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6화
#296. 따와이 이자
해운대 여름 경찰서 개서를 앞두고 김세민은 자리를 정리했다.
앞으로 두 달 동안은 동래서에 올 일이 없기 때문에 책상과 개인 사물을 다 정리하고 캐비닛도 다 비웠다.
정리가 다 끝나갈 무렵 소년반 송 형사가 김세민의 자리 쪽으로 왔다.
“계장님! 차출 나가게 돼서 기분이 안 좋은 마당에 이런 보고를 드려서 좀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 학교 폭력 관련 처리가 상당히 진척이 있심니다.”
“아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일단 동래 관내에 있는 학교 폭력 서클 명단은 싹 다 작성했심니다. 그라고 지금 백 순경하고 피해 학생들 하나하나 불러서 다 조사를 하고 있는데 용두파에서 좀 의심가는 놈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래요? 이름이 뭡니까?”
“그게…… 인마 이름을 현재 아는 놈이 아무도 없는데 별명이 ‘제임스’라고 합니다.”
“제임스 본드를 따서 자기 닉네임으로 삼고 나머지 본드는 애들 패거리 이름으로 갖다 붙인 모양이군요. 범죄 사실은 나온 게 있습니까? 용두파도 한 놈 정도는 잡아넣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아 예. 한 달 전인가? 임마가 학교에 본드파 조장들을 모아 놓고 실적이 나쁜 애들은 다 보는 데서 빠따를 쳤다꼬 하더라고요.”
“실적?”
“뭐 삥 뜯기나 그런 거겠죠, 근데 그것보다도 길동무 애들한테 맞았다거나 밀린다거나 하면 인마가 불러 갖고 얼라들을 반쯤 쥑인다 카네요. 아무튼 진술서로 다 받아놨으니까 임마 본명만 확인하는 대로 잡아서 영장 치겠습니다.”
“지금 지청에 소년 담당 검사가 누굽니까?”
“그게 보자…… 여자 검사라꼬 카던데예? 저도 아직 만나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심니다.”
“아무래도 내가 한번 만나 봐야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하게 되면 담당 검사하고 호흡이 제일 중요한데 손발이 안 맞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여름 서에 나가도 난 여기 지도 계장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수시로 보고할 사항 있으면 보고 해 주세요.”
“예, 이거 저희들이 계장님을 잘 못 모시는 바람에 험한 데 보내 드리는 것 같아서 송구시럽심니다.”
“전혀요? 안 그래도 이번에 인명 구조 훈련 받으면서 느낀건데, 경찰관이라면 꼭 필요한 훈련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짜서 다들 교육 형식으로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보다 재미도 있었고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참, 그리고 우리 계획안 그거 지청에 소년 담당 검사한테도 한 부 보냈습니까?”
“예. 계장님 지시한 대로 바로 사본 한 부 보내 드맀심니다. 그라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심니다.”
“방송국? 갑자기요?”
“계장님 인터뷰 한번 해 보고 싶다고 하던데요. 여기 연락처 받아 놨습니다. 시간 날 때 한번 전화해 보시지예.”
송 형사가 보여 준 메모에는 XBS 부산 보도 본부 김은아 리포터라고 되어 있었다.
‘자 그럼, 담당 검사한테 연락부터 해 볼까…… 검사가 시비 걸기 시작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차장 검사를 통해서 만나 볼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오히려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그냥 다이렉트로 한번 부딪쳐 보자고 생각했다.
동부 지청 직제표를 훑어보니 소년 담당은 317호 서이수 검사였다.
‘여자라고 했지? 뭐, 상관없나.’
까르르륵! 쩔꺽!
-동부 3번입니다.
“317호 검사님 부탁합니다.”
-기다리세요.
띠리리릭! 찰칵!
-317호 오 수사관입니다.
“아 네 수고하십니다. 동래서 방범 지도 계장 김세민 경위라고 하는데요. 소년 담당 검사님하고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약속을 하셨능교?
