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415화 (415/869)

제 415화

#415. 그들만의 리그

조덕수 2부장은 곧장 모교로 찾아가 법학 대학원장인 김응배 교수를 만났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누구지?”

“저 법학과 72학번에 조덕수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헌법학 개론과 법철학 사상사를 들었습니다.”

“음 그래, 거친 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얼굴이 가물가물하구만. 그래, 지금 부산에서 근무한다고?”

“네. 부산 시경 제2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럼 경무관인가?”

“네. 맞습니다. 여기 교수님 좋아하시는 꼬냑으로 한 병 가지고 왔습니다.”

“그냥 오지 뭘 이런 걸 다 가지고 오나? 경무관이면 낮은 벼슬아치도 아닌데 다 늙은 나한테 이런 걸 들고 찾아올 때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구만?”

“하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고. 어쨌든 우리는 같은 동문 아닌가?”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지금 제가 좀 코너에 몰렸습니다. 부산이 워낙에 배타적인 도시이다 보니까 제가 조금만 누구하고 술만 마셔도 금세 말이 퍼져 나가는 통에 아주 고약하게 모함을 당했습니다. 제가 부산의 조폭들하고 연계되어서 돈을 받고 수시로 가서 술을 얻어먹었다고 지금 자체 감찰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잘못하면 옷 벗게 생겼습니다.”

“그래, 안됐구만. 근데 그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건가? 난 일개 교수일 뿐인데,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현 민정수석이 교수님 수제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자네 말은…… 부산에 가서 타 지방 사람이랍시고 누명을 썼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교수님. 이 억울한 마음을 어디 하나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해서 교수님한테 찾아왔습니다. 제발 절 한번 도와주십시오. 결초보은하겠습니다.”

조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교수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청장한테 한 번 꿇은 이후로 인생에서 벌써 두 번째 굴욕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 됐어, 됐네. 일어나게. 모름지기 스승과 제자는 일심동체이거늘 자네가 잘못이 있다면 잘못 가르친 내 잘못도 있는 법. 누명을 썼다는데 당연히 내가 발 벗고 나서야지. 경무관이 어디 아무나 다는 벼슬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야. 알았어. 내가 지금 민정한테 전화해 보지.”

민정수석은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김일훈 변호사였는데, 특수 수사통을 굳이 앉힌 이유는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척결과 하나회 축출 등 새 정권에 맞지 않는 고인 물들을 청소해 내기 위함이었다.

김 수석은 청렴하다고 검찰에 있을 때부터 아래위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도 한 가지 병적인 집착이 있었는데 그것은 앞으로 자기가 나온 S대 법대 출신의 고시 출신자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석에서도 가감 없이 그런 견해를 밝히곤 해서 야당에서도 자주 문제를 삼곤 했다.

뚜르르륵! 철커덕!

-네. 김일훈입니다.

민정수석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수석의 직통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니……. 됐어! 내가 제대로 찾아왔어!’

통상 민간인들이 청와대로 일반 전화를 하게 되면 707-로 이어지는 복잡한 번호를 눌러야 하고 다시 교환의 까다로운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한 번에 바로 연결이 되는 것으로 보아 노교수의 파워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응, 김 군인가? 날세.”

-앗, 교수님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제가 자주 안부 전화를 못 드려서 송구합니다.

“아 무슨 소리야? 자네는 나랏일을 보는 사람이고 난 초야에 묻힌 늙은이인데 일이 있으면 내가 전화하는 게 맞지. 안 그런가?”

-그래도…….

“바쁠 텐데 내 간단히 용건만 얘기함세. 내 제자 중에 지금 부산 시경에서 경무관 달고 2부장인가 하는 조덕수란 친구가 있어. 이 친구 말로는 부산이 객지이다 보니까 모함을 받는 바람에 억울하게 감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그러는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경무관 달기가 어디 쉬운가? 그러니 사건을 더 키우지 말고 자네가 보호를 해 주게. 한 사람이라도 우리 사람을 챙겨야지. 그래야 나중에 자네한테도 힘이 보태질 거고 말일세. 내 긴말은 안 하겠네. 설사 이 친구가 잘못이 좀 있다 해도 자네가 알아서 잘 덮어서 목숨이라도 붙여 주게. 그래야 나중에 재기할 수가 있지 않겠나? 그럼 들어가세.”

노교수도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조덕수가 전혀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요직에 앉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그들이 늘 주장하는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었다.

거듭거듭 감사의 인사를 하고서는 대학을 나와 공중전화로 교수가 가르쳐 준 민정수석실로 직통 전화를 걸었다.

“아 선배님, 조금 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72학번 후배 조덕수입니다. 이거 제가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지금 시국도 시국이니만치 전화로 인사를 올리고 다음에 기회 봐서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선배님께 드릴 선물을 하나 가져왔는데 집에 사모님한테 맡겨 놓고 내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누가 보든지 말든지 간에 조덕수는 땅바닥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아 이 사람아, 그런 일이 있으면 교수님 안 통하고 나한테 바로 와도 되는데 뭐 하러 그리 번거롭게 해! 아무튼 내 알았어. 부산 청장한테 전화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서 근무 잘하고 있어. 다음에 치안 비서관 자리라도 하나 비면 내 알아볼게.

