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464화 (464/869)

제 464화

#464. 기본 교육

“나 이제 경장이야! 경장 달았어! 우헤헷! 우헤헤헷!”

은수가 기분이 좋은지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오늘 부속실 점심은 제가 쏩니다!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네?”

“말은 고맙지만……. 우린 점심이라도 밖에는 못 나가.”

“왜요?”

“왜긴, 언제 청장님이 찾으실지 모르니까 그렇지. 오늘은 청장님도 여기 간부 식당에서 드신다니까 우리도 간부 식당에서 먹자. 어때?”

“오~ 그것도 좋은데요? 제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간부 식당에서 밥 먹어 보겠어요?”

경찰청 식당은 일반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과 경정급 이상이 이용하는 간부 식당이 별개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부속실 직원들은 간부 식당을 이용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 경무관 이상만 이용하는 귀빈 식당이 따로 있었는데 청장도 낮에 약속이 없으면 자연 귀빈 식당을 이용했다.

그리고 남들 눈도 있고 서울 시내 교통이 워낙에 밀리니까 점심때 시골 서장들처럼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서울에서 근무하는 지휘관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

모든 약속은 자연 퇴근 뒤로 잡기 마련이었다.

부속실 직원들이 은수와 같이 간부 식당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었다.

주로 경정, 총경급이 이용하는 식당인데 경정급이 다들 지나가면서 조연희한테 고개를 숙이며 ‘조 승지님.’ 하고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네들끼리 앉아서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지금 본청의 경정급 입장에서는 사실 조연희가 제일 만만한 것이었다.

경정이 청장한테 직접 결재를 들어가지 못하니까 청장을 대면할 기회는 아예 없는 것이었다.

총경들이 결재판을 들고 들어가니까 자기 직속상관인 총경한테 부탁을 해서 자기 얘기를 좀 해 주라는 것이 다일 것인데, 어느 총경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경정급 승진 얘기를 해 주겠는가.

다들 제 코가 석 자인데 말이었다.

그러니 다들 조연희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차라리 조연희한테 욕을 좀 얻어먹더라도 관심을 받아서 청장한테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알려져야 근무 성적이나 총경 심사에서 명함이라도 내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조연희의 눈에 들어야 총경 승진 심사에서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었다.

경정급들의 그런 속사정을 조연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청에서는 조연희가 제일 만만한 것이 경정급 계장들이었다.

그리고 본청에서 모든 일의 시작은 경정급 계장이었다.

본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공문의 기안 책임자는 경정급이었으며 일선에서는 경위급이 기안 책임자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서는 천양지차가 있었다.

간부 식당에서 은수와 점심을 먹고 다시 부속실로 들어오니 마침 경비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부속실 조 경사입니다.”

-조 승지 나리, 저 소년계장입니다.

“계장님까지 놀리시는 거예요? 그럼 저도 이제 계장님 대신 언니라고 부를 거예요?”

-그럼 저는 대환영이죠. 조 승지 같은 동생이 생기는데 이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지.

“근데 어쩐 일이세요? 혹시 뭐 부탁이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니구요?”

-눈치도 빨라요. 실은 고민이 생겼는데 방법이 없어서…… 동생한테 전화를 했어.

어느 틈에 조연희를 동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제가 뭐든지 도울 수 있으면 도와 드려야지요.”

조연희는 자신이 처음 소년계로 갔을 때 따뜻이 맞이해 준 기억이 나서 살갑게 물었다.

-우리 조 승지도 알다시피 내가 올해 승진 시험을 쳐야 하는데 아직 경감 기본 교육을 못 갔다 왔거든? 이게 본청에서는 교육 한번 가기가 그렇게 힘이 들어요. 백 없는 부서에서는 늘 밀려 버린단 말이지. 그래서 우리 조 승지 백으로 교육 한번 가 볼 수 없을까 해서 이리 언니가 염치없이 동생한테 전화를 했네?

“아니에요. 전화 잘 주셨어요. 교육을 가기가 그렇게 어렵다면서요? 얼핏 한번 듣기는 했어요. 제가 알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구요.”

-고마워, 다음에 신세는 꼭 갚을 테니…….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난 조연희는 생각에 잠겼다.

경감 이상 기본 교육은 용인에 있는 경찰대학에 가서 받도록 되어 있었다.

문제는 경찰대학의 기숙 시설이 충분치가 않아서 한 번에 60명 이상은 받아 줄 수가 없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들어올 경우에 기존의 대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 대학 측의 주장이어서 함부로 인원을 늘리지도 못했다.

교육은 인사교육과장인 총경 밑에 있는 교육계장의 소관이었다.

