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50화 (250/869)

제250화

#250. 낭중지추

절도범 홍동길을 데리고 놈이 살고 있다는 온천2동 L 아파트에 다녀온 형사들과 파출소 직원들은 그동안 홍동길이 훔쳐 온 각종 패물을 임의 제출 형식으로 갖고 돌아왔다.

대충 봐도 상당한 양이었다.

L 아파트는 주변에선 상당히 고급 아파트라 처음엔 다들 ‘저놈이 어떻게 저기 살지?’ 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이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장물이 많았다.

또한, 거주지가 온천2동이었기 때문에 중간 지대에서 1동과 3동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범행을 저질러 왔던 것이었다.

직원들은 그간 놈을 잡느라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던지고 갔다.

“야 이 새끼야, 니는 뭐 한다꼬 이래 장물을 처박아 놨노? 니 때문에 괜히 보석상 뒤진다고 X뱅이만 X나게 칫다 아이가!”

“나는 저 시X새끼 때문에 날도 추븐데 맨날 천날 잠복한다고 발가락에 동상까지 걸맀다!”

“지랄하지 마라! 부산에서 동상 걸리는 놈이 어디 있노!”

“크큭.”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던 홍동길이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하는 소리를 내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전부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소장님, 이 새끼 이거 직이도 됩니까?”

“잠시만요, 나 뭐 좀 물어보고. 도둑놈아. 너 이거 장물 왜 빨리 처분 안 했냐?”

“뭐 짜달시리 다른 이유는 없고요, 좀 알아보니까 장물 꼬리표 떼는 데 1년 걸린다고 하길래……그냥 X나 버텼다 아입니까.”

“꼬리표? 심 대장, 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아 그게, 장물 품표 말하는 거 같은데요.”

“장물 품표가 왜요. 장물죄 공소 시효가 7년인데, 1년은 또 무슨 말입니까?”

심 대장의 이야기는 이랬다.

대부분의 경찰서에서는 지방청 장물반에서 내려온 장물 품표를 일선 파출소에 내려보내면 그때부터 손을 뗐고, 파출소는 또 관내 금은방이나 전당포, 기타 고물상 영업 허가를 받은 업소에 내려보내고 면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하려면 일선 파출소 직원들이 순찰을 나갔을 때 그런 부분들을 확실히 체크를 해야 하는데, 따와이에 눈이 먼 나머지 가서 헛소리 몇 번 하다가 사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올 때는 봉투나 하나 받아서 나오면 아예 신경을 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금은방 등에서는 딱 일 년만 장물 품표를 철해 두다가 기한이 지나면 그 전 것은 다 폐기를 해 버리고 다시 새로 일 년 치를 철하는 식이라는 것이었다.

“소장님 말씀이 뭔지 다 압니다. 진짜 제대로 할라카믄 시효가 7년이니까네 경찰서나 파출소에서도 보관철을 해가지고 일일이 대조를 하는 게 좋기는 좋지예, 근데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었심니다. 딱히 위에서 챙기는 분위기도 아니었고예.”

“위에서 안 챙긴다고 안 합니까? 그럼 위에서 오다가 안 내려오면 음주 운전도 봐주고, 살인강도도 그냥 넘어가야 됩니까?”

“…….”

“다른 사람, 주위 환경 탓하기 전에 이건 일선에서 현장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책임이 제일 큽니다. 애초에 순찰 나갔을 때 제대로 확인했으면 됐을 것 아닙니까!”

김세민은 직원들 앞에서 드물게 화를 냈는데, 정말 화가 났다기보다는 애초에 방지할 수 있었던 범죄가 결국에는 근무 태만으로 인해 빚어졌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또한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더라도 쉽게 개선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연락을 받고 온천 3동에서도 피해를 본 주민들이 몰려왔다.

“아이구야, 내 결혼반지!”

“참말로 다행이데이, 다행이야…… 이거 이자삐리가꼬 눈앞이 캄캄했는데, 아이구.”

