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00화 (100/869)

제100화

#100. 같이 커 가세

청담서 교통 지도 계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간 정들고 사건도 많았던 공항 100호실을 떠나려고 하니 많이 아쉽고 서운했지만 어떻게 보면 속 시원하기도 했다.

인사를 하고 떠나는데 조 순경이 기어이 눈물을 닦는다.

“야!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서울 시내인데 뭘 이리 울고 그래? 남들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그게 아니라…… 훌쩍! 사수님 만나려고 어렵게 어렵게 다가가면 또 떠나시고 저 혼자 남고 그게 얼마나 속상하고 허전한지 아세요? 히잉…….”

“야! 내가 가도 여기 양 형사도 있고 저기 민 경장이나 남 경장도 있는데. 그리고 넌 0번 출입증도 필요 없다면서? 내가 없어도 이제 네 세상이나 마찬가지인데 뭘 걱정하냐? 같은 서울 내에서 근무하는데 또 만나서 근무하게 되겠지. 자, 그동안 다들 고마웠어. 잘 지내.”

“네. 주임님, 안녕히 가십시오!”

* * *

청담서로 와서 서장한테 신고를 하러 갔더니 부속실 아가씨가 살갑게 반겨 줬다.

“김 주임님, 진급 축하드려요! 저는 결국 다시 오실 줄 알았다니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머, 제 이름 아직 기억 못 하시는 거예요? 김민지에요.”

“아, 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서장님은?”

“안에 계세요. 기다리시는 것 같던데 어서 들어가 보세요.”

김세민은 노크를 하고 서장실로 들어갔다.

“서장님! 충성! 신고하겠습니다.”

“아, 됐어! 신고는 무슨.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혼자 왔는데 쑥스럽게 그러나, 신고는 생략해! 어디 파출소장 자리라도 하나 주려고 했는데 보다시피 정기 인사철이 아니라서 말이야, 자리가 없어. 또 기동대 가야 한다고 그러니까 우선 어색해도 교통계 있다가 기동대 갔다 와서 다시 오도록 해. 그때는 좋은데 파출소장 자리 하나 비워 뒀다가 발령 내 줄게.”

김세민은 서장의 말이 오늘따라 왠지 살갑게 들렸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 주니 고맙긴 고맙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을 텐데, 내려가서 일 봐!”

“네. 그럼 이거는 식사라도 하십시오.”

김세민은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신문 밑에 찔러 넣었다.

공항에서 올 때 양 형사가 어찌나 난리를 치는지 청담서 오기 전에 부국장실에도 들러 봉투로 인사를 했고 서장한테도 인사를 한 것이었다.

“전에는 박 수사관이 사수님을 챙겼다지만 지금은 부국장님 말고는 사수님 챙겨 주실 분이 없어요. 간부라고 해도 경무관 빽 하나 잡고 있기가 얼마나 힘든 줄 잘 모르시죠? 부국장님 끈을 잘 잡고 계시려면 명절 때나 부국장님한테 경조사가 생기거나 하면 반드시 부속실 직원한테 연락 달라고 하고 직접 인사를 빼먹으면 안 됩니다. 계속 인사를 오던 부하가 어느 날 배신을 때리면 그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경우보다 더 서운하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부국장님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잡고 가셔야 해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아요. 잡고 있는 줄이 그냥 튼튼한 동아줄이 될지 아님 황금 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만약에 부국장님이 치안총감 달고 치안 본부장이 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사수님은 그냥 총경까지는 논스톱이에요. 총경이 되어 서울 시내 경찰서장을 하면 1년에 얼마나 벌 거 같아요? 우리 상상이 안 됩니다. 아파트 한두 채, 이런 것은 쨉도 안 돼요. 그러니 지금 부국장한테 몇 푼 갖다주는 것 그것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높은 사람한테 잘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출세하고 성공의 지름길로 가는 겁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여느 때처럼 부국장실에 가서 봉투만 넣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렸다.

“김 주임! 자네는 이제 나한테 더 이상 남이 아니야.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집사람도 그렇게 늘 얘기하고 말이지.”

“감사합니다. 저도 부국장님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우리 같이 커 가세!”

김세민은 부국장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김세민은 같이 커 가자는 말에 깊게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이제 일개 경위인 자신에게 경무관급 인사가 가족이라느니, 같이 커 가자느니 하는 말을 들으니 괜히 기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 * *

교통계 사무실은 1층 민원실과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민원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까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서 1층으로 배치를 한 것 같았다.

이제 막 경비 교통과에서 교통과가 분리되어 나와서 교통과장은 경감인 사고 조사 계장이 겸직을 하고 있었고 김세민은 지도 계장으로서 교통 외근을 책임지게 되었다.

교통순찰차는 모두해서 여섯 대에 운전요원은 경찰관이 아닌 전원 의경으로 배치가 되어 있었고, 각조에는 경사급 외감이 한 명씩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는 체계였다.

