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126. 황토 오리 구이
구청에서 나오자마자 변 수경이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계장님, 어디로 가실 겁니까?”
“저기 청담 사거리에 새로 지은 7층 건물이 있다던데 그리로 가 보자. 준공 필증 갖다주고 서로 들어가지 뭐.”
그러자 원 경사가 나서서 말렸다.
“안 됩니다, 계장님. 따와이 청탁은 반드시 룰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룰이라니 무슨 이야깁니까?”
“결과가 나왔을 때는 반드시 청탁한 사람을 거쳐서 가야 됩니다. 나중에 사례를 받을 때도 부탁한 사람을 거쳐서 돈을 받아야 하고요. 만약에 녹색 회장한테 부탁을 받고 일 처리를 했는데 녹색 회장한테 가지 않고 바로 총무한테 준공 필증 갖다주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녹색 회장 입장에서는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여기서 아줌마들한테 한번 찍히면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절대 조심하셔야 합니다. 변 수경! 나이샷 골프 연습장으로 가자!”
“네.”
다시 생각해 보니 원 경사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김세민은 이 모든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현실에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골프 연습장에 도착해서 원 경사와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야! 계장님 오셨네예. 원 경사 니도 왔나? 니 나중에 가기 전에 내한테 좀 들렀다 가라, 알겠제?”
“왜요, 월대라도 주실라고요?”
“월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자, 계장님 어서 들어오이소. 박 군아! 가서 퍼뜩 커피 한잔 타 온나!”
“괜찮아요, 커피는 많이 마셨습니다. 이거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구청에서 방금 받았어요.”
김세민은 준공 필증과 사용 승인서를 내밀었다.
“아이구야! 이기 뭐꼬? 필증 나왔네! 세상에! 이리 줄 거를 가지고 그리 사람을 애간장을 태우고 해샇더니 우리 계장님이 가시니까 떡 하고 바로 내주던 모양이지요?”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계장님이 점잖게 한 소리 딱 하니까 건축 지도 계장이 벌벌 떨면서 소방서에도 직접 전화해서 팩스로 받아서 바로 준공 필증을 내준 겁니다.”
“아, 그리고 건축물대장도 자기네들이 등재해 준다고 했으니까 한 며칠 있다가 구청에 가서 건축물대장 발급받고 취득세 내고 그리고 등기소 가서 등기 신청하면 등기필증이 나올 것입니다.”
김세민이 아까 건축 지도 계장한테 들은 얘기를 그대로 해 주었다.
“아이고, 시상에 이리 고마울 데가 있나? 가만있어 봐라. 총무한테 우선 전화로 알려 줘야겠다.”
삑삑삑!
“어야! 총무야 내다. 손 할매! 아이, 그럼 손자가 할매라고 부르는데 할매지 그럼 아줌마라 카까? 그라고 니 구청에서 준공필증하고 사용 승인서 나왔다. 오전에 교통 계장님이 직접 구청에 가서 받아 오셨더라. 건축물대장 등재도 저거가 해 준다 안 카나? 세상에 이리 우리가 서방 없이 산다고 그리 괄시하더이만 잘됐다 아이가? 뭐라고? 우리 녹색 서방님은 계장님이라고? 야가 지금 무신 소리 해 쌌노? 계장님 아직 총각인 거 니 모리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나중에 와서 가져가라. 그래, 그래 날 잡아서 파티 한번 제대로 해야지. 하모 하모! 오늘은 내가 여기서 계장님 잘 모실 테니까 니는 니 볼일 봐라. 알았다이 들어가거래이!”
도대체가 종합 학교에서 교육 받을 때도 저놈의 사투리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만 있으봐래이, 그래도 계장님이 총각인데 다 늙어 빠진 할매하고 가문 무슨 재미고? 어야! 김 프로! 오늘 스파렉스 선미 안 보이더나?”
“아, 네. 지금 3층에서 치고 계실 텐데요?”
“김 프로! 니 후딱 올라가서 내가 좀 보자 칸다고 케라.”
“네, 회장님.”
조금 있으니 키가 아주 큰 마치 모델 같은 세련된 여인이 나타났다.
“어머! 무서워라! 웬 경찰관 아저씨들이 왔대요? 언니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시끄럽고, 일단 니 여기 앉아 봐라. 점심 약속 없제?”
“네, 없어요. 웬일이래? 언니가 밥을 다 사 준다고 하고.”
“저거 먹으러 가자. 황토 오리 구이!”
“좋죠. 그게 피부에 그렇게 좋다던데. 여자는 오리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잡지에서 봤어요.”
“가시나 몸에 좋은 거는 알아 갖고, 가만있어 봐라 이거는 예약하고 가야 한다. 어야! 김 군아! 저기 황토오리집에 네 사람 예약 좀 해라. 아이지 참, 운전하는 아도 있다 아이가? 다섯 명이다.”
“네.”
“인사해라. 여기는 경찰서 교통 계장님이고 여기는 외감 하는 원 경사. 그리고 이쪽 아가씨는 여기 나가면 바로 보이는 압구정 스파렉스 윤선미 사장. 피트니스 클럽하고 사우나 같이 한다. 나보다도 열 배는 부자다. 고마 그래만 알면 된다.”
