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5화
#305.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삐-용 삐-용
앰뷸런스가 사이렌 굉음을 울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제국 호텔 앞 해변 현장까지 차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호텔 뒷문에 차를 대 놓고 구급대원들은 들것을 들고서 제법 먼 거리를 들어와야 했다.
“비켜요! 비켜!”
“아, 난 관계잡니다.”
“누구신데요?”
“여름 경찰서 구조대장입니다만.”
“아 네, 최초 발견자십니까?”
“그건 아니고,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가 봤더니 익수자가 있어 건져 왔습니다. 체온이 상당히 내려간 걸로 봐서는 물에 빠진 지 좀 오래된 것 같더군요.”
“그렇군요, 옆에 있는 저 사람은?”
“그게 남편이라고는 하는데……”
김세민은 미심쩍은 기분 때문에 확신이 없어서 말끝을 흐렸다.
“알겠습니다. 일단 S병원으로 시신 옮기겠습니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는 동안 김세민은 당직 형사들을 불러 지시를 했다.
“형사들은 바로 자리 뜨지 말고 사람들 다 흩어지기 전에 목격자 확보해서 연락처하고 간단하게나마 조서 협조 좀 받고.”
그러자 옆에 같이 있던 오늘 당직 간부인 손달호 주임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를 했다.
“김 주임이 이래 알아서 다 해뿌이까 나는 짜달시리 할 게 없네.”
“그죠, 원래 행정반에서 해야 되는데 지금 업무 관할 따질 시간이 없잖아요?”
“알지, 그래서 고맙다고 하는 소리 아이가. 내 김 주임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말만 하소. 나는 뭐 도와 주까?”
“저는 지금 시신이 가는 S병원에 가보려고 합니다. 소장님은 이 주변 수색을 좀 해 주세요. 익수자가 떨어졌다는 저 바위 부근 있죠? 거기서부터 호텔 바 앞까지.”
“수색? 뭔 수색?”
“이 주변에 있는 것 전부요. 뭐라도 아주 사소한 것 핀 하나 종이 하나도 여기 자연환경과 맞지 않는 것, 즉 다시 말해서 원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물건이 눈에 띄면 전부 다 수거를 해야 합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손 주임은 이상하다는 듯이 김세민에게 다시 물었다.
“뭔 소리고? 보소! 김 주임요, 이거 익사 사건 아잉교? 그라모 행정 처리하문 구만이제, 뫈다꼬 일을 어렵게 풀어 갈라꼬 구캅니까?”
그러자 김세민은 손 주임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는 나지막이 귓속말했다.
“익사가 아니라 살인입니다.”
“잉? 머라꼬! 살인!”
“……아직 증거는 없지만요. 일단 서둘러서 증거물을 하나라도 더 찾아 놔야 해요. 시간이 지나면 증거가 하나도 남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이고, 이거 뭔 일이 이리 꼬이노? 하필 내 근무 날 X발 살인이 뭐꼬? 근데, 용의자는 누군교?”
김세민은 말없이 시신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머라꼬? 점마가 용의자라꼬? 확실한 기가?”
“그러니까 아직 증거는 없다니까요, 대신에 잘 감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직 주임한테도 보고를 하세요.”
“김 주임은?”
“난 병원에 갔다가 검안 끝나면 바로 변사 보고하고, 시신에 대한 압수 영장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랑 저 친구, 여름 서에 데려가서 조서도 받으세요. 상세하게 받아야 합니다. 특히 오늘 저녁에 뭘 먹었는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동선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돼요.”
“그랍시다. 일단 본서에 우리 주임장이 기시니까 먼저 보고부터 해야 되겠네.”
* * *
김세민은 미포 삼거리에 위치한 S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당직 응급 의사를 찾았다.
“익사자인데 검안이 필요합니다. 특히 제가 물에서 건져 냈을 때 배가 볼록했거든요? 그러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물에 던져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물에 들어갔는지, 아닌지만 좀 판단을 해 주시고, 혈액을 좀 채취해야겠습니다. 익사자가 술을 먹었는지 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김세민의 말이 끝나자 의사는 얼굴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제가 공의도 아니고 함부로 소견을 말했다가 나중에 법정에 불려 다니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데……. 그러지 말고 공의를 부르시죠? 가만있어 봐라…….”
그러더니 응급실 달력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박 간호사! 오늘 해운대 지역 공의가 서 박사인가?”
“네.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럼 연락 좀 해 줘요. 여기에 살해 의심 익사자가 있다고.”
“네. 연락해 볼게요.”
“늦기 전에 채혈을 먼저 좀 해 주시죠.”
김세민은 뭔가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서 재촉을 했다.
“채혈이야, 뭐 그럽시다.”
그러더니 간호사를 시켜서 채혈을 했다.
