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1화
#371. 동백 행사 D일(1)
구청에서 갖다 놓은 커다란 녹색 쓰레기통에서 나온 특전대원을 보고 김세민은 적잖이 놀랐다.
파출소 직원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쓰레기통 안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누구야? 야! 네가 발로 찼어?”
“근데 이 X발 놈이 뭘 잘했다고…… 그래 내가 찼다 이 새끼야.”
“뭐, 뭐? 새끼?”
“그래, 새끼. 니 새끼가 뭔데 우리 직원들을 니 새끼 매복 근무하는 앞에다 세우냐? 니네 상관한테 허락은 받고 이러는 거야?”
“…….”
“이거 진짜 웃기는 새끼네? 니한테 병력 배치 권한이 있어? 니 뭐 장군쯤 돼? 니 계급 뭐야, 소속 부대 어디야! X발 새끼가 기껏해야 X도 부사관 나부랭이 주제에 어디서 지랄병을 하고 있어.”
김세민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자 특전대원은 쓰레기통 안에서 두 손으로 끄트머리를 잡더니 순식간에 점프를 해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순발력이 대단했다.
“그럼 너는? 넌 계급이 뭔데 그러냐?”
그렇게 말하면서 특전대원이 자신의 오른팔을 쭉 뻗어 김세민을 밀치더니 곧장 멱살을 잡으려 했다.
순식간에 팔이 뻗어 오자 김세민은 몸만 왼쪽으로 살짝 비틀면서 놈이 멱살을 쥐지 못하도록 오른손으로 놈의 손목을 잡아서 옆으로 밀쳐 버렸다.
“이 새끼 이거 근본이 없네, 좋게 말로 해결할랬더니 손부터 바로 나와? 안 되겠어, 경호 CP에 보고부터 해야지. 별장 CP! 여기 5소구장!”
“여기 CP!”
그 순간.
[부우웅]
“어이쿠!”
뭔가 본능적인 위험을 직감한 김세민이 그대로 몸을 굽혀 앉았다.
김세민의 머리 위로 개머리판이 [후우웅] 하는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간 것이었다.
어느 틈에 등에 둘러멘 우지 기관 단총을 번개 같은 동작으로 한 손으로 벗겨 내어, 앞에 총 자세에서 김세민의 턱을 노리고 개머리판으로 돌려 쳐 들어온 모양이었다.
김세민은 앉았던 반동으로 일어서면서 본능적으로 특전대원의 명치를 향해 주먹으로 짧게 끊어 쳤다.
[퍼억]
“쿠압! 헉!”
‘제대로 들어갔나? 느낌이 오긴 했는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 특전대원은 땅에 기관 단총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쪼그려 앉아서 캑캑거리며 침을 질질 흘렸다.
[치이익]
“5소구장! 여기 CP! 야! 불렀으면 뭔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특이한 솔둘(상황)이 종다한가(있는가).”
“아 여기 별장 후문인데요, 특전사 복장을 한 대원 한 명이 몸이 많이 아픈지 침을 흘리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뭐야? 거기 가만있어 봐. 내가 갈 때까지 꼼짝 말고 있어!”
경호 CP장은 통상 민간인 경호관들 중에서 과장급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소릴 들은 특전대원이 놀라서 자신의 무전기를 잡았다.
“별장 CP! 여기 흑표 15호!”
“여기!”
“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안 나오셔도 됩니다. 제가 속이 안 좋아서 토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경찰관이 보고 보고를 한 것 같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15호! 여기 흑표장!”
작전처장의 목소리가 중간에 나왔다.
특전대원이 작전처장의 목소리를 듣더니 즉시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여기 15호입니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정말 이상 없나? 교대해 줘?”
“아닙니다.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그래. 여기서 망원경으로 보니까 말이야, 뭘 쓸데없이 밖에 나와서……. 앞에 서 있는 놈들 다 경찰들이야?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그리 서서 떠드는 거야? 그리고 너 이 새끼, 그게 지금 매복이라고 하는 거야?”
무전 소리에 작전처장도 호텔 방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망원경을 들고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퉁이여서 자세히는 보이지가 않았고, 다만 서너 명이 몰려 있는 것만 보았을 뿐인 것 같았다.
“넵! 당장 시정하겠습니다.”
“똑바로 해, 지켜보는 눈이 많잖아?”
“넵!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잠깐 무전받는 중에도 특전대원은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경찰이나 민간인 경호관들은 작전처장에 대해 잘 몰랐지만 처장 산하에 있는 군인들에게는 저승사자만큼이나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해 보였다.
대통령 경호실장 밑에는 3개 처장이 있었는데, 경호처장은 그야말로 경찰서로 치면 경무과장 역할이었다.
소속 경호관들의 신상 관리와 차량 및 무기, 시설에 대한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고 수행처장은 그야말로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경호하는 총책을 맡고 있었다.
작전처장 산하의 병력만 빼고는 거의 모든 경호실 병력을 통솔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전처장은 수경사 30단이나 31단, 33헌병단, 66특전대 정도의 군 병력에 대해서만 작전권을 갖고 있었는데 그래도 작전처장을 1년 하고 나면 바로 소장으로 진급되어 일선 전방 사단장으로 가는 승진 코스이기도 했다.
