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6화
#456. 따와이는 휴가 중에도 계속된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참모 회의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윤태수 경장의 얼굴이 활짝 피어서 싱글벙글했다.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김세민이 윤 경장의 얼굴 표정이 이상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과장님, 방금 지가 연락을 받았는데예, 서울에서 출발을 했다고 하니더.”
“아니 누가?”
“오늘이 청장 부속실에 있는 조 경사란 분 오시는 날 아이라예? 과장님 참모 회의 가실 동안에 전화가 왔었심더. 1시간 있시면 도착하이까 마 지가 포항 공항에 마중 나가야 안 되겠심니껴?”
“야! 임마! 니 정신 안 차릴래? 오늘이 니 근무 날인데 가기는 어디 간다꼬 바람이 이리 잔뜩 들어 갖고……. 니 그라무 백차 끌고 포항 내리갈 생각을 한 기가? 이 자석이 천지 분간도 못 하고……. 요새 젊은 아들은 우예 저리 철이 안 드는지 모리겠다.”
교통계장이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찼다.
“윤 반장은 우리 과장님 손님 오문 맨날 저기 내려가가 은어 잡는 통발부터 놓는다 아이가? 퍼뜩 내려가가 통발부터 놓아라. 은어 다 도망가 삐겠다. 키키키!!”
다들 윤태수 경장을 놀렸다.
그러나 이런 순수한 마음을 드러내는 때 묻지 않은 인성들이 좋았다.
“아니, 근데 이것들은 꼭두새벽부터 놀러 온다고 난리를 친 거야? 지금 시간에 비행기를 탔으면 집에서는 다들 새벽에 나왔다는 소리네? 아주 등가죽을 벗겨 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먼.”
그때 일반 전화벨이 울렸다.
“과장님, 2번에 일반 전화 와 있심니더.”
“네. 영덕 경비과장입니다.”
-세민 씨! 나야! 홍지수! 지금 포항 공항에 도착을 했어. 아직 비행기는 도착을 안 했는데 도착하면 내가 데리고 경찰서로 바로 가면 되지?
“어! 진짜 빨리 왔네. 부산에서는 새벽에 출발한 거야? 근데 이 자식들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새벽부터 사람을 깨우고 난리를 치는 거야?”
김세민이 괜히 홍지수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툴툴거렸더니 오히려 지수는 밝은 목소리였다.
-그러지 마. 오랜만에 휴가라니 다들 얼마나 좋겠어? 나도 이렇게 맘 편히 은수하고 지낼 수 있다니 어젯밤에는 잠이 다 안 오더라. 세민 씨 아니면 우리가 영덕에 언제 한번 가 보겠어?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김세민 씨!
“어째 자꾸 누굴 닮아 가는 것 같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올라와. 누구 말대로 은어가 도망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과장님, 방금 전화하신 분은 누구라예? 음성이 완전 죽이던데예?”
“야! 윤 반장! 니는 어제는 조 경사 음성이 죽인다고 꺼뻑 넘어가더니 오늘은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뀠나? 고래 배신 때리고 하면 안 되는데?”
사고반 박차수 경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기 아이고예, 어제 조 경사란 분은 그 뭐라 캐야겠노……. 막 은쟁반에 옥구슬이 조르르 굴러가는 것 같은 그런 탄력이 있고예, 방금 이분은…… 그 뭐라 하문 좋노. 아 그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 있다 아입니꺼? 딱 그 시에 나오는 누님 같은 그런 음성이라예.”
“우하하하! 킬킬킬!”
“짜석이 잘도 갖다 붙이네.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왕 은어 이바구가 나왔시니까 내리가가 투망이나 던지자. 그 통발로 잡은 은어는 너무 작아서 맛도 없다. 투망질을 해야 큰 은어가 잡히지.”
교통계장이 자기 차 트렁크에서 투망을 들고 나와 오십천에 내려가서 투망을 하자고 제안을 하자 다들 환호성이 터졌다.
“야호오! 여름에는 그저 천렵이 최곤 기라. 그라무 오늘 우리도 점심은 은어 회 묵지예?”
