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189화 (189/869)

제189화

#189. 교차 진술

“그러면 상인들 119명을 다 조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원 형사가 놀라서 물어보았다.

“맞아요. 우선은 그렇게 시작을 해야 합니다. 교차 진술의 증거 능력(Evidence of Cross Statement)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말인디 이거 오늘 촌놈이 세이경청(귀를 씻고 들음)해야겠습니다.”

강 형사가 문자까지 써 가면서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어려우니까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세부적인 수사 사항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먼저 이 사건은 제가 볼 때는 나머지 상인 119명이 보험금을 노리고 119호 가게 주인을 사주해서 방화를 하게 한 사건인 것 같아요. 즉, 기록을 보면 119호 가게 주인은 자기 가게는 장사도 안 되는 맨 구석에 있고, 시설 보수비 내는 것도 아까워서 못 내겠다고 했다고 여기 진술서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보험금도 추가로 내지 않았고요. 그러면 누가 봐도 보험금을 노리고 방화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 상인들은 그걸 노렸겠지요. 그러면서 119호 가게 주인에게 다른 반대급부를 약속했을 것입니다.”

“어떤 급부를 말입니까?”

이번에는 이선유 경감이 물었다.

“뭐, 예컨대 여기 조서를 보니까 새로 건물 지어서 옮겨 가는 상가의 위치는 상인들이 알아서 협의를 하겠다. 이런 내용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러면 이랬을 수도 있죠. 방화만 해 주면 우리가 보험금 타서 당신한테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주겠다. 그리고 당신 가게는 제일 입구에서 가까운 쪽으로 해 주겠다. 뭐 이런 정도의 구두 약속은 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그렇다고 치고 어떻게 조사를 할 건가요?”

이번에는 이미라 검사가 꽤 흥미가 나는지 물었다.

“일단 여기 특수대 형사들이 상인들을 나누어서 전부 다 진술을 받을 겁니다. 아주 평범하고 상세하게 받아야 해요. 예를 들면 100호 가게 주인을 조서 받는다고 쳐요. 불이 난 날 당신은 몇 시에 나왔느냐? 그리고 누구를 맨 먼저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느냐? 점심은 누구랑 먹었느냐? 무슨 얘기를 점심 먹으면서 했느냐? 그리고 이거는 중요한 거예요. 새로 옮겨 가는 상가 자리는 공정하게 추첨으로 한다는 말이 있던데 여기에 대해 당신 생각은 어떠냐? 이 질문을 하면서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조서에 상세히 기록을 해 주어야 합니다. 분명 반응이 있을 겁니다. 자기네들끼리 이미 다 정해 놓은 자리를 추첨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판을 우리가 흔드는 것이거든요?”

“그게 교차 진술입니까?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원 형사가 말을 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조사관을 바꾸는 겁니다. 오전에 그렇게 조사를 하고 오후에는 한 자리씩 옮겨서 100호 가게 조사를 받았던 형사가 101호 가게 주인을 받는 거죠. 앞에서 받은 조서를 보고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똑같은 질문을 하면 엄청 짜증을 낼 텐데?”

3팀장 배봉식 주임이 말을 받았다.

“맞아요. 그걸 노리는 거예요. 짜증이 나면서 엉겁결에 말이 잘못 나오기도 하고 앞에 자신이 한 말과 뒤에 진술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걸 지적을 하고 추궁을 하는 거죠. 동일한 사항을 두고 조사관을 바꾸어 가면서 계속 추궁해서 얻는 진술의 증거 능력을 아까 말한 교차 진술의 증거 능력(Evidence of Cross Statement)이라고 말해요. 미국 FBI가 즐겨 쓰는 수사 기법이죠. 미국에서는 판례가 교차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 주고 있어요.”

“그럼 우리나라 재판부도 교차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 주고 있나요?”

이번에는 5팀장 서운찬 경위가 물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는 아직 확립된 판례는 없지만 지금 이 경우는 형소법 314조가 인정을 해 주고 있어요. 김 주임님 요새 공부 많이 하시던데, 형소법 314조가 뭐죠?”

“그거야 증거 능력의 예외 조항 아닙니까?”

“맞아요. 그럼 312조나 313조는요?”

“그거는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 작성의 진술 조서의 증거 능력 아닙니까?”

“공부 많이 하셨네요.”

“에이 그 정도야 뭐! 여기 이 검사님도 계신데 이제 그만 좀 물어보십시오. 틀리면 쪽 팔리지 않습니까?”

“헤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이 작성한 조서가 증거 능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거야 당사자가 재판정에서 조서 내용을 인정하면 되는 거죠.”

“이 검사님 맞나요?”

“맞지만 조금만 수정할게요. 공판 준비나 공판 기일에 인정하는 것으로 정정하겠습니다.”

“네. 정확하게 실무적인 대답이죠.”

이제는 여유가 있는지 이 검사와 둘이서 학교 선후배라서 그런지 아주 사람을 갖고 노는 것 같아 보였다.