특전대원은 무전을 종료하고 [후우] 하고 한숨을 몰아쉰 후 자신이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김세민을 쳐다봤다.
“당신 대체 누구요? 내가 한 방에 이리 당한 적이 없는데?”
“방심해서 그렇겠지요. 저기 안에 보니 방탄복도 벗어 놓았고……. 난 방탄복이라도 입은 줄 알고 세게 쳤는데, 지금 보니 방탄복을 입지 않고 있어서 대미지가 컸나 보네요. 자, 일어나서 좀 뛰면서 호흡을 조절해 봐요. 잠시 후면 괜찮아질 겁니다.”
“아니, 이제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윽……. 그나저나 이거 다 없었던 일로 하십시다. CP에서 알게 되면 나나 당신이나 서로 좋을 게 없으니까. 1공수 여단 오정팔 중사입니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었다.
“난 해운대 방범계장으로 있는 김세민 경위입니다. 여기 호안 도로 경계 근무 감독을 맡고 있지요. 어쨌든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세민이 먼저 사과를 하자 상대도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도 말이 좀 좋게 나가지 않았죠…….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근데 왜 이런 곳에서 매복을 한다고 이 고생을 합니까?”
“아 그게, 이거 말해도 되려나…… 청와대 경내는 개인마다 매복 호가 3개씩 다 정해져 있습니다. 매일 돌아가면서 어두워지면 매복에 들어가죠. 근데 여기는 매복 호가 없으니까 인공적인 지형지물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 대형 쓰레기통이 딱 제격이라고 처장님이 지시를 하셔서 안에 좀 청소를 하고 나서 들어가 있었더니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자꾸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밖에서 좀 지켜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김세민은 속으로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경호실 근무도 생각보다 힘든 모양이네요. 그럼 매복하고 나면 하루는 쉬고 그런 식입니까?”
“원래는 경호실 전체가 3부제로 돌아가거든요? 하루는 완전 당번 24시간 근무, 그다음 날은 24시간 휴무, 그리고 다음 날은 하루 8시간 일근, 이렇게 돌아가는데 이렇게 출장이라도 나오게 되면 그 개념이 다 없어지죠.”
“그렇네요. 그럼 일근 날은 교육을 받고?”
“대부분은 그렇죠. 청와대 내에 큰 체육관이 두 군데나 있으니까 거기서 체력 단련하고 무술 연마하고 그러는데, 요새는 공 줍는다고 오후는 숲속에 뻗치기 해야 합니다.”
“공을 줍는다고요?”
“그…… 골프공 있지 않습니까? 각하가 골프를 치면 오비(Out Of Bounds)가 많이 나는 모양이더라고요. 오후가 되면 녹지원으로 나와서 드라이브 연습을 하시는데, 그게 골프공이 숲속에 들어가면 찾기가 어렵거든요? 녹지원 내에 매복 호가 있으니까 거기서 엎드려 있다가 어디에 공이 떨어지는지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각하가 들어가고 나시면 다 주워서 물로 씻어서 반납해야 하지요. 한 개라도 모자라면 난리가 납니다.”
“골프공 안에 쇠 철심이 박혀 있는데 머리에라도 맞으면…… 아니 그런 일을 지휘부가 시킨단 말입니까?”
“까라면 까야 되는 게 군인 아닙니까? 전에는 철모를 가지고 나가서 머리에 썼는데 한 번은 공이 철모에 맞는 바람에 [탱!] 소리를 내면서 다시 높이 튀었더랬죠. 각하가 그걸 보시고 뭐가 있냐고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옆에 서 있던 작전처장이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뭐라고 했는데요?”
“아마 숲에 이미 떨어져 있던 다른 공에 정확히 맞아서 튀었을 거라고요.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각하가 고개를 갸우뚱하시길래, 다음부터는 아예 철모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
“철모도 못 쓰게 되니까 그다음부턴 그냥 모자 들고 나가서 위에서 내려오는 공을 모자로 받아야 했지요. 골프공이 내려올 때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쉬이익!’ 하고 내려오는데 겁은 납니다. 머리에 맞으면 깨지거든요?”
김세민은 한번 몸으로 부딪쳤다는 인연으로 오 중사와 격의 없는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 역시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 남들은 청와대에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하겠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뭐라고 할지 가슴이 답답했다.
해운대 경찰서 경비 CP.
극동 호텔 101호실을 임시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방금 동래 교통과장하고 통화했다고 그랬제? 그래 동래서는 어떻게 한다드노?”
서장이 답답한지 윤갑수 교통과장한테 물었다.
“그게요, 동래에서 기가 막힌 대책이 나왔심니다.”
“그게 뭔데?”
“교통 아들한테 전부 화장을 시킨다꼬 카네예.”
“화장을 시켜?”
“예, 맞심니다. 여자들 얼굴에 분칠하는 거 아있심니까? 고걸로 아들 얼굴을 하얗게 칠을 한다고예.”
