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339화 (339/869)

제 339화

#339. 선거 치안

“안 그래도 막 전화하려던 참인데, 역시 우린 뭔가 통하는 데가 있나 봐요.”

-한번 솔직해져 보자구요, 그 동안 내 생각, 몇 번이나 했어요?

“하하, 무슨 질문이 그래요?”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게요. 한 번? 두 번? 아님 한 번도 없나? 그럼 곤란한데……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정도로 해 두죠. 그런데 여름 가기 전에 해운대에 한번 오기로 했잖아요? 언제 좀 편해요?”

-오늘 전화한 거 보면 모르겠어요?

“응? 무슨?”

-오늘 시간이 되니까 오늘 전화했죠. 아까 우린 통하는 데가 어쩌구 하더니 뭐야, 다 그냥 해본 말이었어.”

“……오늘이라, 오늘……”

-안 돼요?

“안 돼도 되게 해야죠. 윤희연 씨가 온다는데.”

-정말?

“저녁에 나오시죠?”

-괜찮아요? 바쁜데 내가 방해한 거 아니죠?

“이제 좀 조용해졌습니다. 어제까지는 솔직히 정신이 좀 없었는데 오늘은 진짜 좀 조용해 졌네요……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먹어요. 내가 맛있는 거 준비해 놓을게요.”

“맨날 소독약 냄새나는 병원에만 있으니까, 여름인지 겨울인지 구분도 이제 안 되네요. 오늘 바람 좀 쐬어야겠어요. 어디로 가면 되죠?”

“저녁 7시까지 제국 호텔로 오세요. 로비 라운지 지나서 왼편으로 돌아 들어오면 바로 앞에 미네르바라고 펍바가 하나 있거든요? 내 이름으로 창가에 자리 하나 예약해 놓겠습니다.”

-바다 잘 보이죠?

“당연하지.”

-네, 그럼 나중에 봐요.

“기다리겠습니다.”

김세민이 전화를 끊자 남 경장이 옆에서 뭔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남 경장? 지금 뭐 해요?”

“아, 애쿼렁 공기 얼마나 남았는지 점검하고 있습니다.”

“응? 그건 왜?”

“대장님 또 손님 오는 거 아입니까? 그라면 또 우리 비밀 기지에 잠수 하겠구나 싶어가지고요. 킥킥킥!”

“……눈치 하고는.”

“아무튼 대장님도 보기보다는 참 바쁘게 사시는 분 같네예. 먼저 내려가 계시소. 제가 다 준비해가 내려가겠심니다. 송 경장! 제트 스키 가져오라고 무전 때리라!”

“옙!”

오늘따라 바다가 너무 잔잔하고 유리알처럼 맑아서, 수심 4, 5미터는 족히 될 만한 바다 밑바닥까지 햇빛이 들어와서 플래시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모래 바닥에 몸을 숨긴 가자미들이 사람의 손길을 피해 잽싸게 모래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분명 전복을 좋아했었지.’

윤희연에게 줄 거라고 제법 큰 전복만 골라서 따다 보니 평소보다 잠수 시간이 꽤나 길어졌다.

대충 물질을 마무리하고 구조대 본부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형사 5반 노 경사가 밝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주임장님! 인자 금마 완전 X됐심니다.”

“왜요? 증거 보전이 받아들여졌습니까?”

“증거 보전이 다 뭡니까? 그 새끼 그거 누고, 홈쇼핑 한다는 사장인가 금마하고…… 상무! 둘 다 구속 영장 나왔다 아입니까.”

“그게 진짭니까?”

김세민이 놀라서 물었다.

보통은 증거 보전 신문에서 영장을 발부하지는 않는데, 이건 좀 의외였다.

“항해사 인마가 열을 받아 갖고 지가 갖고 있던 천만 원짜리 수표 2장을 추가로 더 제출했다 아입니까?”

“그럼 입막음용으로 2천만원이나 받은 거네?”

김세민도 짐작은 했었지만 안 그래도 용기를 내서 자백까지 한 사람을 더 추궁하는 게 싫어서 참고인 조서를 받을 때 일부러 그 부분은 물어보지 않았었다.

