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37화 (237/869)

제237화

#237. 최면 수사

“할머니! 그날 영주가 납치된 날 말입니다. 영주가 타고 간 차가 무슨 차인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김세민이 빵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내가 차 이름까지 우예 아노? 자가용이지. 택시는 아인 거 같고.”

할머니는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떠듬떠듬 말했다.

“그럼 차 색깔은 기억이 나세요?”

김세민이 다시 물었다.

“무신 색깔이냐꼬? 보자~ 그기 무슨 색깔이더라~ 모리겠네. 기억은 날락말락 하는데 무신 색인지 말로 하기가 좀 어렵네. 아이 근데 형사들아! 느그는 내가 모린다 카는데 와 자꾸 늙은 할매한테 자꾸 물어봐 샀노? 다 처묵었으면 퍼뜩 꺼지라!”

할머니가 대답하기 귀찮은 듯 빗자루로 바닥을 쓸면서 먼지를 일으켜서 김세민을 쫓아내려고 했다.

일단은 철수하기로 했다.

근처 다방에 앉아서 머리를 굴리던 김세민이 무릎을 쳤다.

“뭐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계장님.”

앞에 앉아 있던 문 경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애란 주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다방에서 바로 종합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룩! 찰칵.

-네 경찰 종합 학교 3번입니다.

“네. 여기 부산인데요. 정애란 교관님 부탁합니다.”

-기다리세요.

-네. 정애란 경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부산 김세민입니다.”

-아? 김 주임님! 지난번에 보내 주신 가평 서장님 논문은 잘 받았어요. 한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고 또 신세 질 일이 생겨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김세민은 간략하게 그간의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한참을 김세민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정애란 주임은 딱 한마디를 했다.

-단서가 그 할머니밖에 없는데 할머니는 기억이 잘 안 나신다고……. 그럼 최면 수사라도 해야 겠는데요?

정애란이 난데없이 최면 얘기를 들고 나왔다.

“최면 수사요?”

-말 그대로예요. 피의자가 아닌 주로 목격자나 피해자한테서 최면을 걸어서 의식의 내면에 잠재된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종종 쓰이는 수사 방법인데 우리는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아요. 더구나 피해자를 최면을 걸어서 얻어 내는 진술의 증거 능력도 아직 인정해 주고 있지 않지만, 이 경우는 목격자니까 얼마든지 우리가 참고로 수사할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최면을 걸어서 할머니가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아낼 수 있다, 뭐 그런 얘깁니까?”

-네. 맞아요. 전문 용어로는 변성 의식(Trance)이라고도 하죠. 즉, 최면을 걸고 변성 의식 상태에서 대화를 유도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것이죠. 뭐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누가 최면을 겁니까?”

-저도 하는 방법은 아는데…… 아무래도 정신과 의사한테 부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만약에 마땅한 의사를 못 구하면, 내가 주말에 내려가서 해 볼게요. 대신 출장비는 두둑이 주셔야 해요?

“아,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수소문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세민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사라…… 한번 물어나 볼까.’

이번 주말에 오륜대에 가기로 했는데 어차피 다 틀어진 건데 또 부탁까지 하려니 맘이 안 내켰지만 한 사람의 젊은 여성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더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즉시 데레사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또르르륵 딸가락!

-병원입니다.

“네. 윤희연 선생님 부탁합니다.”

-기다려 보세요.

-네. 외과 윤희연입니다.

“저 김세민입니다.”

-김세민씨?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

김세민은 혹시나 희연이 바쁠 때 전화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먼저 그렇게 물었다.

-뭐야, 설마 일요일에 일이 생겼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죠?

김세민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여간 눈치는…….’

“유감이지만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지금 한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거든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알아듣게 설명해 봐요.

김세민은 사건에 대한 것과 방금 정애란에게 들은 내용에 대해 쭉 설명했다.

-그러니까 최면술을 할 수 있는 신경 정신과 닥터가 필요하단 말이죠?

“네, 지금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늦으면 납치된 여자가 위험할 거예요.”

-알겠어요, 일단 우리 정신과 닥터한테 물어보고 바로 연락을 드릴게요.

윤희연과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김세민은 영주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고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할머니한테 충분히 보상을 하고 최면 수사를 해 보자고 승낙을 받았다.