“조디만 달싹거리지 말고 저기 식당에 가서 초장하고 상추하고 깻잎, 오이하고 좀 얻어 오이라. 일호, 니는 저기 시장에 가서 얼음 큰 거 하나 가져오고.”
“예, 알겠니더.”
“박차수! 니는 타격대 가문 저 밑에 차양으로 칠 천막 하나 있다. 깨끗한 걸로 갖고 오이라. 그라고 밑에 내려가가 천막 치고 의자하고 테이블 좀 갖다 놔라. 물가에 주변 청소도 좀 하고.”
교통계장이 직접 나서서 본격적인 천렵을 할 준비를 지시하고 나섰다.
여기는 사무실 옆에 바로 오십천 물이 흘러가니까 천렵을 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멋진 곳이었다.
낮 12시가 다 되어 갈 무렵, 홍지수가 일행들을 태우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미리 입초에다가 얘기를 해 두었기 때문에 별다른 검문이나 제지 없이 경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홍지수는 그게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와……. 내가 경찰서에 들어오면서 경례를 받는 날이 다 오네. 뭔가 기분 좋은데?”
“그래?”
“사수님! 저는 아는 척 안 해 줘요?”
“응? 아아, 그래. 왔냐?”
그러자 조 경사의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아 진짜…… 사람 차별하네. 자기가 오라 해서 이 먼 데까지 왔구만!”
“그래 그래, 반갑다 반가워. 근데 바지가 그게 뭐냐? 너무 짧지 않아? 경찰관이 품위 유지를 해야지. 정신 안 차릴래?”
“이게 뭐 어때서요? 요즘 서울서는 다 이렇게 하고 다닌다고요. 더구나 지금은 휴가 시즌이잖아요?”
그러면서 조 경사는 허리에 손을 얹더니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
김세민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바지 길이가 좀 길기는 했지만 홍지수도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단체로 맞춰 입었구만? 짐은 그대로 차에다 두고 조심해서 밑으로 내려와! 여기가 오십천이야. 지금 직원들이 밑에서 너들 온다고 은어 잡고 있어.”
“이게 뭐야? 뭐 이래요?”
“또 뭐가?”
“아니, 나는 사수님이 영덕까지 가서 생고생하시는 줄 알고 얼마나 평소 마음 졸이며 지냈는데 뭐야, 완전 별장이잖아요? 오십천 옆에 별장 지어 놓고 또 밑에 하인들은 얼마나 많아요? 고기 잡으라고 맘껏 부려 먹고…….”
“야! 직원들 다 듣겠어! 조용히 해!”
드디어 조 경사가 나타나자 물가에서 투망을 던지던 직원들이 다들 돌아보면서 환영의 의미로 손뼉을 쳐 주었다.
“반갑니더! 어서 오이소!”
“이쪽으로 오이소, 이쪽으로! 여기 자리 만들어 놨심니다!”
박차수와 윤태수 경장이 조 경사 일행을 보더니 앞다투어 안내를 하려고 들자 교통계장이 잔소리를 했다.
“야! 그만 입 다물고 저기 물가에 바지 걷고 들어가가 가운데에서 괴기들이 주변에 몰리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확 던져뿌라. 그래야 좀 올라오지.”
“예. 알겠니더!”
윤태수가 교통계장이 시키는 대로 얕은 강물이 흐르는 냇가의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으니 정말로 은어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다들 숨죽이면서 지켜보고 있는데 교통계장이 손으로 신호를 주었다.
‘하나! 둘! 셋!’
어깨에 둘러멘 그물을 있는 힘껏 허공을 향해 뿌렸다.
하얀색 그물이 허공에 빗살처럼 퍼지며 이내 살포시 물 위로 내려앉더니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서서히 잡아당기는데 그물 속에서 은빛이 찬란하게 퍼득였다.
“고기다! 엄청 많은데?”
조 경사와 은수가 신이 난다고 손뼉을 치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정보과장도 자신의 방이 경찰서 정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광경을 다 볼 수가 있었다.
서장실 인터폰이 울렸다.
삐유~ 뽁뽁뽁뽁!
“예, 정보과장이니더.”
