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229. 사랑은 물처럼 흐르고
김세민이 윤희연을 발견하고 마주 손을 흔들자 윤희연은 화사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는 종종걸음으로 김세민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김세민은 말을 건네는 동시에 악수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윤희연은 뭐라고 대답도 않고 약간 뾰로통한 표정으로 김세민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
김세민은 허공에서 혼자가 된 자신의 손을 거두고는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저, 윤희연 씨?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러자 윤희연이 김세민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아니, 악수는 좀 그렇지 않나?”
“예?”
“그렇잖아요, 수단에 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재회는 이런 게 아니란 말이에요. 갑자기 어색하게 악수라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세민은 윤희연을 힘차게 끌어당겼다.
“어머?”
윤희연의 가냘픈 몸은 김세민의 품에 마치 퍼즐 조각처럼 빈틈없이 폭 안겼다.
김세민은 그런 윤희연을 마치 보물 다루듯이 다정하면서도 힘 있게 감싸 안았다.
“미안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
윤희연의 체온이 온몸을 통해 느껴지자 김세민은 뭔가 잊고 있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개찰구 앞인지도 잊은 채 거의 10분 동안이나 윤희연을 껴안은 채로 있었다.
“저기, 김세민 씨…….”
“예?”
“사람들이 계속 쳐다봐요.”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두 사람 주변에서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윤희연은 조금 창피했는지 두 볼에 빨갛게 홍조가 들었다.
김세민이 감싸 안은 팔을 풀자 가볍게 가슴팍을 때리며 눈을 살짝 흘겼다.
“아니,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그렇게 오래 안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런 삐지는 모습도 김세민의 눈에는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예쁘게 보였다.
“미안합니다. 사실 전 마음에 있어도 잘 표현을 못 하거든요. 원래 속으로만 삭이는 성격이라, 아무래도 애정 표현은 좀 서툰 편이죠.”
“우리가 뭐 애정 표현이라고 할 만한 그런 사건이 있었나요? 그냥 환자와 의사 사이인데, 이렇게 사람을 보자마자 껴안기나 하고…….”
“아니 그건 윤희연 씨가…….”
김세민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윤희연은 김세민의 팔에 팔짱을 꼈다.
“빨리 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윤희연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희연을 보는 김세민 역시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부산역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서 영도 대교를 넘어 동삼동으로 넘어갔다.
차가 영도 어귀의 해안 도로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고, 먼바다에는 수도 없이 많은 화물선들이 점처럼 떠 있었다.
아마도 부산 남항에 들어가기 위해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선이나 화물선 같았다.
“배 안 고파요?”
“완전 고파요. 실은 기차에서 뭘 좀 먹을까도 했었는데, 어찌나 잠이 쏟아지는지.”
“그럼 먼저 밥부터 먹죠, 태종대는 그 뒤에 가고.”
“잘 아는 데가 있나 보죠?”
“아뇨, 그냥 누구 때문에 좀 알아봤죠. 목장원이라고, 고깃집이에요.”
“목장원? 목장원을 어떻게 아세요?”
“고기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죠, 수술하려면 체력은 필수거든요. 근데 목장원을 어떻게 아냐니까요? 부산 와서 일은 안 하고 만날 놀러 다닌 건 아니죠?”
“에이, 사람을 뭐로 보고. 태종대 가 보고 싶다고 하길래 구경하고 나면 혹시 배고플까 봐 일부러 알아본 건데.”
“아~ 일부러. 그래서 길도 잘 아시는구나? 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경찰 사격장이 있는 표지판을 돌아서 올라가자 바로 목장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목장원 안으로 들어가는데 언덕이라 그런지 바다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고, 멀리 대마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저 여기 진짜 오랜만이에요. 오늘 김세민 씨 덕분에 다시 와 보네요.”
“아닙니다. 그래도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이 정도야 뭐.”
“그러네요. 근데 생명의 은인을 그렇게 사람 많은 기차역에서 끌어안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네.”
“고마워서 그런 거죠.”
