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273. 경리계 고인물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책상 위에 선물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포장이 되어 있는데도 은은한 향기가 배어 나오는 걸로 보아 아마 조 경사가 보낸 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하나는 윤 선생한테 주고, 하나는 홍 실장한테 주고. 가만, 그러고 보니 홍 실장한테 선물하는 건 좀 오바인가? ……에라이, 될 대로 돼라.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져서 김세민은 그냥 책상 서랍 안에 처박아 두었다.
그때 총포 담당 박민수 경장과 백석향 순경이 김세민의 앞에 와서 섰다.
둘은 열흘 전부터 김세민의 지시로 부산 근처의 복지원을 뒤지고 다녔다.
연산 4동에서 실종 신고 된 주취 노숙인 강억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계장님! 강억수 흔적을 찾기는 찾았는데, 전남으로 출장을 한번 갔다 와야겠심니다.”
박 경장이 김세민에게 그렇게 보고를 하였다.
“그래요?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 봐요.”
“그날 연산 4에서 길에 쓰러진 취객을 데려가라고 연락한 곳이 철마에 있는 X복지원은 맞심니다. 근데 우리가 가 보이까 처음에는 그런 사람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파출소 근무 일지 복사해 가지고 간 거 내놓고, ‘여기 봐라. 너거가 여기 사인하고 사람 인수해 갔지 않느냐?’하고 따지고 드니까, 마지못해 인정은 하는데 그 다음 날 다른 데 일하러 갔다고 안 캅니까? 이상하다 싶어서 안을 뒤져 보이까, 와 이거는 뭐 완전 포로수용소 저리 가라던데요. 사람을 무슨 철창에 가둬 놓고 일 시킬 때만 델꼬 나오고, 말 그대로 전쟁 포로 강제 노동시키는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억수는 혼자서 나간 거야?”
“복지원 금마들 말로는 지발로 걸어 나갔다 카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한테 살짜기 물어보이까 실제로는 팔리 갔답니다.”
“팔려 갔다고? 진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까?”
“진짭니다. 저기 멀리 전남 해안가에 머구리 배 하는 사람들이 사람 구하러 이곳까지 온다고 하데예. 복지원 놈들한테 돈 주고 사람을 데려가서 머구리 배에 가둬 놓고, 겨우 밥만 멕이고 평생 바다에서 물고기 잡으라꼬 하는 모양이지예.”
“그럼 어디로 데려간 건지는 알아봤고?”
“예. 전남 신안에서 머구리 배 한다꼬 하는데, 칠보호 선장이라 카문 다 안다고 하네예. 봄철만 되모 머구리 작업한다꼬 사람 구하러 많이 온답니더.”
듣고 보니 완전 현대판 노예 제도였다.
길에서 노숙자나 부랑인들을 잡아다가 일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돈을 받고 팔아먹는다는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럼 박 경장! 자네하고 방범계 문 경사하고 둘이 출장을 가! 가서 무조건 강억수를 데리고 오도록! 그리고 나머지 강억수를 데리고 간 놈들은 인적 사항을 확실히 하고 와서 나중에 사건을 이첩하더라도 못 빠져나가게 할 거야. 그리고 현지에서 나한테 전화하면 내가 압수 수색 영장도 받아 줄 테니까 수시로 연락을 하도록 하고, 서둘러! 빨리 경리계 출장 신청서 내고 출장비 수령해서 출장을 가도록 해.”
“예 알겠심다. 그라무 여기 출장 신청서에 결재 좀 해 주이소.”
김세민은 박 경장이 내미는 출장 신청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한참 후에 갑자기 2층에서 경리 계장이 입에 거품을 물고 내려왔다.
“야! 방범 지도계 이 경사! 너거 진짜 이리 할 끼가?”
“와예? 무슨 일 있심니껴?”
난데없이 경리 계장이 나타나자 이 경사가 긴장을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경사 급이라도 나이로 보나 순사 짬으로 보나 이 경사가 대들 위치는 아니었다.
게다가 경리 계장은 통상 서장의 심복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범 지도계에서 언제부터 출장비 챙기고 자빠진 기고? 너거는 나가문 전부 대상 업소에서 따와이 할 낀데, 출장비까지 뺏아 갈 끼가?”
