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22화 (222/869)

제222화

#222. 원조 짚불 곰장어

X유리 예비군 대대는 무기고 정비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다지 볼 게 없었다.

수고했다고 말하고는 밖에 나와서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운전병이 와서는 또 단체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알려 왔다.

“그냥 각자 알아서 때우면 안 되나? 매번 여기저기 먹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네.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간대?”

“기장에 곰장어집으로 간답니다.”

“곰장어?”

기장에 있는 원조 짚불 곰장어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곰장어를 먹어 보는 건 처음이네. 근데 짚불은 뭐지?’

호기심도 어느 정도 동한 차에 김세민도 선뜻 일행을 따라 나섰다.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었다.

원조 짚불 곰장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는데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마치 불이 난 것으로 착각할 만큼 뒤뜰에선 연기가 자욱하게 일었다.

자리에 앉으니 기본 찬과 함께 각자의 앞에 흰 목장갑과 가위, 그리고 소금이 담긴 접시가 나왔다.

“이게 다 뭡니까? 목장갑은 왜?”

그러자 대대장이 직접 시범을 보이려는 듯 나서서 설명을 했다.

“아까 들어오면서 연기 보셨죠? 산 곰장어를 짚불에다가 그대로 굽는 겁니다. 짚불이 화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짚불에서 구워 나온 직후에는 겉에 그을음이 제법 묻어 있기도 하고 또 엄청 뜨겁고. 그때 이 목장갑을 끼고 껍질을 한번 손으로 쭉 훑어 내리는 거죠. 그러면 한 번에 싹 다 벗겨집니다. 그런 다음에 가위로 적당히 잘라서 소금에 찍어서 그대로 드시면 됩니다.”

“아, 소금에 찍어서 먹는구나. 양념을 해서 먹는 줄로만 알았는데.”

“모르시는 말씀, 이거는 양념을 발라서 먹는 것보다는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먹어야 약효가 있습니다.”

“약효라뇨?”

“남자한테 정말 좋죠. 킬킬킬!”

“…….”

“아, 저기 보세요. 마침 굽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건너편을 보니 커다란 화덕에서 짚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어찌나 연기가 자욱한지 화덕 앞에 있는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더니 곰장어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가져와서는 달궈진 석쇠 위에 그대로 던져 올렸다.

[파다닥! 파다다닥!]

곰장어가 뜨거운지 몸을 비틀면서 화덕 밖으로 튀어 나갈 듯 몸부림을 쳤다.

이윽고 서서히 몸부림이 잦아들더니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하면서 익어 가는데 김세민은 속으로 질색을 했다.

‘안 봤으면 모를까, 눈으로 보고는 먹기가 힘들겠어.’

곰장어가 익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익은 곰장어가 온몸에 재와 그을음이 묻은 채로 그대로 식탁 위에 올라오자 다들 목장갑을 낀 손으로 곰장어를 한 마리씩 한 손에 쥐더니 나머지 손으로 능숙하게 쭉 밑으로 훑어 내렸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깨끗하게 껍질이 쑥 벗겨지더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응? 김 주임, 뭐 해요! 어서 먹지 않고. 식으면 맛없데이~”

그러고는 가위로 싹둑 자르더니 소금에 찍어서 김세민에게 한 점을 권했다.

“자, 어서.”

김세민은 억지로 입에 한 점을 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뱀처럼 생긴 데다가 색도 너무 희고 미끌미끌한 식감이 있을 것 같아서 김세민은 자신도 모르게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겉보기와는 달리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고소한 불향과 소금의 간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나쁘지 않은데?’

“김 주임, 잘 자시네. 아무튼 많이 잡수이소. 이거예, 이기 몸에 진짜 좋거든예? 이거 몇 마리 딱 묵고 소변 보면 평소에 좀 몸이 불편한 사람도 소변 색이 무슨 투명한 우유 색이라 케야 되나? 머라 해야되노? 아무튼 맑게 나온다 아입니까. 그기 다 몸에 드가서 정화 작용을 하는 거거든예.”

“어이, 그거는 니나 해당되는 기지! 김 주임은 아직 나이가 있는데. 다 니 같은 줄 아나?”

