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15화 (115/869)

제115화

#115. 탈출

려민주가 호텔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목용 용품들이 피부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샘플을 보여 달라고 프런트에 요구를 했다.

호텔 종업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최일도는 목욕 용품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고 려민주가 투숙한 1007호 앞에 섰다.

벌써 입구에는 양복을 입은 호위총국 소속 경호원 둘이서 지키고 있었다.

“아, 이번에 또 뭐이가?”

“목욕 용품 샘플입니다. 손님이 요구를 하셔서 종류별로 다 준비해 왔습니다.”

최일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에미나이래 대충 씻으면 되지 뭐이 기래 까다롭네? 이리 주라우. 우리가 대신 넣어 줄 테니.”

“이거는 안 됩니다. 손님이 직접 냄새를 맡아 보고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 배합 비율을 달리해서 호텔에서 제조를 하는 것이니 제가 직접 손님한테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떠거럴! 거 무시기 그리 복잡하네? 알았으니까 들어가 보라우!”

“감사합니다. 손님!”

방으로 들어선 최일도는 손으로 려민주에게 ‘쉬잇!’ 하면서 입을 가리고는 호텔에 비치된 메모지에 ‘도청이 됩니까?’ 하고 썼다.

려민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요. 여기가 무슨 북조선도 아니고 호텔에 승인도 없이 어떻게 도청을 하겠어요? 난 몸만 잡혀 있지 나머지는 아직 괜찮아요? 근데 그쪽은 최일도 씨? 김세민 씨한테서 한 번 들은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베이징에서 제 목숨을 구해 주신 데 대한 보답은 해야죠. 이 호텔은 우리 나와바리입니다. 언제 나가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우리가 중간에 가로채서 미 대사관으로 보내 드릴 수가 있습니다.”

“김세민 씨가 부탁을 했군요.”

“네, 굉장히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우리 조직에서도 적극 도와주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체크아웃하면 바로 작전에 들어갑니다.”

“서울에 있는 정태호 씨는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서울 상황은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하셨어요. 려민주는 정태호 없이는 미국으로 가지 않는다고, 여기 일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면 꼭 그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런 말도 하셨는데 난 무슨 말인지 통 몰라서 적어 왔습니다. 미국에 무사히 안착을 하면 ‘약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었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보내 달라고 하셨습니다.”

“풉! 끝까지 웃기네. 아무튼 고마운 사람이야. 그래요 이제 다시 볼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통화하게 되면 그렇게 전해요. ‘정말로 고마워! 내 두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첫 번째 사랑은 지금 서울의 병원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밤 10시가 되자 갑자기 호텔 앞이 부산스러워졌다.

호위총국 소속 군관들이 차량 두 대를 준비하고 프런트에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전해 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려민주가 말끔한 감색 정장 투피스를 입고 사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조총련에서 제공한 벤츠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타고 호텔을 떠났다.

호텔을 떠난 두 대의 차량이 나리타 공항과 미 대사관이 있는 미나토구로 가는 갈림길에 다다른 순간 갑자기 좌우에서 화물차가 려민주가 탄 차량 두 대를 차례로 들이받았다.

‘콰콱! 뿌지직!’

차량이 부딪치고 나서도 무지막지하게 화물차가 힘으로 밀어붙였다.

려민주도 순간 정신이 아찔했으나 이내 머리를 몇 번 흔들어서 자세를 바로 하고 상황을 살피는 순간 차 문이 열렸다.

최일도였다.

“빨리! 내리세요!”

려민주가 탄 좌측 문짝은 놔두고 앞뒤 문짝을 사정없이 박아 버린 화물차는 그대로 내팽개친 채로 화물차 운전자들은 도주를 했고, 비교적 부상이 덜한 호위총국 소속 군관들은 영문도 모른 체 무지막지한 야구 방망이 세례를 받고 다들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져 버려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려민주를 태운 승용차는 전속으로 질주해서 미 대사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저쪽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만약에 미국에서 거부한다면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최일도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말을 했다.

대사관의 경비를 서던 미 해병이 다가와서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려민주가 능숙한 영어로 말했다.

“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제35호실 책임 비서입니다. 미합중국에 망명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안에서 젊은 양복을 입은 직원이 나왔다.

“웰컴 마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려민주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구해 여기까지 태워 준 최일도를 향해 돌아서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최일도도 웃으면서 마주 손을 흔들었다.

서울의 노원구에 있는 원자력 병원.