“근데 그걸 왜 스스로 밝혔을까? 잘 이해가 안 되네.”

“판사 앞에서 변호사들이 왜 이제야 나타나서 거짓 증언을 하느냐, 당신이 봤다는 사실이 전부 당신이 소설을 쓰는 것 아니냐?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여자를 물에 빠트리는 것을 본 사람도, 객관적 증거도 없는데 어째서 우리가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느냐? 등등으로 몰아붙이니까 항해사 인마가 품속에서 수표를 꺼내 갖고, 판사한테 제출을 하는 깁니다. 그날 입막음용으로 현장에서 바로 홈쇼핑 사장한테 받았다고 구카데예.”

“그럼 박도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바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각 이 사실을 알리거나, 구조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야 그렇겠지, 선박을 운행하는 자격증을 가진 항해사는 당연히 승객에 대한 구조 의무도 있는 거니까.”

“예, 판사도 딱 그렇게 이야기 했심니다. 그라고 돈을 받고 범인을 은닉했다는 죄도 추가되고…… 그 자석도 참, 고마 주디 닫고 가만 있었시문 그냥 넘어갔실 낀데 설치다가 지 발등 찍었지예. 그래도 나중에 수갑 차고 나오면서 지보고 구캅디다. 주임님 덕분에 마음이 편하게 되었다고요. 그날 이후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카던데예? 그노마도 양심은 있는 놈 같아예.”

“……양심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네.”

저녁 무렵이 되자 해수욕장에는 전보다 눈에 띄게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백사장에 파라솔을 더 펼칠 장소가 없어서 송림 공원에까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백사장이 절반도 안 찬 것 같았다.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 그나저나 발령 건은 참…… 내가 해운대하고 인연이 깊은 모양이지?”

김세민은 윤희연과 약속한 제국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네르바에 올라가니 희연은 한 손을 턱에 괴고는 사람이 옆에 와도 모를 정도로 바깥 경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요?”

“어! 언제 왔어요?”

“한두 시간 됐나?”

“뻥치시네, 나도 방금 왔는데. 그나저나 정말 좋네요. 바다가 이렇게 한 눈에 보이다니……부산에 오길 정말 잘했어!”

“윤희연씨 있는 곳에서도 바다는 보이지 않나요? 대청동 언덕이면 자갈치 쪽으로 보일 텐데?”

“으휴, 거기랑 여기랑 같아요? 그쪽으로 보이는 바다는 이렇게 느긋한 풍경이 아니고 뭐라 해야 하나…… 치열한 삶의 현장이랄까? 뭔가 마음의 속도가 빨라지는 그런 느낌이죠. 근데 여기서 보는 바다는 정말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게 있네요. 색깔도 좋고…….”

“나도 여기 와서 느낀 건데 바다색이 매일 달라 보입니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요.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가까이 있는 바다까지 다 색이 다르게 보입니다. 여기 와서 매일 하루 종일 바다만 쳐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서울 촌놈이 참, 바다 구경을 이렇게 실컷 하게 될 줄이야.”

“그건 스펙트럼 현상이예요. 햇빛이 구름을 거쳐 나오면서 빛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는 거죠. 구름이 일종의 프리즘 작용을 한다고나 할까?”

“……그렇군요.”

“……방금 나 재수없다고 생각했죠?”

“……음식이 왜 안 나오지? 배고픈데.”

“정말!”

그때 주방에서 조리한 해산물이 큰 쟁반에 담겨서 나왔다.

“자 이거나 먹읍시다. 내가 오늘 이거 딴다고 제법 깊이 들어갔다 왔습니다.”

“방금 뭐라고? 이걸 다 세민 씨가 바다에서 따왔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대박……아니 대체 못 하는게 뭐예요?”

“못 하는거 많죠, 윤희연씨가 원하는 거 빼고 다.”

“에이, 또 빈말 한다.”

“빈말 아닌데? 자, 어서 먹어요. 먹고 더 먹어요, 많이 잡아 왔으니까.”

* * *

다음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이라고 하더니 파도는 일찌감치 그 위세를 나타내었다.

“대장님! 오늘은 입수 금지해야 되겠는데요?”

