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69화 (169/869)

제169화

#169. 하늘로 간 내 사랑

그날따라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연희는 손님이 나갈 때마다 정문 앞까지 나와서 일일이 배웅을 하고 웨이터가 택시를 잡아 태워 주는 것까지 확인을 했다.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와서 손님을 보내 드리고 뒤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자신에 몸에 가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곧이어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떴음을 느꼈다.

‘아 내가 방심했구나. 이렇게 죽고 마는 건가? 오라버니, 연우야, 미안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불현듯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는 것도 잠시 ‘쾅!’하는 소리가 아득하게 귓속으로 멀어져 가더니 자신이 땅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환한 빛이 멀리 보이는 통로를 마구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의식을 잃었다.

김성년 의원도 같은 병원에 실려 왔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가 크게 한번 숨을 쉬는 듯이 보이다가는 손을 들어 허공에서 뭔가를 붙잡는 듯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 시각 연희도 심장이 멈추어 버렸다.

소식을 듣고 쫓아온 그라시아 박흥식 사장이 입구에서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했다.

“이건 분명히 살인 사건이야! 택시 그놈은 잡은 거야?”

“놓쳤습니다. 이 새끼가 인도로 기어올라 와서 사람을 치고는 한 번 더 후진해서 확인 추돌까지 하고는 차에서 내려 달아났습니다.”

“뭐? 아니 그럴 동안 안 붙잡고 너들은 뭘 했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웨이터 춘식이도 같이 당해서 나머지는 아가씨들뿐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소식을 듣고 쫓아 올라갔을 때는 이미 달아난 뒤였습니다. 택시는 골목에 세워 둔 개인택시를 훔쳐 타고 온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김세민은 관사에서 잠을 자던 중이었다. 자다가 잠결에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 두 눈을 떠 보니 방문 앞에 연희가 서 있었다.

“연희? 연희야. 너 언제 왔어? 오면 온다고 미리 전화라도 주지 않고.”

“…….”

연희는 김세민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않고 슬픈 표정으로 가만히 김세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세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희에게 다가가자 연희는 다가간 만큼 멀어져 갔다.

김세민이 빠르게 쫓아가서 연희를 잡으려고 하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우와악!”

놀라서 소리를 지르다가 김세민은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 시트는 김세민이 흘린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이게 다 뭐지? 그럼 아까는 꿈이었나?’

김세민은 혹시나 싶어서 바로 시저스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길로 바로 옷을 입고 서울로 차를 몰고 달렸다.

‘연희야 제발 무사해야 해. 죽으면 안 돼.’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빌고 또 빌었지만 아까 잠결에 본 연희의 모습이 아마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본 연희의 모습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연희의 혼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병원에 도착을 하자 김세민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연희는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안에서 연우가 나오더니 김세민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언니…… 방금 떠났어요. 끝까지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 어떡해요? 오라버니!”

김세민은 흰 천으로 얼굴을 덮은 연희의 시신으로 다가가서 얼굴을 덮은 천을 벗겼다.

창백한 모습의 연희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았다.

얼굴에 눈물이 아직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아 손으로 닦았더니 약간 미지근한 감촉이 왔다.

자신을 끝까지 기다리다가 숨을 거둔 것 같았다.

참았던 슬픔이 터져 나왔다.

“흐흑, 흐으윽! 연희야! 이렇게 너 혼자 가면 어떡하라고! 이 바보야! 여기 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는 거야! 흑흑흑!”

김세민은 완전 넋이 나가 버렸다.

그라시아 박 사장이 다가와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주임님, 제가 연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반드시 연희를 죽인 놈을 찾아서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입니다.”

“단서가 있습니까?”

“최근에 한 달 동안 못 보던 놈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는 꼭 연희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놈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이건 제 일입니다. 살인자를 찾는 것도 원수를 갚는 것도 다 제가 할 일이구요. 박 사장님은 나서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쨌든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망자는 잘 보내 드립시다. 장례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S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성년 의원과 연희의 장례가 동시에 치러졌다.

김성년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답게 조화가 끝이 없이 놓였으며 복도에는 놔 둘 곳이 없어 바깥에까지 두 줄로 늘어선 반면에 연희의 빈소는 약간 초라한 느낌마저 들었다.

김세민의 부사수들까지 와서 한바탕 북적거리고 난 다음에 밤 12시를 넘긴 시각에 웬 젊은 청년이 김세민을 찾아왔다.

밤늦게 웬 문상객인가 싶어서 일어나서 조문한 후에 맞절을 하였더니 그 청년이 이렇게 말을 하였다.

