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3화
#353. 모자 벗고 다니면 죽는다
“자, 오늘은 임시 조회가 있으니까 과장님들도 다 참석하시야 됩니데이. 고마 사무실로 가지 말고, 여서 직무 교육장에 바로 올라가시지예.”
다른 과장들이 도망을 갈까 봐 경무과장은 아침 참모 회의 끝나자마자 과장들을 데리고 4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일선 경찰서도 다 상황실에 작전 상황실을 만들어 놓고 을지훈련을 하고 있는데, 본청 감찰에서 ‘잔존 부조리 척결에 대해서 경찰서장이 금일 중으로 특별 교양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가 경무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파출소장과 직원들까지 다 불러 모은 것이었다.
경무 계장이 김세민에게 다가와서 살짝 이야기했다.
“원래 지휘를 방범 주임이 했는데 지금 차출 갔시니까, 김 주임이 좀 해야 되겄소.”
“알겠습니다. 제가 하지요.”
김세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서 보니 4층 강당이 꽉 찼다.
어림잡아서 대략 이백여 명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 서장이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전체 일어서! 전체 차렷!”
고개를 뒤로 돌려 서장이 단상에 바로 서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고함을 질렀다.
“서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김세민도 돌아서서 경례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피커에서 장성곡이 나왔다.
♬빰빠라빰빠 빰,빠빠빠!♪
♪빠~ 빰빠빠, 쿵차라락작 ♬ 빠~ 빰빠빠, 빠빠 빠빠 빰빠밤빠 빰빰빠♪
마치 군 장성에 준해서 예식을 했다.
서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 X발, 이 맛에 경찰서장 하는 기지. 내년 이맘때 제대하고 집에 가 있으면 누가 내한테 이런 대접을 해 줄 끼고? 올해 마지막 총경은 골수까지 다 뽑아 묵고 갈 끼다.’
근데 전 직원들을 모아 놓고 부조리하지 말라는 교양을 하라니, 서장은 생각만 해도 기가 찼다.
제대하고 집에 가면 자신의 연금은 어차피 손도 못 댈 것이고, 마누라한테 용돈을 타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신의 수중에 돈이 없으면 자존심이고 뭐고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올해 어떻게든 좀 따와이해서 모아 놓아야 그것 갖고 죽을 때까지 여유 부리면서 살 수 있을 텐데, 위에 있는 놈들은 꼭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부조리 척결을 외치고 있었다.
‘이란다고 따와이가 없어지나? 쓰잘머리 없는 짓거리 하기는.’
서장이 손을 내리는 것을 본 김세민이 뒤돌아서서 고함을 질렀다.
“바로!”
그리고 돌아섰더니 서장이 낮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편히 쉬어!”
“편히 쉬어!”
지휘관의 지시를 복창한 후에 김세민은 돌아서서 다시 구령을 붙였다.
“착석!”
그러자 다들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제대로 앉은 것을 확인한 후에 김세민은 구령을 붙였다.
“쉬어! 편히 쉬어! 앉은 채로 서장님께 주목!”
그러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서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에~ 또, 오늘 부조리에 대한 특별 교양을 하기 전에, 우리 서에 새로 전입 온 경위 간부 한 사람을 우리 직원들한테 내 특별히 소개를 할 끼니까, 앞으로 서로 힘을 합치가 잘해 보도록! 방금 지휘를 한 김세민 경위가 동래에서 당 서로 전입을 왔는데, 여러분도 다들 알다시피 전임 서장이 청장한테, 요청을 해서 우리 해운대로 온 발탁 인사라 카모 이해가 좀 되겄나? 김 주임은 미국 FBI 교육도 갔다 왔고, 그 뭐고 화재 감식 자격증도 있다고 카고, 또 본청 특수대에서도 근무를 했고, 여기 부산에 와서도 크고 굵직한 강력 사건들을 많이 해결했다 아이가? 우리 해운대 여름 서에 지원 와 갖고도 살인 사건만 해도 벌써 몇 건이고? 다 혼자서 해결했다 아이가? 그라이 직원들도 김 주임한테 많이 배아야 할 끼라, 그리 알고, 쿨럭! 쿨럭!”
서장이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탁자 위에 놓인 물을 마셨다.
