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137. 대박 나다
신철호 검사가 준 공판 서류를 들고 와서 찬찬히 검토를 하였다.
사건은 이미 6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라 현장은 말끔히 정돈이 되었고 지금은 구조물들을 다 철거하고 빈 공터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
남아 있는 사진과 서류만으로 방화냐 아니냐를 판단을 해야 할 판이었다.
신 검사한테 청담서 형사계 홍진억 경장을 재판 기간 동안 파견 근무를 좀 요청해 달라고 했더니 그날 당장에 검찰청으로 왔다.
종합 학교도 이미 검찰 파견으로 통보를 해 두었다고 했다.
홍 형사와 둘이서 온종일 중부 지검 회의실에 앉아서 서류 검토를 했다.
“이거 말이야, 소방하고 경찰에서 화재 감식한 것 보면 천장에서 누전으로 전기 배선이 다 탔다고 사진으로 찍어서 증거물로 남겼는데 이상하지 않아?”
“이상할 게 뭐가 있는데요? 천장에 전기 배선이 다 녹아서 붙어 있잖아요?”
“그래, 그건 맞는데, 누전이면 천장 어느 한 곳에서 최초 발화 지점은 불꽃이 튀어서 천장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야 정상이지 이 사진처럼 동일하게 한쪽에서 마치 곡예사가 줄을 타고 가는 것처럼 전선이 녹아내린 것은 일반 불길에 탔다는 증거이지. 다른 곳에서 최초 발화 지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야 해.”
“최초 발화 지점요?”
홍 경장이 다시 물어 왔다.
“그래, 이거네. 이걸 한번 봐. 지하 보일러실인 것 같은데 벽에 그을음이 튄 자국을 보면 마치 폭발에 의해서 파편이 비산되는 것처럼 그을음이 생겼잖아? 그리고 굉장히 시커멓고, 이거는 탄화수소가 불완전 연소가 될 때 많이 생기는 현상인데 사우나 보일러에 연료를 보통은 벙커C유를 쓴다고 봤을 때, 이건 다른 혼합 물질이 섞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거든?”
“다른 물질이라뇨?”
“음…… 예컨대 휘발유 같은 거? 벙커C유 자체만으로는 라이터 같은 화기에는 불이 잘 안 붙어 뭔가 강력한 불쏘시개가 있어야 하지.”
“그러니까 김 주임님 말씀은 방화를 한 범인이 휘발유 통을 들고 와서 여기 보일러실에서 방화를 했다는 것이네요?”
“이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그렇지. 현장을 상세하게 살펴봤으면 더 증거를 찾아내겠지만 우선은 이걸로 만족하자. 우리는 지금 범인을 찾는 게 아니고 건물주가 관리 소홀로 보험금을 다 못 받는 것을 막아 주자는 것이니까, 일단 이 사건이 실화가 아닌 방화라는 것을 입증해 주면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입증을 하죠?”
“우선 최초 신고자가 새벽 2시에 화재 신고를 했으니까 오늘 저녁에 같은 시간에 현장에 한번 가 보도록 하지. 그러면 그 시간에 깨어 있거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신고자나 목격자도 잘하면 찾을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날 밤 새벽 2시에 서울역 옆 염천교 수제화 골목에 위치한 불에 탄 사우나 터에 홍 형사와 다시 만났다.
그러고는 사우나를 가운데로 홍 형사와 김세민은 서로가 등을 대고 출발해서 탐문을 시작했다.
그 시각에 불이 켜져 있는 가게나 집을 찾기 위함이었다.
새벽 2시임에도 불이 켜져 있는 집도 있었고 심지어 구두 가게도 있었다.
김세민은 사우나 건너편의 구두 공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안을 보니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사람이 안경을 쓰고 혼자 구두 밑창에 접착제를 바르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독한 본드 접착제의 냄새가 밀려왔다.
“가게 아직 문 안 열었는데?”
“아, 경찰입니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김세민은 나이 든 사람한테 경찰관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경찰이 이 밤중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네, 아저씨, 한 6개월 전에 여기 옆에 목욕탕에 불이 났죠? 기억하시죠?”
“기억하지! 갑자기 펑 하면서 불이 솟구치는데 난 처음에 뭐가 터진 줄 알았어.”
“펑 하는 소리가 났다고요?”
“글쎄, 그렇다니까. 꼭 뭐라 할까? 군에서 박격포탄 있잖아? 그거 옆에서 터지는 것 같더라고. 내가 월남전에 갔다 왔는데 박격포 소리는 지겹도록 들어서 잘 알지.”