“이 자슥 이기 머라케삿노! 주디 닫고 장어나 곱게 쳐 무라!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하이고 자슥아, 주디 닫고 우예가 쳐묵노! 니나 주디 닫고 마~이 쳐 무라! X신 새끼야!”

“우하하핫!”

소주라도 한잔 마시면서 먹으면 그런대로 먹겠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속이 니글거려서 김세민은 조금만 먹고는 일어나서 주차장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어느새 옆에 대대장이 나오더니 같이 담배를 물었다.

“대충 눈치는 채셨지요?”

“예?”

“이번 감사 말입니다.”

대대장은 뜬금없이 김세민에게 감사니 눈치니 하는 말을 꺼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

김세민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하자 대대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언젠가는 한번 터질 일이었죠, 저도 평소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아무튼 이번에 감사관님이 지적을 제대로 해 주는 덕분에 아주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아뇨,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저한테 이런 말을 하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존재일 텐데요.”

“전역하자마자 군에서 직장을 여기로 알선해 줬습니다. 근데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았어요. 아무래도 여기는 군대가 아니고 개인 기업이니까요.”

“…….”

“다들 말은 않고 쉬쉬하긴 했지만, 무슨 생각인지 뻔히 보이더군요. 너는 회사를 위해 돈 벌어 오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에서 군 전역자들을 회사마다 강제 할당 시키는 바람에 와 있는 것 아니냐, 그러니 입 다물고 조용히 지내면서 월급이나 꼬박꼬박 받아 가라. 뭐 이런 눈치였죠.”

‘대대장도 말 못 할 고충이 있었네.’

김세민이 이해가 간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근데 어제 저녁에 김 중령이 이번에 감사 대상 예비군 지휘관들을 전원 집합 시키더라고요. 거기서 김 중령이 그럽디다. 이제까지는 대충 봉투 하나 던져 주고 그렇게 감사를 넘어갔는데 이번에 경찰에서 새로 온 주임은 그게 통하지 않더라. 감사 항목에 지적이 나오면 전부 재감사를 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직장 예비군을 해체하고 지역 중대에 편성시키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가서 사장한테 제대로 보고를 해라. 최종 책임은 예비군 지휘관이 아니라 사장한테 있다. 뭐 이런 얘기였죠.”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이거 아직 감사도 안 끝났는데 이런 말씀까지 드려서야 좀 그렇습니다만, 우리같이 군에서 전역하고 나와 가지고 겨우 일자리 하나 얻은 사람들. 눈칫밥 먹으면서 겨우 회사에 붙어 있는데 감사에 지적이라도 나오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끼리 급하게 의논을 했죠. 일단 소총하고 장비들 먼저 A, B, C급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전부 다 하려니까 밤을 꼴딱 새도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그런데 감사 일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보니까 궁리 끝에 내일 감사받을 부대에는 상태가 좋은 A급 장비들을 갖다 두고, 감사가 끝나면 다시 밤새 그다음 날 감사받을 부대에 옮기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그렇게 밤새 다 옮기고 하려면 상당한 인력이 필요할 텐데요?”

“아무래도 저희만으로는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회사 직원들을 동원해야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저도 사장님한테 보고를 했습니다. 훈련하는 셈치고 밤새 직원들 동원해서 총기 수입하고 제대로 무기고 정비를 하자. 안 그러면 직장 예비군이 해체되고 지역으로 편성이 될 확률이 크다. 그렇게 되면 30세 미만 직원들은 1년마다 동원 예비군으로 차출될 테고, 그러면 회사도 손해이지 않느냐고. 그렇게 설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득이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사장님도 긴가민가하시더군요. 근데 제가 약을 좀 쳤죠.”

“어떤?”

“만약에 그런 식으로 우리 때문에 직장 예비군이 해체가 되면 바로 청와대에 보고가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한테까지 보고가 될 확률이 크다. 신중하게 판단을 하셔야 한다. 이렇게 겁을 주었더니 대뜸 이러더군요. 그렇게 중요한 사항을 왜 처음부터 나한테 보고를 안 하냐고, 미리 보고만 했으면 이렇게 감사에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일하냐고 소리를 빽 지르는 겁니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기획실장한테 얘기해서 지원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제 저녁엔 입사하고 처음으로 예비군 비상소집도 걸어 봤고 밤새 총기손질도 했습니다. 마치 전쟁터라도 나가는 기분이었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근데 그 일보다는 김 주임님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것이 더 많습니다.”