좋다고 펄쩍펄쩍 뛰는 사람, 패물을 손에 꼭 쥐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도둑맞은 패물이 보이지 않자 대뜸 홍동길의 멱살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니 퍼뜩 말해라이. 우리 신랑 시계 그거 어따 팔아 묵었노? 어따 팔았냐고!”

멱살을 쥐고 흔들며 하소연을 하는 아줌마에게 홍동길이 물었다.

“크억, 켁……켁…… 이거 좀 놓고 이야기하소! 시계? 아줌마 집이 어딘데요?”

“우리 집? 온천 3동인데…… 와? 한 번 더 털라꼬? 이런 개같은 자슥! 묵고 죽을라 캐도 인자 아무것도 없다 알겠나!”

“그기 아이고요. 온천 3동이면 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니가 아이모 누군데!”

“온천 3동은 몇 놈 될 끼라예. 돌아댕기다가 제가 본 아들만 두 놈입니다. 온천 3동이 워낙 물이 좋다 아입니까. 크큭.”

그 소리를 들은 아줌마가 성질이 뻗쳐서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런 빌어 처먹을 새끼, 지금 쪼갰나? 어? 쪼갰냐고!”

“하이고 아지매, 그만 하이소! 요 지금 파출솝니더! 그라고 그 재떨이 내려 놓으소! 아지매도 은팔찌 차고 점마 옆에 앉고 싶은교?”

“아이 순사 아재들요, 점마 방금 하는 말 못 들었는교! 빨리 도둑놈 잡아오소! 얼릉 우리 아저씨 시계 물어내라꼬!”

여자가 악을 바락바락 쓰는데 직원들은 화를 낼 수도 없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주인을 찾은 장물은 확인 후에 전부 다 가환부를 하였다.

후일 재판할 때 다시 판사가 정식으로 장물 환부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서류상으로 완결이 되는 것이었다.

다음 날은 출근해서 온천 1파 관내 금은방하고 전당포 숫자를 파악하니 십여 군데나 되었다.

전부 다 장물 품표를 들고 파출소로 오라고 했더니 자기네들끼리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지방청에서 내려온 장물 품표를 제대로 챙겨서 철해 두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으려니까 쉽게 눈에 띌 리가 없었다.

“아이 X발, 한 달짜리 파출소장 주제에 설치기는 X나 설치네. 뭐 전처럼 건달들이나 조지고 다닐 것이지, 왜 가만있는 우리까지 들쑤시노?”

“이거는 기분 문제다 기분 문제! 우리가 무슨 장물애비가! 와 의심을 하고 그라는데!”

다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파출소에 모아 놓고 업주들 상대로 장물 취급에 대한 주의 사항을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파출소 문이 열리더니 XBS 민수진 기자가 카메라를 대동해서 들이닥쳤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희들은 불시에 온천 1파출소를 방문했습니다. 마침 저기 소장님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뭔가 얘기를 하고 계시는데요? 무슨 얘기인지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직원들의 만류에도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헤치고 김세민 앞까지 와서는 얼굴에다 마이크를 들이댔다.

“아니, 저기…….”

“소장님! 이번에 주택가 빈집만 골라서 털어 오던 특수 절도범을 현장에서 일주일 잠복을 해서 검거를 하셨다고 주민들이 칭찬 릴레이 신고를 해 주셨는데요, 그럼 이제 온천장에서는 절도범이 다 없어진 건가요?”

“…….”

김세민은 생각이 복잡했다.

‘설치지 말라고 위에서 그렇게 지랄을 했는데, 어쩌지?’

“소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에라 모르겠다. 안 되면 뭐 부산에 알 박고 살지 뭐. 서울 간다고 무조건 꿀 빠는 것도 아니고.’

