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259. 냉동 창고
퇴근 시간이 되어 그때까지 들어온 영전 축하 화분을 세어 보니 50개가 넘었다.
일단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화분에 붙은 보낸 사람의 팻말은 떼어 내고 따로 정리를 하라고 한 후에 나머지는 사무실 창틀에 놔두거나 직원들이 퇴근 시에 가지고 가라고 지시를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홍지수가 보낸 ‘황금일향’이란 난은 책상 위에 그냥 두고 싶었다.
난의 모양도 잎사귀 가장자리가 황금색으로 피어 있고, 꽃 향도 은은하게 아주 좋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왠지 난이 마음에 들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이종업 경사가 물어 왔다.
“계장님! 저녁에 다른 약속 없으시지예?”
“네. 그런데요?”
“그럼 오늘 저녁은 저하고 같이 퇴근하입시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싶어 그렇게 하자고 했다.
퇴근을 하고 경찰서정문에서 택시를 타고 온천장으로 갔다.
온천 파출소를 그냥 지나쳐 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참 일이 많았지.’
저녁은 온천 시장 안에 있는 양 곱창구이로 하기로 했다.
시장 안을 들어서자 벌써부터 구수한 곱창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여기 가게들은 나름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일단 바닥도 흙바닥이었으며, 낡은 드럼통을 뒤집어 세워 놓고 숯불을 피워 양 곱창을 구웠다.
입구는 좁았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엄청 넓었고 사람들이 무척 바글바글했다.
다들 퇴근하고 양 곱창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는 것 같았다.
“아줌마! 여기 특양 3인분 주이소!”
이 경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소리부터 질렀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조용히 말하면 들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분위기가 괜찮지예?”
“그러네요, 소주 한 잔 걸치기엔 딱인데요?”
“아, 소주는 다음에 하시는 게 좋겠심니다.”
“왜요?”
“실은 오늘 계장님하고 업태 위반 업소 몇 군데를 단속할라꼬 같이 오시자 했다 아입니까.”
“업태 위반? 대상 업소가 어딘데요?”
“가라오케 아시지예? 일본에서 들어와가지고 동구 텍사스에서 제일 먼저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은 마 전국에 퍼져 나갔심니다. 처음에는 일본처럼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이 있는 데서 서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그랬는데, 점점 칸막이가 있는 방을 만들고 술을 팔고 하는 식으로 변질이 되더라고예. 마 아무래도 사람들이 술이 한잔 들어가야 노래가 술술 나오지 않겠심니까? 그라고 노래방 기계도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개발이 되가지고 인자는 화면에 노래 가사가 나오는 건 물론이고 지가 부르는 장면이 영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원하면 녹음을 해서 자기 노래를 가지고 갈 수도 있심니다.”
“그렇군요, 근데 원래 우리가 단속을 합니까?”
김세민이 물어보자 이 경사가 다시 설명했다.
“그래도 되긴 한데 지금은 구청 식품 위생계에서 자기네들이 단속을 해서 우리한테 고발장이 넘어오고 있심다. 그라모 그거 보고 우리가 현장에 나가서 확인을 한 후에 수사과 조사계로 넘기면, 조사에서 출석 요구서 보내고 업주 나오면 형사 입건해서 벌금 물리고 하는, 그런 구조로 하고 있심니다.”
“뭔가 우리가 구청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 같아서 별로네요.”
“음~ 꼭 그런 것만은 아입니다. 노래방 영업은 신종 영업인데 워낙 인기가 좋아서 확산 속도가 빠르다 보니 식품위생법이 제대로 다 규정을 못 하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거든예.”
“지금 우리가 단속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업태 위반이지예. 지금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거는 단란주점, 유흥주점, 무도 유흥주점 딱 요 세 가지밖에 없는데 노래방이나 가라오케는 일반 대중음식점 허가를 가지고 영업을 하니까 그거를 문제 삼는 깁니다.”
“그럼 대중음식점 허가를 내지 말고 처음부터 단란주점이나 유흥 허가를 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기 다 세금 때문에 그렇다 아입니까.”
“세금요?”
“단란이나 유흥은 매출에 따라서 세금이 올라가는 방식이라 카문, 대중음식점은 과세 특례 업종이거든예? 신고하는 대로 세금을 받아 준다 아입니꺼? 세금이 하늘과 땅 차이라예.”
“그러니까 비싼 세금 무느니 업태 위반으로 단속이 되어도 벌금이 얼마 안 되니까, 차라리 그 벌금을 내고 계속 장사하는 것이 더 낫다. 뭐 이런 얘기입니까?”
