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227. NO WALK FEMALE ALONE
전화를 끊고 난 김세민은 파출소 차석을 불렀다.
“김 차석! 연산 7직원들이 검문한 검문 수첩 있죠? 한 달 전부터 어제까지 전부 다 가져오세요. 확인해 볼 게 있습니다.”
“검문 수첩을요?”
김문도 경사가 난데없이 검문 수첩은 왜 찾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나더니 캐비닛을 열어서 직원들이 사용하는 검문 수첩을 전부 꺼내서 가지고 왔다.
“형사 계장님도 협조 좀 해 주시죠?”
김세민이 형사들 지원을 부탁했다.
“와요? 뭔데 그라능교?”
형사 계장이 놀란 눈을 뜨고 김세민을 향해 물었다.
“지금 이 검문 수첩을 전부 다 꼼꼼히 살펴보고 거기 용의자 두 놈 있죠? 김두수하고 황을수, 이 두 놈 중에 한 놈이 만약에 여기에 사전 답사를 왔다가 우리 파출소 직원들한테 검문이라도 당했으면 반드시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창원이 주소로 나오면 최고겠지만 주소가 달라도 이름이 같으면 일단 저한테 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하고 소내에 있는 형사들까지 다 달라붙어서 검문 수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형사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찾았다!”
“뭐? 어디!”
“계장님! 여기 있네요!”
“봅시다.”
“인마 이거 김두수 아입니꺼? 주소도 창원으로 되어 있고! 와! 간 떨리라.”
‘됐어!’
김세민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데 이 검문 수첩, 누가 기록했노?”
수첩의 앞면을 보니 순경 최정도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아 최 순경이네. 오늘 비번인데 지가 집으로 전화를 함 해 보지요.”
차석이 날렵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아! 최 순경! 자나? 잠시만, 여기 방범 계장님 바꿔 드릴 테니까 잘 말씀드리고.”
김세민은 전화를 바꾸자마자 그날 검문한 상황을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놈이 좀 수상했습니다. 저녁에 9시가 넘었는데 마하사에 순찰함이 붙어 있어서 평소 같으면 안 갔는데 계장님이 오시고 나서 릴레이 순찰을 시행하는 바람에 안 갈 수가 없었거든요? 가다가 보니 어떤 놈이 캄캄한 밤에 플래시를 들고 언덕바지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검문을 했죠. 처음에는 주민증이 없다고 했다가 제가 파출소에 가서 확인하자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다고 하면서 주민증을 꺼내 주길래 제가 꼼꼼하게 적었습니다. 아 이제 기억이 제대로 나네요. 사건이 났을 때는 제가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계장님.”
“아니야, 죄송한 게 아니고 최 순경이 범인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최 순경이 정확하게 릴레이 순찰을 했고 규정대로 검문하고 기록을 해 두었기 때문에 범인의 단서를 잡은 거라고. 일단 쉬어! 쉬고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그래, 고마워!”
“뭐라고 캅니까?”
형사 계장이 기다리지 못하고 김세민에게 물었다.
“지금 이 김두수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형사 계장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란데 우리 형사들이 알리바이 조사해 온 것은 그놈이 야간 근무를 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건 그놈이 대리를 세웠거나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고 봐야죠. 살인을 계획한 놈인데 어느 정도 알리바이는 조작을 해 놨다고 봐야죠. 처음에 내려갔던 우리 형사들이 너무 순진했나 봅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형사들을 많이 보내서 그놈하고 같이 야간 근무 했다는 놈들 전부 다 분리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근무 장소가 어디 어디였는지, 밤에 휴식은 언제 했는지, 화장실은 몇 번을 갔는지, 아 참 또 그놈이 담배를 많이 피는 것 같으니까 담배 피우러 몇 번을 갔는지 주변 조사를 다 하고 나서 마지막에 김두수 그놈을 불러서 그놈 진술의 불일치를 따지고 들어가서 자백을 받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장에도 보니까 담배꽁초가 수북하던데 그거는 다 수거를 했습니까?”
“아 그 담배꽁초 이바구가 나와서 말인데, 나도 김 주임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 아이가, 근데 이 지방청에 감식한다고 똥 폼 잡는 놈들이 꽁초 그거는 하도 많이 떨어져서 가져가 봤자 이게 언 놈 건지도 구분이 안 된다고, 그리고 그날 밤에 비가 좀 온 건 알제? 비에 침이 다 씻겨 가문 감식이 안 된다면서 수거를 안 해 가더라고. 내가 뭐 감식에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이고, 전문가랍시고 찔락거리는 놈들이 구카는데 그런 갑다 하는 기지 뭐 우짜겠소? 근데 김 주임은 그기 증거가 된다고 보는가베?”
형사 계장도 그 부분이 미심쩍었는지 김세민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히 증거 능력이 됩니다. 설사 그곳에 다른 사람 것이 많이 있더라도 저 김두수가 입에 물었던 담배 한 개비만 있으면 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데 그걸 왜 감식에서 놓쳤지요?”
김세민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다.
