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35화 (235/869)

제235화

#235. 유괴 사건

오후에 서장실에서 올라오라는 전갈이 왔다.

웬일인가 싶어서 올라갔더니 부속실 최 양이 생글거리고 웃고 있다.

“무슨 일이야? 왜 부르신대?”

“일단 들어가 보세요.”

김세민이 의아해하면서 열려 있는 서장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안에는 각 과장들이 다 기다리고 서 있고 방송국에서 나와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김 주임 왔나! 일로 온나!”

“저…… 이게 다 뭡니까?”

“방송국에서 니 취재하러 왔다 아이가. 뭐하노! 빨리 안 오고.”

서장이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니 지방청장 표창 내리왔다 아이가, 마침 기자들이 니 상 받는 거 촬영하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그라라고 했지. 뭐하노? 빨리 요기 서라.”

그러면서 서장은 지방청장 표창장을 소리 내어 읽고서는 김세민에게 수여했다.

옆에서 과장들이 손뼉을 쳐 주었다.

곧바로 방송 기자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 경위님! 저희가 현장 취재도 했는데 굉장히 경사가 가파른 길이더라구요, 그런데도 끝까지 강도범을 추격해서 검거를 하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XBS 민수진 기자가 김세민에게 소감을 부탁했다.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찰관이라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리했을 것입니다.”

김세민은 최대한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설치지 말라고 경고까지 받았는데, 이게 또 전국 방송에라도 나가면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 되니까. 뭐, 여긴 지방 방송이니까 부산에만 나가고 말겠지 뭐.’

민 기자가 이번에는 서장을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우리 서장님은 이리 훌륭한 부하를 데리고 계시는데, 평소 김 계장님의 업무 수행 능력을 어떻게 평가를 하시는지요?”

서장이 한껏 거들먹거리면서 이야기했다.

“아~ 그거는 말이지요, 우리 김 계장이 오고 나서는 파출소 순찰 방법도 개선을 하고 범죄 예방을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아입니까. 또 우리가 전국 최초로 여성들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위험 지역도 경고판을 만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도 범죄 발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요. 이기 다 우리 김 계장이 불철주야 헌신한 공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서장이 그런대로 관록이 있어서 그런지 제법 그럴듯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김세민 경위님의 앞으로의 포부를 한번 여쭤봐도 될까요?”

“그저 경찰관으로서 저한테 주어진 소임을 다 할 뿐, 그리 거창한 포부 같은 것은 없습니다.”

김세민이 딱 잘라서 싱겁게 답을 하고 인터뷰는 끝이 났다.

“어이 참 김 계장, 방송 한번 타기가 얼마나 힘든데 고마 싱겁게 치아뿌면 우짜노.”

방범과장이 자신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지 않는 기자가 야속했는지 엉뚱하게 김세민의 인터뷰 내용을 트집잡았다.

그날 밤, 김세민의 예상과는 다르게 인터뷰 내용은 전국으로 방송이 나갔고 다음 날이 되니 불안한 마음에 조마조마한데 아니나 다를까, 정우진 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여! 우리 김 주임! 요새 완전 스타가 다 되었어! 연일 방송을 타네.”

은근히 비꼬는 말투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안 그래도 죽을 맛입니다. 이선유 경감이 설치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어제 인터뷰도 서장님이 미리 다 잡아 놓고 갑자기 불러올리는데 제가 뭘 더 어찌하겠습니까?”

김세민이 먼저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맞아! 그럴 거야. 내가 김 주임을 잘 알지. 절대 나서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야. 거 뭐 옛말에도 있잖아.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바람이 놔주지 않는다고 말이야. 안 그래도 이선유가 전화 왔는데 어제 방송 때문에 민정실 분위기가 안 좋았대. 자기는 미안해서 말 못 하겠다고 나 보고 대신 전화 좀 해 달라고 해서, 내가 오랜만에 안부도 묻고 한다고 해서 전화 하기는 했는데, 나도 기분은 엿 같다. 그래도 어쩌겠어? 참아 내야지. 안 그래?”

정우진 경정이 자기가 김세민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위로를 해 주었다.

“저야 그렇다 치고, 대장님은 어떻습니까? 중부서는 서풍이 좋습니까?”

“서풍? 서풍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여기는 워낙이 관할이 좁잖아? 명동하고 소공동 말고는 아무것도 없잖아? 파출소도 12개밖에 안 되고 말이야. 조용해서 지내기 좋아.”

정우진 과장은 속 편하다고 말을 꺼냈다.

“변치수 그 자식은 속 안 썩입니까?”

이번에는 변치수 근황이 궁금해서 김세민이 물어보았다.

“그게 말이지, 변치수 그 새끼는 전에 독고다이나 살쾡이랑은 달라서 제법 사업가 기질이 있더라고. 요새 보니 정치판에도 기웃거리고 경찰서도 자주 들어와서 밥도 사고 용돈도 서장이나 과장들한테 던져 주니까 다들 좋아해. 이번에 우리 중부서 치안 자문 위원까지 위촉이 되었다니까?”