“넵! 백골이 난망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집에 갖다 두겠다는 골프 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말은 갖다 두고 가라는 뜻이었다.

‘참 나, 뭐 청렴이 어쩌고 어째? 지금 사정 바람이 불어 난리인데 그 총책임자란 양반이 후배라는 말 한마디에 이리 껌벅 넘어가다니……. 그래, 내가 살려 준 값으로 골프 백 하나 갖다 준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거 참.’

조덕수는 구재훈이한테 배운 대로 골프 백을 가득 채워서 민정수석의 부인에게 갖다 주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산으로 내려가는 비행기를 탔다.

한편 부산 청장실.

1부장 남강오가 청장실로 들어섰다.

둘 사이는 간부 후보생 기수로 2기수 차이밖에 안 날뿐더러 둘은 또 D대학 경찰 행정학과 출신이었다.

소위 말하는 경찰 내 D마피아의 대부 격이었던 것이었다.

아직 자기네 경행과를 나와서 경찰청장이 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도 어떻게든 두 사람을 밀어 올리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다른 경쟁자들을 쳐 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인사도 없이 바로 들어가서 청장실 옆 소파에 털썩 앉은 남강호 1부장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형님이 너무 인정을 베푼 것 같습니다. 2부장 그놈이 벌써 올라가면서 서울 공항 100호실에 가서 최고급 꼬냑을 구해 갔다고 하네요. 틀림없이 민정수석한테 선을 달았을 겁니다. 어제 바로 감찰계장을 통해서 본청에 보고를 했어야 하는데 많이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형님 그 모질지 못한 마음이 나중에 결정적인 화근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게 말이야……. 강오 네 말이 다 맞다. 난 혹시나 조덕수 2부장이 처벌되면 나한테 지휘 감독 책임이라도 돌아올까 싶어서 망설였는데 말이지, 조금 전에 민정수석한테서 전화 왔어. 그냥 묻어 두라고 하는군. 개자식들이야. 이제 앞으로 좀 더 있으면 우리 같은 D대 경행과 출신들은 설 자리도 없을 거라고. 경찰대와 고시생들 싸움이야. 간부 후보생은 우리까지만인 것 같아. 한 해 S대 출신 고시생들이 열 명씩이나 경정급으로 들어오잖아? 그리고 쟤들은 나이가 있으니까 별 말썽이 없으면 다들 경무관까지는 올라간다고. 우리처럼 승진 공부한다고 개X랄을 떨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을 했어.”

그다음 날 아침.

2부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분 좋게 아침 참모 회의에 참석을 했다.

“2부장! 이틀 연가잖아? 벌써 일 다 봤어?”

1부장이 벌써 내막은 다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른 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예, 생각보다 빨리 일을 봤습니다. 그래도 여기 일이 있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하루 당겨 내려왔습니다.”

“자 자, 회의 시작하자고. 사적인 대화는 나중에 둘이서 하고.”

청장이 회의를 시작하자고 말을 꺼냈다.

“청장님, 오늘은 외사과에서 특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보셨습니까?”

외사과장이 먼저 그렇게 물었다.

“응, 봤어. 상해시 공안국하고 자매결연 맺는 거지?”

“예, 맞습니다. 이게 전국 최초로 우리 지방청이 시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근데 위에서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하지 않겠어?”

청장이 아무리 중국하고 수교가 되었다지만 일선 경찰청에서 상해 공안국과 자매결연까지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투로 물었다.

“아닙니다. 제가 서울에 몇 군데 알아보니까 지금 서울 시경도 북경 공안국하고 자매결연 맺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참에 먼저 치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 H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외사과장도 행정고시 출신이고 S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진골에 그쳤고, 지금 시대에 순수한 성골이라면 오직 S대 법학과 출신이어야만 했다.

“외사과장! 당신 혹시 지금 그 얘기 전부 다 태평주택 오길제 회장 만나서 들은 얘기 아니야?”

강성천 정보과장이 외사과장이 신이 나서 떠드는 얘기가 미심쩍어서 그렇게 정곡을 찔러서 물어보았다.

태평주택 오길제 회장은 부산의 정, 관계에서는 유명한 인사였다.

검사들도 부임해 오면 오 회장한테 가서 부임 인사를 하고 봉투를 받아 챙긴다는 소문이 나 있었고, 지금 청장도 정보 투가 아마도 모시고 다녀왔을 것이었다.

바로 부산에서 대형 택지 개발을 몇 군데 해서 수천억 재산을 모았으며 이제 해운대에 태평양 타워를 세워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 회장은 대표적인 친중파로 분류되는 인사였다.