윤희연에게서도 금세 연락이 와서 되는대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길래 할머니 승낙을 받는 대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할머니도 아들이 입회하는 조건으로 제법 두툼한 봉투를 사례로 쥐여 주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 * *

그날 밤 8시, 데레사 병원 신경 정신과장 사무실.

방 도사와 영주 모친은 물론이고 할머니 아들까지 입회를 했다.

시술은 데레사 병원 신경 정신과장인 백 수산나 과장이 직접 하기로 했으며, 김세민은 미리 질문 사항을 메모해서 백 과장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릴 듯 말 듯 틀어 주면서 백 과장이 최면 매개로 사용되는 구멍이 뚫린 작은 코인을 할머니 눈앞에서 흔들었다.

인덕션(Induction: 얕은 변성의식으로 들어가는 단계)이 시작되었다.

“자, 할머니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그리고 이 동전에 집중하셔야 합니다. 이제 할머니는 곧 편안하게 주무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꿈을 꾸시게 됩니다. 자~ 제가 숫자를 셉니다. 하나~ 둘~ 셋~ 이제 할머니는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홍영주를 만났던 그 날로 되돌아갑니다. 할머니가 일을 하고 있는데 영주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영주가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 기억이 나시죠?”

할머니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무슨 소리가 들리세요?”

“‘빵빵!’하는 차 소리.”

“영주가 뭐라고 했나요? 할머니?”

“그냥 인사. 아는 사람.”

“뭐라고 인사했는지 들으셨어요?”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그랬어. 그러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

김세민은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순간 영주의 모친을 쳐다보았더니 모친도 까무러치듯이 놀라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계속해서 백 과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할머니! 혹시 차가 어떤 차인지 생각이 나세요?”

“차~ 차~ 그래 올림픽 할 때 나왔던 차, 88이라고 쓰여 있는 차.”

김세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백 과장이 김세민이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자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엑스덕션(Exduction: 각성상태로 다시 돌아옴) 신호로 박수를 가볍게 한번 ‘짝!’하고 쳤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눈을 번쩍 떴다.

“수고하셨어요.”

“벌써 다 끝났나?”

“네. 고맙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니 근데 내가 잠은 든 것 같기는 한데, 평소에는 전혀 생각도 나지 않던 것들이 희한하게 다 기억이 나노? 요상하네?”

단서가 다 나왔다.

영주가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영주의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놈이 타고 다니는 차는 88스텔라였다.

밖으로 나와서 할머니를 아들과 같이 떠나는 걸 배웅해 주고 나서 영주의 모친은 김세민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인자 우리 딸 찾을 수 있는 깁니까, 김 주임님! 제발 제 딸래미좀 빨리 델꼬 와 주이소. 예? 제발 부탁입니다.”

영주 모친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방 도사도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 올렸다.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 같았다.

김세민은 옆에 있던 윤희연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다.

“윤희연 씨 아니었으면 단서를 못 찾을 뻔 했네요, 덕분입니다.”

“뭐야, 나는 일요일에 오프 하려고 당직 대타까지 섰구만, 자기 마음대로 취소나 하구…….”

투덜거리는 윤희연을 바라보며 김세민은 세상 밝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만날 말만!”

김세민과 윤희연이 투덕거리자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영주의 모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래라, 두 분이 연인 사이셨나 보네요.”

그러자 순간 윤희연의 얼굴에 붉게 홍조가 들었다.

김세민도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저흰 그런 사이가 아니구요…….”

“나중에 결혼하시게 되면 꼭 저한테도 연락을 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영주 어머니가 자기 말만 하고는 가 버리자 남겨진 김세민은 적잖이 당황했고, 윤희연도 마찬가지였다.

“…….”

“…….”

“윤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나 퇴근해야 돼.”

“아, 아니에요. 오늘 감사했어요 과장님! 빨리 와요.”

윤희연은 백 과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김세민을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김세민은 갑자기 영주 모친에게서 결혼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뭐지? 이 어색함은. 김세민 씨도 최면 걸렸어요?”

“아니, 아닙니다.”

“나하고 결혼 어쩌고 이야기 나올 때부터 계속 말이 없잖아요 지금. 그렇게 싫어요?”

“예? 아니요.”

“뭐야, 무슨 대답이 그래?”

“어쨌든 내일은 영주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용의자를 찾아보고 그놈 연고지부터 조사해봐야죠. 오륜대는 다음에 가요.”

“어쩔 수 없죠, 조심하구요.”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그럼 갈게요.”