안기부 대공 3국 소속 요원들이 병상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2처 소속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아! 김 수사관! 그동안 고생했어! 오늘부터는 우리가 맡을 거야. 3처 직원들은 가서 쉬어도 돼!”

“무슨 소리야? 우린 그런 지시 받은 적 없는데?”

“그럼 3차장한테 확인해 보시든지?”

윤정학 수사관의 부사수인 김강호 수사관은 즉시 윤정학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수님! 2처 애들이 들어와서 우리 보고 나가라는데 어떻게 하죠?”

“이 X발놈이 너도 김세민이한테 물들었냐? 사수가 뭐냐? 어쩌겠냐? 3차장이 우리보고 손 떼라는데. 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아, 참, 김 주임이 아까 전화 와서 안가에서 만나자고 하던데 만났습니까?”

“아니, 나도 지금 맥이 다 빠져서 안가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너도 안가로 와!”

“네, 알겠습니다.”

안가인 에이스 통신에서 작전 회의를 했다.

“이거는 려민주가 여기 고첩인 흑룡강에게 마지막 지령으로 남겨 준 선물입니다. 난수표가 이달 말까지는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빨리 감청해 보시죠.”

김세민이 흑룡강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꺼내 주었다.

“야! 이거 실제 간첩이 쓰던 물건을 그대로 받아 보기는 처음이네요.”

에이스통신의 유일한 홍일점인 정수지 수사관이 감탄을 했다.

“그리고 오늘 밤에 원자력 병원에서 정태호를 빼내서 미국 대사관으로 옮길 겁니다. 미군에서 군의관도 지금 대사관에 대기 중입니다. 우리는 대사관까지만 데려다주면 미국에서 오산 기지를 통해서 본국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여기 그라시아 박 사장과 직원들이 순식간에 빼내서 앰뷸런스로 옮길 거니까 윤 수사관은 절대 나서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면 됩니다.”

김세민은 대충의 작전을 설명을 했다.

그때 감청에 들어갔던 정수지 수사관이 화들짝 놀라서 헤드셋을 벗고 뛰어왔다.

“오늘이래요. 오늘!”

“뭐가?”

“오늘 저녁 7시에 임진각을 통과해서 북에서 내려온대요!”

“뭐야! 그럼 우리도 모르게 2처에서 북한과 합작해서 정태호를 데려간다는 거야? 3차장도 알고 있어?”

김세민이 윤 수사관의 팔을 잡았다.

“3차장은 아마 모를 겁니다. 이 작전에서 소외되었을 겁니다. 안보 수석이 자기 당 사람인 2차장을 끌어들여 비밀리에 각하의 묵인하에 저지르는 일일 겁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대공 요원들을 따돌리고 자기네들끼리 하는 작전이 얼마나 엉성하고 형편없는지 우리가 보여 줄 때입니다. 3차장한테는 보고하지 말고 여기 박 사장과 내가 빼내서 미 대사관으로 보낼 테니 마지막에 남산 대공분실에 있는 타격 부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출동 명령을요?”

윤 수사관이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제가 저놈들이 도착할 때쯤 해서 노원경찰서 113신고 전화로 무장간첩이 나타났다고 신고를 할 겁니다. 113전화는 안기부 대공 분실도 같이 듣는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경찰서에 걸려오는 전화라도 우리 분실에서 같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즉시 출동 명령을 내려 주면 경찰서의 대공 형사들하고 북에서 온 애들하고 부딪히게 만들 겁니다. 그사이에 우린 빠져나갈 거고요. 문제는 시간이 없는데 박 사장님 저녁 7시까지 준비가 다 되겠습니까? 차량도 지난번 공항 작전 때처럼 많이 동원해야 하는데?”

“가능합니다. 6시까지는 다 준비해서 원자력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작전이 끝나고 각자 헤어지고 며칠 후에 시저스에서 만납시다.”

김세민이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고 화령일보 조성제 기자한테도 좋은 건수가 있으니 노원서 출입 기자를 경찰서 옆에 대기하라고 말하고 조성제는 시경캡(출입 기자 중 선임)이므로 계속 상황실에서 얼쩡거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카메라 기자 한 사람도 원자력 병원에서 대기하도록 부탁하였다.

날씨가 겨울이라 7시가 되니 주위가 완전히 캄캄하였다.

안가에 전화를 해 보니 방금 판문각을 빠져나온 차량들이 4대가 서울 외곽 순환 도로로 접어들었다고 윤 수사관이 말해 주었다.

3처 직원들이 멀찌감치 북에서 온 차량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김세민은 옆에 있는 박흥식 사장에게 눈짓을 하였다.