“그럼 왜 그렇게 오래 끌어안고 있었는데요.”
“그만큼 많이 고마웠단 뜻이죠.”
“그런가? 하긴, 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죠. 그 강 형사라는 분, 그분이 판단을 잘하셨어요.”
“강 형사가요?”
“그때 김세민 씨, 상처 자체는 그렇게 깊지 않았는데 독 때문에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었거든요. 만약에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갔으면 좀 위험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야전 병원에서 독 관련 자상도 다뤄 본 적이 있지만, 보통 의사들에겐 흔한 임상 경험은 아니니까요.”
“그랬군요. 정말 윤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저는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네요. 윤.희.연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말이죠.”
김세민이 짐짓 정색을 하고 특히 윤희연의 이름에 힘주어 말했다.
“뭐야, 나 놀리는 거예요 지금?”
“그럴 리가요, 생명의 은인인데.”
“어휴, 괜히 살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앰뷸런스 그냥 고대로 돌려보내는 건데!”
그러면서 윤희연은 김세민이 상처를 입었던 부위를 한 대 때렸다.
“아악!”
* * *
직원의 안내로 바다가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등심과 갈빗살을 각각 2인분씩 주문했는데, 김세민은 윤희연이 보란 듯이 계속 상처 부위를 만지작거렸다.
“많이 아파요?”
“그럼 아프지 안 아픕니까? 무슨 생명의 은인이 이렇게 주먹을 잘 쓰는 건지 원.”
“미안해요, 근데 그렇게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제가 볼 땐 의사보다 강력계 형사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어휴 진짜.”
얼굴에 웃음을 띤 채로 투덕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윤희연 씨는 여기 와 본 적이 있다고 했죠?”
“사실 저, 고향이 부산이에요. 고등학교까지 여기서 다녔어요.”
“그랬군요. 그럼 부모님은 아직 부산에 계신 겁니까?”
“…….”
갑자기 윤희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괜한 걸 물었나.’
김세민은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윤희연이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사고로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남동생도요. 그러고 나서 부산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구요.”
“아…….”
“실은 앞으로 부산에 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김세민 씨가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올 용기가 나더라구요.”
“미안합니다.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윤희연 씨를 불편하게 만들었네요.”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인데요 뭐. 배고파요! 우리 밥이나 맛있게 먹자구요.”
윤희연이 애써 씩씩한 척을 하는 것 같아 김세민은 어딘가 가슴 한편이 아파왔다.
* * *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소화도 시킬 겸 해서 잠시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목장원 앞의 해안 쪽으로 돌출된 작은 광장이 하나 있었는데, 표지석에는 [75광장]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75광장?”
“아 그건, 1975년에 조성되었다고 해서 75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네요.”
“뭐야, 이상해요. 푸훗!”
‘다행이다.’
아까 이야기 도중에 윤희연의 낯이 어두워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김세민은 윤희연이 웃는 모습을 보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도 미리 조사한 거예요?”
“아뇨, 아까 계산하고 나오면서 직원한테 물어봤죠. 주변에 산책을 할 만한 곳이 있냐고. 그러니까 여길 알려 주더군요.”
“흐응, 그렇구나.”
광장 내에는 아담한 규모의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올라가 보니 아무도 없었고 넓은 바다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와, 너무 기분 좋다! 바람도 시원하고.”
“저, 윤희연 씨.”
“네?”
“아까 이야기 말입니다. 혹시 무슨 사고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김세민은 윤희연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하고 말았다.
윤희연은 한동안 김세민을 빤히 쳐다보다가 나직한 한숨 소리와 함께 바다 쪽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87년에 있었던 비행기 사고, 혹시 아세요?”
“87년이라면…… 혹시 북한 테러에 당한?”
“맞아요. 저는 전공의 과정을 미국에서 밟았는데, 펠로우 1년 차일 때 부모님과 남동생이 절 보러 오셨어요. 아버지가 일선에서 은퇴하기로 결심을 하시고 나서 가족들과 함께 떠난 첫 여행이었죠, 그리고 첫 방문지로 제가 있던 볼티모어로 오셨구요. 그러고 나서 유럽으로 가셨다가 중동까지 둘러보고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셨는데…… 그만…… 흐윽.”