“그래, 그것도 방법은 되겠네. 근데 누가 그런 생각을 했드노? 참 희한하네.”
“동래 정보 투 머리에서 나왔답니다. 하따 고 양반 꾀주머니라고 하디만 햇또 하나는 오지게 잘 돌아가네. 서장님 우짜실랍니까?”
“뭘 우째해? 방법이 고것밖에 없다카면 그래라도 해야지. 근데 X발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참 더럽다 더러워!”
“하이고 서장님, 이기 뭐 하루 이틀 일입니까?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시모 안 됩니데이. 점마들이 듣기라도 하면 우얄라꼬 그랍니까? 고마 내일 하루만 참으면 되니까 쪼매만 더 삭이시소.”
“에이 X발! 엿 같네!”
행사 당일.
새벽 5시가 되자 어김없이 비상이 걸렸다.
김세민도 여름 경찰서 소파에서 누워 있는데 삐삐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삐삐삐!
번호를 찍어 보니 ‘7X1,0112,8282’라고 되어 있었다.
해운대 경찰서 상황실로 전화로 비상소집 응소를 하라는 문자였다.
전화를 해 보니 남 경장이 받았다.
“일반 전화는 전부 다 통화 중입니다. 경비 전화 아까 해 가지고 우리는 다 여기 여름서에서 대기 중이라고 응소를 다 했심다. 고마 밥이나 묵으러 가입시다. 인자 오늘만 잘 넘어가문 끝이라예.”
공군 1호기가 김해 비행장에 내렸다.
김해 공항은 별도의 공군 비행장이 없기 때문에 평소 공군 비행기가 출격할 때는 민항기는 운항을 할 수가 없었다.
민항기 회사가 공군에 활주로 사용료를 내고 사용하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통령 전용기가 착륙을 하게 되면 모든 민항기는 올 스톱이 되기 마련이었다.
국내선 2층 탑승객 대기실은 활주로가 창문을 통해 잘 보이게 되어 있어 제법 경관이 좋았다.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고 허리에 권총을 찬 건맨들이 2층 탑승객 대기실로 우르르 수십 명이 몰려 들어왔다.
“자 자! 창문에서 떨어지세요! 전부 자리에 다 앉으세요! 서서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거기! 아줌마! 빨리 자리에 앉아요!”
갑자기 들이닥친 건맨들에게 놀란 공항 이용객들이 겁을 먹고 다들 자리에 앉았다.
건맨들은 전부 다 창문을 등지고 서서 오른손을 허리에 찬 권총 벨트에 올려놓은 채 언제라도 사격이 가능한 자세로 폼을 잡고 서 있었다.
“이기 다 무신 일인교? 우리 곧 비행기 타야 하는데?”
나이가 제법 든 신사가 그렇게 물어보자 대답은 하지 않고 인상부터 썼다.
“앉으라니까? 아저씨 내 말 안 들립니까? 잡혀가고 싶어요?”
잡혀간다는 말에 다들 찍소리도 못하고 비좁은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대기를 했다.
스피커에선 연신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활주로에서 부산의 7대 기관장들과 인사를 나눈 대통령은 귀빈실로 이동해서 잠시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B일보의 김윤제 기자입니다. 이번 각하의 부산 행사가 대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야당의 지적이 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음~ 저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있다고 해서 국정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번 행사도 진작에 했어야 하는 건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미루어진 것이고,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된 국민 운동입니다. 대통령이 이걸 손 놓고 있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더 비난받을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거니 뭐니 하는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전 나가는 날까지 국가 원수로서의 직무를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국정을 맡겨 준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응변은 뛰어났다.
밑에서 써 준 것을 보지도 않고 30분 정도는 즉흥 연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대통령의 강점이었다.
“각하! 이제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옆에서 경호실장이 와서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을 했다.
“그래요? 그럼 가 보자고. 자, 우리 기자 양반들 또 봅시다.”
“선두 둘마(싸이카)! 여기 별 하나(수행처장)!”
“여기 선두 둘마입니다!”
“준비됐어?”
“아! 칠팔(알았다)입니다.”
“재고 날 때(현재 시간) 명왕성 거마(대통령 행차) K1(김해 공항)에서 종둘(출발)! 종모 울안 사오자들(모든 시경 산하 근무자) 사오 종만(근무 철저히 하도록)!”
“아! 칠팔 했습니다. 거 100에서는 별 하나 무기계(무전기) 복사 중계(반복 중계)만 할 종정(예정)이니까 참고 종열(참고하도록). 잠잠 전 명왕성 거마 K1에서 종둘!”
“공항 삼거리 종셋!”
“공항 삼거리 종셋!”
수행처장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의 통달 거리가 4킬로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거 100에서 전 부산 시경에 전파를 하려면 다시 중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공항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은 해운대 극동 호텔 CP에도 즉각 알려졌다.
“자 자, 공항에서 출발했어. 앞으로 세 시간 후면 여기 도착이야. 영접하는 사람들 동선은 다 체크한 거야?”
수행 2과장이 흥분해서 방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