-응, 나 서장인데. 저기 경비과장 찾아온 여자들 누구야? 다들 미인인데?
“저도 잘 모르겠니더. 지금이 휴가철이니까 아무래도 부산에서 온 손님들 같은데예?”
-이거 봐! 당신 정보과장이잖아? 그러면 경비과장한테 찾아온 손님들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거는 또 뭔 소리야? 언제부터 서장이 과장들 개인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
정보과장은 속으로는 의아해했지만 이내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죄송하니더. 지금 마 금세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심니더.”
정보과장이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누구래?”
서장이 보고 있던 신문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그렇게 물었다.
“경찰청장 부속실에 근무하는 조연희 경사하고 공항 100호실에 간사로 근무하는 홍 순경, 그리고 전임 경찰청장 부속실 수행 경사로 근무하다가 이번에 100호실로 옮겨 간 양 경사라고 하는데예, 오늘부터 하계휴가라고 합니다. 경비과장하고는 옛날부터 자주 같이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본청장님 부속실에서 근무한다고? 그럼 이번에 새로 여경이 청장님 수행한다고 하더니 바로 저 애야? 이거 그러면 내가 모른 체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 나가서 얼굴이라도 비쳐야지. 야! 그러게 내가 이상하게 말이야, 감이 와서 당신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한 거야. 모른 체 그냥 지나갔으면 나중에 저 여경이 청장님한테 얼마나 씹어 댈지 누가 어떻게 알겠어? 지금 경비과장 뭐 하는 거야?”
“아, 지금 점심시간이라서 저기 오십천에서 은어 잡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말이야, 경리계장보고, 아니 경리계장 들어오라고 그래!”
잠시 후에 김윤기 경리계장이 들어왔다.
그 역시 포항 남부서에서 경리계에 근무하다가 이번에 경사 승진 시험에 합격을 해서 백을 달아 멀리 가지 않고 포항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영덕으로 올라왔던 것이었다.
“서장님, 부르셨능교?”
서장한테 판공비를 수시로 나눠 주다 보니까 아직은 경장 계급인데도 총경인 서장과 약간 위아래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응, 그래. 김 계장! 저기 경비과장 손님들 말이다. 경찰청장 부속실 수행 경사란다. 맨날 청장님하고 붙어 다니는 여경이지. 저기 물가에서 지금 놀고 있는데 강구에 연락해서 대게 도시락 싸 주는 데 있잖아? 게살 좀 넉넉하게 발라 넣으라고 부탁해서 경비과장 서울서 온 손님들에게 내가 주는 거라고 하고 갖다 주거라. 아 참, 도시락 위에 내 명함 하나씩 올려놔라. 내가 이 촌구석에 내려와서 하늘 같은 청장실에 로비할 일이 뭐가 있겠냐? 이럴 때 생색 좀 내야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니더. 아무 걱정 하지 마시소. 지가 마 끔뻑 넘어가도록 준비하겠니더.”
경비과 옆 오십천 아래에는 지금 웃음꽃이 피었다.
“어머! 난 이거 민물고기는 아직 한 번도 회로 안 먹어 봤는데 이거는 정말 맛이 있네요. 정말로 수박 향이 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 경사는 은어회를 싼 쌈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소주까지 한 잔 털어 넣었다.
“캬! 죽인다! 이 맛이 너무 그리웠어요, 사수님.”
“야! 그만 마셔! 뭔 술 걸신이 들렸어?”
옆에서 양 경사가 조 경사가 술을 계속해서 들이켜자 걱정이 되어서 소리를 질렀다.
“조 부장님.”
옆에서 윤태수 경장이 조심스럽게 조연희를 불렀다.
“응? 왜요?”
“서울 본청에는 여경들이 다 조 부장님처럼 예쁘세요?”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거 조 경사한테 작업 거는 소리 같은데?”
양 경사가 옆에서 훼방을 놓았다.
“어어! 양 부장님, 저기 애기!”
조 경사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아기 소리에 놀란 양성규가 부리나케 자신의 세 살 된 아기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엄마 품에서 새근거리고 잘 자고 있는데 말이었다.
“와하하하!”
