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8화
#328. 엽기적인 살인 사건
다음 날 아침 해운대 서장실에서 형사 간부들과 김세민이 모여 앉았다.
연락을 받은 김세민이 맨 나중에 도착을 해서 좀 늦게 들어갔더니, 서장은 본청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네, 그러시죠. 네 맞습니다. 아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 형사 주임이 아직 어려가지고 뭘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요? 인제 후보생 나와서 첫 순환 보직이라…… 네. 제가 잘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가십쇼.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장이 수화기를 내려놓자 형사과장이 일어나서 구령을 붙였다.
“자 앉은 채로 차렷! 집합 끝!”
“에이 X발 제기랄!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아침부터 전화 받는다고 화장실에도 못 가겠어. 인제 김 주임 왔으면 다 모인 거야?”
“예! 다 모였심니다.”
“자 다들 바쁠 테니까 말이야. 간단하게 결론만 말하지. 지금 우리 변사 사건 수사하는 거 있잖아? 벌써 저 위에까지 소문이 다 났어. 아마 검찰 쪽에서 먼저 대검에 보고를 하다 보니까 우리는 한발 늦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는데, 차장님 전화까지 받았다고…… 무리하게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야.”
“그럼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입니까?”
김세민이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수사는 하되 무리하지 말라는 거야. 그게 위에서 요구하는 거라고. 아마 검찰에도 똑같이 지시가 내려갔을 거야. 근데 이상하네, 이게 뭐라고 당에서까지 요구를……”
“예?”
“아니, 그거는 보안 유지를 하고…… 일단 그 정도로만 알아듣고 나머지는 검찰에서 지휘하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고, 우리는…… 에이 됐어, 그만하자고. 자 다들 가서 일 봐! 그리고 김 주임만 거기 좀 남아 봐.”
“차렷! 지시 끝!”
형사과장이 뻘쭘하게 경례를 하고 다들 서장 방을 나갔다.
“이봐 김 주임!”
“예?”
“내가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난 서울에서 쭉 경찰 생활을 해 왔잖아? 지금도 여기 관사에서 혼자 살고 있고, 마누라하고 애새끼들은 다 서울에 있다고, 그럼 뭐냐? 이번에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그러려면 자네가 날 좀 도와줘야 돼!”
“네? 제가 말입니까?”
“그 뭣이냐. 이 사건을 자네가 책임지고 좀 덮어 줘!”
“……”
“이게 대기업이다 보니까, 엄청나게 빽을 들이미는가 봐. 그러니 자네가 적극적으로 저기 최연택이하고 둘이서 머리를 좀 맞대 갖고, 검찰 눈까리를 좀 빼먹든지 해서 사건을 적당히 주물러 달란 말이지 내 말은. 어차피 이 건은 제대로 사건도 안 된다면서?”
“글쎄요, 전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어차피 우리는 검사 지휘를 받아서 수사를 하는 것이니까, 검사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지만 검사가 수사 지휘를 계속 내리면, 우리가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서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그렇다고…….”
서장이 알 수도 없는 애매한 말을 계속 떠들고 있었다.
김세민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도 있고, 부검의 서 박사도 굉장히 깐깐하다고 들었습니다. 요트 경기장에서 어제저녁에 너무 많은 사람을 참고인 조사를 했기 때문에, 어차피 덮지는 못 할 것입니다. 과연 진실이 뭔지는 재판에서 밝혀져야지, 우리 경찰이 초동 수사 단계에서부터 사건을 뭉개면, 나중에 화살이 우리한테 다 돌아옵니다. 잘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그럼 말이야, 자네가 처음부터 이 사건을 맡다시피 했잖아? 자네 생각은 어때? 이게 살인 사건이 되는 거야?”
서장이 김세민의 의견을 물었다.
“부검에서 두개골에 함몰 골절이 있었고, 뇌에 혈흔이 보이는 부종도 있었습니다. 섣불리 사건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어젯밤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밤새 다 연락이 되어서 서장님한테 전화가 오는 겁니까?”
김세민도 그 점이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나도 잘 몰라. 오늘 아침에 본청 참모 회의가 이것 때문에 한 시간이나 일찍 시작했다는 거야. 아까 전화 온 사람도 수사국장인데, 머리에 골절상이 있는 것은 꼭 누군가에게 맞았다기보다는, 배에서 실족하면서 머리가 배 난간이나 뭐 이런 데 부딪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런 점을 잘 고려해서 수사를 하라고 하는데, 이거는 뭐 봐줄 거면 말이야, 화끈하게 다 덮으라고 하든지, 아니면 법대로 하라고 하든지 하지, 그저 자기네들 책임 안 지려고 애매하게 지시를 한단 말이야.”
“위에서도 말 못 할 고충이 있지 않겠습니까?”