“여는 서울처럼 그리 팍팍 돌아가지도 않고, 감식계 점마들도 어디 가서 전문 교육 받은 놈들이 아이라. 형사질 하문서 따와이 하다가 걸리면 쫓겨 가는 데가 감식 아이가. 그라이까 비싼 밥 처묵고 맨날 달밤 같은 소리만 한다 아이가.”
형사 계장이 기도 안 찬다는 듯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김세민은 형사 계장에게 다시 요청을 했다.
“현재 지방청 감식계 수준이 그 정도라면 우리가 직접 하면 됩니다. 담배 한 개비라도 사람마다 입에 무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치흔이 남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꽁초에서 담배를 끄는지 하는 습관 같은 것도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담배도 내일 수거해서 우리 형사들이 직접 가지고 서울 국과수로 출장을 가는 게 좋겠습니다.”
김세민은 직원이 직접 서울로 증거물을 들고 가라고 설득했다.
“맞네, 우리가 직접 들고 가면 되지. 뭐 한다꼬 지방청 이 다 떨어진 놈들한테 아수분 소리 해 가문서 이 지랄을 한단 말이고. 좋은 아이디어다 김 주임!”
다음 날 아침 연산 7파출소 수사본부에서는 임시 수사 회의가 열렸다.
“자 전체 차렷! 집합 끝!”
“이기 다 모인 거가?”
형사 계장이 관리 주임한테 물었다.
“예. 본서 당직하고 기동 순찰조 빼고는 다 모였심니다.”
“자, 인자부터 중요한 이야기 할 끼니까 잘 들어라이. 용의자는 특정했다. 김두수라꼬, 금마가 열흘 전에도 여기 사전 답사 차 다녀갔는지 그 당시 우리 파출소 직원한테 검문을 당해서 기록이 남아있다. 근데 어제 창원에 갔다 온 형사가 누고? 손 함 들어봐라.”
형사들은 손을 들라는 말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자슥들이…… 내사 마 어제 새로 온 방범 계장한테 쪽 팔리가 죽는줄 알았다. 방범 계장은 한 번 딱 듣드만, 대번에 금마가 계획 살인인데 알리바이 정도는 만들지 않았을까요 하든데 느그는 범인이 만들어 놓은 가짜 알리바이 확인하러 비싼 출장비 주고 창원까지 가서 헛지랄 했나? 이 X발 놈들아, 느그가 형사 맞나!”
“…….”
“이 덜떨어진 새끼들아, 평소에 형사랍시고 오만 개똥 폼은 있는 대로 다 잡고 다니는 주제에 실제 사건 일어나니까 밥 쳐문 값도 몬 하고, 느그가 양아치하고 다른 기 뭔데? 뭔데!”
“…….”
“에라이 병신 같은 새끼들, 지금 빨리 튀어 나가서 김두수 인마 자백 받고 손모가지에 딱 수갑 채워 갖고 데리고 온나! 알았나? 지금 부로 여기 수사본부는 해체다. 이상 끝!”
수사본부 해체라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해하자 형사 계장이 이렇게 말했다.
“야 관리 주임! 빨리 차렷 경례 해라! 내 똥 누러 가야 된다!”
“아, 예 예. 차렷! 경례!”
형사들이 놀라서 다 같이 거수경례를 하자 형사 계장은 바지춤을 잡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킥킥킥!’
형사들이 낄낄거리자 관리 주임이 고함을 질렀다.
“너들 계장님 말씀 못 들었나? 빨리 안 튀어 나가고 뭐 한다고 낄낄거리고 자빠졌노!”
그제야 형사들이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형사 5반의 천경덕 주임은 형사들 20여 명을 데리고 창원에 있는 X기공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자 우리는 부산 동래서 형사들입니다. 여기 김두수에 대한 체포 영장이 있으니까 집행하고,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서도 좀 조사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라이 협조를 좀 해 주면 좋겠심다.”
X기공 총무과장이 총알같이 튀어나와서 통 사정을 했다.
“아니 형사님들, 그저께도 와서 싹 다 뒤집어 놓고 갔는데 뭘 또 조사를 한다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여기는 방산 업체입니다. 국가에서 정해준 하루 생산량이 있는데 자꾸 와서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총무과장이 은근히 방산 업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 그라이까, 느그들은 방산 업체에 근무하이까 사람 한둘은 직이도 개안타, 뭐 그런 말인가? 이 자슥이 오늘 뭘 잘못 처묵었나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있어. 전부 이리 집합! 동작 빨리빨리 해라, 수틀리면 전부 다 범인 은닉죄로 수갑 채아삔다.”
그제서야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이, 우리가 모를 거 같나? 그저께 우리가 조사하러 왔을 때 느그 우리한테 있는 대로 구라 쳤다 아이가.”
“…….”
“내가 마음이 좀 넓어가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주는데 오늘도 X 같은 소리 하면 확 다 트자뿐다. 알았나!”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웅성웅성거릴 뿐이었다.
“어어! 이 새끼들 봐라? 복창을 안 하는데? 이 X발 놈들이 간판은 방산 업체라 해놓고 군대도 안 갔다온 놈들만 모였나? 대답 안 할끼가!”
