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271화 (271/869)

제271화

#271. 쓰리 쿠션

산업국장이 서장에게 싹싹 빌며 사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최 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장님! 구청장님 오셨는데요?”

“구청장? 오늘 뭔 날이가? 뭐 한다꼬 구청에서 자꾸 몰리 오노? 사람 귀찮구로.”

서장이 툴툴거리자 구청장이 얼른 들어와서는 너스레를 떨었다.

“와이고! 우리 서장님! 오늘은 신수가 훤하시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교? 지도 같이 좀 아입시다.”

“좋은 일은 무신 좋은 일? 구청에서 자꾸 귀찮게 해서 짜증나 죽겠구만…… 그래 공사다망하신 구청장께서 아침부터 우짠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는교?”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거주춤하게 대충 고개만 숙이는 시늉을 하면서 악수를 했다.

구청장이 2급이라도 네놈한테 고개 숙이기는 싫다는 자존심의 표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청장은 가지고 온 쇼핑백을 꺼내서 서장의 탁자 위에 놓았다.

“뭔데요 이게.”

서장이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아 이기 함 보이소. 지가 이번에 일본에 오사카시하고 자매결연 한다꼬 갔다 오문서, 우리 서장님 생각이 나서 공항 면세점에서 최고로 좋은 걸로 가져왔다 아입니꺼? 이기 발렌타인 30년짜리하고 조니워커 블루라 카는 겁니다. 서장님 약주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지가 어찌 그냥 공항을 나올 수가 있겠심니꺼? 이거는 비싼 거이까 놔 놓고 조금씩 홀짝홀짝 하이소.”

“그래 귀한 거라면서 혼자 놔두고 아끼가 잡숫지 머할라꼬 가 오는교? 그라고 술 이거 무가 머하노? 몸만 배리지, 도로 가 가이소.”

“에헤이, 또 이란다! 너무 그라지 마시고, 우리 산업국장 이 친구 좀 잘 봐주이소. 그 밑에 직원들이 한둘이도 아인데, 마 작정하고 눈까리 빼 묵자고 달라들문 못 막심니다. 여기 국장도 물어보이끼네 일부러 그란기 아이고 벌겋게 두 눈 뜨고 당한 거라예. 그라이 좋게 선처해 주시소. 지는 이만 또 행사가 있시가꼬 갑니데이! 또 보입시다.”

그렇게 구청장이 나가고 나자 서장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 참 실없는 양반이네, 구청장씩이나 달고 뭐 한다꼬 저 무거운 거를 들고 다니노?”

그러면서 벨을 눌렀다.

뾰르르륵 뾱뾱뾱!

“네 서장님!”

“저거 구청장이 가지고 온 긴데 가서 방범 지도 계장 갖다주고 오이라.”

“예?”

“못 들었나? 김 주임 어제 단속한다고 고생했으니까 갖다 주고 오라고.”

“아 그래도…… 구청장님 선물을…….”

“뭐하고 섰노? 빨리 갖다주러 안 가나!”

“네 네!”

“그라고 산업국장 양반? 인자 내 다 알아들었시니까 가서 일 보소! 구청에 국장이 여기 서장실에 자꾸 들락거리문 밑에 직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이요. 그라고 당신 부탁한 거는 당장 확답은 못 주고 일단 함 생각해 보입시다. 나가 보소.”

방범 지도계로 술을 가지고 내려온 최 양은 서장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전했다.

“가만가만, 니 지금 서장님이 한 말 하나도 안 빼고 그대로 다 전한 거 맞제?”

이 경사가 두 번 확인을 했다.

“하 이 새끼 봐라, X발 구청장이란 새끼가 가벼운 걸 가져와야지 이래 무거운 걸 갖다 주면 뭐 술 먹고 뒈져라 이 소리밖에 더 되나? 내 이거는 그냥 몬 넘어간다.”