김세민이 억지로나마 서장을 위로하자 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기네들도 나중에 빠져나갈 길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에휴! 나도 모르겠다. 더 이상 수사 진행하지 말고 오늘 중으로 마무리해서 검찰에다 던져 줘 버려! 괜히 우리가 끌어안고 있다가 날벼락 맞는 수가 있다고. 아 참, 나중에 저쪽 그룹에서 변호사가 내려올 거래. 아마 피해자하고 합의도 할 것이고, 겸사겸사해서 수사 내용도 좀 알아보고 하겠지. 친절하게 해 주라고 위에서 신신당부를 하니까, 괜한 일로 책잡히는 일이 없도록 잘해 줘!”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김세민은 서장한테 거수경례를 하고 서장실을 나왔다.
다시 여름 경찰서로 돌아오니 아직 한낮도 안 되었는데 백사장에 어디 한 군데 파라솔 펼칠 곳도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눈앞에 빽빽하게 가득 찬 인파를 보니 전국적인 휴가 시즌이라는 생각과 함께 비로소 긴장이 되었다.
‘그래, 내 임무는 살인 사건 수사가 아니지, 피서객이 이렇게 많은데 구조대 업무로도 눈코 뜰 새 없겠는데……’
더 이상 사건 수사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경비 전화가 울렸다.
띠리리링!
“감사합니다. 여름 서 구조대 본부 박 경사입니다. 아 예, 대장님예? 대장님! 1번에 경비 전화 왔심니다.”
“감사합니다. 김세민 경위입니다.”
-앗! 사수님! 저 조 경사!
전화기에서 100호실 조 경사의 음성이 나왔다.
“응, 그래 웬일이야?”
-하핫! 저 오늘부터 휴가예요.
“그래?”
-지금 부산 가는 비행기 타려고 하고 있어요.
“뭐? 지금?”
-방 하나 잡아 주신다면서요? 설마……약속 잊은 건 아니죠?
‘근데 이 자식은 꼭 콩나물시루같이 사람이 바글바글한 날 휴가를 온다고 난리를 피우네.’
슬그머니 짜증이 밀려왔지만 이미 약속을 해 놓은 터라, 싫은 내색은 하지 못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뭐 그러던지. 김해 공항에 내리면 해운대로 오는 리무진 버스가 있거든? 그거 타고 제국 호텔에 내려서 카운터에서 체크인 해! 미리 마중은 못 나간다. 지금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
-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찾아갑니다.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래? 인제 우리 사수님 얼굴 한번 보겠다. 저녁에는 시간 되죠?
“알았어! 일단 도착하면 연락해!”
김세민은 전화를 끊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다시 수화기를 든 김세민은 홍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르르륵! 짤가락!
-네 별장입니다.
“지수 씨! 나야 김세민.”
-세민 씨? 어쩐 일이야? 전화를 다 주고.
“아니, 다른 건 아니고…… 은수 요즘 집에 있지? 방학 아니야?”
-응, 심심해서 죽으려고 해! 맨날 강아지 데리고 놀기만 하고.
“아 그럼 잘됐네.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 조 경사가 휴가를 온대.”
“정말이야?”
“내가 제국 호텔에 방은 하나 잡았는데, 오늘 해수욕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움직일 수가 없네. 그래서 은수 보고 제국 호텔에 와서 조 경사 하고 좀 놀아 주라고 그래. 둘이서 해수욕도 하고 그러면 좋잖아? 어차피 나중에 둘이서 사수, 부사수 할 건데. 어때?”
-그래? 잘됐네, 안 그래도 내가 우리 은수한테 너무 잘해 주었다고 해서 어떻게 신세를 갚나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은수 데리고 나가서 잘 대접할 테니까, 세민 씨는 신경 쓰지 말고 근무나 잘해. 그럼 나중에 저녁 식사는? 같이 하는 거야?
“그러지 뭐. 사람도 많은데 멀리 가지 말고, 그냥 지난번에 갔던 제국 호텔 미네르바에서 7시에 만나자. 내가 전복하고 성게 좀 따서 갈게.”
-그래 그러자. 그럼 나중에 봐! 세민 씨.
김세민이 전화를 끊자 송 경장이 놀라서 고함을 질러댔다.
“대장님! 대장님!”
“왜?”
“저기 한번 보세요.”
송 경장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수영 금지선까지 밀려 올라가 있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수영을 못 하니까 자꾸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지금 물때가 어떻게 돼?”
“만조가 1시간 남았습니다.”
“저기 부표 있는 데는 수심이 최소 2미터는 되지?”
“아마 그럴 겁니다.”
“안 되겠다. 망루 근무자는 한 사람만 남기고 전원 물에 들어가서 근무하라고 무전을 해!”
김세민이 그렇게 지시를 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
“대장님, 물에는 왜?”
박 경사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물어보자, 김세민은 보충 설명을 했다.