“근데 지금 이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4팀장 김봉규 경위가 물었다.

“형소법 314조에 방금 말한 증거 능력에 대한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즉, 피의자가 사망, 질병, 소재 불명, 외국 거주일 때 그 밖의 서류 즉, 피고인 아닌 자가 진술한 내용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그 조서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한다. 는 규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피고인 119호 가게 주인이 소재 불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특신 상태(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한 증명은 방금 전 말씀드린 교차 진술의 증거 능력으로 증명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게 주인들을 교차로 진술을 받는 것이 증거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선유 경감이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당연히 있습니다. 만약에 재판까지 간다면 판사들도 우리나라에는 어느 수사 기관도 교차 진술 기법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게 될 것이고요. 미국에는 FBI에서 오랜 수사 기법으로 정착이 되어 판례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상금을 내거는 겁니다.”

“현상금이라고요?”

이번에는 김세민도 놀랐는지 크게 되물었다.

“네. 보험사에 얘기를 해서 누구든지 방화 사건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먼저 해 주는 사람에게 10억을 주겠다. 방화범이 가장 먼저 자수를 해도 방화범에게 지급을 할 생각이다. 그렇게 공식 발표를 하는 겁니다.”

“그럼 돈 10억 때문에 배신자가 나오겠는데? 킬킬!”

강 형사가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킬킬거리고 웃었다.

드디어 조사가 시작되었다.

20여 명의 형사들이 나누어서 가게 주인들을 조사했다.

“아니 그 얘기는 아까 저 형사 아저씨가 물어본 건데 또 물어봐요?”

“그래도 중요한 것이니까 한 번 더 확인을 해 보려고 그럽니다. 그리고 새 건물에 갈 때 추첨을 통해서 자리를 배정한다고 하는 말은 들어 보셨습니까?”

“추첨을 통해서 한다고요? 누가 그래요? 우린 다 이미 정했다고 하던데?”

“그리고 여기 왜 전부 고기들이 없습니까? 불이 날 것으로 예상해서 미리 안 받은 것 아닙니까?”

“아니 곧 이사한다고 해서 미리 고기 많이 받아 놓으면 죽으면 안 되니까. 생물이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불이 날지 안 날지는 누가 알아요?”

“방화범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한 사람에게 보험사에서 현상금이 10억이라는 얘기는 들으셨죠?”

“정말이에요? 그건 금시초문인데?”

하루 조사가 끝나고 다음 날이 되자 대번에 전화가 왔다.

“네. 특수대 홍 형사입니다.”

“저, 제가 방화범인데요. 저한테도 현상금을 준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휴! 돈 욕심이 뭔지…… 그래도 점포에 사람이 없었으니 선처는 되겠지요?”

“뭐, 일반 건조물 방화죄니까 어느 정도 선처는 될 겁니다. 자수하신다면…… 잘하면 집행 유예도 나올 수가 있구요.”

“그럼 자수하겠습니다.”

이틀 만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프로파일러 정애란 주임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았다.

보험사도 새 건물로 보험을 승계해서 계속해서 보험금을 받게 되어서 입이 찢어졌다.

가게 배치는 추첨을 통해서 하기로 했으며 가장 좋은 몫을 배정 받은 사람이 방화범으로 지목된 119호 가게 주인에게 양보를 하기로 하고 119호 가게 주인은 일반 건조물 방화죄로 구속이 되었다.

김세민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저는 이번에 관련된 X보험의 현갑중 상무입니다. 여기는 보험 연합회의 송상호 전무이고요.”

“근데 무슨 일이신지?”

“이번에 김 주임님 덕분에 저희가 100억 보험금을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도 드릴 겸 또 화재 감식비도 드려야 하고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여기 보험 금액의 1%라고 하셨지요? 좀 더 넣어서 1억 5천을 가져왔습니다. 우선 받으시고 김 주임님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데 저희 보험 연합회 임원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은 없으신지 해서 연합회 전무님하고 같이 찾아뵈었습니다.”

“저 보고 이직을 하라고요?”

“네. 저희 내부에서도 의견을 모았습니다. 김 주임님이 오시면 지금 보험 회사 임원의 평균 연봉이 1억 5천이니까 거기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더 요구를 하시면 제가 회사에 들어가서 보고를 하겠습니다. 꼭 저희 보험 업계에 오셔서 지도 편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경찰 외에 다른 직은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그럼 감식비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뭐, 급한 거는 아니니까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시고 언제라도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연합회 전무가 명함을 꺼내서 내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사무실에 들어가니 강 형사가 물어 왔다.

“방금 왔다 간 사람들 누군교?”

“아 보험 회사 사람들인데 나보고 보험 연합회로 이직을 하래요. 연봉을 1억 5천 준다는데?”

“와! 1억 5천이 연봉이라고요? 퍼뜩 가시소. 일 년에 집 한 채가 생기는데 고민하고 말고 할 기 뭐가 있심니껴?”