김세민은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검거한 절도범의 말에 따르면 아직 온천장에 몇 명의 활동 중인 절도범이 더 있다고 합니다. 절대 집을 비우지 마시고 외출할 때 불을 켜 둔다고 해서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이번에도 오히려 절도범이 불이 켜진 집만 집중적으로 노렸습니다. 그리고 패물이나 귀중품은 절대 안전한 곳에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은 뭘 하는 중이셨나요? 이분들은 직원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이분들은 저희 관내에서 전당포나 금은방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앞으로 장물로 의심되는 물건이 들어왔을 때 저희하고 어떻게 협조를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소장님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발령받아 오셨지요?”

“예? 예.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어제 검거한 절도범 외에도 소장님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시고 나서는, 중요한 사건들을 많이 해결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온천장에 오랜 뿌리를 박아 온 조직 폭력배들도 일제 소탕을 했고, 지난번 홍영주 양 납치 사건만 해도 직접 서울까지 가서 홍영주 양을 무사히 구출하고 범인도 검거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

“저를 포함해서 지금 부산 시민들은 소장님같이 훌륭한 분이 다시 서울로 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다시 서울로 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순간 김세민은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런 미친X이! 가만, 저번에도 지방 방송인 줄 알았는데 볼 놈들은 다 봤다고 그랬지? 에라 모르겠다.’

김세민은 이왕 방송을 탄 김에 하고싶은 말이나 실컷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부끄럽네요,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적격자로 찍혀서 문책성 발령을 받아 온 거니까요.”

“네에? 그게 정말인가요?”

“사실입니다.”

“그럼 다시 서울로 가시는 일은…….”

“글쎄요, 사람 일이란 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원한다고 해서 다시 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처음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발령받기 전까지는 부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낯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좀 지내다 보니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직에 매인 입장이라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저는 현재 부산 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방송의 여파는 컸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걱정하는 전화가 왔고, 이문호 차장까지 연락이 왔다.

-야 김 주임! 너 그렇게 막 나가도 괜찮은거야?

“에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기자가 서울 어쩌고 들먹거리니까 갑자기 열이 받아서…….”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차라리 잘 된 거야. 지금은 무너지는 담장 아니냐. 내년에 새로 집 지을 때 올라오면 되지! 아, 난 이번 겨울에 먼저 올라간다.

“아, 그렇습니까?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그저 원대복귀하는건데 축하는 무슨, 아무튼 내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말고 그저 즐겁게 지내라고. 조만간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본청장실 양 경사도 전화가 왔다.

-사수님! 괜찮으세요?

“뭐야, 너냐. 안 괜찮으니까 전화 끊자.”

-에이,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왜 그러세요. 어제 방송 보니까 좀 성질이 난 것 같던데요?

“티 많이 났냐?”

-완전.

“에이 X발, 난 모르겠다! 그냥 신경 끌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야 같이 지낸 시간이 있으니 알아보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아 몰라, 그 이야긴 그만하자. 갑자기 전화는 왜 했는데.”

-청장님한테 경찰 관련 보도는 전부 스크랩해서 올라가는 거 아시죠?

아침에 공보실에서 스크랩하고 있길래 제가 순서를 좀 바꿨죠.

“무슨 소리야?”

-제가 사수님 보도를 맨 위에 올려놨어요.

“그래?”

-네. 청장님이 보시고는 잘했다고 표창 하나 내려주라고 해서 전화 드렸어요.

“야 잘됐네. 근데 나는 표창 점수가 만점이라 필요가 없는데…… 우리 파출소 순경 하나 주자. 걔가 이번에 고생 진짜 많이 했거든…… 지금 공적 조서 만들어서 우리 지방청 안 거치고 너한테 바로 줄 테니까 표창은 지방청을 거쳐서 하달해 줘라. 그래야 지방청 인사계에서 고과 점수에 올리지.”

-사수님…….

“왜 부르는데.”

“본인보다 부사수 챙기는 습관은 여전하시네요. 그런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맘이 놓입니다.

“변할 게 뭐 있겠냐, 서울에 있든 부산에 있든 나는 난데. 아무튼, 신경 써줘서 고맙다, 또 보자!”

