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31화 (131/869)

제131화

#131. 등 떠밀려서 가는 FBI 교육

연희의 안내로 VIP룸으로 가 보니 1차장 외에도 맥칼라 영사까지 와 있었다.

“루테넌트 킴! 와우! 아지트가 굉장히 좋습니다. 저도 CIA에서 20년을 굴렀지만 아직 이런 아지트 하나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아지트가 아니라 단골 술집입니다. 저도 여기 돈 내고 술 먹습니다.”

“자자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본론만 간단하게 얘기하고 빨리 돌아가야 일행들이 의심하지 않지.”

1차장이 서둘러 자리 분위기를 바로 세웠다.

“내일 사무실로 불러서 말씀하셔도 되는데 왜 굳이 이곳까지 오셔서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김세민이 안 그래도 약간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1차장의 말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작전을 진행할 거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아주 스무스하게 말이야. 우린 3차장하고는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아무리 대공 분야라 해도 우린 해외에서 일하는 파트야. 해외 파트가 국내 간첩들 때려잡는 부서하고는 일하는 스타일이 당연히 달라야지. 안 그래? 윤정학이!”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여기 맥칼라 영사도 본국으로 승진했습니다. CIA 작전국 부국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오우! 제가 영전한 건 순전히 루테넌트 킴 덕분입니다.”

“제가 왜 맥칼라 영사님 승진하고 연관이 있습니까?”

또다시 미국으로 가라는 통에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이 더 불퉁거렸다.

“지금 미국에서는 다들 자네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네. 려민주가 통 입을 열지를 않아. 정태호가 죽고 나서는 거기에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처음에는 밥도 먹지 않으려고 했다더군. 자기도 죽는다고 말이야. 몇 번이나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겨우 정신은 차렸는데 지금 상황에서 려민주를 달래서 입을 열게 할 사람은 자네밖에 없다는 거야. 그래서 여기 맥칼라 영사도 한국에 있지 말고 자네하고 친하니 미국에 같이 들어와서 려민주의 입을 열게 하라는 것이지.”

“전 맥칼라 영사하고 그리 안 친한데요?”

김세민이 괜한 심술을 부려 보았다.

“우리가 친한 게 아닙니까? 난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본국에 보고했는데?”

맥칼라가 굉장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지금 미국 가기 싫어서 이리 어깃장 놓는 거지?”

1차장이 정확하게 김세민의 마음을 찔렀다.

“저도 사실 려민주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절 믿고 자기 애인을 보냈는데 한국에서 치료 중인 중환자를 마치 군사 작전하듯이 미국으로 한밤중에 비행기에 20시간이나 태워서 보냈으니 어찌 중환자가 오래 살겠습니까? 왜 우리 조국은 정태호를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저도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려민주도 위조 달러 동판까지 전했으면 자기 역할은 다 한 것 아닙니까? 자꾸 뭘 더 요구하니까 사람이 힘이 드는 거지요. 그냥 려민주를 놔두면 안 됩니까?”

“오우! 우리도 그러고 싶습니다. CIA 내부에서도 려민주에게 약물 주사를 투여해서라도 비밀을 알아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국장님이 그건 안 된다고 극구 반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제퍼슨의 독립 선언문에 기초하여 나라를 세운 국가입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분명한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위조 달러에 대해 진술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맥칼라가 분명한 미국의 입장을 전했다.

“그럼 려민주한테서 원하는 것이 뭡니까?”

김세민이 계속 불퉁하게 나왔지만 1차장은 아무 불평 없이 다 받아 주었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리라 싶었다.

“북한이 려민주를 통해서 위조 달러를 어디에서 세탁하는지 하는 것과, 김일성의 금고가 어디 은행인지,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중국 내 북한의 35호실 거점. 이 세 가지일세. 다는 못 해도 이 셋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자네가 알아내면 이번 작전은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일세.”

