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5화
#295. 합격 노하우
맛있는 저녁과 과일 커피까지 잘 대접을 받고 난 다음에 김세민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슬슬 말씀하시죠?”
“네?”
“아무래도 오늘 절 부르신 건 뭔가 하실 말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닙니까?”
“…….”
“이제 배도 부르고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잠이 오기 전에 빨리 듣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김세민이 하는 말이 재미가 있었는지 홍지수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가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서는 본론을 꺼냈다.
“은수가 사실 오래전부터 여경 시험 준비를 해 왔습니다. 지난번에 납치 사건이 있고 난 이후는 더 의욕이 넘쳤지만 제가 옆에서 볼 때는 경쟁률도 치열하고 혼자서 발버둥 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계장님을 모시고 고언을 들었으면 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은수가 여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계장님이 수험 생활을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홍지수가 다시 간절하게 고개를 숙였다.
‘뜻밖인데…… 뭐 그런 거라면.’
생각 끝에 김세민은 두 자매를 향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제 생각에는 지금 남자 경찰보다는 여경이 훨씬 더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그 분야에서는 그리 생각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그러니 다른 사람한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김세민은 전화기를 받아서 수첩을 꺼내서 조 경사의 집 전화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돌렸다.
뚜르르륵! 찰가락!
-네 역삼동입니다.
“아! 조 경사! 집에 있었네. 나 김 주임이야.”
-네 사수님! 어쩐 일이세요? 집으로 전화를 다 주시고…….
“조 경사! 공항에 지금 검색하는 여경들 있잖아? 신입들은 학교 교육 마치고 바로 오는 여경들도 있지?”
-네 이번에도 다섯 명이 새로 왔어요.
“잘됐네. 그럼 지난번에 네가 일본에서 데리고 온 은수 있잖아? 여경 시험 준비를 그동안에 해 왔는데 이번에도 떨어졌나봐. 부산이 생각보다 경쟁률이 치열한 모양인데…… 그래서 내일 내가 은수를 너 있는 곳으로 아침에 일찍 올려 보낼 테니까 네가 신임 여경들 중에서 성적이 우수한 애들한테 물어봐. 시험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책은 뭘 봤는지? 등등 합격할 수 있는 비법을 은수한테 제대로 전수를 좀 해 줘! 그리고 서울은 아무래도 인원을 많이 뽑을 거 아니야? 은수가 서울에서 시험을 칠 수 있도록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접수되지?”
-아! 그때 그 아가씨? 네. 기억나요. 제 얼굴은 안대요?
“어, 너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던데?”
-에? 정말요? 그럼 내일 100호실로 바로 오라고 해 주세요. 제가 합격 노하우를 전수해서 이번 가을에 있는 시험은 반드시 합격하도록 할게요. 자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야,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고맙다. 신세 좀 진다.”
-근데 사수님.
“왜?”
-평소에 이런 부탁 하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수상하네요.
“또 뭐가……”
-아무래도 은수 언니 되시는 분하고 뭔가 있죠?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하여튼 너는 옛날부터 딴 길로 새는 건 선수라니까…… 너도 이제 경사도 달고 했으니 내년에 최일룡 청장 나가면 너도 나가야 하잖아? 어떻게든 은수를 올해 내로 합격시켜서 니 후임으로 데려다 놓는 게 좋겠어. 네가 있는 동안에 잘 가르쳐서 노하우를 다 물려주란 말이야. 그럼 나가서도 은수 덕 보면 되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그 일은 반드시 제가 책임지고 만들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다시 서울 오시는 것만 신경을 써 주십시오.
“그거야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참, 요즘은 어때? 계속 기록실하고 불편하니?”
-아니요? 전에 일본 가서 작전 한번 하고 나서는 기록실에서도 이제 대놓고 함부로 하지 못해요. 제가 기록실 열외하고 작전한 줄 알거든요? 저한테 자기네들이 모르는 안기부 줄이 있는 줄 알더라고요. 히히!
“하여튼! 너도 못 말린다. 그래도 만약에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전에 태국 대사 했던 강준성 장군이 2차장으로 왔다고 하더라고. 국내 파트 담당이잖아? 나하고 태국에서 같이 목숨 걸고 작전도 했으니까 급하면 네 얘기 정도는 해 줄 수가 있어.”
-역시 우리 보스는 대단해! 사랑해요? 보스!
“이게 까불래? 전화 끊어!”
-네. 내일 은수 씨 저한테 보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자 홍지수가 물었다.
“그때 공항에서 만났던 그분인가 보죠?”
