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4화
#444. 해후
조연희는 김세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진행 상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그래, 고생했다.”
-뭘요, 별일도 아니었는데요.
“아니야, 네 덕분에 김순철이는 살았지만 잘못하면 네가 본청에서 구설에 휘말릴 수도 있어. 정보국 정보 1과가 본청 대내 정보를 생산해서 청장한테 별보를 하는 건 알고 있지? 혹시라도 네 얘기가 나올지 몰라. 아무튼 당분간 몸조심해야 돼.”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약점을 하나 알거든요.
“뭐?”
-안 그래도 정보 1과 1계장이 좀 눈에 거슬렸는데……. 여차하면 날리면 되죠, 뭐.
“……잘 들어, 무슨 약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진짜로 약점을 잡았다면 그걸 이용해서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게 상책이다. 다른 데로 날리는 건 하책이고.”
-그런가?
“생각을 해 봐. 다른 데로 날리면 금세 새로운 사람이 올 테고,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지 않겠어?”
-뭐,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너무 걱정 마세요. 제 한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들어가라.”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부산에서 남강오 1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감사합니다. 영덕 경비과장 김세민 경감입니다.”
-여! 거 경감이란 소리가 듣기 좋네! 경위에서 경감 진급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더라구, 그다음이 총경에서 경무관 승진할 때고 말이야.
“아 부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 잘 지내고 있지. 어제는 말이야, 나팔꽃 홍 사장이 우리 부산 애수 멤버들을 다 불러 모으길래 갔더니 뭐야, 무슨 대게가 그렇게 큰 게 있어?
“하하…….”
-그것도 나한테 별도로 준 것까지 해서 말이야. 아무튼 아주 잘 먹었다고! 다들 자네 얘기 많이 했지. 꽃돌하고 복숭아 병조림도 고마워. 그런 선물은 처음 받아 봤어.
“맛있게 잡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에 철마다 좋은 게 있으면 내려보내겠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참, 하반기에 서울에 수사 지휘 과정 교육 가고 싶어 한다면서?
“예, 일단 신청은 해 볼 생각입니다.”
-내가 조금 전에 경북청장한테 전화를 했어. 이번에 자넬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단단히 했으니까 경북청장한테도 대게하고 꽃돌 좀 보내지 그래?
“그래도 괜찮을까요?”
-괜찮다 마다! 경북청장이 내 후보생 동기거든? 그 친구도 타지로 많이 돌아다녔어. 고생도 많이 했고. 다들 청장이라고 하면 어려워서 선뜻 뭘 보내고 하기 어렵게 생각하지만 청장도 사람이야. 내 말 알아듣겠지?
“네. 바로 준비해서 보내겠습니다.”
-그래. 참, 어제 우리끼리 결정을 했는데 말이야. 자네가 당분간 없으니까 부산 애수회 총무는 나팔꽃 홍 사장이 맡기로 했어. 그럼 그렇게 알고, 자, 수고하고!
“네,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세민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9월이라……. 이제 곧 서울로 가겠네. 그리운걸?’
“과장님? 과장님 찾는 전화입니다.”
“뭐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전화가 많아? 네, 영덕 경비과장입니다.”
-아이고~ 우리 김 과장님! 이거 과장이란 소리를 들으니까 내가 다 기분이 좋다. 그래, 잘 지내능교?
“누구신지…….”
-에헤이, 이거 벌씨로 목소리도 이자묵었는가베, 내 헤라 황보식이오!
“아, 오랜만입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시고?”
-다른 기 아이고 이번 주말에 일본에서 손님이 오는데 말입니다.
황보식의 입에서 일본 손님이란 말이 나오자 어딘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손님이라면 혹시…… 야쿠자입니까?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럽니까?”
-카~ 역시 햇또 잘 돌아가는 걸로는 김 과장님 따를 사람이 없네! 맞소, 우리하고 친분이 있는 일본 야마구치구미에서 손님이 오기로 했습니다. 다케다라꼬, 내하고도 억수로 친하다 아이가. 이상한 부탁 할라는 건 아이고, 아이 글쎄 이 양반이 우째 알았는지 영덕 털게를 먹고 싶다 카네?
“그래요?”
-내가 어디 뭐 영덕이나 그 근처에 아는 사람도 엄꼬 해서 함 전화해 봤다 아인교. 마 돈은 백이든 2백이든 상관없으이끼네 함 알아봐 주이소. 인원은 다섯 명 정도 되고예.
“일본 애들도 게는 많이 먹지 않나? 거긴 털게가 없대요?”
-와, 옛날에는 홋카이도에서 많이 났다는데, 인자는 씨가 말랐다 카네. 이 양반도 게 카모 환장하는 양반이라 지가 수소문해 봤더니 영덕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갑지. 아무튼 부탁 좀 하입시다, 예?
“뭐, 일단 물어는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해경 지서장한테 한번 듣기는 했는데, 일본 사람들이 한 번씩 와서 먹고 간다고는 하더군요.”
