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3화
#463. 경찰서장 이임식
영덕서장 이봉윤 총경은 포항 북부 서장으로 발령이 난 뒤부터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제까지는 그저 서울에서 내려온 별 볼 일 없는 서장이었는데 이번에 포북서장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자 포항에는 다들 여러 가지 서장한테 기댈 거리가 있었는지 앞다투어 찾아오기 시작했다.
평소 조용하던 경찰서 주차장이 오늘은 몰려드는 차량들로 전경들이 나와서 주차 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종일 북적거렸다.
‘영덕 인구 다 해 봐야 6만밖에 안 되는데, 이놈들은 어디서 다 튀어나온 거야? 내 참, 더럽네 더러워…….’
평소 같았으면 이 좁은 동네에서 밥 한 끼 얻어먹는 것도 정보과장이 선을 달아야 겨우 얻어먹을 정도였고 용돈을 건네는 유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포북서장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자꾸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봉투를 놓고 가는 것이었다.
또한 봉투 속의 내용물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액수가 컸다.
무슨 촌놈들이 다들 돈이 이렇게나 많나 싶어서 놀라면서도 평소 자신이 정보과장이나 토박이 간부들에게 휘둘려 왔던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부분은 속이 쓰리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청장 부속실 조 경사 덕분이었다.
휴가 온 조 경사한테 도시락 하나 대접한 것으로 수만 배 덕을 본 것이었다.
김세민도 틈을 봐서 전별금이라도 갖다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봉투를 하나 준비하고 있는 차에 교통계장이 들어왔다.
“와예, 서장님 전별금 드릴라고예?”
“예 뭐, 다들 하잖아요?”
“놔두시소.”
“예?”
“우리 졸병들이 있는데 뫈다꼬 과장님이 주머니를 텁니까? 자 여기.”
그러면서 봉투 하나를 내놓는 것이었다.
“우리 직원들이 만든 전별금이니까 들고 올라갔다 오시소.”
“아니 경비과가 무슨 돈이 있다고 직원들이 돈을 거둡니까? 내 돈으로 할 테니까 놔두세요.”
그러면서 봉투를 안 받겠다고 하자 교통계장이 머리를 흔들었다.
“괜찮심니다, 이거는 우리 교통에서 대표로 만든 거라예. 직원들 주머니 털지도 않았고 우리 관내 지나다니는 시외버스나 저기 국도 확장 공사 하는 아들 있다 아입니꺼? 과장님이 평소 일절 따와이를 안 하시니까 지들도 마 금마들한테 가서 이바구하기도 수월하고 또 명분도 있다 아잉교. 우리 주머니 턴 거는 절대 아이니께 마 마음 편하게 올라갔다 오시소.”
그렇게 말하면서 직원들이 거출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딱히 거절할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김세민은 교양수부 사이에 봉투를 끼워서 서장실로 올라갔다.
이제 이임식인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외부 인사들은 어느 정도 다 왔다 간 것 같았다.
“강 양, 서장님 계시지?”
“네. 들어가 보세요.”
똑똑!
“들어오시오.”
“충성!”
“오, 왔나?”
“잘 모시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시게 되어서 섭섭합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제 성의로 조금 넣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봉투를 내밀었더니 서장이 일어나서 봉투를 받지 않으려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오히려 경비과장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전별금은 무슨 전별금? 난 그저 지난번에 조 경사 왔을 때 지나가는 말로 한번 해 본 것뿐인데 갑자기 발령 난 거라고. 경비과장 아니었으면 나 같은 놈이 어떻게 포북을 구경이나 해 보겠어?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조 경사한테 줘! 물론 내가 포북에 가서 자리 잡으면 따로 조 경사 몫은 챙겨 줄 테니까 우선 그것은 내가 받았다가 다시 돌려주는 셈 치고 자네가 조 경사한테 전해 주라고. 안 그래도 마음이 좀 찝찝했는데 잘되었어.”
한사코 거절하면서 조 경사한테 대신 인사하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김세민은 다시 봉투를 들고 내려왔다.
‘아 이거 골치네, 어떡하지? 교통계장한테 다시 돌려줘야 되나? 아님 서장 말대로 서울로 보내야 되나? 아무튼 조 경사 이 녀석, 쓸데없이 일 벌이는 데는 뭐 있다니까. 가만 보면 항상 사람을 귀찮게 하고 말이야, 다음에 서울 가면 잔소리 좀 해야지 안 되겠어.’
이임식은 오후 5시 정각에 3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신기한 것은 경찰서장 이임식에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군수와 지청 사무과장까지 다 참석을 했다는 것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뒤에 보니 지역의 신문기자나 방송에서도 나와서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 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때 경무과장이 다가오더니 귓속말을 했다.
“오늘은 이임식이고 하니까 지휘는 경비과장이 좀 하소. 외부 인사도 많이 왔시니까 그래도 경감 과장이 하는 기 모양도 안 빠지고 안 좋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안 빼고 시원시원해서 좋네! 사회는 내가 보께.”
