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05화 (205/869)

제205화

#205. 확신범

천재림은 다음 날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설교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방언이 나왔다.

고대 바빌로니아 언어나 기원전 유태교 사제들이 쓰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저는 매일 매일 세상의 종말을 보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모두 공중에 우리의 영혼이 뜨게 될 것이고 안드로메다 성운 너머 우리가 왔던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으며 오직 우리가 세상에서 행했던 선이든 악이든 그것만이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지금 저기 제 말씀을 들으시는 자매님! 자매님 뒤편에 일주일 전에 죽은 자매님의 시모님 영혼이 서 있습니다. 저 불쌍한 영혼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곁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 자매님을 위해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이 노방 전도사가 알아듣기도 힘든 외국어로 기도를 하는데 마침 지나가다가 전도사의 설교를 듣던 명숙은 기절초풍을 했다.

자신의 시모가 정확하게 일주일 전에 상을 치렀으며 평소에도 고부간에 사이가 좋아 주위에서 다들 부러워했던 사이였었다.

근데 시모의 혼이 내 뒤를 따라다닌다니.

그 길로 명숙은 이 노방 전도사의 말씀을 따르기로 다짐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올해 안에 지구의 종말이 와서 우리 모두 하늘에 떠서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천재림은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어느덧 소문이 나서 그의 뒤에는 열성 신자들 수십 명이 같이 따라다녔다.

마치 예수가 광야의 고행을 끝나고 제자들과 다닐 때 사람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다닐 때와 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재림도 어느 순간에 자신을 목사가 아닌 최후의 날에 성도들을 하늘로 이끌고 갈 재림 예수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신자들과 함께 청계산 기슭에 둥지를 틀었다.

신자들이 다투어 그들의 재산을 처분해서 가지고 들어와서는 주님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고, 공동체의 사람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했으며 규모도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미 신도 수가 수만에 이른다고 했다.

일반 가정주부에서부터 심지어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우진 대장이 청와대에 불려 갔다 오더니 전 직원들을 소집했다.

“야! 이거 골치 아픈 사건 맡았는데 사이비 종교야. 전국에서 사람들이 지구가 망할 거라고 종말론을 믿고서 가족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자기 전 재산을 처분해서 개척 교회인가 뭣인가에 헌납을 하고 거기에 종으로 들어가서 산다는 거야. 각하께서 빨리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하는데 방법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한테 하명이 떨어졌어. 김 주임! 이거 뭘 어떻게 해야 돼?”

근데 이 양반은 걸핏하면 김세민이한테 해결책을 물었다.

“근데 이거는 무슨 법으로 우리가 단속을 해야 합니까?”

김세민이 이미라 검사한테 물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이 검사가 고개를 들었다.

“사실 이거는 확신범이거든요?”

“확신범요?”

“네. 도덕이나 종교, 혹은 정치적인 신념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어 행해지는 범죄죠.”

“그럼 그 뭐라 카더라? 이것도 법에서 말하는 위법성 조각 사유, 뭐 이런 거에 해당이 됩니까?”

강 형사가 제법 유식한 소리를 했다.

“아니에요. 우리 형법에서는 위법성 조각 사유로는 여섯 가지만 명시를 해 놨어요. 정당 행위, 정당방위, 긴급 피난, 자구 행위,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 명예 훼손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 딱 요렇게만 명시를 해 놨으니 확신범이라고 해서 법에서 봐주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 조금 전에 이 검사님이 나열하신 것 중에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인가 뭣인가가 그거는 해당이 안 됩니까?”

조 형사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거는 일단 안 된다고 봐요. 사회 상규나 상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예컨대 가족이 살아가야 할 집이나 돈을 처분해서 교회에 헌납하는 행위가 나머지 가족들에 대한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이 승낙을 할 리가 없는 것이죠. 문제는 사기죄로 처벌을 해야 하는데 사기는 우선 고의를 가지고 상대를 기망해서 재물을 편취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목사가 공동체를 위해서라든가 성전을 건립한다든가 하는 것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목사 개인이 착복한 것을 우리가 밝혀내지 않는 이상은 목사를 사기죄로 집어넣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럼 압수 수색 영장 받아 가지고 확 뒤져 보죠?”