“아니 안 했습니다.”
-그럼 곤란한데, 우리 검사님은 사전에 약속 안 된 사람하고는 잘 안 만나시는 스타일이시라…… 무신 일인지 나한테 일단 말해 보이소.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동래서에서 얼마 전에 보내 드린 학교 폭력 전담 경찰관 배치 계획, 검사님이 한번 검토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만?”
-학교 폭력 뭐요? 아! 그거! 뭐 하나 올라오기는 했는데 내가 바빠서 아직 제대로 검토를 못 했는데……
“검사님이 확인을 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검토를 해 봐야 검사님한테 보고를 드리든지 말든지 할 거 아이요?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는데…… 이 양반 가만히 보니 지금 검사님한테 잘 보여서 점수라도 따 볼 요량인 모양인데 우리 검사님 꽤 깐깐하다 아이요? 괜히 엉뚱한 짓 하지 말고 검사님한테는 그저 안 찍히도록 몸이나 사리고 다니소. 동래서라고 하이끼네 특별히 생각해서 코치해 드리는 거이까 앞으로 잘해 보더라고!
“이런 시……”
-응? 방금 뭐라고 했소?
‘이 X발 다 떨어진 검찰 서기보 새끼가 자꾸 반말을 까네. 확 죽일까? 아냐, 여기서 내가 성질을 내면 송 형사가 곤란해지니까…… 일단은 참자.’
김세민은 헛기침을 한번 해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근데 그쪽 말처럼 절차 운운하다가 사건 처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사건 관련 보고는 317호 검사실을 건너뛰어서 301호 부장 검사실이나 아님 차장 검사실로 바로 할 겁니다. 서이수 검사님한테 그리 말이나 전해 주시죠.”
-뭐야? 이런 염병할 새끼를 봤나! 다 떨어진 경찰서 주임 주제에 어따 대고…… 너 이름이 뭐야!
“김세민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는데 벌써 까먹었냐? X발 X도 아닌 새끼들이 검사실에 기생충같이 쳐 달라 붙어서는 피나 쫄쫄 빨면서 연명하는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를 치고 있어. 끊어 병신아.”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에이 X같은 새끼.”
삐리리리~삐리리리~
“감사합니다. 동래서…… 계장님? 검찰에서 계장님 찾는 전화인데요?”
나 양이 일어나서 김세민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아냐 됐어, 그냥 끊어버려.”
“예? 그래도 돼요?”
“아 안될 게 뭐 있나, 또 전화 와도 바꾸지 말…… 잠깐, 내가 왜 피해야 돼? 이리 줘요.”
김세민은 수화기를 건네받고는 대뜸 있는 대로 성질을 냈다.
“이 새끼가 진짜 욕을 덜 쳐먹었나? 니네 317호하고는 앞으로 전화할 일 없으니까 자꾸 전화질 하지 마라, 알겠냐?”
한바탕 그렇게 쏘아 주고 났는데도 전화기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
“여보세요? 이 새끼가 왜 말이 없어, 알아들었냐고!”
그때 갑자기 수화기에서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네, 알아들었어요. 어휴,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 목소리 엄청 크시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서이수 검사에요.
“예?”
-왜요, 절 찾으셨다면서요?
“아, 예.”
-절 찾으셨다고 해서 제가 전화를 했는데 뭐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아뇨, 잘못될게 뭐 있나요.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고 실언을 했으니 제 잘못이 큽니다. 사과드리죠.”
-아니에요, 저도 아까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긴 했는데 우리 수사관도 말이 좀 지나쳤습니다. 사과할게요.
“굳이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늘상 있는 일이라……”
-배 검사한테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온천장에 맛집을 많이 아신다고 그러던데.
“그렇군요…… 예? 방금 뭐라고?”
“배 검사 말 들으니까 온천장에 있는 일식집이 그렇게 맛이 좋다면서요? 오늘 나한테 소리도 지르고 그랬으니까 한 번 데리고 가 줘요. 어차피 사건 관련해서 전화한 거 아니에요? 이야기는 거기서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 그러시죠 그럼. 위치는 아십니까?”