“네. 그 조 경사도 제가 서울에서 면허 시험장 있을 때 기능직 여직원으로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을 쳐서 여경에 들어왔고 제가 공항에 있을 때 데리고 와서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앉혔죠. 공항에서 두 계급이나 승진을 해서 이제 청장님이 바뀌면 같이 나가야 할 텐데…… 만약에 올해 은수가 여경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제가 앉히겠습니다. 그럼 은수도 공항에서 잘 지낼 수가 있을 겁니다. 대신에 시험은 서울에서 쳐야 하고, 그러면 은수가 서울에서 혼자 있어야 할 텐데 방이라도 얻어야 할 겁니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여유가 있고 아는 언니도 있어서 서울서 지낼 곳은 충분히 마련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잘 되었네요. 전 은수가 여기 부산에서 그냥 눌러 앉아서 적당히 결혼하고 늙어 가는 그런 인생이 되는 것은 정말 싫었거든요? 은수도 그날 공항에서 조 경사인가 그분을 보고 나서는 자기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아 이제야 길이 보이는 것 같네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계장님이 저와 은수한테는 정말로 평생의 은인이세요.”
홍지수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은수야! 시험은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제일 최근에 합격한 사람의 노하우를 누가 빨리 습득하느냐, 그게 중요하거든?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어. 무작정 무식하게 공부하는 것보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공부 방법을 그대로 베끼는 것. 그것만큼 빠른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해. 내일 서울 가서 조 경사를 만나면 상세하게 얘기를 해 줄 거다. 지금 조 경사 밑에 이번에 합격한 신임 여경들이 많이 왔다니깐 좋은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거야. 그 언니들 이야기 듣고 그대로 따라하면 넌 일 년 후에는 조 경사가 있는 지금 공항 100호실에 앉아서 근무하고 있을 거다. 문제는 니가 열심히 할 수 있느냐야. 자신있어?”
“네. 염려하지 마세요. 전 할 거예요. 반드시 해낼 거예요!”
은수의 자신 있는 대답을 옆에서 홍지수가 흐뭇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출근을 했더니 옆 사무실에서 방범 계장이 찾아왔다.
“계장님! 상의 드릴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올해도 우리 동래서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인명 구조 요원 차출을 해야 하는데 그중에 간부가 한 사람 책임자로 나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방범과 간부 중에서 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는데 저하고 명장 소장은 순환 보직 기간 중이라 차출을 할 수가 없다고…… 파출소장 중에서 한 사람이 나가야 하는데 누굴 뽑아야 하겠습니까?”
“아니 그게 왜 우리가 나가야 해? 해운대 관할이잖아?”
김세민은 해운대 관할에서 여름 경찰서를 운영하는데 왜 동래에서 간부가 나가야 하는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아 그게요, 원래 동래에서 다 했심다. 해운대는 원래 동래서에서 떨어져 나간 서이다 보이까 처음부터 여름서 운영은 행정 요원은 해운대 방범과장이 여름 경찰서장으로 임명장을 받고 총괄 책임을 지고 나머지 해수욕장 망루에 앉아서 익수자 감시하는 역할은 부산 시경 산하에서 의경들 자원 모집하고 직원들 차출해서 구성을 하는데 인명 구조 요원은 경위 간부가 책임자로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인명 구조 요원을 감독할 책임 간부는 역대로 동래서에서 나갔습니다.”
“그래요? 그럼 나갈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소리네요? 그럼 할 수 없지요. 나 편하자고 어찌 늙은 파출소장들을 차출하겠습니까?”
“그래도 괜찮겠심니까?”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죠, 그래 봤자 두 달 아닙니까?”
김세민은 지금 동래서 파출소장들 평균 나이가 45세인데 그 나이에 뜨거운 여름 해수욕장에 내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방범과 간부가 나가야 한다면 자신이 나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찌 계장님이 나가겠심니까? 일단 서장님한테 한번 여쭤 보고 결정하시지예?”
이 경사가 방범 계장더러 서장님 결심을 받아 보라고 말했다.
“괜히 서장님한테 부담만 드리기밖에 더 하겠어요?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말씀을 드립시다. 지도 계장이 희망을 해서 지도 계장을 내보내겠다고. 그러면 이제 서장이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들면 다른 사람을 내보내라고 할 테고. 아무 말이 없으면 나는 그다지 필수 요원이 아니란 뜻이 되고 내가 가는 게 맞고. 등 떠밀려서 가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 나가는 것이 훨씬 떳떳하고 좋은 것 같은데요? 몇 번 차출에 나가 보니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 아 참, 그 지방청에서 내려온 공문 한 부 복사 좀 해 줄래요? 보고 연구 좀 해야겠으니까.”
김세민이 공문을 읽어 보니까 해수욕장 개장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였다.