“예 맞심니다. 우리 계장님, 머리가 샤프하시다고 그러더니 과연 대번에 업무 파악을 다 해 버리시네요. 오늘은 몇 군데 구청에서 고발 들어온 업소 가 보고 나서 들어가도록 하입시다.”
그때 잘 손질된 우윳빛깔 양이 마늘즙으로 먹음직스럽게 살짝 양념이 되어 나왔다.
숯불에 올리자마자 ‘치이익!’ 소리를 내면서 파란 연기를 내뿜기 시작하는데 배에서 마구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식감은 어떻게 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계속 먹게 되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깝네요, 이 정도 안주면 소주 몇 병은 거뜬할 것 같은데.”
“하하, 오늘만 날입니까? 조만간 또 같이 함 오시지예.”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 제가 늦었나 보네요. 죄송해요. 갑자기 예약도 안 된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자리 좀 정리해 주고 온다고 늦었어요.”
“응?”
김세민이 뒤를 돌아다보니 별장의 홍지수였다.
“아니? 홍 실장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사실은 낮에 여기 홍 실장이 전화가 왔었심니다. 계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이리로 모시고 나오라고 해서 지가 모셨심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계장님이 거절할지 모른다고, 밝히지 말고 모시고 나오라고 케서…… 죄송합니데이.”
“급하게 일이 생겨서 사실 계장님 말고는 상의 드릴 데가 없는데, 자꾸 제가 연락을 드리면 부담스러워하실 것도 같고, 또 둘이서 만나면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걱정도 되고 해서 이렇게 셋이서 만나면 괜찮지 싶어서 모시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송구합니다. 계장님.”
홍지수가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아니 괜찮습니다. 근데 급한 일이라면서요? 그 얘기부터 들어 봅시다.”
“저번에 계장님 처음에 우리 별장에 오셨을 때 안내하던 아가씨 기억이 나시는지요?”
김세민이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납니다. 상당히 어려 보이던…….”
“그 애가 실종되었습니다.”
“네? 실종이라뇨?”
“이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 그 애가 실종되었다고 아니 납치가 되었다고 믿고 있어요. 그저께 저녁에 손님 택시 태워 보내 드린다고 나간 아이가 오늘까지 연락이 없다가, 낮에 속달 우편이 왔습니다. 자기는 잘 있고 지금 일본으로 돈 벌러 간다고 언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에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평소에 일본으로 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홍지수는 펄쩍 뛰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요. 다른 애들은 몰라도 은수 걔는 일본에 갈 이유가 없어요. 내가 어릴 때부터 친동생처럼 데리고 키운 아이인데, 그 애도 나처럼 고아예요. 어릴때부터 같은 고아원에서 친자매처럼 같이 자랐는데, 무슨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일본을 가다니요? 파출소에 가서 납치되었다고 신고를 하니까 저에게 한다는 소리가 편지가 왔는데 무슨 납치냐고, 여기 온천장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꿈이 일본 가서 돈 버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는데 그만 억장이 다 무너졌습니다.”
“…….”
“소장님 한 분 바뀌었다고 그새 그렇게 파출소 분위기가 달라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 전 계장님 말고는 믿고 의지할 때가 없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홍지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을 쏟았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김세민은 내심 짚이는 데가 있었다.
아까 낮에 탱크가 말하던 감천의 냉동 창고, 거길 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만 먹고 일어납시다. 가 볼 데가 있어요.”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하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장님 어딜 가신다꼬요?”
“가면서 설명할게요. 자 갑시다.”
홍지수가 끌고 온 차에 같이 타고 김세민은 감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감천을요?”
“짚이는 데가 있어서 그래, 태평양 냉동 창고를 찾아야 돼요. 서두릅시다.”
홍지수는 원래가 부산 출신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이 경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도시 고속 도로를 달려서 자갈치에서 감천 방향으로 달렸다.
가면서 김세민은 먼저 홍지수에게 탱크한테 들은 얘기들을 해 주었고, 자신이 태국에 있을 때 그곳까지 납치되어 온 여자들을 구출한 경험도 얘기를 해 주었다.
“하따 야, 우리 계장님 참말로…… 내 소문은 듣긴 했어도 이래 자세하게 듣는 거는 처음이네. 대단하십니더.”
이 경사가 김세민이 들려준 얘기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홍지수는 그냥 눈만 동그랗게 뜨고 김세민의 얘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온 끝에 저 멀리 감천항이 보였다.
감천항은 부산역 뒤 부두와는 달리 가로등도 거의 없었고 어두컴컴한게 마치 도둑놈 소굴 같다는 인상마저 들 정도였다.
이 경사 말에 따르면 여기는 러시아에서 주로 고철이나 냉동 수산물 등이 많이 들어오고 여객선이 다니는 항구는 아니라고 했다.