김세민은 별다른 이견 없이 경무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한두 번도 아니고…….’
경찰서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앞에 나가서 지휘를 하는 데 이골이 난 김세민이었다.
진급이 빠른 탓에 같은 계급 사이에서 대체로 김세민이 나이가 어린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곧잘 도맡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기도 하고 쪽팔린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 없이 무덤덤해졌다.
“아아! 에 그럼 지금부터 영덕경찰서 제X대 이봉윤 서장님의 이임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심니더.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니더. 내빈께서는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이소. 국기에 대한 경례.”
우르르르 덜거덕!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느라고 의자 소리가 요란했다.
김세민이 앞으로 나가 맨 가운데에 섰다.
“전체 차렷! 국기에 대하여 경롓!”
[척]
“바로~!”
“다음은 지난 전쟁 때 여기 영덕 지구에서 전사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트럼펫의 진혼곡 연주가 긴 여운을 남기며 울려 퍼졌다.
묵념을 하면서 김세민은 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일었다.
‘보통은 그냥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지 이곳처럼 특정 지역을 콕 찍어서 묵념을 하는 건 처음 보네.’
아직도 영덕 사람들의 마음에는 전쟁의 상흔이 흉터처럼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느껴졌다.
“다음은 임석상관에 대한 경례, 내빈께서는 다들 자리에 앉아 계시고 경찰관들만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김세민은 앞으로 나가 단상에 선 서장과 단의 뒤에 앉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을 향해서 직원들을 지휘했다.
“임석상관에 대하여 경롓!”
“충성!”
김세민도 다시 돌아서서 경례를 했다.
“충성!”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던 지역 유지들도 다 같이 일어나서 고개를 숙여 경례를 받았다.
장성가가 한 번 나오고 후렴이 뒤이어 나오면서 임석상관인 서장이 손을 내리자 김세민도 같이 내리고 뒤돌아섰다.
“바로! 착석!”
다시 뒤로 돌았더니 서장이 구령을 내렸다.
“편히 쉬어!”
“편히 쉬어!”
서장이 내린 명령을 확인 복창을 한 후에 김세민은 돌아서서 구령을 했다.
“쉬어! 편히 쉬어! 쉰 채로 주목!”
서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에~ 전, 서울에서만 경찰 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처음 내려와서 처음에는 잘 적응이 안 되었지만 이제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을 하니 참으로 서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곳은 제가 죽는 날까지 절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옆에 계신 우리 김병직 의원님과 김의찬 영덕군수님, 그리고 여러 유지 어른들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무사히 소임을 마치고 다음 근무지로 가게 되어서 내심 무척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우리 경찰관 여러분들의 건투를 빌면서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와 주신 여러 유지 어른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임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앗!”
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임식은 끝이 났다.
내빈들이 다 돌아가고 다시 서장실에 과장들이 모였다.
먼저 경무과장이 입을 열었다.
“서장님, 내일 신고가 도경에서 아침 9시 30분에 도경 참모 회의 끝나자마자 바로 한다꼬 그래 연락이 왔니더. 그라이 아침에 여기서 서장님 차에 짐을 다 싣고 한 7시쯤 출발하시 갖고 도경에 도착해 있시문 저기 포북에서도 1호차에 경무계장이 타고 올라올 거시더. 그라문 서장님이 신고하시는 동안에 밑에서 1호차에 실은 짐을 바꾸고 또 서울서 내려오는 신임 서장 짐은 우리 차에 싣고 고래가 신고 끝나고 바로 포북으로 가시문 되니더.”
“아니 왜 경무계장이 타고 오지?”
서장이 경무계장이란 말에 의문이 들어 그렇게 물었다.
“아 그거야 전에 서장은 벌씨로 사표 내고 집에 갔다 아잉교? 그라이 바로 가시 갖고 취임식만 하문 되는 거라예.”
경무과장이 일이 그렇게 진행이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란데 새로 오는 서장을 경비과장은 잘 아요? 난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던데?”
대공과장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수사만 한 모양이더라고. 수사통이래. 특수대장도 했고, 아 참! 우리 경비과장도 잘 알겠네? 둘이 같이 근무도 했지?”
이번에는 서장이 그렇게 물었다.
“네. 특수대에 같이 있었습니다.”
“사람 성격은 어떤데?”
이번에는 정보과장이 그렇게 물었다.
“성깔 있죠. 공수부대 출신인데 건달들 보면 맞짱을 떠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김세민의 그 말에 다들 풀이 죽어 버렸다.
“에이, 나도 인자 또 어데로 가야 되노? 짜달시리 갈 데도 없는데 말이라.”
경무과장이 신세 한탄처럼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니 가기는 어딜 간단 말입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경무과장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서장 프로필만 내려온 것 봤는데 나보다 한 열다섯 살 아래인 기라. 성질도 더럽다는데 어린 서장 밑에 나처럼 인자 다 늙은 놈이 우찌 모시고 살겠노? 뭐 옛날 왕조시대 같으문사 젊은 임금이 새고 샜으니까 모시고 산다꼬 카더라도 지금 세상에 새파랗게 젊은 서장 밑에서 대가리 숙이고 살라니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다 아이가? 경비과장 당신은 내 맘을 모릴 끼다. 내사 마 형님 같은 서장님 모시고 있실 때가 제일 좋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와! 내 말 틀맀나? 다른 과장들도 내 말 다 이해하제?”