“저를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처음에는 감사관 한 사람이 일부러 어깃장을 놓고 괴롭힌다면서 다들 불평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구요. 그런데 감사관이 봉투를 안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이 양반 물건이네.’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안 하던 무기고를 청소하고 병기 손질을 하고 카빈총도 상태가 좋은 것을 구한다고 온 부산시 내 예비군 무기고를 돌아다니면서 한 사람의 깨어 있는 공무원이 있으면 몇십 년 묵은 예비군 무기고도 청소가 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 빌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과찬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앞으로도 감사하실 곳이 많이 남았지 않습니까? 김 주임님처럼 이렇게 제대로 점검을 한번 해 주셔야 우리 예비군 전력 보강에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이번에 회사에서 신형 무전기를 다 구입해 줬구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이번처럼 무전기 정비도 하지 않은 상태로 저기 바닷가에 무장간첩이라도 나타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꿎은 젊은이들이 몇이나 희생되었을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듣기에는 좋은 소리 같았지만 김세민은 별로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자신은 그저 봉투 받고 적당히 넘어가고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법대로 해 보자고 한 것뿐인데 의도치 않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조금은 민망한 부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예비군 전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감사는 일사천리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는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감사팀 일행은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매일 회식을 해 댔는데, 감사 다니는 사이에 부산 시내에 있는 좋은 먹거리는 다 먹어본 것 같았다.

김세민도 처음에는 몇 번이나 사양하고 고사하고 핑계도 대 봤지만 특유의 부산 말빨에 밀려 등 떠밀려서 참석하기 일쑤였다.

‘살이 좀 붙었나.’

자신이 너무 나태해진 것 같아 내심 걱정도 되어 퇴근할 때는 반드시 체육관에 들러 땀을 흠뻑 흘리며 운동을 했다.

* * *

이윽고 모든 감사가 끝이 났다.

김 중령은 원하는 대로 부산의 해안가 경계를 담당하는 125연대 1대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또한 김 중령이 53사단장에게 김세민을 추천하는 바람에 김세민은 53사단장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군에서도 못 받았던 사단장 표창을 예비군 감사한답시고 받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사단장 표창은 표창 점수로는 1점으로 지방청장 표창하고 맞먹는 것이어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이런저런 마음과 생각을 안고 한 달 만에 경찰서로 출근을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잘 지냈습니까?”

김세민이 들어가면서 직원들한테 먼저 인사를 했다.

“하이고 계장님! 이기 얼마만입니까? 얼굴 이자묵겠데이. 고생 많으셨습니다.”

배 경사가 얼른 뛰어나와서 김세민을 맞았고, 다른 직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김세민의 복귀를 환영했다.

내심 쑥스럽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부산이란 곳에 적응을 한 것 같아 김세민은 마음이 놓였다.

직속 상사인 방범과장한테도 따로 인사를 하러 갔다.

“어! 김 계장!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편하게 잘 있다 왔습니다. 부산에 적응도 좀 하구요.”

“그래그래,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그리고 말이야, 이번에 나가서 예비군 지휘관들 아주 박살을 냈다면서?”

갑자기 방범과장이 이야기를 꺼내자 김세민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과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잘했어!”

“예?”

“그 새끼들, 처음에 내가 여기 경찰로 올 때 뭐 하러 그런 데를 가느냐고 월급 많이 나오는 회사 예비군 지휘관이 더 낫다고 그리 지랄들을 하더니 말이야, 이번에 김 주임이 가서 혼쭐을 내 준 덕분에 누가 더 파워가 있는지 증명이 된 거나 다름없다고.”