“야! 우리 강 부장님 그리 말하니 서운한데요? 난 우리 부사수들하고 평생 찌그덕거리면서 형제같이 동고동락을 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인데 고작 돈 몇 푼에 날 팔아넘기려고? 그건 안 되지. 자 여기 감식비 1억 5천이 나왔으니까 어찌 배분할 건지나 고민해 보이소. 나도 강 형사하고 같이 있으니까 말이 자꾸 부산 쪽으로 간다? 크크크!”

“머라고! 1억 5천이나 받았다고예?”

“그렇다니까요.”

“그럼 지한테 어찌 나눌 건지 지침을 주시소. 시키는 대로 하지예.”

“글쎄 일단 내 생각에는 민정 수석은 돈 안 받을 테고 수석실에 내근하는 사람들 밥값 하라고 좀 던져 주고, 그리고 우리 수사국장님, 수사과장님, 우리 정우진 대장. 그리고 나머지 팀장들한테도 팀원들하고 밥이나 먹으라고 좀 나눠 주고, 아 그리고 우리 관리 계장님도 경감이니까 좀 챙겨 드리고, 이 검사님도 검사니까 따로 떼 드리고 남은 것은 나 포함 우리 팀원들 공평하게 n분의 1로 나누지요. 어때요?”

“하따 그리 차 떼고 포 떼고 하면 주임님은 아무것도 안 남는 거 아입니까? 일단 제가 알아서 배분을 해 보께예.”

“아 참, 빼먹을 뻔했다. 정애란 주임 몫도 꼭 챙겨야 됩니다!”

“알겠심니더.”

“그리고 저녁에는 그동안에 고생했는데 수선화에서 회식이나 하도록 합시다. 정애란 주임도 오라고 하고, 양 경장하고 조 경장도 연락해요.”

“아, 안 그래도 애란이가 올 거예요.”

이 검사가 말을 받았다.

“이리로 온다고요?”

“네. 정 대장님이 한 게임하자고 불렀어요.”

“누구랑 테니스 치는데요?”

“뭐 그야 저하고 애란이가 한편 먹고 정 대장하고 김 주임님하고 그렇게 한편 먹고 해야죠! 지금 안 그래도 밖에 조 형사하고 홍 형사가 테니스장 손질하고 있어요.”

“그래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조 형사와 홍 형사가 웃통을 벗고 롤러를 민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니 근데 저거를 꼭 형사들을 시키고 그러네?”

김세민이 마뜩잖은 표정을 짓자 이 검사가 설명을 했다.

“정 대장이 지시한 거는 아니고 우리가 한 게임한다고 하니까 자진해서 저러고 있어요. 둘이서 운동 삼아 롤러 민다고 하는데 그냥 놔두세요.”

그러고 보니 둘이서 낄낄거리면서 즐겁게 롤러를 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군 출신들은 아무래도 부하들을 다루는 게 너무 익숙한 듯 보였다.

여기는 그래도 사회인데 말이었다.

둘 다 선수 출신이어서 실력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에 재미없다고 편을 갈랐다.

이 검사와 김세민이 한편이 되고 정애란 주임과 정 대장이 같은 정씨라고 한편이 되었다.

“자 갑니다. 인정사정 안 봐줍니다!”

정애란 주임의 첫 서브가 바람을 가르며 무섭게 스핀이 걸려서 들어왔다.

서비스 존에 공이 떨어지자마자 거의 30도로 스핀이 걸려서 오른쪽으로 휘었다.

“바로 치지 말고 기다렸다가 공의 낙하지점에서 천천히 쭉 미세요!”

이 검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키는 대로 낙하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운드된 공이 떨어지길 기다려서 라켓의 정중앙에 공을 맞혀서 앞으로 쭉 밀어내었다.

“나이스 리턴!”

“앞으로! 앞으로!”

이 검사가 네트 앞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세민은 미처 앞으로 뛰어 들어가지 못하고 뒤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김세민의 공을 정 대장이 다시 받아서 길고 강하게 스트로크를 해 왔다.

이 검사가 중간에서 가로채려고 하다가 미처 손이 뻗지 못하자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김세민도 다시 공을 정확하게 손목을 젖혀서 라켓의 한가운데에 담아서 앞으로 쭉 밀어내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정애란 주임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김세민의 공을 발리로 낚아채었다.

“로빙! 로빙!”

이 검사의 외침이 크게 들렸다.

가까스로 코너 끝까지 뛰어가서 백로브로 공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렸다.

“나이스 로브!”

“뒤로! 뒤로! 스매싱 대비!”

다시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서 스매싱에 대비했다.

정애란 주임이 로브된 공이 한번 바운드가 되고 떨어지는 순간 이 검사의 옆을 보고 사이드로 공을 날카롭게 양손을 사용해서 백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때 몸을 센터로 움직이는 척하며 정애란의 백 드라이브를 유도한 이 검사가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 침착하게 포핸드 발리로 공을 두 사람의 한가운데로 빨랫줄같이 밀어내었다.

“러브 피프틴! 후훗!”

이 검사의 웃는 소리가 차가운 겨울 하늘에 멀리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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