“그 맘 이해하지. 그래도 우야겠노. 젊은 서장 모시고 또 살아야제. 앞으로 경비과장 당신 역할이 크다! 중간에서 잘해야 된데이!”
그렇게 김세민에게 부담을 주었다.
* * *
홍은수의 경장 특진은 우여곡절 끝에 본청장실에서 하기로 결정이 났다.
김포공항이 애초에 서울청 소속이니까 서울청에서 진급식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제가 있어서 책임 소재를 다툴 때를 위해서 서울청 소속 아래에 둔 것이지 특진이나 공을 논할 때는 본청에서 관장을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100호실 자체가 본청에서 더 많은 간섭을 하고 있었다.
부속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홍은수와 특공대 강민재 경장은 이윽고 부속실의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에 긴장을 했다.
“조 경사! 밖에 애들 기다리고 있지? 들어오라고 해! 임용식 하게.”
청장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서 나왔다.
“네, 청장님. 자 들어가요! 은수야, 그리고 강 반장님 이리로.”
은수는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청장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미 7층의 청장실로 들어올 때 바깥의 인공 정원 그물망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새소리와 물방앗간 소리에 반쯤은 넋이 나간 상태였는데 안은 마치 제정 러시아 시대 차르의 궁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청장의 원목 책상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고 치안감들이 좌, 우로 도열을 했다.
인사계장이 사회를 맡았다.
“먼저 청장님께 대한 경례.”
“차렷! 경롓! 충성!”
두 사람이지만 우측에 선 강민재 경장의 지휘에 따라 두 사람은 청장한테 경례를 하였다.
“음~.”
청장이 천천히 손을 올려 경례를 받았다.
“바로!”
두 사람이 손을 내리자마자 인사계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공항 경찰대 소속 강민재 경장과 홍은수 순경에 대한 특별 승진 임용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두 사람 일보 앞으로!”
[임용장
소속: 공항 경찰대 경장 강민재
귀하는 평소 투철한 사명감으로 근무에 임하여 왔으며 특히 공항 환승 구역에서 불심검문으로 대량의 금괴 밀수범을 현장에서 검거함으로써 경찰의 위상을 높였으므로 이에 경사로 특별 승진 임용함.
근무처 여고를 명함(현재 자리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을 말함).
소속: 공항 경찰대 순경 홍은수
경장에 특별 승진 임용함.
이하 내용은 같음.]
청장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차례로 임용장을 주었다.
그리고 악수를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계급장 부착이 있겠습니다. 계급장 부착!”
이번에는 미리 달아 둔 청테이프를 뜯어내지 않고 청장과 차장이 직접 계급장을 미리 구멍만 뚫어 둔 정복의 견장 위에 달아 주었다.
은수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언니와 함께 고단하게 살아온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다음은 진급 신고!”
인사계장의 말에 잠시 상념에 잠겼던 은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렷! 청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신고합니다. 공항 경찰대 경사 강민재! 경장에서 경사로! 동 경장 홍은수! 순경에서 경장으로! 이상 두 사람은 199X년 7월 30일 자로 각각 특별 승진을 명받았기 이에 신고합니다. 청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바로!”
청장이 홍은수와 청장 방의 안쪽에 걸려 있는 조연희의 소년계 시절 찍은 홍보 사진을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인제 우리 경찰청 모델을 여기 홍 경장으로 바꿔야 하겠어. 이번에 밀수범 잡은 것 해서 말이야, 다음에 여경 신입 모집할 때도 모델로 여기 홍 경장을 쓰면 어떻겠어?”
“아주 좋습니다. 조 승지가 들으면 좀 서운할는지는 몰라도 이제 세대 교체를 해야지요. 허허!”
차장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을 하자, 청장이 실없는 소리 한다는 투로 이렇게 말을 했다.
“아, 차장 입에서 조 승지란 말이 나오면 이제 경찰청 내에서 누가 조 경사보고 경사라고 그러겠어? 다들 인제 조 승지라고 할 거 아냐? 사람이 말을 가려서 해야지. 그건 나 엿 먹이는 거라고. 다들 내가 여기 앉아서 임금 놀이나 한다고 흉보지 않겠어? 츳츳!”
특진 행사는 금세 끝이 났다.
옆구리에 상장이나 임용장을 담는 넓은 나무 상자를 끼고 나가는 인사계장 등 뒤에다 대고 조연희가 인사를 하였다.
“수고가 많았사옵니다. 정랑 나리!”
‘아니 이게?’
그 말에 홱 돌아선 인사계장이 자신도 조 경사처럼 포권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천만에요. 조 승지 나리.”
“키키킥! 히힉! 킥킥킥!”
부속실 직원들이 다들 웃긴다고 낄낄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