그러더니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아 조합장! 내 경찰서 방범과 이 경산데요, 당신 뭔 일을 그따구로 하고 있어! 구청장이 가지고 온 그 술, 그거 당신이 보낸 거 맞지! 이 덜떨어진 양반아, 갖고 올 게 술 밖에 생각이 안 나드나? 술보다 가볍고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지금 우리 서장님보고 술이나 많이 쳐묵고 일찍 디지라 머 그런 뜻으로 가져온 거 맞제?”

-하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혀 그런 의도가 아입니다. 진짜 좋은 술이라서 한번 맛이라도 보시라고…….

“어이, 당신 돌았나? 알만한 자슥이 와이래 진상이고? 아무튼 인자 당신이나 구청장이나 또 들락거리면 모양이 안 좋은 건 알제? 그라이까 스리 쿠션으로 가자고.

-스리 쿠션예?

”우리 영감이 경찰서 치안 자문 위원장인 온천 백화점 사장하고 친하다 아이가. 글로 한번 통해가 스리 쿠션이라고. 뭔 말인지 알아들었제? 또 헛짓거리 하면 두 번은 안 참는다. 알겠나!”

전화를 끊고 난 동래구 요식업 조합장 강칠구는 서둘러 봉투를 준비해서 온천 백화점 사장인 명이수를 찾아갔다.

“회장님! 사정이 지금 급하게 돼 가지고예, 한 번만 도와 주이소. 이번에 틀어지모 이 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잘못하면 형사 입건까지 될 수도 있심니더.”

“내보고 머 우짜라고?”

“서장님하고 인연이 깊으시다 아입니까? 우째 잘 해 갖고 이 봉투 좀 전달해 주시소.”

명이수 사장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그냥 덜렁 이 봉투 갖다주모 약간 임마 심부름꾼 맹키로 되는 거 아이가? 그래 생각하이 또 X같네…… 에이 모르겠다, 이 판에 별장 가서 술이나 한잔 걸치지 뭐.’

판단이 그렇게 서자 명 사장이 강 조합장한테 말을 꺼냈다.

“그래 무신 말인지 내 다 알았다. 긴데 덜렁 가서 봉투만 내밀었다가 안 받는다 카문, 한마디로 X 된다 아이가? 그라이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거절 못 할 상황을 만들어야 안 되겄나?”

“예예 맞심다. 비용은 제가 다 댈 테니까 어디 가서 서장님 모시고 술 한잔하시지예?”

말이 떨어지자마자 명 사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술값은 니가 책임진다꼬 분명히 말했다이?”

“당연하지예, 여부가 있겠심니까? 얼릉 전화 하이소.”

똑똑!

“응 뭐고?”

“서장님! 치안 자문 위원장님 전화 왔습니다. 2번입니다.”

“어, 돌리라.

아 여보쇼? 아이구 회장님!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고, 사업이야 날로 번창하실 끼고, 그래 우짠 일로 지 같은 민초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아따! 우리 서장님 자주 좀 뵙고 해야 되는데 한 달에 한 번만 볼라카니카 이거 잘몬하면 얼굴 까먹을까 봐 연락했다 아입니까. 그라고 이번 달에 회의 앞두고 상의 드릴 말씸도 있고 해서예, 어떻심니까. 오늘 저녁에 별장에서 식사나 한 자리 하시지예.

“별장? 에이 만다꼬, 아이 뭐 요기, 온천장에 맛있는 갈비 집 쌔고 쌨는데 그 가서 소주나 한잔 하문 되지, 비싼데 뭐 한다꼬 별장까지 가서 돈을 쓸라고 그캅니까?”

서장이 별장이 비싸다고 사양을 하자 명 회장이 은근히 미끼를 던졌다.

-서장님, 일패 기생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일패 기생? 그기 뭐요?”

-옛날로 치면 임금 앞에서만 노래하고 춤춘다는 그 일패 기생 말입니더. 부산에는 동래별장에만 딱 한 사람 있다 아입니까.

“그래요? 근데 나는 왜 안즉 몰랐지?”

-저하고 한번 같이 가시지예. 아마 보시문 숨이 턱 하고 막히실 깁니다. 갸가 VIP를 모셨다는 소문도 있다 아입니까? 어떻는교, 지하고 함 가 보실랍니까?