“그럼 혹시 이 여자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김세민은 검찰에서 용의자로 지목한 여자의 사진을 내밀었다.
“글쎄, 이 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날 펑하는 소리가 나서 밖을 나가 보니 웬 여자가 목욕탕에서 나와서 저쪽으로 허겁지겁 뛰어가는 거는 봤어. 목욕탕 보일러 기사 장 씨는 새벽 4시가 되어야 출근하는데 웬 여자가 목욕탕에서 나오는가 하고 이상하게는 생각을 했지.”
“그럼 어르신 죄송하지만 중요한 일이 되어서 방금 하신 말씀 진술서를 받겠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소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비는 드릴 것입니다.”
“그럽시다. 안 그래도 목욕탕 주인 황 씨가 화재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는데 오래 이웃으로 지냈으니까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줘야지. 근데 6개월 전에 화재가 났을 때는 아무 경찰도 와서 안 물어보던데 왜 인제 와서 다시 조사를 하고 그런데요?”
홍 형사도 성과가 있었다.
구두 골목에서 해장국집을 하는 아줌마가 새벽 장사를 위해 항상 새벽 2시경 가게에 와서 장사 준비를 하는데 그날 목욕탕에서 뛰어나오는 여자를 봤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
서울 중앙지법에서 3차 공판이 열렸다.
신철호 검사가 일어나서 먼저 검찰 측 증인 신문을 요청했다.
“재판장님 저희 검찰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결정적 증언을 해 줄 증인을 지난번에 서류로 제출을 했습니다. 증인 소환을 요청합니다.”
“허락합니다. 증인은 앞으로 나와서 선서를 해 주시고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김세민은 증인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신철호 검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먼저 증인의 소속과 계급 CFEI란 자격증에 대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네, 저는 지금 경찰 종합 학교에 교관으로 근무하는 김세민 경위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FBI 화재 감식 교육을 6개월간 이수하고 시험을 쳐서 FBI에서 미국 화재 폭발 조사관이란 자격증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검찰 측 요청으로 염천 사우나 화재 사건을 서류상 검토를 했습니다.”
“증인이 볼 때 염천 사우나 화재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정리를 해 주시죠.”
“그건 명백한 방화입니다.”
‘방화래! 실화가 아니야!’
방청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변호인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재판장이 나중에 변호인 측에 반대 심문할 기회를 주겠다면서 막았다.
“왜 실화가 아니고 방화인지 설명해 줄 수가 있습니까?”
신철호 검사가 말을 이어 갔다.
“네. 경찰에서 1차로 소방서와 합동 조사한 기록을 보면 천장의 전기 배선이 낡고 벗겨져서 누전에 의한 화재라고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이 최근 안전 구조 진단도 받았고 소방시설 안전 점검에서 미비 판정을 받아 소방 설비를 보완 공사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서 제시한 천장의 발화는 사진을 보시면 마치 불길이 연줄을 타고 가듯 동일하게 전선을 타고 불길이 지나갔습니다. 이는 전선이 발화 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화재의 발화지점은 지하 보일러실입니다. 사진에 보시면 보일러실 벽에 검은 그을음이 부채꼴처럼 퍼져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휘발성이 강한 물질로 방화를 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방화흔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과수에서 벽에 붙은 그을음을 성분 분석을 한 내용이 첨부가 되어 있습니다. 보시면 황산화물 즉 황분이 10% 미만으로 나와 있습니다. 잠시 화학적인 설명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재판장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했다.
“그게 본 재판과 상관이 있는 것이면 짧게 설명을 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원유로부터 LPG, 가솔린, 등유, 경유 등을 증류하고 남은 기름을 중유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중유 중에서도 등급에 따라 벙커A유, 벙커B유, 벙커C유로 이렇게 나뉘어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A중유와 B중유는 소형 내연 기관용으로 사용하고 C중유는 보일러 연료로 사용을 하게 됩니다. 목욕탕도 당연히 값이 싼 벙커C유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화재가 났을 때 지하실에서 중유에서 함유된 황분이 80% 이상이 검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10% 미만이라는 것은 누군가 벙커C유에 휘발유를 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휘발유가 아닌 벙커C유만으로는 저렇게 벽에 방화흔을 남길 정도로 강한 폭발력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화재가 발생한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에 주변을 탐문해 본 결과 불상의 중년 여인이 목욕탕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를 두 사람이나 확보해서 진술을 받았습니다. 여기 진술서를 제출하겠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법정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출석해서 증언을 하겠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본 조사관의 견해로는 범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화재는 명백한 방화에 의한 화재 사건입니다.”