전화를 끊고 나서 오 순경을 불렀다.

“본청에서 연락이 왔는데 경찰청장 표창 하나 내려준다고 하니까 빨리 공적 조서 한 부 만들어서 우리 경무과에는 말하지 말고 바로 경찰청장 부속실 양 경사 앞으로 팩스 보내 줘.”

“예? 경찰청장 표창을예?”

파출소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그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 있는 경찰관이 본 청장 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표창 점수도 지방청장이 3점이고 서장이 1점인데 반해 본 청장은 무려 5점이나 되었기 때문에 다음번 승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와…… 이거X나 부럽네. 오 순경! 니 너무한 거 아이가?”

“뭐가예?”

“요 봐라 요! 느그 고참들은 아무도 본 청장 표창 구경도 못 했는데, 소장님 덕분에 공짜로 한 개 얻어걸리고 말이야.”

“맞네, 점마한테 표창을 와 주노! 이번 사건도 점마 관할에서 일어난 거 아이가! 표창이 아이라 관리 소홀로 징계를 때리야지!”

“하이고 참 내, 그만들 좀 하이소!”

“우하하핫!”

“소장님요, 이거 오 순경이 막내라꼬 너무 이뻐하시는 거 아입니까?”

직원들이 부러운 나머지 짖궂은 농담을 한마디씩 건넸다.

잠복 근무는 비록 힘들었지만 범인 검거라는 확실한 성과를 낸 이 시점에서 직원들간의 유대는 더할 나위 없이 끈끈해져 있었다.

* * *

저녁 즈음 퇴근하려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마침 윤희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 또 내가 먼저 전화했어요!”

“윤희연 씨, 오랜만입니다.”

“어째 우린 항상 첫인사에 오랜만이라는 말을 하게 되네요.”

“그런……가요?”

“뭐 한가한 것보단 바쁜 게 낫죠.”

“그런데 무슨 일로?”

“오후 수술 스케줄이 하나 캔슬되서 오늘 일찍 끝났거든요. 저녁이나 같이 할래요?”

“좋죠. 어디로 갈까요?”

“저번엔 내가 아는 곳으로 갔으니 이번엔 김세민 씨 가자는 데로 갈게요.”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김세민 씨는요?”

“전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윤희연 씨 먹고 싶은 거로 먹죠.”

“뭐야 진짜, 나는 아무거나 다 좋다 이러는 사람은 좀 그런데.”

“그냥 예의상 한 번 말해본 겁니다. 벌써 생각해 놨어요.”

“……”

“지난번에 보니 회를 잘 드시던데, 우리 관할에 일식집이 하나 있거든요.”

“와! 나 일식 진짜 좋아해요!”

“잘됐네요. 여기 온천역 쪽인데, 지하철 타고 올 수 있죠?”

“당연하죠! 장소만 말해요.”

“지하철 내려서 온천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온천 극장 옆에 [북해도]라고 보입니다. 제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니에요, 추운데 들어가서 기다려요. 지금 출발해요, 금방 갈게요!”

김세민은 미리 북해도에 도착해서 모둠 도로를 주문하고는 일행이 오면 내달라고 했다.

도착까지는 아직 여유가 좀 있어서 뜨거운 정종 대포 한잔을 주문했더니, 펄펄 끓는 정종을 맥주잔에 붓고는 그 위에 복 껍질이라면서 서너 점을 올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금세 불이 붙어서 파랗게 일렁거리는데 주인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사케가 아무래도 겨울에는 좀 독합니다. 복 껍질을 넣어 주면 알코올 중화도 시키고, 또 불을 붙여서 알코올을 좀 태우고 나면 술이 훨씬 부드러워지지요. 도수로 따지면 한 5도 이하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부산에 와서 좋은 점이 바로 이런 새로운 먹거리들이었다.

