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375화 (375/869)

제 375화

#375. 감찰 끗발

신고를 끝내고 나서 김세민은 사무실 짐을 대충 정리한 뒤 박스에 담아서 차에다 싣고 역전 파출소로 갔다.

도착하니 갑반 차석인 배기동 경사가 파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차 안내를 해 줬고 을반 차석인 조영수 경사는 박스를 들어 주었다.

또한 강만철 전임 소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교대하지 않고 김세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동 차렷! 소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강만철 소장이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단 지휘관 흉장을 떼어내 김세민의 가슴에 달아 주었다.

“자, 인제 김 주임도 말단 지휘관인 기라. 이 지휘관 흉장은 우리 지방청은 청장님하고 경찰서장, 그라고 기동대장하고 파출소장만 가심에 다는 거니까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꼬. 그래 따지면 근무복에 좌, 우로 흉장 달고 있는 간부는 청장님하고 경찰서장, 파출소장뿐이다 아이가. 젊은 사람이 달고 있으니 보기 좋네……. 다음에는 얼릉 승진해서 경찰서장 지휘관 흉장 다시소. 내가 그때까정 살아 있어야 할 낀데…….”

그렇게 말하면서 또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보니 어지간히 나가기가 싫은 모양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장님, 직원들 신고 받으시죠?”

배기동 차석이 그렇게 물어 왔다.

“아뇨, 을반은 그냥 내일 근무할 때 보면 되는데 뭐 하러 붙들어 놓았습니까? 됐으니까 갑반 근무자만 남고 을반은 들어가서 쉬세요. 고생 많았습니다.”

“예? 그래도…….”

“앞으로도 시간이 많으니까 같이 근무하면서 천천히 많은 대화를 해 봅시다. 난 다른 당부 사항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기본 근무에 충실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자, 해산하세요.”

“그라모 일동 차렷!”

“경롓!”

“해산!”

그렇게 파출소장 이취임식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이 났다.

“후우…… 이제 진짜 끝이구만…….”

강만철 주임이 못내 섭섭해하자 김세민이 위로를 했다.

“아직 완전히 경우회원 되신 거는 아니잖아요? 12월 되어서 정식으로 퇴직 발령이 내려와야 그때 서에서 정식으로 퇴임식도 열어 주고 그렇게 할 것 아닙니까? 그냥 휴가 간다고 생각하시고, 심심하시면 가끔 놀러 오시지요.”

“정말? 그래도 되나?”

“저희도 선배한테 노하우도 배울 수 있고 좋지요. 댁도 우리 관내에 있으신 걸로 아는데요?”

“그래, 서운키는 많이 서운타. 그라모 내 오다가다 한 번씩 들른다이? 그때 구박하고 그라지 마라, 알긋제?”

“네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됐다 마, 노장은 인자 사라지야지. 배 경사! 니는 인자 내 없시니까 억수로 좋겠다이? 인자 느그끼리 마이 쳐무라이!”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자 배 경사가 기분이 나빴는지 툴툴거렸다.

“아니, 저 양반은 가면서도 악담을 하고 가네?”

“글쎄, 악담같이 들리진 않는데…… 그럼 근무 일지 좀 볼까요?”

배 경사가 새로운 근무 일지를 책상 앞에 갖고 왔다.

“동래에서 온천 소장님도 해 보셨다니까 따로 설명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만, 여기는 직원들 근무 일지만큼은 소장님이 직접 짜 주셔야 됩니다. 이거는 소장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지들이 소장님이 휴가 중이거나 안 계실 때 외는 손댈 수가 없심니다.”

“그래요? 근데 파출소 순찰 노선이 여기는 왜 3개 노선밖에 안 됩니까? 원래 기본이 순찰 4개선이잖아요?”

“맞심니다. 그런데 저녁에 여기 앉아 계시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체 신고 사건이 많이 들어오거든예. 순찰 나가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심니다. 그래서 전에 소장님이 지방청 방범기획계하고 감찰에다가 월대를 주면서 순찰선을 한 개를 줄였다 아입니꺼?”