남 경장이 걱정 어린 얼굴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러게…… 태풍이 온다고 하더니 아직 이틀인가 남은 줄 알았는데 파도가 먼저 덮치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안전이 우선이니까…… 전부 입수 금지합시다. 지방청에도 그렇게 보고를 하고.”

김세민이 그렇게 지시를 하자 다들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아침부터 입수 금지라는 것은 종일 쉰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대장님, 이거 대원들 여기 구조대 본부 좁아서 대기할 수도 없는데 어차피 태풍이 오는 거면 바다가 금방 잠잠해지지도 않을 테니까 아예 부산에 집이 있는 애들은 다 외박을 보내 버리죠. 여기 잘 데도 없는데.”

부산진에서 온 박명수 경사가 대원들 외박을 보내자고 건의를 했다.

“그러게, 그게 낫겠는데? 그럼 여기 한 10명만 남기고 다 집에 가서 쉬었다가 일단 내일 아침에 다 나오라고 하죠. 이제 비까지 오네? 멀리 가지 말고 집에서 대기하라고 그렇게 지시를 해요. 통신 축 선상에 대기하는 걸로.”

“옙! 알겠습니다.”

제트 스키도 네 명이서 들고 여름 경찰서 앞에까지 갖다 놓고서는 천막으로 덮었다.

텅 빈 망루에 ‘입수 금지’란 붉은 깃발만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거렸다.

한순간에 사람들이 다 사라진 텅 빈 백사장을 보고 있자니 뭔가 새로운 풍경을 보는 듯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때 밑에서 여름 서장이 왔다고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다.

오늘은 역전 소장이 당번일이라 일찌감치 와 있다가 과장 앞에서 지휘를 했다.

“전체 앉은 채로 차렷! 집합 끝!”

“예 쉬세요.”

과장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쉬어! 쉰 채로 과장님께 주목!”

‘저 양반은 다음 달이면 정년 대기 발령이라면서, 무슨 군기가 처음 들어오는 순경보다 더 바짝 들어 있네? 나갈 때가 되니 아쉬워서 그런가?’

먼저 과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해수욕장 근무도 피크는 지나갔습니다. 오늘부터 한 사흘 동안 태풍이 예보되어 있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날씨도 한결 선선해질 것이고 사람들도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 경찰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치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전 경찰은 선거 치안 태세에 돌입하라는 본 청장님 지시가 하달이 되었습니다. 대선일은 12월 18일로 결정이 되었고, 공식적인 선거 운동은 두 달 전부터 한다고 해도, 벌써 물밑에서는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이제 여기도 슬슬 마무리를 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 선거 치안에 전념해 달라는 서장님 당부도 있었습니다.”

“선거 치안예? 그기 뭡니까?”

“……박동철 해경 지서장이었죠?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우리 같은 졸짜들이 그런 어려운 용어를 우째 압니까. 마 과장님이 알아듣기 숩도록 설명 함 해 주시소!”

해경 지서장이 능청을 떨자 방범과장이 싱긋 웃었다.

“아니 이제 해수욕 시즌도 다 끝났는데, 아직도 해경 지서장이 여기 옵니까? 이제 그만 풀어 주시죠?”

방범과장이 김세민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치 당신이 해경 지서장을 못살게 굴지 않느냐는 그런 말투였다.

“어데예? 과장님 그거는 오햅니다. 지도 마 처음에는 오기가 싫어서 뺑뺑 돌고 그랬는데, 인자는 정이 들어뿟다 아입니꺼? 여기 주임님이나 박 경사도 다 좋은 사람들이고, 또 저기 미포 우리 지서에 가면 사람도 몇 안 되는데 재미도 없어예. 아침에 여 와가 돌아가는 정보도 듣고 노가리도 좀 까다가, 돌아가서 폼 잡으문 우리 아들도 다들 지보고 존경하는 눈빛으로 본 다 아입니꺼? 지는 마 여기 여름 서가 공식적으로 종료될 때까지는 매일 출근할 낍니다. 지발 내쫓지는 마이소.”

“키키킥! 큭큭큭!”

“웃지 마소! 와, 다들 내 말이 우습게 들리요?”

