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4화
#344. Forget Me Not
-네, 나팔꽃입니다.
“아! 아직 가게에 있었네요. 저 김세민입니다.”
-김 주임님? 지금 어디세요?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김 주임님 안 보인다고 찾던데…….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만.”
-갑자기? 저한테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실까? 참, 그리고 저한테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연희 언니 일도 있고…….
“예?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말 편하게 안 하시면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거예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네. 아니…… 그래. 다른 게 아니고 지난번 지하에 내려갔을 때 봤던 꽃, 그게 뭐였지? 그때 홍 마담이 나한테 꽃말이 어쩌고 이야기도 해 줬던 것 같은데.”
-지금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하신 거예요? 이 밤늦은 시간에?
“무슨 문제라도?”
-수상한데. 혹시 뭐 좋아하는 여자라도 있어요? 아니면 나한테 관심이 있나?
김세민은 순간 너무 황당해서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아까부터 잘 안 들리네. 왜 이러지?
“어,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전화 끊고.”
-에이, 화 풀어요,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근데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갑자기 전화해서 꽃이 어쩌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
“동백섬에서 여자가 자살을 했어.”
-……!
“근데 현장에 그 꽃이 지천에 널려 있단 말이지. 뭔가 수사의 단서가 될까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아는 대로 말해 줬으면 하는데.”
-일단 그 꽃은 물망초예요. 꽃말은 Forget Me Not.
‘Forget me not……. 나를 잊지 말라는 뜻인가.’
-옛날에 어떤 청년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서 물망초를 바치고는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현장이 동백섬 어딘데요?
“여기? 최치원 동상 있는 데야.”
-어라? 나 거기 아침에 운동하러 자주 가는 곳인데. 거기에도 물망초가 있어요?
“많아, 아주.”
-하기사 가서 유심히 본 적은 없으니까…… 꽃 색깔 봤어요? 밤에 보면 파르스름한 게 아주 묘한 색이 나는데.
“맞아, 나도 이렇게 파란 꽃은 처음 봤어. 손가락에 물망초로 만든 꽃반지를 끼고 목을 맸는데……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건지.”
-으으…… 그냥 듣기만 하는데도 소름이 다 돋네요. 근데 뭐 하는 사람이래요?
“……아직은 잘 몰라. 지금 수사 중인 사건이라 더 자세하게 말하긴 좀 그렇고, 아무튼 알려 줘서 고마워.”
-괜찮으신 거 맞죠?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마시구요.
“뭔 소리야? 갑자기?”
-아니 그냥…… 언니가 생각나서…….
“……늦었는데, 그만 들어가. 다음에 보자고.”
-네, 들어가세요.
다음 날.
“최 주임?”
“네.”
“부검 언제 시작합니까? 지금쯤 가면 되려나?”
“말라꼬예, 고마 여 있으시소. 그 소독약 냄새 천지로 진동하는데 여러 사람 갈 필요 있심니까? 고마 저 혼자 가께예.”
“아니, 그래도 같이 가 봐야죠.”
“어데예, 제가 퍼뜩 갔다 올 테니까 나중에 희망원에나 같이 가 보시지예. 어디더라? 연산 8동이라 켔지예?”
사체 부검은 반드시 검사나 사법 경찰관(경위 이상)의 참여하에 하도록 형소법에 명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검사들이 부검하러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도 경찰서 형사 반장들은 반드시 참석을 하곤 했다.
“그래요, 수고하고…… 갔다 오면 바로 연락 주고요.”
“예, 수고하시소!”
최연택 주임이 나가고 나자 김세민은 망원경을 들고 2층 구조대 사무실에서 해수욕장 곳곳을 이리저리 살폈다.
최근 다시 날씨가 더워지자 막바지 피서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다들 파라솔도 안 빌리고 백사장에 자리만 하나 깔고 앉아서 해수욕만 간단하게 하고 돌아가는 걸로 봐서는 외지 사람들보다 부산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더울 때는 해수욕이 최고지. 나중에 남 경장 데리고 또 잠수나 한번 하고 올까.’
별다른 특이 사항 없이 오전 일과가 지나고 점심을 먹고 나서 구조대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최연택 주임이 부검을 끝내고 복귀했다.
“다녀왔습니다.”
“아, 고생 많았어요. 뭐 특별한 거라도?”
“전에 이야기한 대로 임신이 맞답니다. 16주 정도로 보인다고 하고요, 태아는 기형아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하데요. 그라고…….”
“뭔데?”
“이거는 서 박사 말인데, 변사자의 허벅지가 퇴행성 근육이라서 잘 걷지도 몬할 낀데 어떻게 그 동상까지 갔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위 속에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던데요?”