거기에 맥칼라가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려민주의 상태가 아주 히스테릭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획적으로 루테넌트 킴을 데려가면 거부할 것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만나도록 우연처럼 그렇게 해야 려민주가 마음을 열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여기 1차장과 이미 합의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윤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지난번에 ‘흑룡강’이란 암호명으로 김 주임에게 려민주의 마지막 지령을 수행한 자 외에도 아직도 려민주의 지시만을 따르는 세포 조직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이곳 강남에서 단파 송신이 여전히 송출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전의 흑룡강이 사용했던 주파수와는 다르지만요. 그리고 김 주임 동향을 어떤 방식으로든 려민주가 보고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자꾸 나하고 그 여자하고 엮으려고 합니까? 이제 그 얘기는 그만들 하십시다.”

김세민이 정말로 듣기가 싫어서 말을 잘랐다.

이번에는 맥칼라가 또 속을 긁었다.

“려민주가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한 일주일 전에 쇼핑을 해야겠다고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답니다. 보스턴에 있는 스위스 연방 은행 지점에 가서 돈을 인출했는데 아시다시피 스위스는 연방 은행으로 지난번에 다 통합이 되지 않았습니까? 스위스 유니온 뱅크에서 십만 불을 인출해서 콘토날 뱅크로 5만 불은 입금을 하고 나머지 5만 불을 가지고 하루에 다 쇼핑을 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전부 옷이나 향수 등 사치품을 구입했습니다. 우리가 은행 천장에 달린 CCTV를 확인해 보니까 코토날 뱅크는 려민주 이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니언 뱅크는 비밀 계좌였습니다. 계좌 번호가 ‘219 151 SQ 4’ 이 번호가 뭘 뜻하는 것인지 알겠습니까?”

“아니, 그거는 거꾸로 읽으면 김일성이 생년월일 아닙니까?”

“와우! 역시 김 주임 대단하다! 우리는 이거 알아낸다고 CIA 전문 분석가들이 며칠이 걸려서 겨우 밝혔는데 한번 보고 대번에 알아차리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에이, 그거야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정훈 교육 시간에 누구나 다 외우게 됩니다. 까먹으면 빠따 맞는데 그거 기억 못 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빠따요? 그게 뭡니까?”

“그런 게 있습니다. 넘어갑시다. 그래서요?”

김세민은 다음이 궁금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정태호가 보스턴에서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죽고 나서 실의에 빠져 죽겠다는 소리만 하던 려민주가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의욕을 가졌단 말입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글쎄요? 마음의 정리가 대충 되었다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자가 옷을 사고 향수나 화장품을 사서 자신을 치장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근데 우리는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려민주가 어떻게 김 주임 소식을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려민주가 보는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서 북이든 아니면 려민주가 남한에 남겨 둔 공작원이든 누군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리가 만무합니다.”

“맥 영사님,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위장 귀순!”

“네에? 려민주가 위장 귀순을 했다고요? 그럼 위조 달러니 핵 개발 정보는 다 뭡니까?”

“사실 핵 개발은 북한이 어느 정도 단계가 되면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습니다. 다 알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위조 달러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동판 1개와 20달러와 50달러짜리 지폐 두 장뿐입니다. 북한이 위조 달러를 찍어 낸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언제 누구를 통해서 또는 어느 은행을 통해서 세탁을 하는지 알아야 우리도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하는데 이거는 우리한테 문제점만 잔뜩 던져 놓고 해결책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려민주가 일주일 전 스위스 은행에서 우리가 지켜볼 것을 알면서도 태연히 김일성의 금고로 추정되는 계좌에서 돈을 인출을 했단 말입니다. 려민주가 인출한 유니온 뱅크는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애용하는 은행으로 유명합니다. 우간다의 이디아민 대통령도 수십억 불의 예금이 있었지만 끝내 우간다의 후임 정권에게 인출을 거부하고 떼어먹었습니다. 철저하게 본인 외는 인출이 안 되는 은행입니다. 려민주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생체 인식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려민주가 김일성의 금고지기였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하면 북한에서 우리한테 려민주를 돌려달라든지 하는 강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어요. 보스턴에 있는 안가에서도 려민주는 수시로 외출도 하고 쇼핑도 하고 그러고 다닙니다. 애타는 것은 우리죠. 이거는 뭐 새로운 상전 하나 모시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이 고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위층에서도 이 난국을 타개할 적임자로 김 주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1차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할 거야. 자네는 절대 학교에 가서도 FBI 교육을 자원하지 말게. 가만있으면 다른 놈 아무도 지원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전입 졸병인 자네가 가는 것으로 밀려서 교육 가는 것으로 만들 것이야. 그러면 다른 놈들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냥 학교 가서 태연하게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등 떠밀려서 교육을 가게 되는 장면을 만들 거야. 그럼 재수 더럽다고 불평이나 툴툴거리고 다니라고. 여기 맥칼라 영사나 윤정학이는 미리 워싱턴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거기서도 려민주의 공작원들이 있을 테니까 조심스럽게 둘이 접선해야 하고 절대 방심은 금물이야. 둘 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제 생각이나 의사는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까?”