감천항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니 금세 태평양 냉동 창고가 보였는데 가까이 가 보니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컸다.
“이제 우짜실 겁니까? 쳐들어갈 깁니까?”
“아니, 오늘은 그냥 정찰 나온 겁니다. 그리고 이 정도 크기의 사건을 우리끼리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아무튼 확인을 했으니 내일 동부지청에 가서 차장 검사한테 가서 도움을 요청할 겁니다. 검찰이 움직이면 서부서에서도 아마 지원을 받을 수 있겠죠.”
그러자 홍지수가 놀라는 눈치로 이야기했다.
“동부지청이라면…… 혹시 이문호 검사님?”
“아십니까?”
“별장에 몇 번 오셨는데 아주 아는 것도 많으시고 점잖으세요. 그리고 농담도 잘하시고…… 저는 딱 한 번 자리했는데 기억에 남았습니다. 근데 자주는 안 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 경사가 느닷없이 밀항선 얘기를 꺼냈다.
“퍼뜩 생각난 건데,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 탈라모 다 여기로 와야 된다 카데예.”
“밀항선? 그래 맞아! 내가 탱크 그놈들 잡을 때도 목포나 여수에서 밀항선을 띄우더라고, 그래서 동남아까지 컨테이너에 여자들을 싣고 갔었지, 아주 죽일 놈들이야.”
김세민이 컨테이너선 얘기까지 꺼내자 홍지수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아유! 은수야! 제발 내일까지는 버티고 있어라! 설마 배 타고 떠난 것은 아니겠지? 은수야! 아이구! 내 속이야!”
김세민과 이 경사는 괜한 말을 꺼냈나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
“근데 계장님, 다 좋은데요. 이거 오늘 밤에라도 밀항선 띄우면 내일 덮쳐도 말짱 도루묵 되는 거 아잉교?”
김세민도 아차 싶었다.
오늘 밤에라도 배가 뜨면 내일 덮쳐 봐야 이 경사 말처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일단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홍 실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차를 저기 철조망 옆에 바짝 붙여요. 내가 안에 들어가서 확인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훌쩍…… 혼자 가시게요?”
“그게 더 나아요. 만약에 내가 1시간이 지나도 안 나오면 시경 상황실에다 사실대로 보고하고 지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이 경사는 여기서 홍 실장하고 기다리고 있고.”
“근데 우데로 드갈라꼬예?”
김세민은 손가락으로 철조망을 가리켰다.
“엥? 제법 높아 보이는디 저걸 넘으실라고예?”
“차 위에 올라가서 넘으면 됩니다. 도둑들도 다 그렇게 넘어 다니는데 경찰이 못 넘는다면 쪽 팔리지.”
홍지수가 차를 철조망에다 바짝 붙이자 김세민은 얼른 차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옆의 철조망에 매달렸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철조망 위에 걸터앉은 뒤 몸을 날려 반대편 안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와…… 무슨 몸이 저래 날쌔노? 이야……,”
지켜보던 이 경사가 혀를 내둘렀다.
안으로 들어간 김세민은 불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만 달려서 거대한 냉동 창고 앞까지 근접했다.
마침 앞에 세워 둔 지게차 운전석에 냉동 창고 로고가 붙은 점퍼와 모자가 있길래 얼른 집어서 입었다.
먼저 냉동 창고 주변을 한 바퀴 뛰어서 살펴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커 보였는데 아파트 10층 높이는 족히 되는 것 같았고 출입구는 각 면마다 한 개씩 있었다.
뒤쪽 출입구가 반쯤 열려 있기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갑자기 ‘웅웅!’하면서 귀가 먹먹할 정도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래라, 그건 그렇고 엄청 춥네.”
다행히 야간작업은 없는 듯이 보였고 내부에는 각종 건어물이 산처럼 높게 쌓여 있었는데
품목별로 전부 칸칸이 정돈되어 있었다.
김세민은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한쪽에 컨테이너 박스 두 개가 놓여 있고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밖에는 건달로 보이는 놈이 서너 명이 의자에 앉아서 나무 상자를 뒤집어 놓고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저긴가. 조금만 기다려 볼까.’
한 10분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잠시 후에 컨테이너 안에서 좁은 창문에 사람의 얼굴이 비치고 뭐라고 말을 하니까 고스톱 치던 건달 중 한 놈이 일어나서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야 이년들아! 이게 오늘 저녁에는 마지막 화장실이여! 화장실 가고 싶은 년들은 싸게 싸게 튀어나오랑께!”
호남 말씨였다.
그렇다면 탱크가 데리고 있었다는 그놈들이 맞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