“제가 연희 누나의 배다른 동생입니다. 지금 쌍마 그룹의 상무로 있지요. 어렵게 연희 누나를 찾아서 아버지한테 승낙을 받고 호적에 올리려고 했는데 이런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 데도 알리지 말라는 연희 누나의 당부를 잊고 제가 경솔하게 집에 알린 것이 잘못입니다.”

그러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김세민은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연희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들립니다만?”

“맞습니다. 증거는 없겠지만 아마도 틀림없이 지금 아버지와 살고 있는 정나영의 짓입니다. 과거에도 연희 어머니를 부산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연희의 존재가 드러나니까 사람을 시켜 죽인 것입니다.”

“아니 연희가 무슨 그 집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힘으로 조용히 살고 있는데 대체 이유가 뭡니까!”

김세민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아버님과 그 여자가 연희의 입적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은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으니 그 여파로 충격이 크셨겠지요. 그리고 연희의 등장은 아버님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구요. 지금 아버님과 연희가 동시에 죽었으니 이제 쌍마 그룹의 후계는 배다른 제 동생인 정수가 회장에 취임할 겁니다.”

“그럼 앞에 있는 분이 연희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갔다는 분입니까?”

“예 맞습니다. 제가 누나한테 도와 달라고 했지요. 누나가 입적되면 제가 장자니까 제 동생이 함부로 후계를 넘보지는 못 하지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연희가 그쪽 집안의 재산 싸움에 억울하게 희생이 되었다는 얘기군요.”

“아니, 꼭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필요는…….”

“이제 다 알았으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혼자 있고 싶으니 이만 나가 주시죠.”

“제 누나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매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가족이 없거든요.”

“…….”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장례가 끝나고 나면 제가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김세민은 모든 것이 귀찮아서 한쪽 손을 들어 어서 나가라는 표시를 하였다.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연희는 화장을 한 후에 근교의 납골당에 안치를 하였고, 김성년 의원의 장지는 국립묘지로 정해졌다.

* * *

삼 일간의 장례도 끝이 나고 학교로 출근을 했는데 연우에게 전화가 왔다.

“연우야! 많이 힘들지?”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좀 어때요?”

“나야 뭐, 아무튼 잘 참고 이겨야 한다. 연희도 있고 나도 있잖니?”

“네 오라버니,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참, 언니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보니까 오라버니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있더라고요. 나중에 가게로 오시면 제가 드릴게요.”

“벌써 가게 문 열었니?”

“네. 여기도 결국 단골 장사라 오래 문 닫으면 단골들이 다 떨어져 나가거든요.”

“그래 알았다. 나중에 퇴근하고 들르마.”

퇴근하고 카사블랑카에 들러 보니 그새 또 이것저것 인테리어가 바뀌어 있었다.

연우가 손재주가 많다보니 이것저것 손을 많이 보는 모양이었다.

김세민은 연희가 남겼다는 마지막 편지를 연우에게 건네받아 봉투를 뜯었다.

‘오라버니!

난 오라버니가 이 편지를 안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편지를 써.

오라버니가 이 편지를 본다면 그것은 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야.

내 동생이라는 김성수가 찾아왔어.

자기네들 후계 구도 문제로 내 지분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난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해 두었는데도 아마 그 여자가 알게 되면 날 가만두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래서 내가 오라버니한테 혼인 신고 하자는 얘기도 했고, 오라버니 이름으로 아파트도 하나 분양받았고 이미 잔금까지 다 납부를 했어.

이자까지 쳐서 연 5% 할인도 해 주더라.

오빠 아파트니까 거기서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

내 생각하지 말고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

이건 진심이다?

그리고 연우는 지난번에 박 수사관이 준 돈으로 가게도 차려 주고 집도 하나 사 주었으니까 결혼만 잘하면 별일 없이 잘 살 거야.

오라버니가 끝까지 연우를 잘 지켜 줄 거라 믿어.

나머지 돈은 오라버니가 갖고 있다가 연우가 결혼할 때 결혼 비용으로 쓰고 남으면 연우한테 줘, 신혼살림인데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말이야.

사실은 그 돈 우리 신혼살림 장만할 돈인데.

제발 그 돈 우리가 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히힛.

이제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김세민 씨!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정말, 아주 많이 당신을 사랑해! 연희가.’

김세민은 편지를 다 읽고서는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바보처럼 울었다.

아버지가 허무하게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우는 울음이었다.

땅에 떨어진 편지를 읽고 난 연우도 같이 울었다.

* * *

자신의 17층 사무실에서 멍하니 강남대로를 내다보고 있던 김성수는 요즘 완전히 자신이 왕따 신세인 것을 실감했다.