-하이고, 다행이네. 계좌 번호 좀 불러 주이소, 대게 값을 미리 보내야 구하기 편할 거 아인교? 고맙습니데이?
전화를 끊고 난 김세민은 해경 강구 지서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해양 경찰청 대 강구 지서장 경사 박동철이올시다.
“얼씨구? 무슨 소개가 그렇게 거창합니까?”
-어이쿠! 과장님이십니까? 캬! 지가 좀 전에 영해 지서장하고 통화하던 참이어서 금마가 또 전화했나 싶어 갖고 장난 좀 쳤심니다. 와예?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심니껴?
“아, 물어볼 게 있어서요. 요즘 털게가 나옵니까? 돈은 구애받지 말고 얼마든지 불러도 됩니다.”
-캬! 털게 좋지예. 털게는 마 지보다는 영해 지서장한테 말씸해 보시소. 축산항에서만 털게잡이 배가 나가거든예? 그것도 마 선수금 받고 나가는 거라예. 아이다, 지가 영해 조 경사한테 지금 바로 알아보겠심다. 얼마나 필요하신데예?
“어디 보자……. 넉넉잡아 한 열 마리 정도면 되려나?”
-그렇게 많이예?
“아, 보낼 곳이 좀 많아서 그럽니다.”
김세민은 황보식이 부탁한 것 이외에도 경북청장, 부산청장 그리고 조연희를 통해 본 청장에게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 바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심니다.
“고마워요.”
잠시 후에 해경 영해 지서장인 조귀남 경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 경사는 강구 지서장처럼 매일 소참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얼굴과 목소리가 가물가물했다.
-과장님 추웅성! 영해 지서장 조귀남 경사입니다.
“고생합니다. 털게를 구할 수 있습니까?”
-아, 됩니다. 근데 이게 무슨 고기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물질 한 번에 한 마리가 올라올 때도 있고 해서 한 일주일 양을 모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일주일 후에 여기 축산항으로 올라오시라 하이소. 지가 항구 쪽에 있는 해변 식당으로 자리를 만들어 놓겠심다.
“아, 그렇게 합시다. 근데 털게는 왜 이리 비싸고 귀한 겁니까?”
-아 그게 말이라예. 첫째, 이게 심해에 삽니다. 그라이까 수압을 견디기 위해서 다리고 등껍데기고 어디 할 거 없이 털이 빽빽하게 다 나 있고요. 수압을 잘 견디다 보니까 이기 심장이 약하거나 지구력이 약한 남자들한테는 최고로 친다 아입니까. 까 보면 살도 야물고예. 또 별종이다 보이까 게 금어기에도 해당이 안 되는 거라예. 뭐 잡히는 물량이 있어야 금어기란 소리도 하는데 워낙이 적고 이거는 주문부터 먼저 받고 잡으러 가야 하니까……. 맛도 최곱니다. 일반 박달 대게는 근처에도 못 옵니다. 지가 해경 지서장 하면서 해물 이름 붙은 거는 웬만하면 다 묵고 다니는데 털게 이거는 1년에 한 번 묵기도 힘든 거라예.
일주일 후.
김세민은 강구 지서에서 부산에서 올라올 황보식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구 지서가 7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차량 두 대에 나눠 탄 일행들이 도착해서 내리는데 그중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어? 너 최일도!”
“오랜만입니다!”
“야!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반갑다. 정말 반가워!”
김세민과 최일도는 남이 보든지 말든지 간에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 모양이네? 여기는 나하고 의형제 맺은 다케다 고문! 이 친구는 다케다 고문의 보디가드인데 우리 김 과장하고 안면이 있구만 그래.”
황보식이 중간에서 인사를 시켰다.
“영덕 경비과장 김세민 경감이라고 합니다.”
“다케다라고 합니다. 오사카에서 조그만 호텔을 하나 경영하고 있습니다. 시간 나실 때 일본에 한번 놀러 오시지요.”
“그럼 출발할까요? 한 30분은 해안도로를 따라서 가야 합니다.”
축산항에 도착해서 조귀남 경사가 수배해 놓았다는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앉자마자 금세 음식이 나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털겐가베? 억수로 통실통실한데 이거? 이기 머스마들한테 그래 좋다매?”
황보식이 눈치도 없이 먼저 수저를 들어 잘 쪄 낸 게살을 퍼먹기 시작했다.
다들 정신없이 먹고 게딱지에 푹 삶은 찹쌀 죽까지 참기름에 비벼서 먹고 난 다음에 상에서 뒤로 물러나 앉았다.
다케다 역시 오랜만에 털게를 먹어서 그런지 흡족한 표정으로 배를 두들기고 있었다.
김세민은 최일도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나눠 피웠다.
“별일 없니?”
김세민은 최일도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약간은 이상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별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일부러 따라왔죠. 려민주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뭐? 려민주가 왜 너한테?”