원 형사가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바로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것도 어려운 거예요. 우리나라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없이는 판사들이 종교 시설에 영장을 발부해 주지는 않아요. 결국 우리 힘으로 그 목사의 비리를 찾아내는 수밖에는 없어요.”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김 주임 2팀은 사이비 종말 교회 건을 맡아! 그리고 김 주임이 단속해 온 부동산 투기 건은 관리반인 1팀에서 천천히 사람들 불러서 조사해 보자고, 어디 도망갈 놈들도 아니고 말이야. 국세청 조사국 놈들 말이야. 부동산 업자하고 짜고 나라 세금으로 들어갈 것을 간이 영수증 하나 써 주고 제 놈들 주머니 속으로 닦아 넣다니 말이야. 상납 건까지 제대로 한번 뒤져 보자고. 앞으로 국세청도 우리 특수대라 하면 발발 기게 만들자고.”

정우진 대장이 명쾌하게 업무 분담을 했다.

김세민은 일단 종말 교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청계산으로 가 보기로 했다.

과천에서 청계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농가를 몇 채 구입해서 그것을 헐고 새로 교회를 짓고 있었다.

적어도 백 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세민 일행이 들어서자 한 사람이 나와서 의심의 눈초리로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예. 저희들은 경찰청 특수대에서 왔습니다. 목사님 좀 뵐 수가 있을까요?”

“경찰에서 왜?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자신을 장로라고 소개한 사람은 잔뜩 경계한 눈초리로 김세민 일행을 쳐다보았다.

“아직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고,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해서 그러니 목사님을 만나도록 해 주시지요. ”

김세민이 더 이상 장로인 당신하고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을 잘랐다.

“고 장로님! 손님이 오셨는가요?”

마침 천재림 목사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목사님! 여기 경찰에서 오셨답니다.”

고 장로라고 불리는 사람이 천 목사에게 김세민 일행을 소개했다.

“네, 목사님! 경찰청 특수 수사대 김세민 경위라고 합니다.”

“자, 이리 앉으시죠. 그래 무슨 일로 절 찾으셨는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와 있는 신자들이 가정을 팽개치고 재산을 다 팔아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게 다 목사님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신 겁니까?”

천 목사는 싱긋이 웃으면서 김세민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이곳에 오는 신자들은 모두 다 세상의 종말과 예수 재림을 믿으시는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만 오는 곳이고요, 전 한 번도 이분들에게 전 재산을 처분해서 이리로 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들 스스로 종말에 대비하고 주님을 맞기 위해 자신을 정화할 목적으로 오신 순수한 신심에서 다들 모인 것이지요.”

“그럼 이분들이 가져오신 재산은 어떻게 사용을 하고 있습니까?”

김세민이 좀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을 정도로 정곡을 찔러 물어보았다.

“일단 전 돈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고 장로님께서 다 관리를 맡아서 하시고요, 우리는 다 같이 일하고 똑같이 먹고 잠자고,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기로 다들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럼 이분들이 여기 있다가 이곳이 싫어지면 언제라도 나갈 수가 있나요? 그리고 이분들이 헌납한 재산도 다시 가져가실 수가 있는가요?”

김세민이 좀 더 구체적인 운영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럼요. 언제든지 나가실 수가 있습니다. 오고 감을 우리는 잡지 않습니다. 다만 재산은 이미 하느님한테 바친 것으로 다시 돌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왜 그렇죠?”

“음~ 그게 하늘나라의 법이기 때문이죠. 이곳에 들어온 이상 이미 세상의 법은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과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율법만이 존재할 뿐이죠. 바벨탑을 쌓았던 고대 바빌론의 법을 우리는 따르고 있습니다. 바빌론의 유수라고 혹시 아시는지?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나서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 잡혀가 50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을 했지요. 그런 와중에도 유태인들은 자기네들의 종교나 생활양식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 의식을 그때 그대로 지내고 있죠, 나중에 한번 직접 보세요. 그리고 바울이 보낸 테살로니아 전서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가 이천 년 후에 재림을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올해 이번 달이지요. 그래서 신자들이 여기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적어도 세상의 멸망이 오더라도 여기는 안전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난 뭐 역사는 잘 모르지만. 바벨탑? 그건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뭐더라……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고 깝치다가 X 되는 뭐 그런 내용 아닙니까? 아무튼 다 좋은데요, 노파심에서 한 말씀 드리자면 신도들이 헌납한 돈을 목사님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순간 목사님은 사기죄로 기소가 됩니다. 그 점은 절대 잊지 마시길.”