외감은 갑반에는 오종수 경사와 을반에는 정종택 경사가 교대로 근무했고 순찰차에는 외감을 포함 모두 열두 명의 경찰관과, 사거리 교통초소 여섯 군데에 여섯 명이 세 명씩 24시간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매일 심야 초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교통과장 심진섭 경감의 방에 들어갔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는데 아마도 사고반 직원들이 수시로 결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똑똑!

열린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니 심 경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아 준다.

“김 주임 어서 와요! 안 그래도 온다는 얘기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갑자기 교통과로 분리가 되어서 내가 엉겁결에 과장을 맡아 참모 회의에 참석하고 있지만 우리 교통과에는 간부가 나하고 김 주임하고 두 사람뿐이에요. 직원은 40명이 되는데 간부가 두 사람뿐이니 이거 완전히 개판 5분 전이에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그래도 과장님이신데 신고는 받으셔야죠?”

“아이고, 신고는 무슨 신고? 그런 거 다 따지면 여기는 일 못 해요. 있어 보면 알겠지만 완전 도떼기시장도 이런 시장이 없어요. 전에는 나 혼자서 경비 교통과장 밑에서 교통계장만 맡고 밑에 주임이 둘 있었는데 다 나가 버리고 나 혼자 남았어요. 직원이나 간부들이나 이제는 교통을 서로 안 하려고 해요. 다들 편한 자리만 가려고 하지. 세월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럼 업무 분장은?”

“아, 이렇게 합시다. 나는 교통과장 겸 사고 조사 계장이니까 관리와 서무, 사고 조사는 내가 결재를 하고 나머지 교통 외근 감독은 김 주임이 알아서 맡아 주면 됩니다. 그런데 적재물 초과나 제한 시간 통행 허가증 발급 같은 것은 외근 소관이니까 아마 서무에서 신청이 접수되면 김 주임이 먼저 검토하고 결재해야 합니다. 음주 단속도 형사 입건하면 우리 사고반에서 조사해서 송치하지만 단속은 외근 소관입니다. 그 외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선정하는 문제, 교통 신호판 설치 등등은 다 외근에서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지휘부에 있는 어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교통이야말로 경찰의 얼굴마담이에요. 파란색 교통복을 입고 흰색 교통 모자를 쓰고 백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다 한 번씩은 쳐다보잖아요? 멋도 있어 보이고 파출소 순사보다야 백배 낫죠. 재미도 있고 난 순경 때부터 교통만 했어요. 이게 재미가 있더라고요. 자, 앞으로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고 저기 직원들은 외근 나가야 하니까 조회하고 빨리 내보내세요. 지금 신호기에는 의경들밖에 없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잘 부탁드려야지. 소문 들어 보니까 우리 김 주임님, 대단한 분이시던데? 같이 근무하게 되어서 정말로 반갑습니다.”

“네, 그럼.”

캐비닛으로 사무실 반을 막아 놓은 지도계 사무실로 들어서니 아직 외근을 나가지 않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 차렷! 계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아아 됐습니다. 그냥 악수나 한 번씩 하십시다.”

신고자의 가슴에 붙은 명찰을 보니 오종수라고 되어 있었다.

“경사 오종수!”

“같이 근무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경사 원종택!”

“네, 반갑습니다.”

김세민은 자신이 그동안 늘 상관에게 신고만 하다가 처음으로 부하들에게 신고를 받는 입장이 되자 적응이 안 되어 약간 어색하긴 했다.

직원들과의 상견례가 끝나고 김세민은 일단 뭐라도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말을 꺼냈다.

“저도 첫 근무지가 여기 청담서이고 돌고 돌아서 다시 여기로 왔는데 고순대에만 있었지 일선서 교통은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직원들이 절 많이 도와주시고 앞으로 서로 의논해 가면서 잘 지내보십시다. 조금 전에 과장님 방에 들렀는데 교통경찰은 전체 경찰의 얼굴마담이나 다름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를 합니다. 다들 복장도 늘 단정히 하고 시민들이 지켜보니까 품위를 벗어나는 일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들 근무 나가시죠? 이상!”

“차렷! 경례!”

“충성!”

김세민은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구호가 붙은 경례를 두 번이나 받았다는 느낌에 약간은 우쭐해진 느낌이 들었다.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그동안 자신이 써 왔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책상이 컸다.

그리고 옆에 보조 책상도 두 개나 있었고 의자도 중역 의자처럼 넓고 푹신해서 얼마든지 뒤로 젖혀서 졸아도 될 정도였다.

개인 사물과 관물 캐비닛도 각각 두 개나 되었고 옆에는 간이 응접세트도 한 세트가 있었다.

개인 소파는 낮에 잠시 기대어 낮잠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책상 앞에는 이동식 커튼이 기역자로 반쯤 가려져 있었고 개인용 냉장고도 있었는데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각종 음료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위에는 조그만 14인치 칼라 TV도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우리 서 사장이 어떻게 계장님 오신 거 알고 이렇게 온 거야?”

“안녕하세요? 이거는 오늘 새로 계장님 오셨다고 해서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서연우가 알바생들 둘을 데리고 쟁반에 커피를 잔뜩 담아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 연우 아니야? 어떻게 왔어.”