“아니 누가 출장을 냈다고 구카능교?”
이 경사는 아침에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김세민이 출장 신청서 결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여함 봐라! 너거 과 출장 신청서가 협조 전에 떡하니 올라와 있다 아이가? 내용도 함 봐라! 가출인 찾으러 여서 전남 신안까지 간다꼬? 순사가 언제부터 가출인 찾으러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됐노? 이거는 딱 봐도 출장비 빼 묵을라꼬 하는 수작 아이가?”
경리 계장이 방범에서 가라 출장 끊어서 출장비 빼먹으려고 하는 줄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김세민이 나서서 설명을 했다.
“아 계장님이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인신매매 사건일 가능성이 있어서요. 직원들을 보내서 확인을 하고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하자 경리 계장은 너 잘 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김세민에게 다가왔다.
“아, 그라이께 우리 지도 계장님이 지시하신 일이다. 뭐 그런 말씸할라꼬 지금 구카는 모양인데 내 말은 그기 아이다. 자고로 출장비라 카는 기 뭐 신청한다꼬 다 나오는 기 아이라, 원래가 참새 눈곱만큼만 나온다 아이요? 그걸 갖고 각 과에서 갈라 붙여서 노나 쓰야 하는디, 씰데없이 가출인 찾으러 신안까지 간다고 카문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 이 말이지. 또 아니 할 말로 방범 지도계는 풍속계 아이요? 밖에 나가문 출장비 보태 줄 인간들이 줄을 섰을 낀데 우리 엿 믹이는 것도 아이고, 만다꼬 우리한테 출장비를 달라고 하노? 내 말 틀맀나?”
“……그러니까, 지금 경리 계장님은 밖에 나가서 우리가 알아서 대상 업소한테 뜯어서 출장 가라 그 말씀입니까?”
김세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경사가 깜짝 놀라서 중간에서 김세민을 막고 섰다.
그리고는 김세민에게 눈을 끔뻑했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자자, 우리 경리 계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시 갖고 그라시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았더이만 그래 됐심다. 우리 계장님은 서울에서만 근무를 하시갖고, 부산 정서는 잘 모린다 아입니꺼? 경리 계장님이 잘 이해를 해 주시소. 출장비는 지가 알아서 처리해 놓겠심다. 걱정 말고 고마 가 보이소.”
“어이 봐라. 이 경사야! 니도 눈은 있제? 작년에도 멀쩡하게 잘 쓰던 서장실 난로 그거 이번 겨울에 또 새로 바꿨제? 철마다 커텐 해 달아야제? 침대 카바며 이불보며 서장실 바닥 도끼다시까지 다 했다 아이가? 무슨 경리 계장은 X발 돈이 가만 있어도 펑펑 솟아나나? 다 너거들하고 형사계 십시일반으로 출장비 조금씩 떼놨다가, 서장님 판공비로 지출되는 거 아이가! 너거들도 다 알면서 뭔 헛 짓거리고? 그라고 계장님이 서울서 왔시문 여기 부산 법을 따라야지, 택도 아인 서울 타령이나 해대고 말이야……니가 단디 안 하이까 이 늙은 놈이 출장 신청서 쪼가리 들고 아래 위층 왔다리 갔다리 해야 된다 아이가! 참 내 어지간히 서울 서울 해샀네, 그래 서울이 좋으면 도로 서울 가문 될 거 아이가! 누가 부산 오라고 켔나? 지가 잘몬해가 쫓기 온 주제에……에잉.”
그렇게 구시렁거리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김세민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따라나서려고 하는데 이 경사가 필사적으로 막았다.
“참으이소 계장님!”
“비켜요.”
이 경사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비키라니까?”
“이거는 싸워서 될 문제가 아입니다. 경리 계장들은 주 특기가 경리입니다. 저 사람들은 서장들 이동할 때마다 옮겨 다닌다 아입니꺼? 나이도 많고, 그라고 싸워 봤자 이기지도 못하고 계장님만 얼굴 끄실립니다.”
그 무렵, 경리 계장은 방범 지도계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이웃해 있는 교통계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이! 너거 교통도 참 말 안 듣는다. 출장비 그거 좀 끊어 오라고 카는 데도 벌써 매칠 째고? 어이! 서무 박 경사! 니 진짜 이리 애 맥일 끼가?”