“그라고 김 주임이 현재 우리 부산 시경에서 볼 때는 최고 엘리트 간부다. 이제는 아무 놈도 우리 해운대서가 무신 또라이들만 모인 또라이 경찰서니 뭐니 하는 이따구 소리는 절대 못 할 끼다. 김 주임 반만이라도 하는 사람 있으모, 한번 나와 보라꼬 케 봐라. 갑자기 우리 해운대서가 일류 경찰서가 된 기라. 그라이 직원들도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카이. 앞으로 안 있나? 해운대 서장도 서울처럼 언젠가 경무관이 하게 될 끼라. 내는 나가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모습 한 번 보게 된다~ 이 말이라, 내 말은. 자, 김 주임? 인자 자네 한번 이바구 해 봐라.”
서장이 할 말이 막혔는지 김세민에게 인사말을 해 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김세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거수경례를 했다.
“방금 전에 서장님한테 소개받은 김세민 경위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조회가 끝나면 파출소 직원들과 소장님들은 자리에 남아 주시기 바랍니다. 별도 지시가 있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만 말을 하고 자리에 앉자, 서장이 다시 단상에서 말을 툭 던졌다.
“와, 인자 새로 왔다고 파출소 군기 잡을라꼬 구카는 기가? 그란다꼬 파출소 돌아다니면서 봉투 받고 그런 짓거리 하문 안 된다!”
이번에는 서장이 김세민을 빗대어서 파출소와 본서 간부한테 서로 봉투 주고받으면 안 된다고 넌지시 경고를 했다.
그러면서 서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추석 명절이 다 되었고, 또 연말에 대선도 있다 보이까 자연히 직원들이 그 뭐꼬? 기강이 해이해지는 기라. 그래서 본청에서도 오늘 중으로 직원들 모아 놓고 특별 교양을 하라고 케사서 서장이 이리 직접 올라오기는 했는데 말이라, 말 나온 김에 내 한마디 하지.”
서장이 먼저 오늘 특별 교양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라고 명절에 말이야, 제발 그 선물 세트 같은 거 좀 들고 다니고 그런 짓거리 하지 말라꼬! 서장실에도 말이야, 명절 인사 한다꼬 선물 세트 들고 들어오는데, 이제는 그런 짓거리 하면 다 쫓아내 버릴 테니까 망신 안 당하려면 알아서들 하라꼬. 그리고 파출소도 마찬가지야. 관내에서 갖다 준다고 무슨 참치 세트부터 시작해서 식용유 세트까지 말이야, 파출소에 수북이 쌓아 놓고 그게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어! 이번 추석에 내가 순시 다녀 보고 그딴 것 파출소에 있으면, 다 불 싸질러 버릴 테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그리고 명절 전에는 어디 본서에 들어오지를 마라! 부르지도 말고 말이야.”
거기까지만 말을 하자 갑자기 장내가 웅성거렸다.
“아니, 누가 선물 세트를 들고 서장실에 인사하러 간대? 가벼운 봉투 들고 가지…… 저 양반이 하동서장을 하다 왔시니까, 하동에는 전부 다 선물 세트 들고 인사하러 다니는 모양이지? 킬킬킬! X나 웃긴다. 이거는 뭐 선물 세트 말고 가벼운 거 들고 오라는 소리네.”
다들 한두 마디씩 옆자리 직원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킬킬거렸다.
“아아, 조용! 조용! 아무튼 내가 오랜 경찰 생활에서 볼 때 자고로 한마디 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다 알아 묵어야 일 잘한다 소리 듣는 기라. 그라이 내 길게는 이바구 안 한다. 다들 알아서들 기어라 이 말이라. 내 말은, 쓸데없는 짓거리 하다가 저 우에 걸리 가지고, 죽네 사네 지랄하지 말고…… 뭐 서장이 이 정도로 이바구했시면 무신 소린지 다들 알아들었으리라고 믿고, 다른 과장들 지시 사항 있으모 지시하고 이상!”
갑자기 서장이 말을 마치고 김세민을 쳐다보길래, 김세민은 총알같이 일어나서 단상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직원들을 향해 구령을 붙였다.
“주목 바로! 전체 일어~서! 차렷! 서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바로!”
이번에는 정보과장이 올라왔다.