자신의 방에 찾아오는 임원들도 발길을 뚝 끊었고 아버지가 쓰던 회장실은 어느새 정나영이 차지하고 앉아서는 임원들을 마구 불러대고 있었다.

노크 소리도 없이 비서실 김 과장과 백 변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상무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무슨?”

“이제 상무님은 쌍마 그룹의 정식 후계자가 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좀 알아듣게 얘기를 해 봐요!”

“제가 혹시나 해서 고인이 되신 회장님이 따님에게 남기신 유산 중에 우리 것을 찾으려고 유류분 소송을 했는데 서류를 떼다 보니까 돌아가신 따님께서 혼인 신고를 하셨더라고요. 남편 되시는 분은 김세민 씨입니다. 혹시 아는 분이십니까?”

“아니, 혼인 신고를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제 저쪽으로 갈 유류분은 없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서 사망 시각을 확인서를 떼 왔는데요. 한번 보십시오. 회장님은 밤 23:05분에 사망하셨고. 따님은 사망 시간이 밤 23:10분입니다.”

“그렇다면?”

“네. 회장님이 사망한 시각까지 살아 계셨으니 그대로 상속을 받으신 거죠. 그리고 사망을 하셨으니 그 상속인은 혼인 신고가 된 남편분이 75%, 호적에 올라 있는 연우라는 동생분이 나머지 25%를 상속받게 되는 겁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분들이 저쪽 사모님한테로 기울지만 않는다면 이번 주총에서 상무님이 공식 후계자로 회장에 취임하시게 되는 것이죠.”

“허어…….”

“돌아가신 누님께서 마지막 신의 한 수를 두신 겁니다. 어쩌면 미리 이런 사태를 예견을 하고 혼인 신고부터 먼저 하신 것 같네요. 여기 혼인 신고한 날짜를 보십시오, 사고가 나기 하루 전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김성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아! 누나! 마지막까지 이 못난 동생을 위해서 한 수를 두고 가셨군요. 제가 반드시 누나의 복수를 해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승길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한편 그라시아 박 사장은 정나영의 수행 비서인 김규수를 정나영의 집에서 퇴근하는 집 앞에서 순식간에 납치해 교외의 농장 헛간으로 옮겼다.

김규수의 얼굴에는 검은 천이 덮어 씌워졌고 입은 테이프로 막았다가 막 뗀 참이었다.

“자, 아직 자네 얼굴이 검은 천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살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천이 벗겨지면 넌 여기서 살아서는 못 나가.”

“이거 왜 이러십니까! 살려주세요!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몰라? 이거 곤란한데……. 근데 그건 자네 사정이고, 아무튼 질문은 딱 한 번만 한다. 지금 네 열손가락에는 침이 열 개씩 박혀 있다. 네가 거짓말을 하거나 입을 다물면 그 침을 꽂아 줄 거야. 다음에는 발톱에다 박아 넣을 것이고, 그래도 네가 버틸 수가 있으면 그때는 네 머리에 천을 벗기고 천천히 네놈 가죽을 벗기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네네.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서 마담은 누가 죽였나?”

“그건 뺑소니 사고 아닙니까? 으아악! 아이구! 사람 살려! 엉엉!”

엄지손톱 밑에다가 침을 찔러 넣자 놈이 마구 비명을 질러대더니 마침내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랬는지 바지에다 오줌까지 지렸다.

“서 마담 죽인 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아이구 다 말하겠습니다. 제가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제발 이 침 좀 빼 주십시오!”

“먼저 말부터 해!”

“예. 그놈은 조선족입니다. 3천만 원에 살인 청부 받았지요.”

“이름은?”

“하얼빈 출신으로 김명식이라고 합니다. 지금쯤 아마 중국으로 떠났을 겁니다. 제가 그저께 만나서 잔금을 주면서 빨리 떠나라고 했으니까요.”

“빨리 김 주임한테 전화해라. 공항이든 인천 부두든 빨리 붙들어야 해. 놈이 아직 안 떠났을 수도 있다.”

“네!”

“그 살인 지령은 쌍마 그룹 회장 마누라가 직접 너한테 내린 거야?”

“네, 맞습니다. 조선족 중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킬러를 물색해 보라고 해서 제가 소개해 주었습니다.”

“왜 죽이려 한 거냐?”

“그게 죽은 여자가 회장님 숨겨 놓은 딸이랍니다. 그래서 재산 분쟁 때문에 손을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 마담만 억울하게 당했군.”

그렇게 말하면서 박 사장은 탁자 밑에 숨겨 둔 녹음기의 스위치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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