서울에서 늘 먹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음식들이 많았고, 그런 새로운 것들이 김세민의 생활에 알게 모르게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정종만 해도 서울에선 따끈하게 데워서 나오는데 부산은 아예 펄펄 끓는 것을 내놓았다.

너무 뜨거워서 유리 맥주잔에 손을 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잔이 조금 식어서 겨우 한 모금을 마시려고 하는데 어느새 윤희연이 들어오더니 자리에 털썩 앉았다.

“뭐야, 치사하게 혼자만 마시고 그러기 있어요?”

“아, 이건 그냥 스끼다시. 아직 메인 디시는 안 나왔어요.”

“오~영어 잘 하네요? 미국 유학 갔다 오기는 온 모양이네?”

“유학은 아니고 얼떨결에 교육을 좀 다녀왔습니다.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아요? 내가 이야기했었나?”

“뭐야, 진짜 몰라서 물어요? 서울에서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부산으로 간 경찰, 대 활약하다!”

“……봤어요?”

“뉴스뿐만이 아니에요, 무슨 시사 토론 이런 데서도 한 번씩 나오고 그러던데? 김세민 씨 TV도 안 봐요?”

“글쎄요, 집에 가면 밀린 잠자기 바빠서요. 그리고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아주 그냥 손발이 오그라드는 게…….”

그러자 윤희연도 ‘으으’ 하는 소리와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김세민은 모처럼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핫!”

“헤헤헤.”

“윤희연 씨, 사람 살리는 재주만 있는 줄 알았더니 사람 웃게 만드는 재주도 있네요. 얼마 만에 이렇게 크게 웃어 보는 건지.”

“김세민 씨는 심각한 거 안 어울려요, 이렇게 잘 웃는데. 뭐 직장에서 심각한 건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고, 한번 이야기해 봐요. 대체 서울에서 왜 쫓겨온 거예요?”

“그건…….”

김세민은 그동안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윤희연도 귀를 쫑긋 세우고는 숨소리조차 의식적으로 조용히 내는 듯 김세민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뭐…… 대충 이런 거죠.”

“낭중지추.”

“예?”

“주머니 속의 송곳, 딱 김세민 씨 같아요.”

“…….”

“뭐,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처럼 어딜 가나 실력으로 우위를 정하는 데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런가요.”

“저도 예전에는 불편할 때가 있었어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활동할 때, 딱히 남들보다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럴 때마다 고깝게 보는 시선은 항상 존재하더라고요.”

“힘들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그랬죠.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게 되더라고요. 물론 나는 병원, 김세민 씨는 경찰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는 없겠지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것보다는 김세민 씨처럼 자기 기준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휩쓸려 다니기만 하는 사람들에겐 기준이 확실하고 추진력도 있는 김세민 씨가 기댈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거고요. 그냥 자유분방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부산에서 보내는 이 시간들이 김세민 씨에게 훗날 어떤 의미가 될지 정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김세민 씨, 당신이에요.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변치 말아요.”

‘그러고 보니 양 경사도 아까 그런 말을 했었지.’

김세민은 어렴풋이나마 앞으로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실은 아까 서울에 있을 때 부사수가 연락이 와서는 비슷한 말을 했거든요.”

“뭐라고 했는데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고요.”

“그것 봐요, 그 부사수 분은 김세민 씨를 기댈 곳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다른 부사수 분들이나 같이 일하는 분들 중에도 분명히 많이 있을 거예요. 나도 그렇고. 아, 나는 좀 다르긴 하지만…….”

“예? 무슨?”

윤희연은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아휴, 하도 떠들었더니 배가 무진장 고프네. 아까 점심도 대충 때웠는데. 음식은 언제 나와요?”

“이야기하면 가져다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아까 전화할 때 말인데요.”

“응?”

“대체 누굽니까? 윤희연씨한테 아무거나 좋다고 했던 놈이.”

“네? 풉, 어머.”

“내가 형사할 때 취조는 좀 해 봤거든요. 빨리 이야기하면 빨리 끝납니다. 누구죠?”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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