“아따! 고거 해가 서쪽에 뜰 소린데…… 천하에 뺀질이 박동철이가 이리 여름 서에 정이 들었다 카이, 이거 완전 놀랠 노자다 아이가?”

역전 파출소장인 강만철 주임이 한소리를 했다.

“형님! 인자 고래 말씀하실 날도 며칠 안 남았능 거는 알고 기시지예? 다음 달에 제대하고 나면, 형님 작은집도 저기 미포에서 아죽 횟집하고 있다 아잉교? 인자 우리 지서에 월대 내야 하는 거는 잘 알고 기시지예? 알짤 없심니다?”

“에라이 이 미친 자석아! 빨랑 안 꺼지나!”

“우하하하! 낄낄낄! 작은 집이 뭔교? 형님 세컨드란 말잉교?”

박주일 경사가 그게 궁금한지 역전 소장한테 물었다가 꿀밤만 맞았다.

“차라! 자석들아! 아직 과장님 말씀 안 끝났다! 자세 똑바로 안 할 끼가?”

“아, 선거 치안이란 게 딴 게 없습니다. 오늘부터 일체 단속을 하지 않을 거예요. 교통이나 파출소에 나가있는 범칙금 스티커도 다 회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형사 사건으로 피해자가 있는 사건만 입건을 하고, 나머지 즉심이나 행정사범은 아예 단속을 안 하는 겁니다. 무조건 훈방한다! 그렇게만 아시면 됩니다. 박 경사!”

“옙! 경사 박주일!”

“여름 서도 즉심 스티커나, 교통 범칙금 스티커 나와 있죠? 그거 오늘 중으로 다 회수해서 교통은 교통 서무로, 우리 즉심은 즉결반으로 다 회수를 하세요.”

“그럼 매일 저녁 기동대가 여기 삐끼 단속하러 5개 중대씩이나 나오는데 그거는 우짭니까?”

“아, 그것도 그냥 나와서 아무 단속도 안 하고, 그냥 경찰관이 돌아다닌다는 이미지만 심어 줄 겁니다. 기동대 대원들도 부대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해수욕장 근무를 선호한다고 그렇게 조사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여름 서 끝날 때까지는 계속 기동대 지원은 됩니다. 또 질문?”

“이거 완전히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었네요.”

김세민이 맥없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역전 소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 김 주임, 고래 생각할 거는 없고, 마 이럴 때 우리가 인심 팍팍 쓴다, 고래 생각하면 되는 기라. 순사가 주민들 틈에 섞이야지, 맨날 조지기만 하면 그게 어디 일제 순사지, 대한민국 순사라 칼 수가 있나? 인자 걸리문 다 훈방인 기라. 따와이 하기도 좋다 아이가?”

“아이고! 역전 행임요! 아무리 나갈 때가 다 됐다 케도 과장님 기신 데서 따와이가 뭔교? 따와이가? 과장님은 서울서 오싰는데, 나중에 서울 가서 서울청 직원들한테 뭐라꼬 카시겠능교? 부산 가이 이 촌놈들이 앉으면, 따와이 이바구밖에는 안 한다고 흉 본다 아입니까? 고마 후배들 물 흐리지 말고 퍼뜩 나가시소!”

“알았다. 알았어, 니 동철이 고만 주께라. 니 안 구케도 내 이번 추석만 지나면 바로 나갈 끼다.”

“아이, 다음 달이 아이고 추석 때까정 기신다고요? 6개월 전에 대기 발령 안 나능교?”

“마 고래 되그로 내 힘 좀 썼다 아이가! 여 깔아 놓은 기 얼만데, 추석 따와이까지는 하고 나가야 할 거 아이가? 그기 반년 농사 아이가?”

“하이고! 우리 행님, 억수로 대단하네. 그라이까 사람들이 해운대 따와이 순사 넘버원이라꼬 카지.”

“이 자슥이…… 아침부터 술 취했나? 뭐라 쳐 씨부리삿노?”

“와예, 제가 없는 말 했심니까? 그라이 저 미포에 건물도 하나 장만했다 아입니까. 크~나가는 순간까지 따와이! 참말로 존경시럽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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