“아입니다. 계장님! 지가 일이 바빠서 미처 그것까지는 못 챙깄심다. 지금 곧 해가 보내겠심다.”
“아따! 계장님도 엥가이 하이소! 우리 교통에서 출장 갈 일이 뭐가 있다꼬, 그리 난리 법석을 떠능교?”
뒤에 점잖게 앉아 있던 교통 계장이 한마디를 꺼냈다.
교통 계장은 순경 출신 경감이었는데 내년이면 정년이었다.
“아이쿠! 우리 교통 대감님 기신 줄 소인이 몰랐심다. 월말이 다 되었다 아잉교. 내사 마 서장님 판공비 맞춰 드릴라 카문 입이 다 바싹바싹 마린다 카이.”
경리 계장이 서장 핑계를 대었다.
“또 또, 미 하나(경찰서장 무선 호출 부호) 핑계다! 미 하나 핑계로 경리계 따와이 하는 거 내 모릴 줄 아는 모양이제? 자꾸 그케 사면 내 저 우에 상소문 하나 올린다?”
“하이고! 우리 대감님! 우째 말이라도 그리 살 떨리는 말만 골라서 하시능교? 뭐 커피라도 한잔 하실랑교? 아이다, 참 내 정신 봐라. 좋은 기 있는데.”
그러더니 경리 계장이 경비 전화를 들고 자기네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응 오냐, 내 냉장고에 홍삼 있제? 그거 하나 퍼뜩 가지고 교통 계장님 책상으로 X나 뛰어 온나!”
“홍삼? 에라이…… 어디 다 떨어진 업자 하나 쪼인터 까 가지고 뺏아 묵은 거 더러버서 안 묵을란다. 경리 계장, 내 집에 갈 때 다 돼서 하는 말입니다만, 고래 욕심재이 맹키로 배 볼록 티 나올 때 까지 묵다가는 한 방에 갑니다이?”
“아이고 우리 교통대감 노가리에는 내 두 손 다 들었다. 자 내는 갑니데이.”
그러자 직원들이 우습다고 낄낄거렸다.
“킬킬킬! 하여튼 저 영감도 교통 계장님한테는 꼬리 팍 내리 뿟네.”
김세민은 경리 계장이 하는 말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 이 경사한테 물어보았다.
“아까 말인데요, 교통에서 출장 신청 올리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에, 그거는 뭐라꼬 케야겠노? 교통이나 방범이나 형사에서는 출장비 신청서만 받고, 실제 돈은 한 10%만 주는 거라예. 그라고 전액 영수증은 다 받아서 챙기고, 경리 계장은 그게 다 서장님 판공비 보태고 서장실에 비품 사고 그런다고 하는데, 지 생각에는 그거는 다 헛때기 소리고 경리계 따와이 하는 거 같심니다. 아 물론 그중에서 서장님도 쪼매 드리기는 드리겠지예.”
“아니 그럼 서장님은 그걸 모르십니까?”
“와예? 다 알겠지예. 그란데 경리계 예산 집행을 하다 보문 떨어지는 기 많다 아입니꺼? 경찰서 페인트칠을 한다든지 보일러 수리를 한다든지, 그런 예산 집행하면서 업자들한테 가수리 좀 받아 갖고 서장님하고 경리계가 나눠서 쓴다고 보문 맞을 깁니다. 그라고 우리 파출소 순찰차 아 있심니껴? 그것도 도급 경비에서 줄 때 수리비와 유지비는 경리계에서 떼고 준다 아입니꺼?”
“그럼 파출소는 돈도 없이 순찰차를 어떻게 운영합니까?”
“파출소 순찰차가 돈 들어갈 일이 어딨심니껴? 관내 주유소에 차 박아 놓고 어디 가서 차 한 잔 얻어묵고 오문, 다 만땅 채워져 있는데. 그라고 머, 수리? 정비 업소 가서 뭐 고치라 하문 총알같이 고쳐 준다 아입니꺼? 아무튼 옛날부터 파출소 순찰차나 교통 순찰차는 돈 들어갈 일이 하나도 없심니다. 여기 우리 관내에 H 서비스 센터가 거제동에 부산에서 제일 큰 기 하나 있다 아입니껴? 순찰차뿐만 아이고 직원들 개인 차도 거기 갖고 가문 다 수리해 줍니다. 누가 그라데예. 경찰은 돈 주머니에 돈 한푼 없어도 조디만 있으모 된다꼬.”