사람의 궁금증을 살살 긁는 데는 장사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이바구를 하는데 안 궁금하다 카문 그기 더 이상하지. 알았소. 내 퇴근하고 갈 끼니까 거기서 바로 만납시다.”

-알겠심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심다.

“일패 기생이라…….”

서장은 저녁에 별장으로 갈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양인지 오후 결재는 들이미는 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마구 휘갈겼다.

“아이 X발, 이기 뭐꼬?”

방금 결재를 받고 온 형사 관리 계장 오동석 주임이 서장의 사인을 보고서는 툴툴거렸다.

“와? 뭔데? 어! 이거 따와이 결재 아이가!

이기 뭐 돈 되는 사건이가?”

옆에 같이 결재 받고 나오던 형사 3반 주임이 물었다.

“돈 되기는! 다 떨어진 놈들 저들끼리 술 처먹고 치고받고 한 긴데 전과도 없고, 이걸 따와이 사인을 한단 말이가? 서장도 집에 갈 때 되니까 햇또가 맛이 갔는갑다.”

오 주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내려갔다.

* * *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라 해가 일찍 저물었다.

별장은 낮보다 밤에 한결 운치가 있었는데 정원의 한가운데 있는 연못에서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고 곳곳에 은은하게 밝혀진 청사초롱이며 안개등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 자리는 명 회장의 요구에 의해 정자에 있는 사랑채인 ‘청란’에서 주연을 갖기로 하였다.

‘청란’은 홍 마담의 당호이기도 했다.

경찰서장 1호차가 별장 앞마당에 도착을 하자 기다리고 있던 명 회장과 치안 자문 위원회 총무인 샘천 호텔 서갑수 사장이 영접을 하였다.

“아이고 서장님! 이거 그동안 적조했심니다. 다 지가 무능한 탓에…… 송구시럽심니다.”

명 회장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저자세로 나왔다.

서장도 겉으로는 과례니 뭐니 해도 속으로는 ‘이 자식이 뭘 잘못 쳐먹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 우리 장 마담! 롱 타임 노 씨! 캬! 오늘 발음 쥑이준다. 어떻노? 장 마담! 내 발음 좋제?”

서장이 영접 나온 장 마담에게 농을 걸었다.

“서장님!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제게 농을 다 걸어 주시고, 자 어서 들어가세요.”

장 마담의 안내를 받아 요리상이 차려진 정자 안 사랑채로 들어서니 50첩 반상이 차려져 있었다.

“와따! 이기 다 뭐꼬? 뭔 가짓수가 이리도 많노? 누가 다 먹는다꼬 이리 차렸노!”

서장이 깜짝 놀라서 탄성을 질렀다.

그 시각 경찰서 방범 지도계에서는 조사 주임이 방범 지도계에서 아침에 넘긴 협조전을 들고 와서 사정을 하고 있었다.

“김 주임님! 이거 아까 서장님이 우리 계장님 불러서 사건 하지 말고 좀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방범에서 다시 회수해 가문 안 되겠습니까?”

“아니 그럼, 이걸 봐주자는 말입니까?”

“딱히 봐주라는 지시는 안 했는데 놔둬 보라는 얘기는 결국 봐주라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조사계 허 주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니 이게 전부 공문서인데, 그럼 누가 이걸 없앤단 말입니까? 조사에서 하시든지, 우리는 일단 보냈으니까 다시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파출소 직원들이 서장 결재 받아서 그거 들고 현장에 나가서 단속을 한 건데, 누구 마음대로 봐준단 말입니까? 아무튼 우리는 절대 못 합니다. 정 봐주고 싶으면 조사에서 불기소 의견으로 올리시든지요.”

“하, 이거 낭패네. 방범에서 회수 못 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하는 수 없지요. 법대로 할 수밖에는…… 근데 이거 내가 대충 살펴보니까 전부 다 구조 변경이던데, 이거 사건하게 되면 전부 원상 복구 명령이 구청에서 나갈 테고 그러면 업주들 반발이 만만찮을 텐데…… 파장이 생각보다 클 겁니다.”