“아이고, 언니도, 뭘 그런 걸 강조를 하고 그래요? 정말로 부자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저 납치당해요?”
“이래 든든한 경찰관 아저씨들이 있는데 납치는 뭔 납치고? 헛소리하지 마라 가시나야.”
김세민은 손 회장의 걸쭉한 말에 맞장구를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냥 원 경사하고 둘이서 빙그레 웃고 있는 수밖에는 없었다.
“여기 이 동네가 그런 기 많거든, 땅값이 올라 졸지에 농사짓던 촌놈들이 부자가 된 기라. 선미, 니는 꼭 착한 사람 만나서 시집가라. 세상에 나왔는데 여자가 애라도 하나 낳아 보고 죽어야지. 그래야 니 제삿밥이라도 챙겨 줄 거 아이가? 여기 계장님은 총각이다. 생각 있으면 니가 대시해야 한다?”
“어머! 정말이에요? 집이 어디세요? 계장님?”
그러면서 윤선미가 김세민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원 경사! 니는 이리 건너와서 앉아라. 아 새끼가 눈치가 없노?”
* * *
황토 오리 구이집은 스파렉스 바로 옆에 있었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예약한 손님들로 자리가 거의 다 만석이었다.
“아유, 언니는 언제 봐도 늙지를 않네! 여전하세요! 언니!”
주인 여자가 다가와서 손 회장한테 애교를 떨었다.
“인사해라. 여기는 교통 계장님이고 이쪽은 이 집 주인 최정심 여사. 이달 말에 녹색 정기 총회할 때 신규 회원으로 위촉할 거다. 여기 최 여사하고 윤 사장하고 둘이. 근데 느그들, 빨리 서류 좀 갖다주라 하는데 와 이리 꾸물대노? 등본 한 통 떼서 갖다주면 되는데 가시나들이 게을러 빠지가.”
“계장님! 황토 오리 아직 안 잡숴 보셨지요?”
“네. 전 처음입니다.”
“이게 말입니다. 오리에다가 황토를 다 발라 가지고 황토 불가마에 굽는다 아닙니까? 한 2시간 구우면 오리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은 싹 다 빠지고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고 고기가 정말 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오리탕이 나와요. 능이버섯을 넣고 푹 끓인 것이거든요? 능이는 버섯 중에 최고입니다. 일 능이, 이 석이 삼 송이버섯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진안에서만 자연산이 나는데 우리 친정이 진안이라서 능이버섯 농사를 합니다. 이것도 참나무에서 키웁니다. 그리고 오리 안에는 대추, 밤, 잣 수삼해서 8가지 한약재가 들어가고요, 흑미 찹쌀을 넣어서 같이 푹 삶습니다.”
한바탕 수다를 떨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윤 사장이 우리 강남 여우회 막내이자 총무다. 우리 강남 여우회 장난 아니제?”
“뭐가 장난이 아닙니까? 준공 필증 하나 못 받아서 쩔쩔매면서.”
원 경사가 손 회장 말에 토를 달았다.
“원 경사 니 말 맞다. 그래도 내 우리 계장님 덕분에 회장 체면 세웠다 아이가? 그래가 지금 내가 밥 산다 아이가? 원 경사 니 인자 내 쫑코 그만 주라이! 계속하문 니 여기서 따와이 한 거 내 다 불어 버린다?”
“어이쿠! 회장님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제발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따와이 얘기가 나오자 원포가 바로 머리를 숙였다.
어느 틈에 옆에 윤선미가 다가앉아서 오리고기를 찢어서 김세민의 접시 위에 올려 주고 있었다.
“계장님 저녁에 시간 나세요?”
“아니, 오늘 저녁은 당직 근무입니다. 경찰서에서 하루 자야 합니다.”
“어머, 그러세요…… 그럼 다음에 제가 연락드릴 테니 거절하시면 안 돼요?”
“네. 당연히 우리 회원님이신데.”
“아이, 그런 공적인 관계 말고 같이 골프라도 한번 치러 가자구요.”
“야, 이 가스나야! 그런 사랑 놀음은 둘이 있을 때 해라. 여기 다 늙은 고목도 있는데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라고 내가 그저께 우리 계장님 공 치는 거 보이까, 소질이 보통 소질이 있는 게 아니더라. 잔말 말고 계장님은 앞으로 퇴근하고 매일 우리 연습장에 와서 한 박스씩 치고 가고, 우리 한 달 후에 계장님 머리 올려 드리러 가자. 선미 니하고 강자하고 나하고 이리 셋이 가면 되겠다.”
“정말요? 내일부터 매일 연습해야 되겠네? 언니 그때 우리 스킨스 말고 스크라치해요.”
“아이고, 이 내기 귀신아! 그만 좀 우려먹어라! 니 때문에 우리 연습장에 손님 다 떨어지겠다. 계장님! 야가 핸디는 보기인데 보기 치고는 제법이거든요? 여기 손님들 와서 어설프게 붙었다가 지갑 다 털립니다. 야 하고 할 때는 스킨스게임이나 하고, 절대 홀 매치니 이런 것 하면 그날은 지갑 다 털리는 날입니다.”