“아니? 정보 형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외사과장은 자신이 신이 나서 떠드는 얘기가 정보과장 입에서 바로 나오니까 꿈쩍하고 놀랐다.

자신이 고시 출신이라 정보과장하고는 나이 차이도 있고 정보와 외사는 끗발이 하늘과 땅 차이이다 보니까 자연히 형님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 오 회장이 떠드는 소리 듣고 제대로 검증도 안 된 얘기를 여기 참모 회의에서 막 꺼내 들면 안 되지. 어디까지나 그건 오 회장 얘기고 만약 그런 행사를 추진하게 된다면 반드시 영사관을 통해서 해야 돼. 나중에 아니 할 말로 오 회장이 자기는 그런 소리 한 적 없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건데? 그리고 과거를 보면 오 회장도 건달 출신이잖아? 될 수 있으면 상대 안 하는 것이 이로워.”

“오 회장이 건달 출신이라고?”

청장이 그 말을 처음 들었다는 듯이 확인차 물었다.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나이트에서 웨이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자기가 세운 건물에 낙양성이라고 부산에서 최고로 꼽히는 고급 중국 음식점이 들어왔는데 그게 중국 상해 공안국에서 운영하는 부산 지역 첩보 거점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아마 안기부에서도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여기 있는 간부님은 물론이고 나중에 소참하실 때 각 과 계장이나 간부들도 절대 낙양성은 출입하지 않도록 사전에 교양을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서 하는 얘기들을 전부 다 녹취를 해서 분석한다고 하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구만. 우리야 별게 있나? 부산시청에도 얘기 좀 해 주라고. 저 친구들은 사업 규모가 크잖아?”

“안 그래도 정보 투가 어제 시장한테 가서 경고를 하고 왔습니다. 안기부 조정관도 와서 같은 얘기를 하고 갔다고 그러고요.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상해에 우리 경찰 지부를 내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낙양성 출입을 삼가자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럼 외사과장 자네 방금 한 말도 전부 오 회장인가 하는 그 친구 입에서 나온 소리야? 자네가 직접 청와대에 여론 수렴한 것은 아니고?”

“예, 오 회장이 직접 청와대 실세들을 만나서 그렇게 확답을 받았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뭐야? 이 친구 이제 보니 아주 위험한 인물이네? 아니, 자네가 직접 확인도 안 해 본 사실을 외부 인사 말 하나 믿고 여기 참모 회의에서 마치 사실인 양 떠벌리면 뭐 어쩌겠다는 거야? 머리 좋아서 고시는 붙었을지 몰라도 일 처리하는 모양새는 어째 초등학교 나온 애들보다 더 못해! 조마조마해서 못 지켜보겠구만. 앞으로 자매결연 문제는 외사과 독단으로 하지 말고 반드시 정보과하고 협조해서 처리하도록! 그게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아니 할 말로 우리가 언제부터 중국 놈들한테 매달리게 되었어?”

청장이 짜증을 확 내면서 자매결연 보고서를 집어 던져 버렸다.

외사과장은 성질이 있는 대로 나서 2부장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2부장과는 같은 고시 출신이니 서로 말이 통하기는 하였던 것이었다.

2부장 방에 들어가니 손님이 한가득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대충 봐도 한 대여섯 명은 되어 보였다.

“어! 외사과장! 어서 들어와!”

“손님이 많으시네요?”

“아, 소개하지. 이 친구들은 [옥룡회] 멤버인데, 우리 고시 공부 동기생들이지. 내가 같이 공부하다가 맨 먼저 급제했고 여기 조 중령은 군 법무관으로 갔어. 그리고 이 친구는 외무고시로 브라질에 나갔다가 이번에 임기 마치고 들어왔는데 다시 유럽 쪽으로 나갈 모양이야. 그리고 이 친구들은 아직도 낙방 거사 신세지만 언젠가 되기는 될 거야. 사법고시는 나이 제한이 없잖아? 한번 인생을 걸었으니까 될 때까지 가는 거지.”

“반갑습니다.”

이번엔 2부장이 옥룡회 멤버들에게 외사과장을 소개했다.

“아 이 친구는 우리 대학 후배, 법대는 아니고 상대 경제학과야. 행시로 들어와서 이제 경찰서장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지.”

“안녕하십니까? 외사과장 황천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돌렸더니 이름을 보고는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어째 이름이 으스스합니다?”

“아 그게, 사연이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길래…….”

“제가 태어나자마자 몸이 많이 안 좋았답니다. 그래서 호적에 올리지도 않고 이불에 싸서 윗목에 두었는데, 사흘 만에 울음을 터뜨리더니 괜찮아졌다고 하더군요. 어른들 말씀으론 한 번 황천길을 갔다 왔으니 이름을 아예 황천으로 지어 버리면 앞으로도 무탈할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답니다.”

“그래서 고시도 약관의 나이로 패스하셨군요, 과연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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