-네. 배 검사한테 들었어요. 그럼 퇴근하고 거기서 만나요.
전화가 끊어지고 김세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와 그라십니까? 이야기는 잘 됐고예?”
상급자들끼리 붙으면 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괜히 힘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송 형사가 괜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뭐,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근데 이상하네……”
“뭐가예?”
“아, 아닙니다. 일단 만나기로 했거든요? 다녀와서 이야기할게요.”
* * *
저녁에는 서장실에 결재를 들어가서 여름서 개서를 앞두고 신고를 했다.
“서장님! 내일부터 두 달간 여름 서에 파견 갔다 오겠습니다.”
“이거는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기다.”
“예?”
“우리 서에 갈 사람이 니 밖에 없다는데, 니는 안 답답나?”
“괜찮습니다.”
“……젊은 경위가 니밖에 없어가 글타 카이 섭하더라도 니가 이해를 해라. 글타고 다 늙어 비틀어진 파출소장을 뽑아가 저 해수욕장 뙤약볕에 세아 놀 수는 없다 아이가? 그라고 니, 이번에 그뭐이고 인명 구조 훈련? 그것도 의경 아들하고 같이 받았다매?”
“예. 배워 두면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아서 기회가 왔을 때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래, 배아 놓으면 다 써물 데가 있을 끼다. 그라고 이거는…… 고생하러 가는데 내 니를 그냥 보낼 수가 있나. 아나, 이거 얼마 안 되는데 가서 같이 근무하는 아들하고 음료수나 한잔 사 무라.”
그러면서 서장이 봉투를 하나 꺼내 주었는데 옆에 있던 타과 계장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서장이 온 이래로 따와이 흐름은 전부 다 상납만 있었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법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장하겠네, 내가 지금 뭘 본 기고?]
[와, 내일은 진짜로 해가 동쪽에서 뜰라는 갑네]
결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형사 관리 계장이 김세민의 팔을 잡았다.
“김 주임! 너거 사무실에 내려가자.”
웬일인가 싶어서 사무실로 같이 내려오니까 오 주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 봉투에 얼마 들었는지 확인해 봐라!”
무슨 일로 그러는가 싶어서 김세민은 서둘러 봉투 안을 들여다보니 현금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10만 원인데요?”
“당신, 따와이 이자라고 들어봤나?”
“따와이 이자요?”
“모리나? 서울서는 안 그라나?”
따와이 이자 소리에 앞에 앉아 있던 이 경사가 나섰다.
“그 따와이 이자는 지가 다 해결하겠심다. 계장님은 고마 몸이나 건강하이 잘 갔다 오시소. 여 일은 신경 쓸 거 없심다.”
이번에는 김세민이 오 주임한테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 말을 하다 말고 그럽니까? 따와이 이자가 뭔지 말씀을 꺼냈으면 끝까지 하셔야죠. 사람 궁금하게.”
“그기 말이요, 지휘관이 되 갖고 우에서 밑을 내리다 보문 밑에 계장들이 뭐 하고 돌아다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밖에서 이상한 말도 들리고 하이까 이놈이 인자 내한테 봉투 하나 갖고 올 때가 되았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문 불러다 놓고 먼저 격려금이라 카면서 우에서 따와이 물을 내리붓는다 아이요? 서장이 봉투를 줬는데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놈이라 케도 보답은 해야 될 끼고. 안 그렇나? 10만 원을 받았는데 도로 10만 원을 갖다줄 끼가?”
“하긴……”
“맞제? 최소 50이나 100은 갖다줘야 할 거 아이가? 그라이 그게 따와이 이자 놀이지 뭐겠소?”
“에이!”
김세민은 의자 뒤로 머리를 젖혔다.
한순간이라도 그게 진짜 서장이 준 격려금이라고 생각했던 게 짜증이 났다.