“뭐, 일을 합리적으로 해야 하니까 업무량이 많으면 순찰을 결략할 수도 있겠죠. 그 문제는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일단 저녁에 소장님 퇴근하시기 전까지 다음 날 근무 일지 짜 놓고 퇴근하시면 됩니다.”

“그래요, 일단 별로 바쁜 것은 없어 보이는데 차석은 나하고 같이 순찰함이나 돌아봅시다. 여기도 파출소장이 직접 관리하는 특별 순찰함 이런 게 있습니까? 온천장에 있을 때 보니 되게 많던데?”

“맞심니다. 여기도 소장님하고 방범대원이 관리하는 특별 순찰함이 한 50여 개는 됩니다. 거기도 강 소장이 직접 다 다니면서 월대를 받았지예.”

“50개나 달았다고요?”

“이기 월대를 받아먹다 보니까 주는 사람도 자기 집 드나들 때 제대로 순찰을 돌고 있는지 수시로 순찰함을 열어서 순찰표를 점검한다 아입니까? 원래는 방범대원들이 돌아야 하는데 조금만 제대로 순찰 안 돌면 바로 이 사람들이 파출소 전화 와서 대번에 왜 돈만 받아 가고 순찰 안 도느냐고 따지는데 노이로제 걸려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월대는 방범대원들한테도 돌아갑니까?”

“어데예? 그거는 말 그대로 특별 순찰함이다 아입니까? 거기서 나오는 월대도 다 소장님 특별 판공비로 다 들어가지예.”

“뭐요? 그럼 전임 소장은 그걸 다 혼자 먹었다는 겁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예. 소장님도 여기 계시다 보면 이틀에 한 번꼴로 감찰 주임들이 나오거든예? 지방청 간부들도 많이 나오고 기자들도 찾아오고, 그라이 올 때마다 조금씩 집어 줘야 된다 아입니까.”

“만약에 안 주면?”

“그라모 인자 지방청 감찰에서 우리 순찰함 뒤지고 다니면서 지랄병 하고 난리를 치겠지죠. 요새 해운대에 음식점이나 술집들이 워낙 많이 생기다 보니까, 소위 끗발 있는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해운대에서 약속을 많이 잡거든예. 그라모 조금 일찍 와서 우리한테 용돈 좀 받아 갖고 밥도 묵고 술도 마시고 택시비도 내야 되니까 우리한테 와서 따와이해 가는 거라고 보면 될 낍니다.”

김세민은 배기동 경사와 함께 파출소 순찰선 답사를 시작했다.

역전은 다른 곳과는 달리 구역이 좁아서 순찰함도 거의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몇 군데 순찰함에 들어 있는 순찰표를 빼내서 보니 대부분이 2, 3일 전에 넣어 둔 것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순찰표 사인은 온천장에서 본 것처럼 이, 김, 박이란 한글 위에 동그라미 표시한 것이 누구라도 쉽게 가라 사인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큰길가에 있는 주유소에도 순찰표가 붙어 있었다.

김세민이 순찰함 위치를 찾아서 주유소로 다가가자 주유소 옆에 순찰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번호를 보니 역전 순찰차였다.

“아니, 저기 순찰차를 세워 놓고…… 직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배 차석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지금이 점심시간이니까…… 근처에서 밥 먹고 있실 낍니다. 주유소에 세워 두면 제일 안전하다 아입니꺼?”

“경리계에서 순찰차 기름은 넉넉하게 나오는 편입니까? 동래에서도 보니까 순찰차 기름 티켓을 제대로 지급을 안 해서 직원들 불만이 많던데요?”

김세민이 주유소 입구에 달린 순찰함에서 순찰표를 꺼내 사인을 하며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거는 부산 시내 어느 경찰서를 가도 다 똑같심다. 딱 반만 주거든예. 우리도 24시간 순찰을 돌면 하루 기름 두 말이 필요한데 딱 20리터만 준다 아입니까? 그라이 직원들이 교대할 때는 택시 운전수들처럼 기름을 만땅 채우고 세차까지 싹 다 안 해 주면 차를 인계 안 받으려고 서로 싸우고 난리지예.”