“아니, 혼쭐이라기보다는 미흡한 부분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야? 여기 부산에도 나하고 군에 같이 근무했던 놈들이 많아. 그런데 이번에 김 주임이 나가서 조지니까 나한테 어찌나 부탁이 들어오는지 말이야. 근데 내 김 주임 일하는데 방해될까 봐 일부러 모른 척했다고.”

“…….”

“그래, 아무튼 고생했으니까 나가서 일 봐요.”

“네. 참, 오랜만에 복귀해서 그런지 저녁에 방범과 직원들끼리 회식을 할 것 같은데 과장님도 참석하시지요.”

그러자 과장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면 좋은데 과장들은 참모잖아, 자나 깨나 서장 눈치를 봐야 하니까 밥 한 끼도 직원들하고 같이 먹을 수가 없다고. 아쉽네 나도.”

“그러시군요.”

“나중에 서장이 다른 스폰서하고 먹는 날이 있으면 그때 같이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김세민은 문을 닫고 나오면서 과장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끼도 마음대로 먹기 힘들구만.’

자리에 와보니 책상에 우편물이 제법 쌓여 있었다.

한 달 동안 김세민 앞으로 온 것들이었는데 테두리가 색동 띠로 둘러싸인 항공 우편 한 통이 눈에 띄었다.

“엇?”

겉봉을 보니 수단에서 윤희연이 보낸 것이었다.

‘진정하자.’

봉투를 열려고 하는데 단단하게 밀봉이 되어 있어 찢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찢기는 좀 그런데, 찢다가 안에 편지라도 같이 찢어지면.’

김세민은 앞자리에 앉은 배 경사를 불렀다.

“배 경사, 혹시 편지봉투칼 있어요?”

“무슨 칼요?”

“편지봉투칼.”

“뭐 할라꼬요.”

“아니, 중요한 편지가 왔는데. 좀 조심해서 뜯어야 해서요.”

“에헤이, 종이 그거 그냥 주 잡아 째뿌면 되지. 제가 뜯어 드리까예?”

배 경사가 편지 쪽으로 손을 뻗자 김세민은 자신도 모르게 배 경사의 손을 탁 때렸다.

“아야!”

“예?”

때린 김세민도 맞은 배 경사도 서로 당황해서 마주보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예? 아니 주임님, 와 때립니까?”

“그게, 그러니까.”

“하이고, 주임님 손도 맵어라. 아니 그러니까, 가만있는 사람을 와 때리냐고예.”

배경사가 놀란 얼굴로 되묻자 김세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 때문에 민망해져서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아니, 편지봉투칼 있냐고 내가 물어봤잖아요!”

“예?”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하면 되지 자꾸 편지를 찢으려고 하니까 내가 그러지. 에이 씨, 편지봉투칼도 안 주고!”

그러면서 김세민은 편지를 집어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배 경사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채로 다물지를 못했다.

“저 양반 저거 와 저라노, 오늘 머 잘못 문 거 아이가?”

그러자 옆에 있던 신 순경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배 경사님이 잘못하셨어요.”

“내? 내가 왜?”

“김 주임님 우편 수발 제가 해오잖아요. 아까 그 편지, 여자분한테서 온 거라구요.”

“잉? 뭐라꼬? 전에 물어보니까 애인은 없다 켔는데?”

“모르죠 그건. 아무튼 그런 편지를 찢으려고 하니까, 주임님도 당황하신 거죠.”

“하이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김세민은 민원실에 가서는 편지봉투칼을 빌려 편지를 조심스레 뜯고, 경찰서 뒤편 인적이 드문 곳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김세민 씨! 윤희연입니다.

여기는 수단의 다르푸르 난민촌이에요.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위에 신기루가 가끔씩 보이는 메마르고 뜨거운 지역입니다.

여기는 종교 분쟁이 끝이 없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밤새도록 들리는 총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이제는 총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신경이 쓰일 정도로 익숙해졌어요.

참, 상처는 다 아물었는지요?

병원은 잘 다니고 있죠?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셔야 해요.

사설이 길었네요, 이번에 제가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캠프에 철수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내일 중으로 카르툼에서 비행기를 타요.

직항이 없어서 파리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김세민 씨가 부산에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곧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그날까지 건강하세요.

수단에서, 윤 유리안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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