“그래?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던데?”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며칠 동안 먹은 게 없는 것 같다고, 굶고 다닌 것 같다고 하든데요.”
“흠……. 일단 희망원부터 한번 가 봅시다.”
최연택 주임과 같이 희망원에 도착을 해 보니 뒷산을 깎아서 수영만 매립을 한다고 올라가는 길이 엉망이었다.
먼지 때문에 그런지 수녀님 한 분이 호스로 입구에서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예, 저희는 해운대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원장 수녀님을 만나 뵙고 싶은데요.”
“제가 원장이에요, 수산나 수녀라고 합니다. 경찰서……. 혹시 달래, 우리 진달래 때문에 오신 거예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네, 이쪽으로.”
김세민과 최연택 주임은 수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자체가 산비탈에 지어진 것이라 그런지 마당 자체가 눈으로 보기에도 비스듬했고 건물은 3개 동 정도가 있었는데 굉장히 협소해 보였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수용 시설이라면서 원생들이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다들 어디 갔습니까? 원생들이 안 보이는데요?”
그러자 수녀는 한숨을 쉬며 오른쪽 건물로 안내를 했다.
“이쪽으로.”
그러고는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무심코 따라 들어갔던 김세민과 최연택 주임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우웁.”
“……이, 이기 무신 냄새고? 우왓.”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비릿한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같이 왔던 형사 5반의 노장우 경사와 양명식 순경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쓰더니 견딜 수가 없었는지 문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안을 들여다보니 쇠창살로 칸막이를 지른 각 방에 원생들이 대략 다섯 명 정도씩 수용이 되어 있었는데 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고 벽에는 스티로폼을 붙여 놓았으며 위가 높고 아래는 비스듬히 낮은 구조였다.
원생들은 눈에 초점을 잃은 채 공허한 표정으로 김세민 일행을 바라볼 뿐이었으며 어떤 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벽에다 찧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조금 덥죠? 이 애들은 전혀 대소변을 구분 못 합니다. 그래서 대소변을 보면 여기 호스로 따뜻한 물을 틀어서 씻어 내야 하거든요? 아래를 비스듬히 해 둔 것도 호스를 뿌려서 대소변을 씻어 내면 자동으로 밑으로 흘러내리면서 세척이 된 다음에 배수구로 빠진답니다. 원래 제대로 하려면 한 명당 사람이 둘 이상은 붙어야 하는데 나중에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수녀님 여섯 분이서 이 애들 40명을 돌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일주일에 몇 번씩 자원 봉사 하는 성당 신자들이 와서 애들한테 밥을 먹여 주고 있어요. 우리 힘으로는 애들 밥도 못 먹여 주거든요.”
“그럼 자원 봉사자들이 안 오는 날이면 이 애들은 밥을 못 먹습니까?”
“거의…… 그렇다고 봐야지요. 저희들이 일일이 떠먹이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밥을 줘 봐야 저렇게 전부 다 바닥에 던져 버리니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김세민이 안을 들여다보니 밥그릇을 담은 식기가 맨 아래 물이 흘러내려 가는 통로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래서, 진달래는 찾았나요?”
원장 수녀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진달래가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인 듯한 그런 말투였다.
“그게……. 그 아이는 어젯밤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
수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조용히 성호를 긋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여기 우리가 보호하는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버려진 아이들입니다. 이름도 없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죠, 태어날 때부터 기형으로 태어나서 부모한테 버림을 받은 것이니까. 우리가 거두어서 사는 날까지는 데리고 있지만, 보통 수명이 길지 않아요. 아주 짧은 편이죠. 스스로 먹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영양실조에다가 각종 피부병 하며…… 아픈 곳이 많답니다. 또 유전자 이상으로 태어나다 보니 처음부터 면역력이 없는 애들도 많아서 감기 한 번 걸리면 죽는 애들도 많아요. 후우……. 달래야……. 흐흑.”
수산나 수녀는 그동안 진달래와 보낸 시간이 떠오르는지 슬픔에 몸을 떨었다.
그동안의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모양이었다.
“진달래는 저기 창살에 갇힌 애들보다는 상태가 좋았어요. 근데 그 애는 근육이 점점 퇴화되는 병이 있어서, 최근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애들 중에서 상태가 가장 나은 애가 둘이 있는데, 그중에 다른 하나가 장산이라는 아이입니다.”
“이름이 장산입니까?”