“그걸 그렇게 싸우도록 두면 어떡합니까? 뭔가 조치를 취해야지.”

그러자 배 차석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 소장님은 그거 일일이 다 아실라꼬 카지 마시소. 소장님 성격에 다 알고 나면 머리 아플 낀데요.”

“이봐요, 나도 여기 와서 일부러 직원들 괴롭힐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도 소장 입장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내 시비 안 걸 테니 일단 이야기나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자 배 차석이 한숨을 쉬더니 겨우 말을 꺼냈다.

“우리 관내 주유소가 대략 해서 한 스무 군데쯤 됩니다. 거기에 정유사 직영 주유소 빼고 나면 대략 열다섯 군데쯤 되는데, 가 보면 어디 할 거 없이 가짜 휘발유를 판다 아입니꺼? 지금 휘발유 값이 워낙 비싸고 가짜 솔벤트는 절반 값이니까 대부분의 부산 사람들은 새 차를 뽑은 사람들 외는 다 가짜를 넣고 다니지예. 또 이 차들이 새벽에 주유소에 와서 소분한 기름통을 내려 준다꼬 캅디다. 한 통에 딱 20리터짜리로예. 근데 주유소 옆에는 대부분 세차장을 겸하고 있으니까 기름은 세차장에서 넣어 준다꼬 카는 편이 더 정확한 말이겠네예. 또 개인 주유소도 지하 탱크에 따로 주유구를 만들어서 솔벤트를 섞어서 판다는 이바구도 있고……. 형사들도 귀찮다고 아무도 건드리려고 하지 않심니다. 우리 파출소 순찰차는 아무 때나 주유소에 차만 갖다 대면 저놈들이 알아서 다 기름 넣어 주고 세차해 주고 다 해 주거든예? 근데 그걸 살림사는 차석이라는 놈이 어떻게 하지 말라고 말하겠심니까? 그라고 그 사람들 중에는 경찰서 선진 질서나 대공위원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예.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

“소장님도 마 모린 체하시소. 그라고 점마들 있지예, 지방청 감찰하고도 다 연계가 되어 있심다.”

“그래요? 그럼 지방청 감찰 주임들도 여기 와서 기름을 넣는 건가?”

“저녁때 보면 그 사람들 차도 여기 많이 세워져 있다 아입니까. 근데 거기다 대고 우리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저 사람들이 가만있겠심니꺼? 맨날 차에 기름 넣어 주고 세차해 주고 다 해주는데?”

그때 주유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풍채가 좋은 50대의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아이고! 배 부장! 우리 새로 오신 소장님 모시고 관내 순찰 도시는갑네? 자자자, 소장님 어서 이리 오시소! 지가 인사가 늦었네예, 들어가셔서 인사 나누입시다. 배 부장! 당신은 아침에 소장님 이취임식을 했다 카드만 와 연락도 안 주노? 뭐 내한테 삐진 거 있나?”

말투가 능수능란했다.

하는 수 없이 주유소 사장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제법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어서 무척 시원했고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내부도 깨끗해 보였다.

사무실에서는 아가씨 한 명이 경리 일을 보고 있었고, 주유원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자 자, 김 씨하고 박 씨는 어여 밥 묵고 오이라. 손 양! 니는 저기 다방에 냉커피 좀 시키고 좀 나가 있고…….”

“네.”

“자 소장님, 지는 마 여기 주유소장 하는 박정술이라꼬 캅니더.”

그렇게 말하면서 명함을 꺼내는데 [해신 주유소 소장 박정술]이라고 되어 있었다.

“지들은 마 정유사 직영 주유소는 아이고예, 아무 데서나 기름을 받심니다. 저 서울에 본사가 있고 우리는 마 기름이 필요하다 카면 한 번은 H 정유에서도 기름을 가져오고, 어떤 날은 S 정유에서도 갖고 오고 마 대중이 없심다.”

“가짜 휘발유 이런 거는 취급 안 하시고요?”

김세민이 바로 정곡을 찔러보았다.

