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60화 (160/869)

제160화

#160. 판공비 나눠 쓰기

그렇게 7번 홀까지 라운딩을 했다.

배 사장은 드라이브를 11도 여자용 혼마로 바꾸고부터는 원하는 대로 OB가 잘 나기 시작했다.

아예 티 박스에서의 스윙도 IN에서 OUT으로의 스윙이 아닌 OUT에서 IN으로 깎아서 때렸다.

그러자 공이 깎여 맞으면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OB가 났다.

러프에 빠지면 공을 찾는 시늉만 했다.

무조건 벌타 2개를 먹거나 페어웨이에서 치는 공은 그린을 넘겨 보내기 일쑤였다.

트리플 보기는 일상이고 쿼드러플 보기도 밥 먹듯이 했다.

준비한 천만 원이 순식간에 다 나가 버렸다.

8번 홀은 파5의 롱홀이었다.

7번 홀에서 위너를 한 박 억수가 먼저 티 박스에 올랐다.

“야 오늘 무슨 날인가 봅니다. 한 번도 실수 없이 대단하십니다.”

다들 옆에서 잎이 마르도록 아부를 했는데 박 억수는 그것이 접대 골프라는 것을 눈치는 채었어도 싫지는 않았다.

자신이 친구인 김광식보다도 밀려서 사회에서 출발을 했는데도 지금은 광식이가 자신을 접대한다고 저러고 있으니 세상은 일단은 살아 보고 나서 평가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탓인지 드라이브를 쳤는데 갑자기 잘 맞던 공이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나면서 OB가 난 것 같았다.

“에이 잘나가는 것 같더니 이번 판은 슬라이스가 났네.”

박억수가 툴툴거리자 옆에서 배 사장이 따라붙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실망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바람이 불어서 잘하면 공이 다시 페어웨이 안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언니야! 우린 천천히 걸어갈 테니까 언니는 먼저 차 타고 가서 공부터 좀 찾아볼래?”

“네! 사장님 그럼 천천히 오세요!”

캐디가 눈치 빠르게 전기 골프카를 몰고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러프 지점에서 공을 찾는 척하더니 품속에서 같은 번호의 1번 타이틀 리스트 공을 슬쩍 페어웨이 안쪽 라이(잔디결)가 좋은 곳에 떨어뜨려 놓았다.

“사장님! 여기 공 찾았어요! 바람 때문에 공이 다시 안쪽으로 들어왔나 봐요!”

“뭐? 정말이야?”

박억수가 공을 찾았다는 말에 신이 나서 뛰어왔다.

정말이었다.

하얀 공이 페어웨이 끝부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놓여 있었다.

잔디 라이도 아주 좋은 편이었다.

“황 소장님! 이거 제 공이 맞습니다. 1번이에요.”

“축하합니다. 오늘은 아주 운이 좋습니다.”

“여기서 그린까지 대략 180입니다. 2번 크리크로 한번 올려 보세요.”

캐디 언니가 친절하게 말을 해 주었다.

이번에 박억수는 2번 크리크와 3번 스푼까지 싹 다 장만을 한 터였다.

“좋아 한번 해 보자.”

박억수는 2번 크리크를 빼내 들고 호흡을 골랐다.

2번의 각도는 대략해서 8.5도였다.

맞을 때 잔디를 파헤치듯이 때리면 공은 잔디 위를 스치듯 직선으로 날아가서 그린까지 굴러갈 것이었다.

롱홀이라 그런지 페어웨이도 잔디의 굴곡이 거의 없어 보였다.

저 멀리 그린에 꼽힌 깃발을 향해 크리크를 땅에다 찍었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날아가듯이 흰 공이 잔디를 박차고 그린 위를 향해 날아갔다.

멀리서 보니 그린 위에서 한 번 바운드한 것까지는 보였는데 더 이상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린을 넘어갔는지 그린 위에 있는지는 가서 봐야 알 것이었다.

배 사장이 황찬 소장을 바라보면서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미 골프장의 시설팀장을 어제저녁에 만나서 8번 홀과 9번 홀이 깔때기 홀이란 것을 알고 홀컵을 한가운데에다 뚫어 줄 것을 요청을 하고 봉투를 하나 주었던 것이었다.

깔때기 홀은 말 그대로 그린이 정 가운데를 두고 내리막이 되어 있어서 홀컵이 정 가운데에 있으면 무조건 그린에 올리면 홀컵에 빨려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동남아에 골프 여행을 가면 팁을 받을 욕심으로 한국인 골퍼들에게는 무조건 깔때기 홀의 가운데에다 홀컵을 뚫어 놓고서는 계산된 환호성을 지르지만 국내는 대부분은 깔때기 그린의 중간에다 구멍을 뚫어 놓기 때문에 공이 흘러내리거나,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린에서만 퍼팅을 두서너 번은 하기 일쑤인, 꽤 난이도가 있는 홀이 깔때기 홀인 것이었다.