“자, 전부 앉은 채로 차렷!”
김세민은 돌아서서 구호 없이 거수경례만 했다.
구호를 붙이는 것은 지휘관한테만 하는 것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어서 그리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정보과장도 그 부분은 문제 삼지 않았다.
“자, 지금 우리가 선거 치안에 돌입한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파출소에서 이렇다 할 만한 첩보가 나온 게 하나도 없다고. 지금쯤 파출소 돌아다니다 보면 말이야, 선물을 주고받거나 하다못해 주민들 모아서 식사 자리도 만들고 할 텐데, 지금쯤이면 그런 첩보가 하루에 서너 건은 올라와야 정상인데……. 마 다들 여당 쪽이라고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건지는 내 잘 모리겠지만, 일단 판단은 우리 정보에서 할 테니까 직원들은 부지런히 첩보를 내주어야 뭔 판단할 거리라도 있을 거 아이가? 우리 정보 형사들이 첩보 수집하는 거는 한계가 있다고. 그라니까 소장들은 앞으로 이제 선거도 몇 달 안 남았는데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서 첩보 수집을 좀 해 주시고…… 당신들이 뭘 몰라서 그렇지, 선거 관련 첩보는 제출하면 전부 다 상보라꼬! 점수 관리하기도 좋을 땐데 와 그래 안 하는가 모르겠네. 몰라서 그라는 기가? 아무튼 그래서 정보과장이 직접 여러분한테 교양을 하는 기라고 생각해 주면 되겠심다.”
그렇게만 얘기를 하고 정보과장이 내려가자 다른 과장들도 다 같이 일어나서 우르르 나가 버렸다.
경무 계장이 회의 끝을 알렸다.
“자, 그라모 여기 방범 계장이 파출소는 특별 교양이 있다고 했시니까 파출소만 남고 나머지는 해산!”
그러자 의자를 밀치는 소리가 우당탕탕 나면서 파출소 직원들만 남고 전부 나가 버렸다.
김세민은 단상에 올라갔다.
“바쁜 와중에 시간 내 줘서 감사합니다. 저는 두 가지만 당부를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앞으로 외근 경찰관은 반드시 근무복을 입으면 외근 시에는 모자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근 경찰관 직무 규칙에 다 나와 있는 얘기니까 새삼 근거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하고 우리 방범 간부들이 다니면서 모자를 벗고 다니거나, 손에 쥐고 다니거나, 혹은 모자를 썼지만 머리카락이 옆으로 불쑥 튀어나와서 보기에 안 좋으면, 그것도 다 지적하여 각 파출소에 하달을 하고 근무 평점에서 감점을 하겠습니다. 한 번 지적에 ?0.5점씩 해서 4번 지적이 되어 ?2점이 되면 징계에 회부가 됩니다. 지시 사항 위반으로 말입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하자 파출소장들이 대번에 웅성거렸다.
“하기사, 그거 언젠가 한 번은 단속해야 된다고 생각은 다들 하고 있었다 아이요? 시민들이 보기에도 경찰관이 모자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정말 보기 안 좋거든? 우리 김 주임 와서 대번에 모자 이바구부터 꺼내는 거 보이까 인자 해운대서가 지대로 돌아가기는 돌아갈라는 모양이다.”
중1소장이 찬성한다고 의사 표시를 했다.
“그란데 그게 감독이 잘 되겠소?”
반송 1소장이 반문을 하자 김세민은 예상했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계획이 있습니다. 파출소장님에게 자기 파출소 직원들은 아무래도 매일 보는 식구나 다름없는데, 야박하게 지적해서 일일이 보고하기는 힘들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저하고 방범 주임이 다니면서 하루에 서너 건은 단속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파출소장은 다른 파출소 근무하는 직원이 모자 벗고 다니는 것을 지적해서 보고를 해 주면, 자기 파출소 직원들이 단속된 것을 한 건에 하나씩 상계를 해 주겠습니다. 즉, 자기 파출소 직원을 보호하고 싶으면 다른 파출소 직원 단속을 많이 해 주시면 됩니다.”
“야, 이거 인자 보이, 김 주임, 순 꾀돌이네. 그 뭐꼬? 이거는 뭐라 케야 하노? 이이제이가?”