“예! 알겠심다!!”
그제야 몇몇이 복창을 했다.
“자, 사흘 전 밤에 김두수하고 야간 근무 조 들어간 사람들 앞으로 전진. 우리 형사님들은 한 명씩 전담 마크해서 진술 받으시고, 거짓말한 놈들은 전부 다 바로 수갑 채우시고.”
형사들이 전부 달려들어서 개인별로 분리 조사한 지 10분 남짓 흘렀다.
“주임님! 임마가 자백했십니더!”
“여기도예! 근데 김두수는 그날 밤 근무 안 나왔다는데요?”
“일단 알았으니까 방금 내용 그대로 해가지고 조서 꾸미라.”
천경덕 주임은 김두수를 연행해서 사무실에 별도로 마주 보고 앉았다.
“마, 니 구라친 거 다 들킸다. 인자 니 동료들도 더 이상은 니 못 감싸 준다. 말해라. 니가 죽였제?”
“…….”
“이 자슥이.”
철썩!
천 주임이 한차례 세게 김두수의 뺨을 후려치고 재차 한 대를 더 치려고 하자 김두수는 고개를 떨구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백을 했다.
“지가…… 지가…… 그랬심니다…… 죄송합니다…….”
“오케이, 그건 그렇고 말이야. 내가 현장 가 보니까 산속에 캄캄해가 아무것도 안 비든데 니 거기는 와 올라갔노? 그라고 피해자도 그렇고. 그래 캄캄한 밤길로 델꼬 가는데 가만히 있드나?”
천 주임이 내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지 어무이가 거기 마하사 공양주 보조 보살로 있심다. 부산에 오문 다른 데 가서 잘 데도 없고 해서 마하사에 가문 어무이가 재워 주거든예.”
“그라무 평소에도 거 가서 자고 오고 그랬단 말이네.”
“맞심다. 쉬는 날이면 어무이한테 가서 자고 오고 그랬지요. 그날도 그 애를 데리고 자러 가는데 중간에서 싸움이 났지예. 가시나가 딴 놈하고 또 바람이 나가지고, 지가 몇 번이나 정리하라고 켓는데도 안 하는 기라예. 그래서 중간에서 말다툼이 벌어지고 저도 모르게 순식간에 성질이 나서…… 흐흑!”
“여기 야간 근무 배치는? 니가 가라로 만들어 놓은 거고?”
“예. 동료들한테 부탁해서 그날 근무한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랬지요. 다들 볼 일이 있으문 그렇게 많이들 합니다. 여는 사람이 많아서 한둘이 빠져도 잘 표가 안 나거든예.”
모든 것이 다 명쾌하게 해결이 되었다.
그날 저녁에 동래 서장실에서 형사 간부들 회의가 열렸다.
먼저 서장이 입을 열었다.
“야, 이기 난 또 미제로 빠지나 했더니 깔끔하게 해결이 되었네! 우리 형사 계장이 역시 이름값을 했어! 아무튼 축하해! 살인 사건이니까 형사들 한두 명 정도 일단 특진 상신을 해 보지 뭐. 명단은 형사계에서 알아서들 올리라고, 청장님한테는 내가 한번 얘기를 해 볼 테니까 말이야.”
서장이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형사과장이 할 말을 미리 서둘러서 다 말해 버렸다.
“서장님! 죄송하지만 사실은 그기 지가 잡은 게 아이고 방범 계장이 잡은 깁니다.”
형사 계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응? 방범 계장이 잡았다니 그기 뭔 소리고?”
서장도 놀랐는지 다시 자리를 고쳐서 앉았다.
“사실은 그기…… 이렇게 된 깁니다.”
형사 계장이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그래? 거 참…… 아까도 낮에 방범 계장 나한테 와서 결재 받고 갔는데 아무 소리도 안 하던데 말이야. 사람이 겸손할 줄도 알고 그 물건이다잉? 정말 괜찮은 친구야. 근데 그렇다고 방범 계장을 상 줄 수도 없고, 그라모 거기 파출소 직원 안 있나? 금마가 검문을 지대로 한 공적이 있으니까 금마 표창 하나 주지 뭐. 지방청장 표창 상신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떻노 형사과장?”
“예, 그렇게 하는 게 좋겠심다.”
형사과장도 파출소에 표창 하나 정도는 내려 줘야 한다고 동의를 했다.
김세민은 황령산 살인 사건이 해결된 마당에 전부터 생각하던 범죄 분석 보고를 해 보기로 하였다.
제목을 ‘황령산 살인 사건 분석 및 대책 보고’라고 정해 놓고 범죄의 발생 원인을 낮은 가로등의 조도에 맞추었다.
실제 밤에 다시 가서 범죄 현장의 조도를 측정해 본 결과 0.5가 나왔다.
거의 암흑이나 다름없는 수치였다.
대책으로서는 동래서 관내 가로등 숫자를 더 늘리는 것과 평균 조도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여성들이 혼자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지역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NO WALK FEMALE ALONE(여성 혼자 걷지 말 것)이란 표식을 경찰 주관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