“그럼 박 경장하고 문 경사 출장비는 어떻게 합니까? 10%밖에 안 준다면서요?”
김세민이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았다.
“아 걱정 마시소. 지가 한 몇 군데 전화 돌려 놨고, 박 경장이 총포 담당이니께, 총포 협회에서도 좀 줄 깁니다. 오늘 저녁에 퇴근해서 한두 군데 들러서 출장비 따와이 해 갖고 가몬 신안까지는 충분히 됩니다. 이 자석들이 그런 기 있시문 나한테 와서 이바구 해야지, 아무것도 모리는 계장님한테 출장 신청서를 들이밀고…… 아직 아들이 철이 없어서 그렇심다. 계장님이 이해를 해 주시소.”
“…….”
퇴근 시간이 되어 오자 이 경사가 약속 없으면 같이 퇴근하자고 말을 꺼냈다.
“어디 밥이나 먹으러 가게요?”
“전에 한번 가 보셨던 연산 로터리 진미원, 그 집 고기 괜찮지예?”
“아 거기! 좋죠, 고기 엄청 맛있던데요.”
김세민의 차를 타고 연산 로터리로 나와서 전에 강도범을 잡는다고 뛰어올라갔던 2공구 쪽으로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니 장녹수 다방 뒤로 제법 큰 세차장이 있었다.
“여기 차 대시면 됩니데이.”
이 경사의 말에 차를 주차시키고 내리니 머리가 희끗한 주인이 뛰어나왔다.
“와이구! 우리 이 부장님이 우짠 일로 예까지 다 방문해 주시고…… 그동안 잘 지내셨지예?”
인사가 깍듯하였다.
“아 여기는 우리 새로 오신 지도 계장님, 계장님! 여기는 두꺼비 세차장 사장님인 공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김세민이 손을 내밀었더니, 공 사장이 자신의 물 묻은 손에 김세민의 손이 더럽혀질까 봐서 자기 바지에 몇 번이고 닦더니 공손하게 손을 잡았다.
“아 공 사장! 우리 저기 진미원에 밥 먹고 올 테니까, 우리 계장님 차 기름 좀 넣고 세차 좀 해 줘!”
그러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예 예, 걱정 말고 다녀오이소. 삐까 뻔쩍하게 닦아 놓겠심다.”
“아니 세차장에서 기름을 넣어요?”
김세민이 놀래서 물어보자 이 경사는 이렇게 말했다.
“가짜 휘발유 얘기는 들어 보셨지예? 이기 솔벤트를 섞어서 만드는데 진짜보다 더 힘이 좋심니다. 엔진이 고장 나거나 그런 일도 없고예. 새 차 아닌 다음에야 부산 사람들은 다 가짜 휘발유 넣고 다닌다 아입니꺼? 계장님 차도 좀 연식이 되 보이든데 설마, 비싼 주유소 기름 넣고 다니는 거는 아니겠지예?”
“……그냥 말을 맙시다.”
길을 건너서 진미원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왼편으로 양철 문을 달아 놓은 허름한 공장 같은 것이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는데 안에는 대형 탱크로리 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이 경사가 양철 문을 열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 사장! 안에 있나?”
그렇게 부르자 안에서 나무로 된 문이 열리면서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이구 우리 이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우짠 일로 오늘은 직접 이리 왕림을 다 해 주시고.”
그러면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오늘 우리 새로 온 계장님 모시고 왔제. 사업은 잘 되시고?”
“사업이야 보살펴 주시는 덕분에 날로 번창입죠. 예 예.”
연신 굽실굽실한다.
“자자 계장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김세민을 안으로 안내해서 의자를 권한 후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장녹수제? 여기 건너 양철집에 쌍화차 석 잔! 빨리 오이라.”
“그런데 저기 탱크로리에 실린 건 뭡니까?”
김세민이 궁금해서 물어보자 문 사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 저거예? 독극물 아입니까 독극물, 저기 해골 표시 보이시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