“언니가 오라버니 신고 끝날 때쯤 해서 축하 커피 한 잔씩 돌리라고 하길래 가져왔어요.”

“아니? 두 분이 아는 사입니까?”

오 경사가 놀란 듯 물었다.

“아, 그건…….”

“우리 언니 남친이에요.”

김세민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연우가 재빨리 대답을 했다.

“그러셨군요. 안 그래도 이 집 커피가 맛이 좋아서 늘 시켜 먹고 있었는데 계장님하고 친구 분이라고 하시니까 앞으로 많이 애용해야겠습니다.”

원 경사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서 사장님! 저기 과장님 방에도 한 잔 갖다 드리고 옆방 민원실하고 사고반에도 다 한 잔씩 돌려요. 커피 값은 내가 계산할 테니.”

그러면서 오 경사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열장을 꺼내 쟁반 위에 놓았다.

“아니, 뭘 이렇게? 안 그래도 되는데.”

김세민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원 경사가 나서서 상황 정리를 했다.

“앞으로 오 경사하고 우리가 맞교대니까 야간 근무한 조가 교대 시간에 무조건 여기 지도계 직원들 커피를 한 잔씩 돌리고 계장님 자리에 앉아서 인수인계 하는 걸로 어때? 오케이?”

“오케이!”

둘이서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근데 이거 이동식 커튼, 치우면 안 될까요? 난 이거 답답한데?”

“이거는 꼭 필요합니다. 우선은 계장님이 뒤에 앉아 계시는데 커튼이 없으면 직원들이 뒤에서 계장님이 다 보고 계시니까 불안한 점도 있고요, 아직 처음이지만 계장님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습니다. 대부분은 와서 봉투 하나씩은 내놓고 가는데 이게 없으면 밖에 민원인도 다 보는데 큰일 납니다. 또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야간에 저희들 음주 단속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하면 여기서 조독도 하고 해야 하는데…… 아무튼 교통계 사무실에는 꼭 필요한 것이니까 좀 답답하시더라도 직원들 생각해서 그냥 놔두십시오.”

오 경사가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원 경사도 말을 덧붙였다.

“계장님이 이리 오신다고 해서 저희들은 솔직히 좋아했습니다. 순경으로 들어와서 경사, 경위로 특진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비 간부로 들어와서 기껏해야 10% 정도만 경감 정도에서 옷 벗고 나가는데 계장님은 지금 간부 후보생이나 경대생들에 비해서도 조금도 늦지가 않습니다. 저희 대부분의 순경 출신들한테는 희망이죠. 그래서 오 경사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계장님이 여기 석 달 계신다고 들었는데, 계시는 동안 저희들이 최선을 다해서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출세하시더라도 저희들 잊지 말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 말이 지나치시네.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그냥 여기저기 실려 다니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계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주변에서 계장님을 보는 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차피 기동대 가시면 또 춥고 배고프지 않습니까. 여기 몇 달 계시면서 용돈이라도 저희들이 두둑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저희들 믿고 그냥 가만히 계시면서 무게만 잡고 계시면 됩니다.”

“글쎄요, 일이 있으면 해야죠. 가만히 있는 것도 서장님 볼 때는 죄송하고, 갈 때 가더라도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직원들 간 상견례가 끝나고 오 경사와 원 경사는 경찰서 뒤편에서 만났다.

“내가 들었는데, 우리 계장 장난 아니던데? 전부 특진이잖아? 검찰에도 빽이 든든하다는 소문이야. 우리도 인제 든든한 빽그라운드가 생겼으니까 낮에 계장님 월대 챙겨 드리고 아침에 안 찾아가는 면허증 내놓고 가면 문제 생겨도 다 막아 주실 거야. 든든한 빽이 있을 때 양껏 땡겨야지 언제 마음 놓고 해 먹겠어? 안 그래?”

“나도 이리저리 물어보니 공항에서도 부국장실에서 수시로 전화가 오고 그랬대. 발령 나기 전에는 국장실에서 아침 참모 회의를 하다가도 우리 계장을 찾았다고 그러더라고? 이런 빽 좋은 상사 만나기도 쉽지 않아. 야, 그러면 월대도 이참에 미리 정하자. 역삼사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압구정 쪽 밑으로는 오 경사 네가 받아먹어! 난 위쪽을 먹을 테니까. 그리고 초소장이나 나머지 백차 애들은 3층 이상만 가도록 룰을 그렇게 정해!”

“그럼 1층하고 2층은 계장님 모시고 우리 외감들이 가서 받아먹고 나머지 3층 이상 사무실은 백차 승무원들이 그리고 각 초소장들은 초소 반경 2백 미터로 정하자. 서로 중복 안 되게 말이야. 그리고 지난번 운전 요원 있을 때처럼 싸우지 말고 월말에 당신하고 나하고 만나서 월대 받아먹은 곳 다 점검을 해야 돼. 중복으로 찾아가고 하면 쪽팔리잖아?”

“그래.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 역시 파워 있는 양반이 오시니까 말을 안 해도 자동으로 다 정리가 되네. 줄을 잘 서야 먹을 것도 생긴다,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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