“알바트로스!(파5홀에서 2타 만에 홀컵에 공이 들어가는 것).”

먼저 그린에 올라간 캐디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소리를 질렀다.

“뭐야? 알바트로스래? 평생에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그 알바트로스야? 박 감리님! 축하합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다들 몰려와서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알바트로스라니?

박억수는 마침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된 양 우쭐해졌다.

캐디가 그린에 올라가서 먼저 자신의 머리를 묶었던 띠를 풀었다.

그러고는 홀컵에 들어간 공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머리를 묶었던 스카프에 공을 조심스럽게 올린 다음, 무릎을 꿇은 채로 다른 캐디에게 건네주었으며, 건네받은 캐디는 골프공에다가 날짜와 장소, 동행한 골퍼들의 이름을 적어서 박억수에게 조심스레 무릎을 꿇은 채로 건네주었다.

이것은 홀인원이나 알바트로스를 하면 관행적으로 해 오는 작은 세리머니였다.

“지금까지 저희 골프장에서 알바트로스는 두 분밖에 없었습니다. 홀인원은 스무 명도 넘게 나왔는데 알바트로스는 그만큼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죠. 저희 골프장에 손님의 이름도 새겨질 것입니다.”

“와아! 만세! 만세!”

박억수는 너무 감격해서 두 손을 번쩍 쳐들고 만세를 외쳤다.

그러고는 내기 골프로 딴 수표에서 열 장을 꺼내 들어서 각 캐디에게 다섯 장씩 캐디피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다음 홀은 IN 코스의 마지막 9번 홀로서 파3 쇼트홀이었다.

전 홀에서 알바트로스를 한 박억수가 먼저 티 박스에 올라갔다.

“거리는 130입니다. 7번 아이언으로 하시면 될 거예요.”

캐디가 친절하게 멘트를 하면서 7번 채를 뽑아서 건네주었다.

박억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서는 티 박스에 올라가서 저 아래에 펼쳐진 그린을 보았다.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는지 깃발이 오른쪽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보기보다는 약간 왼쪽 그린을 보고 쳐야 할 것 같았다.

이윽고 숨을 고른 후에 어드레스를 정확히 하고 편안하게 천천히 클럽을 들어 올렸다가 부드럽게 아래로 클럽을 던지듯이 공을 밀어내었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색 공이 하늘 높이 올랐다가 정점에 다다른 후에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그린의 오른쪽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린의 중앙으로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어어! 저거 홀인원 되는 거 아냐?”

황찬 소장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공이 멈출 듯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구르더니 이윽고 ‘딸가락!’하는 소리와 함께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딸가락’하고 홀컵에 떨어지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여기 티 박스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와아아! 홀인원이다! 홀인원!”

“으샤! 으샤! 만세! 만세!”

다들 한 몸이 되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티 박스 주위를 맴돌았으며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다음 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와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오늘 대박 나셨어요! 복권이라도 한번 사 보세요!”

뒤에서 기다리던 조에서 마구 덕담을 퍼부었다.

박억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이 어느 골퍼도 한자리에서 알바트로스와 홀인원을 동시에 하는 경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골프 역사상 최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에 내려오자 이번에는 다른 캐디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두 무릎을 꿇고서 공손하게 공을 바치는 세리머니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골프 행사를 마치고 그늘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배 사장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박 감리님! 이번에 공사 설계를 보니까 너무 공사비가 짜게 책정이 되어 있어서 바닥 준설을 27미터를 잡아 놨던데 그거 한 7미터만 줄여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물길을 틔우면 아무 표시도 안 날 테고 유람선이나 바지선을 띄운다고 해도 수심 20미터면 운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을 겁니다. 어차피 여름에 홍수 한번 지나가면 토사가 금세 쌓이니까 박 감리님만 눈 감아 주시면 적은 공사비에 공기까지 딱 맞춰서 일사천리로 진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 도와주시죠? 제가 박 감리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억수야, 듣고 보니 여기 배 사장도 적은 관급 공사에 공기까지 맞추려면 애로 사항이 많겠는데 그렇게 해 드리자? 제방 둑은 다른 사람들 눈이 있으니까 설계대로 시공을 하고 하천 바닥은 대충 넘어가는 게 좋겠다.”

친구인 H 건설의 대관 담당인 김광식도 옆에서 배 사장 편을 들었다.

“나야 뭐 이거는 우리 집 짓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들 하십시오. 대신 직원들 말이나 나오지 않도록 입조심이나 단단히 시키시고요. 그래도 우리 건설국장이 한번 현장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 그래서 제가 밖에 박 감리님 차에다가 골프 슈즈 백을 8개, 골프채가 들어 있는 백을 2개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차에 가서 실어 놓고 올 테니 차 키를 먼저 주시고, 사우나에서 편안하게 몸 좀 닦으시고 나오시면 다 조치해 놓겠습니다.”