김세민이야 체질적으로 그런 생각을 못 한다고 치더라도, 그런 해석을 기가 막히게 하는 형사 관리 계장은 따와이에 대해서 만큼은 달인 중에 상 달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여름 서에 인명 구조하러 가는건데 어디서 따와이 할 게 있다고 그러는 겁니까?”
“어허이! 전에도 내 말했다 아이가? 서장님이 저 자리 보안과장을 했다꼬. 그때는 해운대경찰서가 없었거든? 여기 동래서에서 해운대 여름 경찰서 운영을 했다 아이가? 그 바닷가에 있는 특급 호텔이고 술집이고 하는 놈들이 전부 다 여기 보안과장한테 봉투 들고 와서 줄을 섰다꼬.”
“그러니까, 그거는 10년도 더 된 얘기고 지금은 해운대서가 있는데 우리하고 뭔 상관이냐는 이야깁니다 제 말은.”
“그거는 김 주임 니 생각이고 서장님은 옛날 생각해 보문 여름 서에 있으문 생기는 게 제법 있다고 그리 알고 있는 기라. 이번에 김 주임 니가 또 희망을 했다면서? 그라이 서장도 속으로는 아! 김 주임 이 친구가 여름 서를 희망하는 거 보이까 그 뭐 묵을 기 있는 모양이다 이 카고 오해하게 된 기라. 딱 보이 그런 그림이구만.”
“아니 그건 나이 든 파출소장을 차출하고서 욕 먹을 바에는 차라리 내가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건데, 에이 X발 그걸 따와이하고 연관을 시켜요?”
“그라이까…… 내가 봐도 김 주임이 이번에 여름서 희망은 너무 성급한 면이 있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마지못해 밀려가지고 나가는 모양새였으면 참 좋았실 낀데…… 할 수 없다 아이요?”
“서장님은 왜 이렇게 맨날 경위들만 이렇게 들들 볶는지 원.”
“경찰서장이나 돼 갖고 경위들 안 볶으면 경사들 델꼬 놀아야 하는데 그거는 또 폼이 안 난다 아이가. 나중에 인사철 되어 보문 김 주임도 알겠지만 일선 서장들이 인사 위원으로 들어간다 아이요? 인사 위원회에서는 서장들끼리 서로 싸우고 난리라. 와 그란지 아요? 밖에서 따와이 잘해 갖고 서장한테 상납 잘하는 놈이 최고거든? 그런 주임들은 다 소문이 나 있다꼬. 그라이 서로 데려갈라꼬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는기라…… 그 자리에서 찍히면 약도 없어. 어느 경위 이름이 나왔는데 서로 안 데려가려고 하고 다들 ‘점마 저거 시원찮은 놈이다’하는 낙인이 찍히면 졸지에 갈 데가 없어진다꼬. 그라모 어딜 가느냐? 우리 경비 계장처럼 맨날 경비 부서만 돌다가 집에 가는 기라. 집구석에 겨우 쌀독만 채워 갖고 겨우 밥이나 묵고 살다가 퇴직하고 나문 다시 극빈자 신세로 돌아가는 기라. 그라이께 그 짓 안 할라꼬 서장한테 그리 갖다 바친다 아이요? 여름서 가가꼬 X나 따와이 해가 서장한테 상납도 좀 하고 그라소. 킥킥킥! 이 부장 내 간데이!”
“에이 하여튼 저 인간은 천지에 도움이 안 돼! 남 X되는 게 그리도 좋은지 대놓고 낄낄거리고 말이야.”
이 경사가 열이 받는지 볼펜을 앞에다 던져 버렸다.
김세민은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형사 관리 계장 말에 딱히 틀린 것이 없었다.
이번에 자신이 근무 희망을 한 것은 다른 주임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인데 결과적으로 서장이 오해를 하게 만들었으니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셈이 되었다.
‘과연 여름 서에서 따와이가 될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내면 내 보따리부터 찾는다는데 누가 경찰관한테 봉투를 건네준다고……’
김세민은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