“저 건너에 산이 보이지요? 저기가 장산입니다. 전에 계시던 원장 수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장산이가 다섯 살이 되어 호적에 올려야 하는데 마땅한 이름이 생각이 안 나더래요. 그런데 장산이는 하루 종일 저기 앉아서 장산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원장 수녀님이 이름을 장산으로 지으셔서 호적부에 등재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장산이뿐만이 아니에요, 다른 애들도 저 산을 보는 걸 다들 좋아했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장산을 쳐다보며 서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산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한답니다. 대화라고 해 봐야 장산이란 말을 한 번 내뱉으려고 얼굴에 오만 인상을 다 써서 한 5분은 걸려야 겨우 한마디 할 수가 있을 정도긴 하지만…….”
“…….”
수산나 수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보통은 이곳에 오면 3년 내에 50% 이상은 애들이 죽습니다. 저희들도 방법이 없어요. 국가에서 보조금이 조금 나오긴 해도 그것 가지고는 이 애들을 겨우 입에 풀칠하게 하고 거두는 정도일 뿐이고, 비싼 치료나 교육까지 시킨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죠. 그런데 주님의 은총을 입었는지 장산이라는 애는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을 하기 시작해서 저희들이 글자까지 가르쳤을 정도입니다. 애가 또 성실하고 착해서 저기 쇠창살에 갇힌 동생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억지로 밥도 떠먹여 주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 잘해 주었습니다.”
“진달래는 상태가 어땠습니까?”
“진달래는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는 아이였어요. 성당 신자 중에 부산대 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달래가 귀여웠는지 4년 동안 매 주말에 한 번도 안 빠지고 진달래를 보러 왔었어요. 평소 아무 표정도 없던 달래도 그 여학생이 올 때는 웃고 있더라고요. 마음을 열어 준 것이죠. 근데 그 여학생이 졸업하고 서울로 취직이 되어 떠나면서 저기 물망초가 핀 화분을 하나 주고 갔습니다. ‘언니가 다시 올 때까지 이 꽃을 잘 가꾸어야 한다.’라면서 말이죠.”
“그게 오히려 마음의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구만.”
김세민이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수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진달래는 물망초가 핀 그 화분을 애지중지 키우고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일반 자원 봉사자들이 많이 다녀갔는데, 나중에 보니 진달래가 혼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더라고요. 옆에서 아무리 달래고 물어봐도 대답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어어!’ 하면서 손으로 뭘 가리키는데, 그걸 본 장산이가 옆에서 ‘물망초, 물망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수녀님들한테 물어봤더니 아까 낮에 왔던 자원 봉사자들이 갈 때 물망초 화분을 들고 가는 것 같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마 꽃이 예쁘니까 들고 간 것이었겠지요.”
“저런……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달래가 너무 슬퍼하니까 여기 수녀님 한 분이 시장에서 물망초가 핀 화분을 어렵게 하나 사서 가져오셨는데, 그건 거들떠도 안 보는 거예요. 수녀님이 구해 오신 물망초는 조금 연한 푸른색이었는데, 달래가 갖고 있던 물망초는 선명한 푸른색이었거든요. 아마 다른 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이후로 장산이하고 달래가 계속 희망원을 나가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달래는 잘 걸을 수도 없는데 아마 장산이가 업고 다녔던 모양이죠……. 그런데 사실 장산이도 짝다리에다 무릎이 안쪽으로 휜 무릎이어서 걸을 때 보면 한 발자국 걷는 데 남들보다 한 동작을 더 해야 할 정도로 힘이 드는 아이인데……. 애들이 돈도 없고 하니까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신고하면 파출소에서 보호하고 있었던 적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을 우리가 수도 없이 찾아왔었는데, 이렇게 영영 멀리 떠나 버렸네요. 흐흐흑! 다 우리 잘못입니다. 애들을 더 챙겼어야 하는 건데…… 흐윽.”
“그럼 장산이는요? 지금 여기 있습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물었더니 원장 수녀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요? 그럼 둘이 같이 죽은 게 아니었나요?”
“목을 맨 것은 진달래였습니다. 혼자서는 못 했을 것이고 옆에서 누가 도와준 것 같은데, 그럼 장산이가 그랬을 확률이 높아지는군요…….”
“그 애들이 여길 나간 지가 오늘로 사흘째인데 아직 장산이는 소식이 없어요. 어디로 갔지? 갈 데도 없을 텐데…….”
“어디 짐작 가는 데라도 없으십니까?”
그러자 수산나 수녀는 고개를 들어 멀리 있는 장산을 바라보았다.
“늘 저길 가 보고 싶어 했거든요? 여기 애들도 다 저길 그렇게 가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사실 이 언덕바지에서 보이는 세상은 저기 장산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이 애들한테는 저 산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요.”
“실은 달래가 목을 맨 동백섬 최치원 동상 말입니다, 물망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
“아마 장산이가 달래를 업고 다니면서 찾아낸 곳이었겠지요. 그런데 장산이는 왜 달래 옆에 있지 않고 그곳을 떠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