반여 1소장이 욕인지 칭찬인지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했다.
“모자 건은 그렇고, 다음에는 파출소를 4개 군으로 나누었습니다. 여기 해운대는 파출소가 현재 24군데이니까 A, B, C, D 이렇게 나누면 한 구역당 6개 파출소가 해당이 됩니다. 앞으로 파출소 간 인사이동은 A에서 근무한 사람은 D군으로 갑니다. 그리고 D에서 근무한 사람은 고생했으니까 C로 한 단계 올라가고요, 그래서 각 군별로 지정된 파출소는 곧 서장님 결심을 받는 대로 내려보내겠습니다. 그럼 자기가 이번 인사이동에는 어느 파출소로 가게 될지 대충 알게 되는 효과도 있고, 자기가 가게 될 범주 안에서 희망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자 재송 1소장이 이의를 달았다.
“근데 그게 쉽겠소? 인사 때 되면 임마들이 전부 다 국회 의원 빽 하나는 다 들고 미는데, 그라모 서장도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또 다른 과장들이 이바구 하는 거는 우짤 긴데? 괜히 혼란만 부추기는 기라. 고마 빽 다는 놈은 좋은 데 가고, 없는 놈은 밀리가 가는 기고, 그게 이 세상 사는 이치 아이가? 김 주임 생각대로는 안 되지 싶다. 안 그런교?”
“그래 재송 원 니 말이 맞다. 인사가 이기 우리 마음대로 되나? 서장도 지금 이바구 하는 거 봐라. 노골적으로 선물 세트 말고 봉투 가 오라 소리 아이가? 인자 나갈 때 다 됐는데 양껏 땡기가 나갈라꼬 칼 낀데 인자 두고 봐라, 파출소 직원들 인사 하나까지도 서장이 전부 다 챙길 기다. 그나저나 김 주임, 당신 욕보게 생겼소. 그래도 나는 당신 열심히 할라는 거 보니까 싫지는 않네, 하는 데까정 해 봅시다.”
“나도 그 모자 쓰고 다니라는 말은 좋네. 우리 처음 들어와가 모자 벗고 다니다가 걸리면 그때는 경찰봉으로 엉덩이 맞았다 아이가? 천날 만날 사수들이 뚜디리 팰 때 아이가. 요새 아들은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어.”
“자자, 그런 이바구는 됐고. 여기 직원들 다 내보내고 우리 소장들끼리 역적모의 좀 해 보자.”
송정 소장이 운을 띄우자, 일광 소장이 일어나서 자리 정리를 했다.
“자, 이제 다 끝났시니까, 직원들은 이 시간부터 모자 단디 씌고 다니고 다 돌아가거라.”
“뭔 역적모의할 끼 또 있단 말이고?”
수비 소장이 관심이 있는지 바짝 옆으로 다가앉았다.
“자, 서장이 저카는데 이번 추석에 다들 우짤 끼고? 각자 플레이할래? 아니문 단체로 맞출 끼가?”
기장 소장이 먼저 추석 인사 문제를 들고 나왔다.
“각자는 안 된다니까? 평소 월대는 몰라도 명절대는 말을 맞춰야 된다고. 그 아까 방범 계장이 이야기한 거 있다 아이가? 그거대로 하면 안 되겠나?”
“뭐 어떻게 하자고.”
“아니, 명절대나 월대도 4단계로 해서 그 맞춰서 인사하자고.”
송정 소장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다들 좋다고 난리였다.
“크~ 역시 방범 계장이 부산 시경에서 최고 우수 인재라꼬 서장이 칭찬을 그리 해샀드만 기가 막히네. 따와이 등급을 순식간에 딱 그리 정해뿌이 내사 마 속이 다 시원하다.”
“자, 그라모 이리 정한데이. 아까 방범 계장이 4단계라 했다 아이가? 1군에 속한 파출소는 월대 30에 명절대 50이다. 그라고 2군과 3군은 월대 20에 명절대 30, 4군은 월대 10에 명절대 20이다. 불만 있는 사람?”
기장소장이 딱 부러지게 이야기를 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아닌데.”
파출소 직원들에 대한 인사이동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 나눈 군별이 순식간에 따와이 상납금 군별로 바뀌어 버리는 것을 보고 김세민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