“피! 그거는 그중에 남자들이 쪼잔하게 여자한테 털리고는 언니한테 와서 징징 우는소리를 하니까 그런 거고, 난 내가 터지는 날은 입도 벙긋 안 해요. 진짜 왜 그러는지 몰라, 남자들이 더 입이 싼 거 같아요.”
* * *
김세민은 교통으로 발령받고 첫 당직 근무를 섰다.
저녁 6시가 되자 그날 당직 인원은 전원 상황실에 모여서 당직관인 정보과장의 간단한 훈시를 듣고 다들 흩어졌다.
새벽 1시를 기준으로 전반은 퇴근 시간부터 새벽 1시까지 후반은 1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였다.
경위는 언제나 후반 상황실장이었으므로 일찌감치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간부 숙직실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새벽 1시 10분 전이 되자 상황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근무복을 입고 상황실에 들어가니 벌써 전반 상황실장은 자리에 없었다.
후반 당직인 경리계 강 경장이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경례를 하더니 말했다.
“전반 실장님은 벌써 들어가셨습니다. 별 특이 사항 없다고 인계할 사항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같이 고생하겠네요.”
자리에 앉아서 전언 통지문 내려온 것 찾아서 읽고 있으니 조 경사가 문을 열고 쟁반에 라면을 끓인 냄비를 들고 들어선다.
“자, 이거 계장님 드시라고 제가 직접 끓였습니다.”
“아니, 저한테 준다고요? 조 부장님 드세요!”
“아니, 저는 벌써 한 그릇 했습니다. 계장님 후반에 당직하시려면 출출하실 텐데 이거라도 한 그릇 하시면 속이 든든하실 겁니다.”
냄비를 보니 달걀까지 하나 들어 있었다.
청사 순찰이나 한 바퀴 돌아야 되겠다 싶어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원 경사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니까 이 X발놈아! 구청에서 시키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구청에서 우리 사장님한테 시켰는지는 전 모르겠고 전 사장님이 지시하신 대로 한 것뿐입니다.”
“원 경사? 무슨 일 있어요?”
“계장님! 캬! 이 웃기는 새끼가 인도 보도블록에다가 물을 붓고 다니고 있더라고요.”
“보도블록에 물을 왜 부어요?”
“지금이 연말이지 않습니까? 아마 구청에서 예산이 해를 넘기면 반납을 해야 하니까,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할 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업자들 시켜서 보도블록에 물을 뿌리라고 한 것 같습니다. 이놈은 구청에 보도블록 교체 공사 하는 업자한테 고용된 애들이거든요?”
“물 뿌리는 것하고 공사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날씨가 춥지 않습니까? 보도블록 사이에 물을 뿌려 놓으면 물이 얼면서 팽창을 하니까 보도블록이 깨지는 겁니다. 그럼 사진 찍어서 교체해야 한다고 근거를 남기고 예산부터 집행하는 것이죠. 구청도 감사가 있으니까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지는 못하거든요? 빠루로 두들겨 깨면 표시가 나니까 대부분은 물을 부어서 자연스럽게 금이 가도록 만드는 것이죠. 나쁜 새끼들! 세금은 시민들이 내는데 지네들은 시 예산이 눈먼 돈이라고 이 지랄을 하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인적 사항 상세하게 적어 놓고 진술 받아서 내일 내가 형사계 넘길 테니까 형사에서 수사하라고 그러죠.”
“알겠습니다. 근데 또 있습니다. 계장님이 혹 오해하실까 봐서 미리 말씀드리는데 겨울 되면 올림픽 대로에 사고가 많이 납니다. 현장에 가 보면 교차로에는 항상 물이 얼어 있습니다. 그거는 사설 견인 기사들이 활어차를 빌려 와서는 심야에 물을 뿌리고 갑니다. 그럼 금세 물이 얼고 지나가던 차량이 급브레이크라도 잡으면 그냥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납니다. 요 녀석들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고 나면 잽싸게 차를 견인해 가는 것이죠. 사설 견인 업자들이 일단 정비 공장에 차 한 대 끌고 가면 무조건 견인비 5만 원 이상은 받으니까 그 지랄들을 합니다.”
“우리 여기 탄천이나 관내 정비 공장 레카 기사들도 그리합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공장에서 정식으로 월급을 받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만 사설 업자들은 레카 면허도 없는 놈들이 그 지랄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단속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활어차가 물 흘리고 가는 것은 기껏해야 적재물 방법 위반 정도로 스티커 2만 원짜리 끊고 나면 더 단속할 것도 없습니다. 견인차가 교차로에 대기하는 것은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러면 앞으로는 우리 지시 없이는 절대 우리 관외로 사고 차량을 견인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사고 난 차량의 차주한테 먼저 그렇게 얘기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정비 공장에도 얘기해서 사설 업자들이 끌고 오는 사고 차량은 받지 말라고 하세요.”
“반발이 거셀 텐데요, 괜찮겠습니까?”
“반발은 무슨! 그럼 우리도 거래 안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