“며칠 내로 카터가 북한에 간대요. 그래서 김일성이하고 회담을 하고 난 후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거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다는데, 좀 문제가 있나 봐요.”
“무슨 문제?”
“김정일이가 극구 반대를 한답니다. 그래서 김일성이가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김정일이를 배제시키는 바람에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아졌다고…….”
“그런 일이 있었어?”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개 석상에서 김정일이가 경제 정책을 실패하는 바람에 곤란하다는 말을 하면서 이복 동생인 김평일이를 체코 대사에서 불러들이라는 말까지 했다는군요. 그러니 김정일이가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요.”
“그랬구만……. 근데 려민주는 왜 너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지?”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중요합니다. 려민주 말로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고, 어차피 부자지간에 충돌이 일어나면 김일성이가 김정일이를 당해 내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또 북한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홍콩에 있는 우리 안가를 좀 이용할 수가 있느냐고, 그걸 과장님한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과장님한테 직접 전화를 하면 과장님 입장이 난처해질 수가 있다고 저보고 중간에서 연락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아직도 그 안가가 살아 있나?”
“네. 제가 관리하고 있어요. 한 번씩 쓸 데가 있어서……. 아직은 저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랬구나, 난 잊어먹고 있었는데……. 난 잘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판단해.”
“네. 뭐, 어디까지나 유사시를 대비한 거니까요. 만약에 탈출을 하게 되면 최종적으로는 유럽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래……. 아무튼 네가 알아서 다 처리해라. 난 크게 엮이고 싶지가 않아.”
“네, 그렇게 말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참, 그리고 이거.”
최일도는 작은 휴대폰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뭔데?”
“제 이름으로 된 휴대폰입니다. 작아서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모양은 좋은데 배터리 성능이 영 약합니다. 그래서 예비 배터리를 두 개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배터리 한 개에 통화 시간이 약 25분 정도밖에는 안 됩니다. 제가 오면서 등록을 해 뒀으니까 그대로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참고로 려민주도 이 번호를 알고 있습니다. 정 급하면 연락이 올 겁니다.”
“잘됐네, 한 번씩 네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해 보려고 해도 호텔을 통해야 되니까 불편했는데……. 가끔 연락하자고.”
둘은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부둥켜안고 작별을 아쉬워했다.
일부러 얘기를 해 주기 위해서 영덕까지 온 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부산 지방청장실, 아침 참모 회의.
정보과장 강성천 총경이 먼저 청장실로 들어서면서 인사를 했다.
“청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청장은 피곤했는지 정보과장이 인사를 하는데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슬쩍 손만 올렸다 내렸다.
“응? 아니 청장님, 이게 뭡니까?”
강성천 과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꽃돌을 보고 놀라 물었다.
청장실 테이블 위에 있는 꽃돌은 해바라기꽃 주위로 국화 문양이 보기 좋게 둘러싸고 있는 해바라기석이었으며 대략 70센티미터가 넘는 커다란 크기였다.
“와……. 내 이래 좋은 꽃돌은 살다 살다 처음 보네. 이 정도 크기에, 해바라기석 같으면 부르는 기 값일 건데요?”
뒤따라 들어오던 남강오 1부장도 돌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방에도 어제 배달이 되었던 것이었다.
“청장님, 이거 누가 보낸 겁니까?”
“이거? 영덕에서 보내온 건데?”
“영덕요? 영덕이라면…… 영덕 경비로 간 김세민이가 보낸 겁니까?”
방형준 형사과장이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니까. 그 친구도 참, 우리가 심사 승진을 시켜 가지고 보낸 것도 아니고, 자기가 뼈 빠지게 공부해서 시험 승진해 가지고 간 건데 이렇게 잊지 않고 챙겨서 보내 주고 말이야. 아주 근본이 있는 친구야. 뭐 그 전에도 남다르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순경 출신이란 점에서 좀 의구심이 있긴 했었는데…… 이리 처신하는 걸 보니 간부 출신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안 그런가?”
“…….”
“아니, 그게 그렇잖아? 해마다 부산에서 승진하면 누군가는 영덕으로 갈 테고, 매년 그래 왔는데 지금까지 어느 한 놈이라도 이렇게, 응? 꽃돌이라도 보내온 간부가 지금까지 있었느냐 말이야. 아무튼 크게 될 놈이야.”
대구 산격동에 있는 경북도경 청장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청장님, 이 꽃돌 어디서 난 겁니까?”
“왜?”
“이거 엄청 귀한 건데요?”
경북청 정보과장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자신도 사무실이나 집에 꽃돌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큰 해바라기 돌은 아직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덕 서장이 보낸 거야.”
그러나 경북청장은 이 꽃돌을 김세민이 보낸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동기생인 부산청 1부장이 어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김세민의 이름이 나오면 다들 불편해할 것이기 때문에 영덕 서장이 보낸 것으로 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아니? 영덕 서장은 올 연말에 제대할 양반이 왜 이런 걸 보내노?”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다른 과장들은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