치안 자문 위원이란 소리에 김세민이 열이 뻗쳤다.

“아니, 그런 자식이 뭐가 유지라고 치안 자문 위원을 줍니까?”

“글쎄, 나는 반대를 했는데 이게 치안 자문 회의는 경무과 소관이잖아? 형사과장인 내가 남의 과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냥 눈 감기로 했어.”

정우진도 자기 권한 밖이라는 의도로 말꼬리를 내렸다.

“그럼, 오늘은 그냥 단순히 안부 전화만 하신 겁니까?”

김세민이 뭔가 할 말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정우진이 말을 안 꺼내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도 이선유한테 들은 건데…… 당분간은 부산에 그대로 있으래. 연말에 정권 바뀌고 나면 그때 새 정권에 선 달아서 서울 올라오든가 해야지, 지금 상태에서는 자네를 서울로 다시 데려올 수가 없다고 하더군. 비서실장도 현재 각하 임기 끝까지 있을 것 아닌가 말이야.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런 말까지 했다고 그러더라고. 아 참 또 한 가지가 더 있어. 변치수가 나한테 그러던데 살쾡이가 지금 부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더군. 왜 카지노 정 사장이 부산에도 카지노를 하나 더 가지고 있잖아? 그래서 살쾡이가 부산 카지노를 관리하는지도 모르니까 한번 주목을 해 보라고 김 주임한테 전해 주라고 하더군.”

“저도 어차피 다시 서울 갈 마음은 벌써 비웠으니까 신경 안 써 주셔도 됩니다. 인제 거의 부산 사람 다 되었습니다. 여기서 마음 붙이고 살랍니다. 그러니 저 때문에 대장님도 너무 마음 쓰시지 말고 총경 진급이나 신경 써서 연말에는 꼭 진급하시기 바랍니다.”

김세민은 이제 정우진과도 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미리 인사를 했다.

“야! 섭섭하게 진짜…… 뭔 말을 그렇게 하냐? 너 나한테 아직 감정 있냐?”

“제가 감정이 있다 한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습니까? 다 옛날에 제가 대장님 북경에 놔두고 혼자 돌아온 죄 받는다고 생각하고 귀양살이 할랍니다.”

“우하하하! 크크큭! 야…… 내가 드디어 김세민이한테 앙갚음을 했네. 사실은 그때 나 혼자 북경에 놔두고 갈 때,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 이제 우리 서로 빚은 없는 거다? 물론 감정도 없고?”

“전 한 번도 대장님한테 감정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지요.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김세민은 전화를 끊었다.

일순 꽤나 서울과는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살쾡이라……. 에이, 이젠 다 잊어버리자. 수배가 되었다니 언젠가 잡히겠지. 다 흘려보내자고.’

더 이상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 * *

퇴근 시간 무렵에 갑자기 경찰서가 뒤숭숭해졌다.

형사들이 왔다 갔다 뛰어다니고 과장들이 서장실로 두 번이나 불려서 올라가서 회의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김세민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아는 형사가 먼저 인사를 하길래 물어보았다.

“오늘 형사계 분위기가 이상한데 뭔 일 있어요?”

“아휴 말도 마이소, 유괴 사건 터졌다 아입니까.”

조 형사라고만 알고 지내는 형사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래요? 어딘데요.”

김세민이 궁금해서 바로 물어보았다.

“그 왜, 온천 3동에 부자들 사는 동네 안 있습니까? 거기 외동딸인데 지금 대학 1학년이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집 앞에서 유괴가 됐다고 하던데요.”

“목격자는 나왔습니까?”

“예, 목격자도 찾았고 또 범인이 전화까지 걸어왔거든요? 돈 내어 놓으라꼬. 두 번이나 전화했다카든데 또 희한하게 약속 장소에는 안 나왔답니다. 부모는 금마 말만 믿고 돈으로 해결할라꼬 하다가 그바람에 경찰에 신고가 늦었다 카네예.”

“그럼 시간이 꽤 흘렀겠는데?”

김세민이 걱정이 된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자 조 형사가 대답을 했다.

“일주일 됐다 아입니까. 근데 이 새끼가 사흘 전부터는 연락을 뚝 끊었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그래도 절대 공개 수사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답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여대생을 납치하다니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여자 부모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혹시 납치된 여학생의 부모에게 원한이 있는가 싶어서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조 형사는 자신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여학생 아버지는 영도에서 큰 원양 어선하고 어망 공장을 돌리는 양반인데 부산에서 제법 알아주는 부잡니다. 근데 이 집에 손이라고는 납치된 딸래미 하나뿐이라가지고 부모들이 애를 많이 태우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요. 수고 많으시겠네요.”