돌아서 가는 윤희연의 얼굴에 섭섭함이 내비치자 그걸 본 김세민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했다.

“나도 많이 아쉽다고…….”

* * *

다음 날, 김세민은 문 경장과 함께 홍영주가 다녔다는 명륜동에 있는 중X여고에 들렀다.

한나절 동안 선생들과 면담을 해 본 결과 영주가 부잣집 딸이고 영주 어머니가 학교에 운영위원장까지 해서 선생들은 다들 영주를 잘 알고 있었다.

88스텔라를 타고 다녔던 선생을 찾으니까 다들 금세 얘기를 해 주었다.

“아 그 양반, 한 6개월 전에 그만뒀다 아입니까. 어디 미국으로 간다고 카든데?”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선생은 또 다르게 말했다.

“미국은 무슨, 돈 벌겠다고 퇴직금 받아서 서울 가서 사업한다고 그러던데, 어쨌든 그 정 선생이 영주하고 친했습니다. 영주도 좋아했던 것 같고요.”

김세민이 다시 물었다.

“그 정 선생은 담당이 무엇이었습니까?”

“아, 체육 선생이었습니다. 태권도를 잘했어요. 자기 말로는 전국 체전에서 메달도 땄다고 하던데 4단이라고 하든가? 군대도 장교로 제대했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학교에 남아 있는 신상 자료를 받았다.

사진도 복사를 여러 장 했고 이제는 연고지를 찾아 나설 때였다.

방 도사의 예언대로 놈의 본가는 서울이었다.

일단은 본적이 있는 서울의 서대문구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이 타고 다니던 88스텔라 차량의 번호도 학교에 등록이 되어 있어서 문 경장이 즉시 전국에 지명 차량 수배를 했다.

서울로 떠나기 전 영주 모친과 방 도사를 동래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영주 어머니? 지금 서울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기초 조사도 끝냈고 놈의 차량과 사람은 이미 전국에 수배를 내렸습니다. 단순히 사기 사건으로 수배를 내렸으니까 영주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영주한테 해는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김세민이 납치범 정호식을 전국에 지명 수배를 내렸다고 하니까 영주 모친이 펄쩍 뛰었다.

“무신 소리! 절대로 안 돼요! 그놈이 다니다가 지가 수배된 걸 알면 우리가 경찰에 알렸다고 오해해가 영주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우얄라꼬예? 빨리 수배를 취소해 주이소, 우짜든둥 김 주임님이 몰래, 직접! 잡아야 돼요…… 아니, 안 잡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우리 딸래미만 무사히 돌아오면 다 괜찮아예. 우리 딸래미 안전이 제일 우선이지, 범인 그깟 놈이 누구든 잡히든 말든 내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영주 어머니가 정호식이 수배되었단 말에 히스테리적인 발작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방 도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수배 내려서 잡으려고 이 난리를 피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첫 번째 놈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 놈이 요구한 조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절대 경찰에 알리지 마라. 알리는 순간 영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협박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세민은 자신이 너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즉시, 수배는 해제시키겠습니다. 반드시 제 손으로 놈을 잡아서 영주를 데려오겠습니다.”

서울로 출발하면서 김세민은 특수대의 이선유 경감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홍 형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홍 형사는 원래 김 주임 팀이었잖아? 데리고 가도 돼. 요새 여기는 개점휴업이니까 말이야. 뭐 특수대를 없애고 다시 본쳥 수사국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다들 뒤숭숭한데 차라리 잘되었지. 본인도 좋대.

이선유 경감이 쉽게 승낙을 해 주어서 김세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홍 형사하고 직접 통화를 했다.

-아이구, 우리 주임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제가 아주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괜히 미안하니까 너스레를 떠는 것 같았다.

“야! 우리가 뭐 사귀는 사이냐? 뭐가 보고 싶다고 이렇게 징징거려!”

“에이, 주임님도. 반가워서 그러죠!”

“됐고, 지금 서울로 출발하니까 넌 서대문 구청에 가서 우리가 팩스 보내 준 정호식이 있지? 이놈 본적이 홍제동이야, 연고지 조사부터 먼저 하고 있어. 서대문에서 만나자.”

-넵! 알겠습니다. 당장 가서 조사하겠습니다. 아 강 형사도 좀 끼워 달라는데요?

“이 경감한테 허락받고 오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그래 나중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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