“한번 보라고, 만조가 되니까 너울 파도가 들어오잖아? 그리고 평소보다 수심이 깊기도 하고…… 안 그래도 해운대는 해저 지형상 조금만 들어가도 금세 깊어지는 곳이 많은데 망루에서 보고 조치하려면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어. 한 사람은 구명동의 등에 메고 저기 수영 금지 부표까지 들어가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호각 불면서 밀어내고, 물에 빠지는 사람 신속하게 구조하고. 30분마다 망루 근무자하고 교대하라고 그래. 그래야 안 지치고 근무하지.”
“알겠습니다. 즉시 연락하겠습니다.”
송 경장이 무전기를 잡았다.
“구조 본부에서 망루 사오자(근무자)에게 일방 종여섯(지시)! 재고 날 때(현재 시간)부터 망루 사오자 한 명은 입수해서 사오 하도록, 반드시 구명동의 등에 메고 물에 들어가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사람들이 수영 금지선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유도하도록. 망루 근무자와는 30분 단위로 교대한다. 이상!”
그때였다.
여름 경찰서로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경찰 아저씨! 저기 호텔에서 사람이 떨어졌어요. 빨리 좀 가 보세요!”
“뭐야? 어디 호텔이야?”
“저기 헤라 호텔이요. 방금 사람이 떨어졌어요!”
신고를 받은 박주일 경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이고, 하필 오늘 같은 날 또 뭔 추락 사고고? 어이 뭐하노! 퍼뜩 구조대장님 안 부르고!”
김세민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밑으로 내려오니 박 경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대장님! 큰일 났심다. 저기 헤라 호텔에서 사람이 떨어져가 죽었답니다. 인자 뭐 우에야 됩니까?”
“뭐요? 아니 그럼 빨리 형사들을 불러야지, 날 왜 불렀어요?”
“아이 그래도 여기서는 주임님이 선임이시니까, 주임님한테 먼저 보고를 드리는 것이…….”
“이 답답한…… 우리 경찰관들은 내보냈어요? 앰뷸런스도 불렀고?”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거 뭐부터 해야 되노?”
박 경사는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일단 밑에 형사들 올라오라고 그러고, 거기 파출소에서 나온 직원 두 사람은 나하고 가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김세민은 호안 도로를 뛰어서 헤라 호텔 바다 쪽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김세민은 직원들에게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 현장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서는 시신 쪽으로 갔다.
“이게 뭐야?”
김세민은 시신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떨어진 사람은 양손과 양발이 모두 나일론 줄로 묶인 상태였다.
누군가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호텔 창문 밖으로 집어 던진 것이었다.
“빨리 무전기 좀 줘 봐!”
“넵!”
직원한테서 무전기를 건네받은 김세민은 즉시 해운대 경찰서 상황실로 무전을 날렸다.
“180(해운대 경찰서 호출 부호) 종실(종합 상황실)! 여기 여름 미인집(경찰서) 구조대장!”
“여기 180!”
“잠잠전(조금 전) 헤라 별장(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종다(발생했다). 범인을 사구(체포)해야 하니까 지금 즉시 헤라 별장 주변을 봉쇄를 해야 한다. 주십일(빨리)로 미 하나(서장)께 상고(보고)하고, 전 형사 비상소집 걸어서 헤라 별장으로 내집(집결)종열(하도록)! 그리고 먼저 해수욕장 주변 파인집(파출소) 순마(순찰차)들은 주십일(즉시)로 헤라로 내집 종열!”
“아! 칠팔! 칠팔! 거 180 종실에서 긴급 종여섯(지시)이 있으니까 종모(모든) 단말(무전기) 일체 교중(교신 중지)! 잠잠전…….”
“상황실 가만있어 봐! 김 주임이야? 여기 미하나!”
서장이 바로 중간에서 무전에 끼어들었다.
아마 어디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차 안에서 무전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여기 김 주임입니다!”
“방금 그게 뭔 소리야? 무슨 살인 사건이 하루걸러 한 번씩 난단 말이야! 똑바로 얘기해 봐!”
“저도 상황은 잘 모르는데 사람이 떨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여기 와 보니까, 나이가 40대 정도 되는 남자가 손발이 다 묶인 채로 위층에서 야외 바닷가로 떨어졌습니다. 누군가 손발을 묶어서 밖으로 던진 것 같습니다.”
“뭐? 김 주임! 그게 진짜야?”
“네! 빨리 전 직원 비상소집해서 범인이 호텔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우선에 파출소 순찰차만이라도 이리로 보내 주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나는 지금 기장인데 바로 넘어갈 거야. 상황실!”
“옙! 종실입니다.”
“이 봐 이 봐! 바쁠 때는 그 무전 음어 그런 거 그냥 생략해! 그거 알아먹는 놈이 몇 놈이나 된다고…… 빨리 형사들 소집해서 헤라로 뛰어가라고 하고, 현장 지휘는 김 주임한테 지시를 받으라고 해. 그리고 파출소 순찰차들도 다 집결해서 김 주임 지시 받으라고 하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