그렇게 김세민은 인사를 하고 조 형사와 헤어져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김종호 경장에게 물었다.

“김 경장, 우리 릴레이 순찰한 지 한 달 넘지 않았어?”

“아마 그쯤 됐을걸요? 인자 두 달째 들어가겠네.”

“두 달이라…… 조금 짧긴 한데, 할 수 없나. 김 경장, 그 두 달 동안에 범죄 발생 대비 검거율하고 전년도 대비 발생율을 간단하게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자료 좀 정리해 주겠어?”

“아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릴레이 순찰 시작한 이후로 궁금해가지고 비교를 함 해 볼라 했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다 되면 말씀드리께요.”

“오케이! 부탁해.”

김세민은 김 경장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리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고용직 나 양이 전화가 왔다고 알려줬다.

“계장님! 2번에 일반 전화 와 있습니다.”

김세민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해 보이고는 얼른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방범 계장 김세민 경위입니다.”

-앗, 받았다.

“여보세요?”

-뭐야, 그새 내 목소리도 잊어버린 거예요?

“누구…… 아! 윤희연 씨?”

-…….

“윤희연 씨!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김세민은 반가운 마음이 앞서 목소리에 잔뜩 긴장이 묻어났다.

-엄청 바쁜가 봐요? 그날 이후로 전화도 한 통 없고, 그러라고 내 전화번호 알려준 게 아닐 텐데.

“그러네요. 요 며칠 좀 바쁘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먼저 전화 못 한 건 미안합니다.”

-아니구나? 바쁜 게.

“예?”

-난 또 티비 나가서 예쁜 여기자랑 인터뷰하느라 전화 안 하는 줄 알았죠, 바빠서.

“아, 보셨습니까?”

-병원에도 티비는 있으니까요. 아주 좋아 죽던데?

“아닙니다. 그 여기자, 얼굴도 생각 안 나는데요 뭐.”

-그래요? 그럼 뭐지?

“뭐가 말입니까?”

-나 부산에 온 날, 태종대 갔다 와서 지금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요?

“아…….”

-그게 김세민 씨 여자 꼬시는 수법인가? 먼저 전화 안 하고 여자가 몸이 달게 만들어서 먼저 전화하게 만드는?

“그럴 리가요, 저 여자 꼬시고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그럼 뭔데요.

“사실은 제가 몇 번이나 전화를 할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바쁜 직업 아닙니까? 또 새로 발령받아 오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해서요. 바쁜 와중에 제가 한가한 놈처럼 전화해서 시시한 얘기나 늘어놓으면 혹 방해가 될까 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세민 씨 말은, 지금 저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거네요.

“그런 거죠.”

-그럼 모레 일요일 날 오프니까 밥 사요.

“알겠습니다. 어디로 데리러 갈까요?”

-아직 집 구할 시간이 없어서 병원 뒤에 수녀관에서 지내고 있거든요? 국제시장에서 대청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언덕이 하나 보일 거예요. 올라오다 보면 우리 병원이 보이니까 주차장에서 만나요. 나 휴일에는 늦잠 자니까 11시까지 오시구요.

“그러죠,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요? 아님 뭐 먹고 싶은 거라도.”

-내가 정해도 돼요?

“당연하죠, 생명의 은인인데.”

-치. 그럼 오륜대 가서 점심 먹고 우리 등산해요. 신발은 운동화 신고 오시고.

“운동화 꼭 신어야죠. 얼마 전에도 아는 여자랑 태종대 갔는데 그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오는 바람에 아주 그냥…….”

-어휴.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ER에 25세 남성 TA 환자 들어왔는데요, 빨리 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기다려요, 금방 가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응급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다네요. 그럼 일요일에 봐요!

그러고서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이 여자도 분초를 다투면서 살다 보니 밀당이나 할 여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김세민은 이 새로운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여자가 아닌가 말이다.

* * *

새로 옮긴 아파트를 정리 정돈하느라 얼마 전까지 동생들이 와서 며칠 동안 북적거리다가 오늘 낮에 서울로 올라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퇴근하고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집에 적막이 흘렀다.

부엌의 창문을 열면 멀리 보이는 금정산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자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유괴 사건은 갈수록 미궁에 빠져들고 있었다.

매일 서장실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었으며 형사들은 출퇴근 개념도 없이 밤낮으로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배 경사가 난데없이 김세민에게 사주를 물었다.

“사주라면…… 점 볼 때 생년월일시 그거 말하는 거죠?”

“네. 형사 관리계장이 아까 전화 와 가지고 빨리 알려 달라고 하든데요.”

“배 경사는?”

“우리는 필요없다든데요, 간부들 꺼만 내랍니다.”

“왜 내라고 하는지는 모르고?”

“물어보긴 했는데요, 유괴 사건 때문에 그런다고 빨리 좀 보내라는 말만 계속 했습니다.”

“이상하네, 유괴 사건하고 간부 사주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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