보기에도 피가 상당히 응고된 상태여서 채혈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여기 병리실에서 혈중에 알코올 성분이 있는지는 확인해 볼 수가 있죠?”
“음~ 아마 가능할 겁니다. 자세한 수치는 대학 병원에나 가야 하고요.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익수자가 술을 많이 마셨다고 남편이 그렇게 주장하는데, 제가 10분 넘게 입을 대고 인공호흡을 했는데도 술 냄새는 전혀 안 났단 말입니다.”
그러자 의사는 귀찮은 듯 이렇게만 말했다.
“아이…… 그런 것 까지 내한테 이야기 할 필요는 없고요, 시신을 가지고 더 이상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나중에 소 박사가 오면 자세한 얘기 들으시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익사자는 살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검찰에 압수 영장을 받아서 부검을 할 예정이니까 절대 유족들한테 시신을 내어 주시면 안 됩니다. 장례도 반드시 이곳에서 치러야 합니다. 내일 중으로는 제가 영장을 받겠습니다.”
“영장만 받아 오신다면야…… 받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시죠.”
때마침 본서에서 당직 주임과 공의가 함께 나타났다.
“아니,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인데 고마 유족한테 인계하고 치아뿌면 될 일을 뭐 한다꼬 이리 일을 벌이노? 내 참, 중 2소장이 그리 멍청한 사람은 아인데?”
오늘 형사 당직인 5반 주임이 있는 대로 툴툴거리면서 병원에 들어오더니 김세민을 보고 는 대뜸 반말을 했다.
“자네는 여름 서 구조대원인 갑네? 오야, 니 고생했다. 여는 인자 우리가 다 알아서 할 끼니까, 니는 가서 일 봐라!”
김세민이 구조 복장에 모자만 쓰고 있어서 그냥 비 간부인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전 여름 서 구조대장 김세민 경위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제가 볼 때는 살인 사건일 확률이 높습니다. 용의자는 같이 신혼여행 왔다는 신랑이고요.”
“뭐라꼬? 당신 지금 살인이라 구켔나? 그라모 증거가 있나?”
“……찾는 중입니다.”
“에헤이, 이 봐라. 아무 증거도 없이 함부로 그런 소리 씨불이다가 유족들한테 책잡히면 그때는 약도 없는 거 알제? 함부로 주께문 안 된다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내고 나문 자네 일은 다 끝이다 아이가! 김 주임이라 했소? 요서 더 나서지 말고 고마 빠지소! 내가 다 알아서 할 끼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형사들이 남편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 주임장도 나오셨네요. 여기 남편 조서는 다 받았심다.”
그러면서 자기 주임한테 건네주었는데 아예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김세민이 조서를 받아서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오늘 서울에서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왔는데 제국 호텔 1층에 있는 바 미네르바에서 양주를 한 병 마셨다고 진술이 되어 있었다.
‘그때 가 봤던 곳이네.’
이상한 점은 남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여자 혼자서 양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셨다는 것이었다.
‘신혼여행 와서 첫날밤에 신부가 양주 한 병을?’
김세민은 서둘러 아랫줄을 읽어 내려갔다.
신부는 술에 만취한 상태가 되어 바람을 쐰다고 밖으로 나왔고 자신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볼 일을 보고 뒤따라 나왔는데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이 없었고 찾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가운데 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가 봤더니 자기 부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세민이 남편인 송인구에게 말을 건넸다.
“송인구 씨! 지금 이 사건은 변사 사건 보고를 해서 검사 지휘 받아서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연고지인 서울에 가서 장례를 치르시려면 당분간은 시신을 여기다 보관을 해야 합니다. 아마 내일 중으로 시신에 대한 압수 영장이 발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여기에 시신을 안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무방합니다. 대신 화장은 우리 경찰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혹 제 집사람이 타살이라도 되었단 말씀입니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생각을 해 봐야죠. 그러나 변사 사건의 최종 지휘는 검사가 하니까, 검사가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라고 지휘가 내려오면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여기서 장례를 치르도록 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종결을 지어 주셨으면 합니다.”
송인구가 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경찰 공의인 소 박사가 들어왔다.
“아이구 소 박사! 쉬시는데 나오시라 해서 미안합니다.”
형사 3반 주임이 먼저 너스레를 떨었다.
“뭐 나야 불러 주면 고맙지. 한 건 하면 15만 원 아이요? 그래 오늘은 또 뭔데?”
“아, 신혼여행을 왔다가 물에 빠져서 숨진 익사자가 있는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김세민이 먼저 나서서 말을 꺼냈다.
“뭐가 이상한데? 근데 이 양반은 처음 보는 직원이네?”
소 박사가 말을 받았다.
“네. 여름 서 구조대장으로 있습니다.”