윤희연은 계속해서 말하기가 힘이 드는 듯 몇 번이나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미안합니다. 윤희연 씨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물었던 건데. 나 때문에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네요.”
“괜찮아요, 저도 극복해야죠. 그리고 김세민 씨도 저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한 거예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윤희연은 크게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떨리는 목소리를 고르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병원을 그만뒀어요. 아버지, 어머니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게 목표였는데, 한순간에 다 날아가고 나니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고, 마음을 기댈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마침 부산에서 성당 다닐 때부터 알던 수녀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곧바로 귀국해서는 부산으로 가서 수녀님을 뵙고 저도 수녀님이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그런데?”
“수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꼭 수녀가 되어야만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훌륭한 의술을 가지고 있으니 그 길을 가는 것도 역시 봉사하는 길이다. 뭐 그런 식으로 절 설득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수녀님 소개로 천주교 교구 소속 병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국경 없는 의사회도 그 수녀님이 소개를 해 주셔서 활동했었던 것이구요.”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도?”
“맞아요. 근데 부산으로 온 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다른 지역에서도 부른 곳이 몇 군데 있었어요. 원래라면 서울 쪽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저 고민 많이 했거든요.”
“예? 아니 그럼 왜 부산까지 오신 겁니까?”
그러자 윤희연이 곱게 눈을 흘겼다.
“뭐야. 몰라서 묻는 거예요, 지금?”
“아, 아니…… 아닙니다. 하하하…….”
“정말!”
* * *
광장에서 이야기를 하며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뒤 늦은 오후 무렵 태종대로 출발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을 조금 걸으니 등대로 내려가 볼 수 있는 길이 나왔다.
윤희연이 등대까지 내려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내려갔는데, 다시 올라오려고 하니 높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윤희연은 구두를 신고 있었던 탓에 발이 많이 아픈지 몇 걸음 걷고 쉬기를 반복하다가 그만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아요?”
“발이 좀 아파서요, 잠시만요.”
윤희연이 구두를 벗자 발뒤꿈치 쪽이 까졌는지 피가 났다.
“어휴, 괜히 내려왔어 괜히 내려왔어! 어떡하지?”
“업힐래요?”
“응?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됐어요,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데 쪽팔린단 말이에요. 그냥 맨발로 올라갈까 봐요.”
“아까 내려오다 보니까 누가 콜라병이라도 떨어트렸는지 유리 파편이 많더라고요. 밟으니까 사각 사각 소리가 나는 게…….”
윤희연은 김세민을 살짝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팔을 뻗었다.
김세민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윤희연을 가볍게 업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 무거워요?”
“괜찮습니다. 요즘 운동하거든요.”
“무슨 운동인데요?”
“합기도 도장에 다녀요. 대련도 하고, 도장에 기구들이 있어서 헬스도 하고.”
“그렇구나, 그래도 아령이나 역기보다는 내가 더 가볍죠?”
김세민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그래요? 김세민 씨가 드는 역기가 몇 킬로인데요.”
“70킬로.”
“야.”
“다 왔네요.”
“내려 줘요, 무겁다면서요!”
“차까지는 가야죠, 윤희연 씨 덕분에 오늘은 운동 안 가도 되겠네요.”
“칫!”
* * *
출근해서 배 경사한테 동래 구청에서 회신이 온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직접 가야겠네요. 구청에 좀 다녀올 테니 그때 보낸 공문 원본 좀 주세요.”
“직접 가신다고요? 그럼 지가 모시고 가겠심다.”
배 경사가 같이 가겠다고 해서 같이 동래 구청으로 갔다.
동래 구청은 수안 시장을 지나 온천장 쪽으로 걸어가니 금세 나왔다.