배 사장이 박억수의 차 키를 받아서 먼저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배 사장은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회사 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주차장에 세워 둔 박억수의 차 트렁크를 열고 슈즈 백 8개와 골프백을 싣기 위해서였다.

그때 맞은편 주차장의 차 안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시경 정보과 소속 배경사와 강 경장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전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 X발, 이거 우리가 쪽수가 많으면 바로 덮치면 되는데 아쉽네.”

강 경장이 아쉽다는 듯이 말을 하자 배 경사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아쉬울 거 없어. 저거는 강력범도 아니고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 뇌물 범이니까 박억수 이 자식만 잡으면 다 끝나는 일이야. 나중에 박억수가 나오면 낚아채자.”

박억수는 기분 좋게 클럽사우나에서 몸을 씻고 나오자 배 사장이 키를 돌려주었다.

“슈즈 백에는 일억, 큰 백에는 이억이 들었습니다. 도합 해서 십억입니다. 큰 백은 건설국장님하고 시장실에 넣어 드리고 나머지는 박 감리님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아, 내 골프백을 찾아야 하는데?”

“아, 그것도 제가 미리 찾아서 같이 다 실어 놨습니다. 조심히 운전해서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식사까지 모시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다른 사람 눈에 뜨이니까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럼, 내일 현장에서 보십시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둘러보니 어느 틈에 친구 김광식도 현장 소장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제 저 돈을 들고 누구한테 어떻게 나눌 것인지, 혼자 다 먹을 것인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서울로 돌아가면 될 것이었다.

박억수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기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갔다.

막 차 문에 키를 꽂고 문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두 사람이 어느 틈에 옆에 바짝 붙었다.

“서울 시청 건축과 소속 7급 주사보 박억수 씨죠? 우린 시경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서울시장실에서 부시장과 기획실장이 모였다.

“자 이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봐. 이거 시경에서 보란 듯이 우리 애들 잡아들이고 있는데 그냥 죄도 없는 놈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함정을 파서 보란 듯이 잡아가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시경청장이란 자식은 전화도 안 받고 부시장이 가도 안 만나 준다면서?”

“시장님! 이럴 때는 시장님이나 부시장님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먼저 밑에서 물밑 작업을 좀 하고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본 후에 나중에 두 분이서 형식적으로 만나서 오해를 푸시는 게 제일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누구를 만나야 해?”

“제가 우리 시청에 출입하는 정보 형사한테 어제 의논을 해 보니까 시경에서는 정보2계장이 지금 우리 사건을 총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정보2계장을 만나서 타협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어차피 돈 때문에 다 벌어진 일 아닙니까? 달라는 대로 다 주십시다. 그래 봤자 수십억이지 무슨 백억을 내놓으라 하겠습니까?”

“그래 알았어. 일단 기획실장이 만나서 달라는 대로 준다고 해. 어차피 우리 돈도 아니고 시민들 세금인데 내가 쓰나 경찰청장이 쓰나 그게 그거지. 그리고 앞으로는 말이야. 우리가 쟤네들보다 더 약점이 많잖아? 서로 부딪히지 말라고. 돈 얘기하면 바로바로 주고 뭐 신호기 설치나 횡단보도 한다고 그러면 아예 연초에 왕창 예산을 줘 버려. 자기네들이 알아서들 하게 말이야. 서로 부딪히면 결국에는 우리 애들만 다친다고? 이번에 건설국장까지 들어가서 조사받았다면서? 그 사람은 나한테 올 것까지 다 빼돌려 먹었으니 생각 같아서는 그냥 놔두고 싶지만 그래도 한솥밥 먹는데 그럴 수는 없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이야.”

“시경청장 월 판공비는 어느 정도 선까지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부시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글쎄, 얼마가 좋아? 저번에는 우리 산하 기관으로 있었으니까 월 2천 정도 줬지? 이번에는 독립을 했으니 월 2억? 그 정도면 될까?”

시장이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을 했다.

“그러지 말고 아예 한 20억 정도 던지시죠.”

기획실장이 통 크게 제안을 했다.

“20억이나 주자고? 너무 많지 않아? 우리한테야 별거 아니지만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주면 우리가 뭐 곳간에 돈을 쌓아 놓기라도 하는 듯이 보인단 말이지. 돈이란 게 원래 좀 남한테는 인색하게 보여야 한다고.”

“일단 제가 정보 2계장을 만나서 저쪽 얘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안 되면 자네 말대로 한 20억씩 줘도 돼! 그래 그게 낫겠다. 20억 준다고 그래. 그럼 앞으로 시경청장이 나만 보면 굽신굽신할 거 아닌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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