“아 그래요, 계속해 보세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실족을 해서 바다로 빠지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또 이분이 빠진 곳은 제국 호텔 앞입니다. 따개비가 잔뜩 바위에 붙어 있어서 올라오기가 쉽지 않죠. 만약에 익사자가 필사적으로 뭐라도 붙잡고 올라오려고 했으면 시신이 저리 멀쩡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손이고 발이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야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말하자 형사 3반 김순철 주임이 손을 내저었다.
“에헤이, 그거는 우리 김 주임이 뭘 잘 몰라서 카는 소리고, 형사도 한 번 안 해 봤을 거 아이가? 사람이 물에 빠지문 우신에 바위가 아이라 물에서 나올라꼬 헤엄을 치게 되어 있다 아이가, 그라이 저거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힘이 빠져서 가라앉은 기라. 단순한 변사 사건이라니까 와 자꾸 딴 소리를 하노?”
김순철 형사 주임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살인 사건이 아니라 단순 사고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어쨌든 일단 시신부터 함 보입시다.”
소 박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시신이 안치된 수술 보조실로 걸어갔다.
김세민도 같이 따라가서 소 박사의 검안을 지켜보았다.
소 박사가 가지고 온 녹음기를 틀고 검안을 시작했다.
“에 또, 199X 7월 15일 20시 20분 경찰 공의 소 XX 가 익사자…… 이 여자분 이름이 뭐요?”
“아, 최은지입니다.”
옆에 서 있던 남편이 바로 불러 주었다.
“익사자 최은지 씨에 대한 익수 사건 검안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외견상 소견은 아주 깨끗합니다. 상처도 없고 타박상이나 긁힌 자국도 보이지 않습니다. 동공은 이미 완전히 열려 있고, 혀도 완전히 말려들어 간 것으로 보입니다. 복부가 팽창한 것으로 봐서는 입수 당시에 폐가 아닌 식도를 통해 다량의 물이 흡수가 된 것으로 보아, 물에 빠질 당시에 자가 호흡이 어려울 정도의 정신 상태로 보입니다. 흔히 익사자에게서 나타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부검을 해 봐야만 구체적인 것을 알 수가 있어 보입니다. 본 검안의는 부검을 강력하게 주장을 하는 바입니다.”
“하따 소 박사! 뭔 말을 그리 어렵게 하고 그래 샀노? 마 고마 익수 사건이라 카문, 될 거 가지고 일을 어렵게 벌이네.”
형사 3반 주임이 있는 대로 툴툴거렸다.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김순철 주임이라고 하셨죠? 사건을 하기가 귀찮아서 그러신가 본데, 이 사건은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여름 서에도 형사들이 돌아가면서 나오거든요? 제가 그 인원 가지고 이 사건을 마무리할 테니까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리고 오늘 당직하는 형사 한 사람은 여름 서 파견이니까 내일까지는 제가 쓰겠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형사 3반 주임이 되물었다.
“아니 형사 하나를 빼내서 뭐 할라꼬?”
“혈액을 채취했거든요. 서울 국과수에 보내서 분석을 좀 해야겠습니다. 조 형사라고 했죠? 서울에 출장 좀 다녀오세요. 출장비는 제가 드리죠.”
“하따, 이 양반 웃기는 사람이네. 형사도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그래도 주서들은 풍월은 많아 갖고, 어설픈 형사 흉내는 다 내고 그라네. 난 모리겠다. 알아서 하소! 어차피 여름 서에 파견 나간 형사들이니까 그쪽에서 알아서 해야지.”
‘저런 인간한테 맡겨 봐야, 보나 마나 남편이란 사람한테 봉투나 하나 받고 적당히 끝내 버리려고 들겠지.’
그때 흰 가운에 임상 병리사라는 명찰을 단 여직원이 다가와서 검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까 이야기하신 거요, 우선 혈중 알코올 성분이 있는지만 간단하게 테스트를 했는데……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순간 송인구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김세민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송인구 씨, 이상하네요. 분명 최은지 씨는 만취 상태였다고…… 여기, 최대한 빨리출발해요.”
김세민은 혈액 샘플을 형사한테 건네면서도 계속 송인구의 눈을 주시했다.
당황한 송인구는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자 뭐라도 말을 해야 되겠다 싶었는지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주워 담았다.
“아니…… 그…… 뭐야, 그래! 위 속에서 물이 많이 나왔다면서요? 아까 보니 볼록하던데! 근데 술 먹고 물에 빠지면 속에 있는 알코올이 다 물에 녹아서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건 위 속 내용물 이야기고, 지금 이건 혈액 속에 알코올 성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당신이 말한 대로 양주 한 병이나 마셨다면 혈액 속에 그대로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없거나 아주 미량이라서 이상하단 얘기지.”
“……”
“내 생각에는 당신이 뭔가 우리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일단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장례 준비나 잘하고 있도록 해. 만약에 사라지면 당신이 살인범이 되는 거야.”
김세민은 그렇게 송인구에게 못을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