김세민이 천 목사의 아픈 곳을 한번 찔러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순간 천 목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잠깐이나마 보이는 듯했다.

“잘 알겠습니다. 제가 바쁜 일이 많아서 더는 응대를 못 해 드리니 더 의문이 있으시면 여기 고 장로가 자세히 설명을 해 줄 것입니다.”

천 목사가 김세민의 눈빛을 받아 내기가 부담스러운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일단 밖으로 나온 김세민은 팀원들을 다 모아 놓고 이렇게 말을 했다.

“압수 수색 영장이 안 나온다니 직접 증거를 잡는 수밖에는 없어. 아까 내가 일단 침을 찔러 놨으니까 목사가 어디 다른 데 돈을 숨겨 놨으면 그걸 정리하러 밖으로 한 번은 나갈 거야. 그때 미행으로 따라붙어야 해. 어느 은행으로 가는지 잘 보고 그 은행에 가서 계좌 압수 영장을 받아야 해. 일단 오늘부터 교대로 여기 나가는 길목에서 차 안에서 매복을 해 보자. 저기 차량이 몇 대 안 되니까 목사가 탄 차가 나가면 뒤따라가는 거지. 그래서 거래 은행을 찾아보자고. 오늘은 원 형사하고 조 형사조가 먼저 매복을 하고 내일은 강 형사 조가 매복을 해. 밤에는 필요가 없고 낮에 은행 영업시간에만 매복을 하고 기다리면 오늘내일 중으로 저 목사가 움직일 거야. 그때 따라붙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하고서 차를 타고 나오는데 뭔가 김세민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잠깐만 차 세워 봐!”

산에 올라가는 길섶에 나무 판자로 이정표를 적어 놓은 것이 있었다.

[일산암]

“일산암, 일산……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때 문득 김세민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칼!”

갑자기 김세민이 소리를 지르자 강형사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예?”

“칼 말이야! 전에 살쾡이가 던진 칼에 ‘일산’이라고 써 있었잖아!”

“맞네! 와이씨…… 주임님, 혹시 저짝에 살쾡이 금마 있는 거 아입니까?”

“모르지, 근데 한번 가 볼 필요는 있겠네. 차 돌려!”

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얼마 가지 않아서 조그만 암자 건물 하나가 보였다.

암자 툇마루에는 아줌마 두 사람이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세민은 암자를 향해 한달음에 뛰어 올라갔다.

“실례합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 스님 법명이 어떻게 됩니까?”

“일산 스님요?”

“네. 일산 스님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법당 안에서 꽃잎 점을 보고 있는데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아줌마들이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아서 얘기를 하였다.

법당이라고 해서 달리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요사채 하나에 건넌방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 같았다.

김세민이 뒤로 돌아가서 법당 안을 들여다보니 가사를 걸친 스님 한 사람이 불상을 등지고 앉아 있고 젊은 부인이 마주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뭔가 슬프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김세민이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죽담에 올라서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등 뒤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처사님! 지금 뭐 하시는 것이옵니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키가 작지만 몸매가 꽤 다부지게 생긴 젊은이가 매서운 눈꼬리를 위로 올리면서 김세민을 노려보았다.

“일산 스님을 만나려고 왔는데 좀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기다리는 것도 좋은 수양의 방법입니다. 일단 큰스님이 계신 법당에서는 물러나 주시지요.”

김세민이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죽담에서 내려오면서 나직이 물었다.

“스님은 바쁘신 것 같고, 그럼 살쾡이는 어디에 있지?”

순간 젊은 사미승의 눈썹이 꿈틀하면서 위로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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