김세민이 반항적으로 물어보았다.

“자네 생각이야 잘 알지. 그리고 또 하나, 원자력 병원에서 자네들 둘이서 건달들 동원해서 정태호 빼돌린 것도 내 다 알지. 난 3차장처럼 그리 어리숙하지는 않다네. 내 눈 속이기는 쉽지가 않을 거야. 여기 그라시아 박 사장한테까지 화가 안 미치려면 조용히 떠나는 게 여러 사람한테 다 좋을 것이야. 내 더 이상은 긴말 안 하겠네.”

윤 수사관 얼굴을 보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 친구는 정보 요원이라는 사람이 어찌 저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되나 싶었다.

주말에는 광화문에 있는 양우당에서 영어 회화 서적을 찾아보니 요새는 ‘민병철 생활 영어’가 제일 인기가 있다고 해서 6권짜리 테이프하고, FBI 본부가 있다는 워싱턴 DC의 안내 책자도 같이 샀다.

이제 매일 잘 때도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대문시장에 가서 끌고 다닐 수 있는 바퀴 달린 대형 가방도 하나 샀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초조하게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주일 만에 서울 시경 경정 이하 인사 발령이 내려왔다.

자그마치 전통문이 40장이나 되었다.

상황실에서 다들 궁금해하니 복사를 해서 돌렸는데 서로 인사 발령 안을 가져가려고 상황실이 그렇게 북적대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날은 김세민이 마지막 당직 근무를 서는 날이어서 실장을 대신해서 상황실에서 당직 근무에 들어가는 직원들 점호를 했다.

“오늘 인사 발령도 있고 했으니까 자리 이탈하지 말고 청사 내에서 절대 이별주나 술 마시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당부를 드립니다. 본부 감찰에서도 발령 안이 내려가면 근무 기강을 잡기 위해서 감찰도 하니까 본부 감찰에 지적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시고 정문 입초는 이 시간 이후는 출입자 통제에 철저를 기해 주기 바랍니다. 이상! 점호 끝!”

“차렷! 부실장님께 경례!”

다들 구호 없이 수사1계 정경사의 지휘에 따라 거수경례를 해 주었다.

이제는 그런 경례를 받는 것이 본인도 모르게 자연스러워짐을 느꼈다.

“헤헤! 계장님, 식사하셔야지요?”

조 경사가 살갑게 물어 왔다.

“뭐 구내식당에 가서 한 그릇 때우면 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닙니다. 오늘이 계장님 마지막 당직인데 그래서 제가 뒤에 영천식당에서 두루치기 한 냄비 시켰으니까 같이 드십시다.”

“그래요? 그럼 내가 살 테니까 여기 상황실에 근무하는 의경들 몫까지 전부 다 시키세요. 여기서 같이 먹읍시다.”

“헤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오늘 발령 안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안 보셨지요? 여기 우리 서에 해당되는 사항은 제가 따로 발췌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그러고 보니까 청담서 발령 사항이라고 그래서 따로 정리를 해서 깨끗이 타자를 쳐 두었다.

죽 한번 훑어보니까 김세민 자신은 종합 학교 교관 요원으로 맨 먼저 이름을 올렸고, 백두산 경위도 다시 청담으로 원대 복귀를 했다.

그리고 100호실 있던 양 형사는 자신이 전에 모시던 경기도경국장이 이번에 다시 서울 시경국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다시 서울 시경 부속실로 발령이 났고, 100호 실장 오종택 주임도 청담으로 왔다.

그리고 태국에 같이 잠깐 있었던 박일도 경감이 청담서 정보2계장으로 들어왔다.

그 나머지는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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