 계시다고 그러더니 들어오신 거예요?
“네, 며칠 되었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그럼요, 반가워라. 그래, 어쩐 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요즘도 여성, 청소년 담당이십니까?”
-에휴! 여자 검사가 어디 갈 데가 있나요? 서울에 있으려니 이거라도 붙들고 있어야죠.
“그럼 잘되었습니다. 태국에서 인신매매범한테 끌려갔던 여자들 얘기 혹시 들으셨습니까?”
-네, 안 그래도 부장님한테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열 받았는지 몰라요. 김 경사님이 그 사건 수사하고 계신다면서요?
“네, 여기 강남 인력 개발이라고 여자들 모집해서 보냈을 거라고 의심되는 사무실이 하나 있는데 압수 수색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도 오늘 바로 달아야 하고요. 제가 지금 팩스로 인적 사항하고 주소 보내 드릴 테니 바로 체포 영장하고 압수 수색 영장 발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해 드려야죠. 지금 전화하시는 데가 어디죠?
“청담서 신석3파출소입니다.”
-잘됐네. 경찰 관서니까 바로 발부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 하나 더 남았네요. 직업 안정법도 구속 영장이 발부됩니까?”
-당연하죠. 직업 안정법 위반은 판사들도 굉장히 깐깐하게 보고 있어요. 특히 인신매매나 성매수, 이런 거는 100% 영장이 나와요.
“그럼 오늘 밤에 조사해서 내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영장 내리실 때 검사 지휘란에다가 구치 장소를 서강 경찰서 유치장으로, 매일 오전 10시까지 피의자 조사를 위해 서강서 형사 다이알차로 공항 100호실로 호송하고 오후 5시에 다시 100호실에서 조사가 끝난 피의자를 호송해서 유치장에 수감할 것. 이렇게 검사 지휘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호호호! 서강서에서 사건을 안 받으려고 하는 모양이죠? 김 부장님 이야기대로 할게요. 우리 언제 한번 밥이나 같이 해요.
“네, 감사합니다, 검사님.”
전화를 끊고 서류를 팩스로 보낸 지 30분 만에 ‘뚜르르륵……윙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팩스가 서류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강남 인력 개발 강천수에 대한 48시간 체포 영장과 압수 수색 영장이었다.
“이 X발놈! 넌 이제 X됐다. 어디 한번 당해 봐라.”
김세민의 눈에 살기가 번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