“어데예? 요새 시상에 가짜 휘발유가 어디 있심니꺼? 시장에 돌아다니는 가짜 휘발유 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휘발유가 맞아예. 솔벤트가 좀 많이 섞인 석유 혼합물이다 아입니꺼? 기자들이 자꾸 가짜 휘발유, 가짜 휘발유 하도 그래 사니까,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지 휘발유를 가짜로 만들어가 되겠심니까? 안 글소? 배 부장!”

이번에는 배 경사를 보면서 눈을 찡긋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와예, 벌써 가실라꼬예? 커피도 시키 놨는데?”

“아침부터 커피를 많이 마셔서요, 오늘은 그만 마시려고 그럽니다. 전화해서 취소하시고 다음에 또 일 있으면 봅시다. 그럼…….”

“소장님? 저도 여기 경찰서 대공위원으로 벌써 십 년도 넘게 봉사를 해 왔심니다. 이번에 소장님이 장산에 장애아 찾으러 간다꼬 하실 때도 마 지가 여기 부산에 없었다 아입니꺼? 그 바람에 못 갔는데 아마 있었므면 백 프로 따라갔을 낍니다. 서울에 출장 갔다가 오이 다들 그 이바구밖에 안 하더라고요. 아무튼 다음에 기회를 함 주시소. 지가 저녁 대접이라도 함 하께예. 아 그라고 배 부장? 당신은 내 좀 보고 가거래이.”

김세민이 먼저 밖에 나와 막 세차해 둔 파출소 순찰차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곧 배 경사가 따라 나왔다.

‘신임 소장 데리고 왔다고 봉투라도 하나 받은 모양이지?’

먼저 물어보려다가 딱히 말이 없어서 김세민은 내색을 하진 않았다.

‘앞으로 좀 피곤해지겠구만.’

* * *

저녁 7시가 되자 방범대원들이 출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30명 정도 되었다.

“이거밖에 안 됩니까?”

“예, 갈수록 희망자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월급은 출근 일수만큼만 계산을 해서 지급을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는데 인자는 옛날처럼 통행 금지도 없고 돈 될 데가 자꾸 사라지다 보니 방범대원도 인기가 시들해진 거죠. 올림픽 전에 통행 금지가 있을 때는 밤 12시만 되면 파출소에서 졸던 사람도 다 튀어 나가서 통행 위반자 잡는다꼬 돌아댕기고 했는데, 인자 다 옛날 말이 됐심니다. 소장님도 파출소 계실 때 많이 보셨지예?”

“그러네요. 자, 다 모였으면 석회 시작합시다. 먼저 새로 고쳐야 할 것이 많지만 일단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해 오던 대로 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과감하게 내 방식대로 고쳐 나갈 것이고요. 먼저 방범대원들은 순찰 업무에 중점을 두고 근무해 주시고, 특별 순찰함은 오늘부터 하루에 한 번씩만 돕니다. 난 전임 소장과 달라서 특별 순찰함이 달린 집에서 월대 받고 그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순찰을 많이 안 돌아 준다고 항의가 들어오거나 하면 특별 순찰함을 떼어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경찰력이 어느 특정한 가진 사람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기 역전 관내에서 어디가 우범 지역인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우범 지역, 특히 학생들 등하굣길에 집중적으로 순찰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역전 파출소장으로 새로 부임하고 일주일이 흘러갔다.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배 차석의 얼굴이 굳어 있다.

“왜 그래요? 뭔 일 있어요?”

“아 소장님, 큰일 났심니다. 밤사이에 순찰함에 들어 있던 순찰표가 다 없어졌심니다.”

“뭐요? 순찰표가? 아니, 대체 누가 그걸?”

“지 생각에는 아무래도 지방청 감찰에서 다 회수를 해 간 것 같아예. 어제 소장님 퇴근하시고 나서 지방청 감찰에 윤 주임이라꼬 개 또라이로 소문난 인간인데 우리 파출소 와가 순찰함 위치를 다 확인하고 갔다꼬 하네예.”

“이유가 뭐죠?”

“뻔하지예. 아무래도 소장님보고 봉투 하나 들고 들어오라는 신호 같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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