2층에 있는 도시 관리과장을 만나러 갔는데 도시 관리과장은 아침부터 신문을 보느라 사람이 옆에 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신발도 벗은 채로 발을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기 집 안방인 것처럼 신문을 읽고 있었다.
김세민이 손가락으로 책상의 유리를 두드렸다.
똑똑!
“뭐고?”
도시 관리과장이 안경을 내리고 김세민을 쳐다보다가 김세민이 입고 있는 경찰 근무복을 보더니 자리에 바로 앉았다.
“파출소에서 왔는교? 여는 도시 관리과니까 용무 있으면 저짝에 총무과장한테 가 보소.”
김세민이 명함을 꺼내서 책상 위에 놓았다.
“동래서 방범 계장입니다.”
“방범 계장? 우리가 방범하고 뭔 상관이 있다꼬?”
“실은 지난주에 여기 관리과 앞으로 공문을 하나 보냈는데요, 회신이 없어서 확인하러 들렀습니다.”
“어이 박 주사! 니 뭐 저번 주에 동래서에서 공문 받은 거 있나?”
과장이 자기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아래 직원을 찾았다.
“예. 하나 있습니다.”
“야이 자슥아, 그걸 지금 말하면 우야노!”
“예? 이거 지난주에 과장님이 전결하셨는데요?”
그러면서 공문을 꺼내 오길래 확인해 보니까 관리과장이 전결로 처리해서 처박아 둔 모양이었다.
“국장님 결재가 아직인 것 같은데요?”
김세민이 따지듯이 물어보자 관리과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대답을 했다.
“보소, 당신네들 말고도 타 기관에서 오는 공문이 얼만지나 아는교? 중요한 것만 간추리가 국장님 결재 드가야지, 개나 소나 공문 보낸다꼬 다 들고 드갈 수가 없지.”
‘근데 이 새끼가 말을…….’
김세민은 욕지거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는 어느 구청을 가더라도 경찰서 간부들한테 앉으라는 소리도 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대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용 한번 검토는 해 봤습니까?”
“어허이, 바쁜 데 와서 사람 붙잡고 뭐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해샀노! 보소, 우리가 지금…….”
“자꾸 보소 보소 그러는데 도대체 뭘 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공문은 엄연히 경찰서장 관인이 찍혀서 나간 겁니다. 관리과장 당신 눈에는 우리 서장님이 개나 소로 보이는 모양이지요?”
김세민이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깔자, 관리과장은 한숨을 휴 하고 내쉬더니 출렁거리는 뱃살을 움직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아니 그게 그렇게 말 꼬두락지 잡고 늘어질 일인가? 결재가 한두 개도 아이고 내가 우예 다 기억을 한단 말이고! 어이 박 주사야. 아까 내용이 우째 된다 켓노?”
“아, 가로등하고 CCTV 설치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담당인 박 주사라는 친구가 그 정도로만 답을 하는 것을 보니 담당도 제대로 검토를 안 한 것 같았다.
“머라꼬? 그 가로등하고 CCTV는 다 예산 들어가는 거 아이가?”
“맞습니다.”
“에헤이…… 그라면 올해는 텄다, 텄어.”
“뭐요?”
“예산 배정 다 끝난 지가 언젠데 인자 와 가지고…… 츳.”
“츳?”
“올 연말에 공문 다시 보내 주면 그때는 내가 제대로 검토해서 어떻게 향후 예산에 조금 반영을 하던 가 할 테니까, 인자 됐지예? 방해하지 말고 좀 가소.”
그러고는 의자를 홱 돌려 다시 앉았다.
“아 그래요, 도시 관리과장이라고 했지요? 분명히 당신이 그랬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못 해 준다고! 배 경사! 국장실에 가 봅시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하고 나가자 도시 관리과장은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서 곧바로 국장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예, 국장님. 방금 경찰서에서 희한한 놈이 하나 와 가지고 진상 부리고 갔거든예? 아니, 별건 아니고예. 아무튼 그래 됐으니까 금마가 찾아오면 돌려보내시소. 경찰하고 얽히가 좋을 게 뭐가 있겠어예, 예. 수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