조사 주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그 시각 동래 별장.

몇 차례 술이 돌고 나자 서장이 장 마담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이 마드모아젤 장! 내 여기 명 회장한테 오늘 들었는데 여기 일패 기생이 있다문서?”

일패 기생이란 말에 장 마담이 깜짝 놀라서 명 회장을 노려보았다.

“아니 명 회장님! 그거는 천기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그새를 못 참고 영감님한테 일러바쳤어요? ”

“에헤이 장 마담! 그냥 서장님께서 얼굴이나 함 보시겠다는데, 잠깐 나와서 인사나 하고 술 한 잔 드리고 그러면 되지 않겠나? 얼굴 한번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닳는 게 아니고 소문이 나는 게 문제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소리도 못 들으셨어요? 여기 안기부나 보안사에서도 수시로 나오는데, 그 사람들 귀에 안 들어갈 것 같아요?”

장 마담이 정색을 하고 말을 꺼냈다.

“그라이께 고마 살짝 퍼뜩 와서 인사나 한번 하고 들어가문 누가 알겠소?”

명 회장이 통 사정을 했다.

“하여튼 내가 못 살아. 그럼 잠깐만이에요?”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 말이 끝나자 장 마담이 명 회장 옆에 앉아 있던 아가씨에게 말했다.

“너 가서 청란이한테 잠시 왔다 가라고 전해라. 소문나면 안 된다?”

“네. 큰 언니.”

“이름이 청란이가? 맑은 난초, 뭐 그런 말이가?”

서장이 청란이란 말에 더더욱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그냥 기명이에요. 지금 이 방이 청란이가 쓰는 방이에요. 이 방도 아무나 내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장 마담이 점점 더 서장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때 문밖에서 자박거리는 소리가 사뿐히 들리면서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홍지수가 들어섰는데, 치마에 봉황을 한 마리 수놓은 진주색 한복을 입고는 걸어 들어와서 나직이 반절을 했다.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가 고운 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춤을 보는 듯 미려했다.

“안녕하세요. 소녀 청란이라고 하옵니다.”

“…….”

서장을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청란을 보고는 그만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청란아! 여긴 서장님이시고, 이분은 여기 백화점에 명 회장님이시다. 술 한 잔 올리고 물러가거라.”

장 마담이 그렇게 말하자 청란은 조용히 일어나서 사르르 미끄러지듯이 서장 옆으로 다가와서, 술이 든 주전자를 집어 들어 서장한테 권했다.

“서장님, 아직 남았는데요?”

“응? 그래 마셔야지. 암 마셔야 하고말고.”

그러더니 남아 있던 술을 한 번에 다 마시고 나서 잔을 내밀었다.

쪼르르륵!

서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장 마담이 이렇게 말했다.

“서장님! 마침 남도에서 정통 서편제를 하는 소리꾼이 와 있습니다. 남도창 한번 들어 보시지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응? 그래, 그럼 들어 봐야지.”

장 마담이 손뼉을 치자 마주 보이는 미닫이문이 열리고 장구를 잡고 앉아 있는 젊은 고수 한 사람과 얼굴에 면사포를 드리운 자태가 아주 고운 나이 어린 여자가 서 있었다.

장 마담이 갑자기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다들 따라서 손뼉을 쳤더니 두 사람은 반듯하게 절을 하고는 바로 창을 시작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였다.

“두둥! 이 도령이 옥중에 춘향이를 꺼내 놓고 둘이서 원앙금침을 펴 놓고 사랑 놀음을 하는디! 두둥! 얼쑤! 헛! 이리 오너라 업고 노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 두두둥 ♪ 어허! 이 도령이 춘향이를 업었는디 두둥! ♪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지라! 얼쑤! 그란데 춘향이가 이 도령을 업으니께 문제가 생겨 버렸구마잉! 두두둥! 얼쑤 ♬.”

“……?”

“와하하하!”

“껄껄껄!”

“우하핫, 야 청란아! 니는 지금 저게 뭔 말인지 잘 알제?”

“서장님도 참!”

홍지수는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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