다들 그렇게 낄낄거리고 있는데 경리계장이 도시락 십여 개를 들고 나타났다.
“경리계장님 그게 다 뭐라예?”
먼저 발견한 박차수 경장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하! 이거? 내 도시락 싼다고 진짜 X뺑이 쳤다. 서장님이 지시하신 거 아이가? 여기 조 부장님이 어느 분이신교?”
“여기!”
조 경사가 입에 가득 쌈을 넣은 채로 손을 들었다.
“아, 지는 마 여기 경리계장이라예. 영덕에 오시니까 좋지예? 이거는 서장님이 멀리서 오셨다고 식사라도 하시라고 도시락을 보냈니더. 대게 도시락이라고 이거는 영덕 아니문 맛볼 수가 없는 거시더. 여기 음료수도 좀 갖고 왔고예. 저녁에는 어디서 주무실 건데예?”
저녁에 숙소는 어디에 잡았냐고 물어보았다.
“아, 숙소는 저기 고래불 해수욕장에 민박집 하나 잡아 놓았으니까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을 하자 경리계장이 눈을 흘기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아따, 과장님도. 우리 관내 남정에 호텔도 있고 해상공원에 올라가면 깨끗하게 새로 지은 모텔도 많은데 하필 그리 멀리까지 가시능교? 내일은 고마 이리 밑으로 모시고 내려오시소. 지가 포항에 좋은 호텔에다가 모시겠니더.”
“말만 들어도 고맙네요. 이거 서장님이 보내셨다니 괜히 미안한데 어쨌든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 계장님예. 우리 도시락은 마 없능교?”
누군가가 그렇게 경리계장한테 물어보았다.
“시끄럽다! 너거들은 구내식당 짬밥 묵어라. 어디 서장님 밥그릇에 손을 댈라 카노? 이 자석들이 요새 군기가 싹 빠져 가지고 말이라. 어험 어험! 그럼 조 부장님, 즐겁게 지내다 올라가십시오. 나중에 뭐 또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지한테 말씸해 주이소.”
그렇게 말하면서 경리계장이 자신의 명함을 꺼내서 조연희에게 주었다.
“아니, 이러면 너무 서장님한테 죄송한데 그럼 올라가서 인사라도 드리고 올게요. 경리계장님이라고 그러셨죠? 저 서장님한테 안내 좀 해 주세요.”
“아? 예 예, 이리 오시소. 지가 모시겠심니더.”
그렇게 말하면서 조연희가 경리계장을 따라서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 양 경사가 뒤에다 대고 이렇게 말을 했다.
“조 경사 저거 서장한테 따와이하는 거 아냐? 하여튼 누구한테 배웠는지 저거는 따와이하는 데는 도가 텄어!”
“야! 누구한테 배우다니! 그럼 뭐 내가 조 경사 따와이를 가르쳤다는 거냐? 따와이도 다 타고나는 거다. 저거 보나 마나 영덕 경찰서가 한직이니까 서장들이 어디 가서 선을 달아 보겠냐? 게다가 서장 인사는 본청에서 다 하잖아? 그러니 어설픈 국회의원보다는 조 경사 백이 훨씬 낫기는 낫겠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경리계장이 먼저 들어가면서 조연희를 인사시켰다.
“서장님, 도시락 감사하다고 부속실장님께서 서장님께 인사드리겠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장님, 청장님 부속실에서 근무하는 조연희 경사라고 합니다.”
짧은 핫팬츠를 입은 조연희가 패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장한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복장이 이래서 죄송해요. 서장님, 휴가철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아, 휴가철에 옷 좀 편하게 입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자 자, 이리 앉아요. 청장님 수행한다고 고생 많죠?”
그렇게 말하면서 경리계장을 향해서 서장이 눈을 두 번 껌벅였다.
봉투를 만들어 오라는 뜻이었다.
“어허 어허! 이거 눈에 뭐가 들어갔나?”
그러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경리계장이 갑자기 숨을 ‘훅!’ 하고 들이켰다.
‘저것은 백만인데?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총알같이 밖으로 나온 경리계장이 사무실에 가서 급히 백만 봉투를 하나 만들어 결재판에 넣어서 서장실로 다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