그리고 각 서 의경들과 직원 중에서 희망자를 뽑아서 사직동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서 6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 동안 대한 적십자사 주관으로 인명 구조 요원 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보름간 교육을 이수하면 1급 인명 구조 자격증을 준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해운대 해수욕장에 고정 망루가 20개이고 한 망루 당 2인 1조로 근무하게 되면 의경 40명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감독은 경사 1명에 경장이 2명 그리고 이들을 통솔해서 경위 간부 한 사람이 책임자로 선정이 되었다.
‘그래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김세민은 자신이 지원해서 아예 인명 구조 훈련까지 받기로 결심을 했다.
경위 간부는 훈련까지는 안 받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왕 고생하는 거 대원들하고 똑같이 훈련하고 숙식을 같이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 * *
‘일주일 남았네.’
이제 일주일 후에는 매일 사직 실내 수영장으로 출퇴근을 하게 될 것이었다.
복잡한 경찰서 일은 다 잊어버리고 여름 두 달은 바닷가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꽤 괜찮은 일 같았다.
그리고 나서도 서장실에 몇 번 결재를 올라갔는데도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서장도 딱히 김세민이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주말이 되어 서장실에 마지막 결재를 올라갔다가 신고를 하였다.
“서장님! 제가 다음 주부터는 사직 실내 수영장에서 인명 구조 훈련을 받게 되어서 보름 동안은 경찰서를 비우게 될 것 같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서장도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내려놓고 니가 말 잘 끄집어내었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게나 말이라. 이기 해운대가 동래에서 떨어져 나간 기 언젠데 아직까지도 해운대는 동래서 서자 비스무리하게 취급하고 있다 아이가? 저거 동네에서 해수욕장이 문을 여는데 와 여서 간부를 차출해 간다 말이고. 내 이번에 과 서장 회의 가문 좀 따져 볼 끼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아이가!”
서장이 다른 계장들 있는 데서 자신의 체면도 좀 세우고 김세민의 서운한 마음도 달랠 겸 해서 일부러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김세민은 서장 입장에서는 그리 필수 요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였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다음 주에 사직동에 있는 실내 수영장으로 출근했다.
의경 40명은 언제나 지원자가 넘친다고 했다.
분명 고생일 것인데 경험 삼아 혹은 부대 생활이 싫어서 다들 지원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해수욕장에 있으면서 여자들 비키니 입은 모습도 맘껏 볼 수가 있으니까 희망자가 많다고 지방청 방범 기획계 해수욕장 담당인 정 경사가 얘기를 해 주었다.
남부서 광안리 해수욕장과 서부서 송도 해수욕장 그리고 사하서 다대포 해수욕장도 같이 개장을 하기 때문에 훈련 인원이 꽤 많았다.
사직동 실내 수영장은 국제 규격인 50미터 레인 10개와 4미터 잠수 풀이 있었다.
교대로 번갈아 가면서 교육을 받는데 김세민은 추가로 스쿠버 다이빙 자격도 같이 따겠다고 신청을 하였다.
첫날부터 훈련이 시작되었다.
대한 적십자사 안전 강사 요원들은 전부 다 해군 UDT나 SSU 출신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은 완전 군대식이었다.
특이한 점은 여자 강사가 두 명이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저 여자들도 해군 출신인가?’
첫 번째 훈련은 스노클을 착용한 상태로 4미터 잠수 풀에 안전 강사들이 던진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한번 잠수해서 숨을 참고서 찾아내어 집어 들고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한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4미터 잠수 풀의 바닥까지 잠수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고작 4미터밖에 되지 않는데도 물속에서 느끼는 수압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첫날은 전부 다 실패 두 번째 날부터는 젊은 의경들 중에서 동전을 주워 나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김세민도 오기로 끝까지 다섯 번이나 잠수한 끝에 마지막에 동전을 건져 올릴 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다들 손뼉을 쳐 주었다.
간부가 그냥 시원한 그늘에 앉아 놀아도 되는데 자신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는 두 손을 물 밖에 내고 두 발로만 수영을 하면서 유행가 한 곡을 이 절까지 다 부르는 것이었다.
이것도 나중에는 노래 세 곡도 너끈히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훈련은 익수자를 눈앞에 두고 전력으로 자유형으로 수영해 들어가서 익수자 앞에서 양손으로 물을 앞으로 밀어내고 머리부터 잠수해서 익수자의 뒤쪽으로 가서 익수자의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집어넣어 목을 잡아 익수자를 제압하는 훈련이었다.
익수자가 살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구조원을 보면 무조건 두 손으로 안아 버리기 때문에 익수자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빠른 자유형 수영.
머리를 절대 물속에 넣지 말고 익수자를 확인하면서 두 손을 빠르게 자신의 몸 앞쪽에다 찔러 넣으면서 물살을 헤쳐 나가야 했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면 만사가 다 귀찮아서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곯아떨어져 버리기 일쑤였고, 자연히 삐삐도 잘 안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