“안에 있는 놈들이 다섯인데 안기부라고 해도 국내 담당하는 2처 요원들이니 전투력은 약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제압하고 손을 묶어야 합니다. 가슴에 찬 홀스터에서 권총도 빼내야 하고요.”

옆에 같이 있던 강남파 행동대장 고준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자!”

그라시아 박 사장이 앞장을 섰다.

3층에 있는 원자력 병원 격리 병동 앞.

2처 소속 요원들이 두 사람은 간호사실 안쪽에 신문을 보며 앉아 있고 나머지 셋은 정태호가 입원한 병실 앞에 둘, 병실 안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귀에는 리시버를 다들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고준수가 사파리 점퍼의 왼팔 소매 속에 감추어 둔 짧은 몽둥이를 팔을 늘어뜨려 내려 잡았다.

아직은 놈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부하들 다섯 명과 함께 어슬렁거리고 다가간 고준수는 다짜고짜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어이! 동무들! 기거이 의자는 동무들이 전세를 냈슴매? 우리는 어케 앉으라고 이런 싸가지 없는 놈들!”

“어어! 이 새끼 뭐냐? 여기가 어딘데? 너들 뭐 하는 놈들이야? 우리가 누군지 알면 너 이 새끼 다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소매에서 팔을 늘어뜨려 오른손으로 왼쪽 소매 속에 숨겨 온 방망이를 잡은 고준수는 먼저 앉아 있는 놈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어이구야!’

하면서 놈이 넘어가자마자 옆에 나머지 부하들도 번개같이 달려들어 두 놈의 머리통을 내리쳤으며, 한 사람은 득달같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서 졸고 있던 요원의 머리통을 부숴 버렸다. 간호사실에 앉아 있던 두 놈도 가슴에서 권총을 빼내기도 전에 벌써 탕비실에 숨어 있던 고준수의 부하들에게 머리통을 한방씩 얻어맞고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이제 오늘 오후 내내 연습했던 북한 말을 써먹을 때다.

“자, 김 동무 빨리 저놈들 권총하고 무전기 뺏어라우. 그리고 정팔 동무는 침대 밀고 밖으로 나가서 날래 앰블런스에 태우라우. 시간이 없으니끼니 날래 서두르라우! 동무들!”

박 사장의 북한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미리 예행연습도 한 번씩 했던 터라 다들 빈틈이 없었다.

김세민은 위에서 침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노원경찰서로 113 신고 전화를 걸었다.

“네. 113 대공 신고 센터입니다.”

“거기 간첩 신고하는 데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 원자력 병원인데요. 지금 무장간첩이 나타나서 환자를 데려가고 있습니다. 북에서 귀순한 사람인데 간첩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빨리 경찰관 아저씨들 출동해 주세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단자 내리라우! 3층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은 전부 간호사실로 데려와서 서로 손만 묶어 놓기요.”

그러고는 다들 마스크를 썼다.

“이보라우! 의사 동무들 날래 날래 이쪽으로 줄 서기요! 간호사 동무들도 이리로 오시라요! 말만 잘 들으면 내래 죽이진 안 갔어! 자, 이 나이롱 줄로 서로 손을 잘 묶기요. 우리래 1분 주갔어! 그때까지 못 묶는 동무래 있으문 내레 쏘갔어!”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아, 이거 왜 이리 잘 안 묶여! 잘해 봐! 저거 끈 돌려야지!”

다들 서로의 손을 묶는다고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정태호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유유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나머지도 철수를 했다.

특히 고준수는 마지막에 나오면서 간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데려가는 저 동무래 공화국을 배신하고 탈출을 했서! 기래서 우리가 다시 데려가는 기야. 공화국에 허락받지 않고 지 멋대로 내려왔으니끼니 우리가 다시 데려가는 기야. 그게 이치에 맞디 안갔어? 남조선 당국에 그렇게 전하라우!”

노원경찰서 상황실장 정길수 경정은 이제 노원경찰서가 개서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데다가 변두리로 밀려났다는 자책감에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까지 한 병을 비웠던 탓에 취기가 올라 약간 불콰해졌다.

그때 상황실 전종 요원이 경비과장실로 뛰어와서 소리를 쳤다.

“과장님! 큰일 났습니다. 원자력 병원에 무장간첩이 출현했답니다. 방금 병원 측에서 신고 전화가 왔습니다.”

“뭐야!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무장간첩이라고? 이 수도 서울에 무장간첩이 나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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