보험 회사 측 변호인들이 난리가 났다.
만약에 재판부가 이걸 받아들인다면 15억이나 되는 보상금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변호인 반대 심문이 시작되었다.
“지금 증인이 갖고 있다는 그 CFEI란 자격증을 전 처음 보는데 그게 미국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습니까?”
“우선에 전미 보험 협회에서 인정하는 조사관 자격이고요, FBI에서 철저한 감독하에 FBI 건물 내에서 6개월간 전문적인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방 법원에서는 아직까지 CFEI 조사관이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순간 변호인의 입이 얼어붙어 버렸다.
신철호 검사가 일어났다.
“재판장님! 여기 증인의 자격증 사본과 감정비 피해 금액의 1%에 대한 청구권도 함께 제출합니다. 패소하는 당사자가 감정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상황은 쉽게 끝이 났다.
염천 사우나 황보식 사장은 자신의 관리 부주의로 인한 실화라면서 보험 가입 금액의 절반인 7억5천밖에는 줄 수 없다는 보험사의 단호한 입장에 6개월을 재판을 질질 끌면서 사실 자포자기한 상태였는데 의외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경찰관한테 말이다.
재판을 더 가져가 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한 보험사 측 변호인들이 항소를 포기하고 중재를 요청했다.
판사는 보험금 전액 지급과 동시에 중부경찰서에 수사 개시를 하도록 명령을 했으며 감정비도 보험사가 전액 지급하도록 1심 판결을 종결지었다.
다음 날 화령일보에 이날의 화재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사회면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보도를 했다.
FBI의 화재 폭발 조사관 자격증을 가진 한사람의 경찰관의 노력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목욕탕 업주가 보험금을 지급받아 기사회생을 할 수가 있었고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전문 화재 감식 조사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에 김세민 자신의 계좌로 돈이 1,500만 원이 입금된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홍진억 경장이 찾아 와서는 목욕탕 주인이 보험사에서 돈을 받았다면서 감사하다고 2천만 원이나 주고 갔다는 것이었다.
신철호 검사한테 갖다주라고 했더니 반반씩 쓰자고 해서 다시 천만 원을 들고 왔다.
“야, 그래도 우리 룰은 무조건 반반 아니냐? 이천오백이니까 우리 대대장님인 이문호 검사한테 오백 상납하고 너하고 나하고 천만 원씩 쓰자. 괜찮지?”
“아, 저야 그냥 들러리 선 것뿐인데 이거 받기가 좀 그런데요?”
“야, 이거는 합법적인 거야. 이거 1년에 몇 건만 하면 앞으로 너하고 나는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여기 학교에 그냥 말뚝 박아 버릴까?”
“에이, 그래도 여기 계시다가 기회 되면 일선에 나가서 또 맘대로 돌아다니셔야죠. 전 사수님이 돌아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청담서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 형사 주임으로 앉아 계세요. 우리가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난 그 FBI 교육, 그거 등 떠밀려서 간다고 얼마나 짜증을 냈는데 사람 일이 지나고 보니 전화위복이 되었네. 완전 대박이다! 야, 이게 다 려민주 덕분이네.”
“려민주요?”
“그래, 내가 말도 모르고 그냥 엎드려서 잠이나 자다가 오려고 했는데 려민주가 매일 와서 날 공부시켜 주고 자격증 따라고 시험 준비까지 시켜 줘서 억지로 공부했는데 려민주 덕에 내가 돈까지 벌게 되었어. 처음에는 려민주 때문에 미국까지 간다고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다 지나고 보니 내가 돈벼락을 맞으려고 그랬나 보다. 어쨌든 앞으로 너하고 둘이서 또 한 번 잘해 보자.”
다음 날 경찰학교에 출근을 했더니 학교장이 부른다고 해서 교장실로 갔다.
배덕배 치안감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세민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미국에서 그 뭐냐 무슨 화재 감식 자격증을 따고 와서는 재판에서 한번 이기고 나니까 일약 스타가 됐어. 그래서 여기는 학교니까 미국에서 배운 것을 우리 경찰관들한테도 좀 나눠 줘야 하지 않겠나? 내가 일주일 과정으로 화재 감식 교육 과정을 신설했으니까 그걸 맡아서 일선 경찰관들한테 견식을 좀 넓혀 주게. 자네는 이제 수사는 하지 말고 화재 감식 전문 교관이야. 교육 자료 준비해서 다음 주부터 교육생들이 들어오면 잘 교육시키도록!”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