교육계장은 신임 순경 채용부터 시작을 해서 간부 후보생 선발이나 각 계급별 특별 채용과 각 과정별 특별 교육, 그리고 계급별로 승진하면 받게 되는 기본 교육까지 다 망라하고 있었다.

조연희는 간부들 명단을 보았다.

교육계장인 조한휴는 후보생 출신이었다.

“조한휴라, 휴 자면 돌림인가?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조동걸이니까 나보다 아들뻘인데?”

이게 같은 풍양이면 승산이 있었다.

조 경사는 호기롭게 인사교육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 조 승지다!”

누군가 조 경사를 알아보고 먼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넓은 사무실에 인사계와 교육계, 그리고 상훈계가 각각 칸막이를 세워 놓고 같이 있었다.

조 승지란 말에 다들 자신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지만 조연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육계장이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갔다.

“대사성 나리! 소직은 입직 서기 풍양 조가라 하옵니다.”

조한휴 경정은 그동안 말만 들었지 처음 보는 예쁘장한 조 경사가 와서 정중하게 예를 차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동안에 자신과 간부 후보생 동기인 이선유 수사국 수사 1계장으로부터 조연희를 보면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오늘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조한휴가 두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대답을 했다.

“아 예, 어서 오십시오. 무슨 하명하실 일이라도…….”

“키키킥! 쿡쿡!”

옆에 앉아 있던 직원들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연희의 쇼에 넘어가서 자기도 모르게 왕실 법도대로 답례를 하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교육계장님 존함의 마지막 자인 휴가 돌림이옵니까? 제 부친의 성함이 풍양 조가 병참공파에 동자 걸자이옵니다.”

“으잉? 그럼 우리 할아버지뻘인데?”

“…….”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말이 나와 버렸다.

‘뭐야, 그럼 조 부장이 우리 아버지뻘이란 말이야? 이런 젠장!’

이제는 속일 수도 없게 되었다.

“예. 맞습니다. 저도 병참공파입니다. 저보다는 항렬이 높으시군요…….”

“…….”

조연희는 별 대답도 없이 교육계장을 빤히 바라봤다.

“……앞으로 예는 지키겠습니다.”

그제서야 조연희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앉아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네, 그러시죠. 이거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접대가 소홀했습니다. 야! 박 경사! 빨리 커피라도 타 와!”

“네네! 계장님.”

교육계장 앞에 앉은 제법 나이가 든 경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탕비실로 뛰어갔다.

“아니 근데 아까는 왜 저한테 대사성이라고 불렀습니까?”

교육계장도 그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옛날에 성균관의 수장을 대사성이라고 불렀다더군요. 우리 경찰에서 교육기관을 관장하는 곳은 여기뿐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대사성 나리 아닌가요?”

“그래도 우리 과장님이 계시는데…….”

“과장님은 대제학 어른이시고 계장님은 대사성 나리. 그럴듯하지 않나요? 오늘은 다름이 아니고 여우회 애로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소년계장 김기민 경감, 알고 계시지요?”

“아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왜 직접 내려오셨습니까? 전화만 주시면 제가 다 설명을 해 드릴 텐데…….”

“그분이 올해 승진 시험을 쳐야 하는데 아직 기본 교육을 못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계속 신청을 했는데도 밀리고 그래서 혹시 여자라서 자꾸 대기 순번에서 밀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을 하시는데…….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요.”

그렇게 말하면서 조연희가 조한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순간 교육계장은 속이 철렁했다.

‘이 여우 같은 게 어떻게 알고 넘겨짚는 거지? 괜히 말 한번 잘못하면 한 방에 가는 수가 있다. 조심해서 말을 가려서 해야 돼.’

“사실 경감이 전국적으로 제일 인원도 많고 한데도 경찰대에서 받아 줄 수 있는 강의실이나 내무반이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순번이 밀리는데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 교육 대기자 명부가 작성되는 데 원칙이나 규정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걸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뭐 별도로 기준은 없습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과장님이나 국장님을 통해서 지시가 내려오면 끼워 넣을 뿐이죠. 이제 조 승지님 말을 들었으니까 이번 마지막 하반기 교육에 김기민 경감을 제가 책임지고 끼워 넣겠습니다. 그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러면 그것대로 또 말이 나올 테고……. 아, 이러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방금 경찰대 교육 시설이 60명 이상을 다 수용을 못 해서 그런다고 하셨잖아요? 경찰대에 제일 많이 들어가는 강의실 인원이 몇 명이나 되죠?”

갑자기 강의실 수용 인원을 묻는 조연희의 질문에 교육계장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저 한 번에 60명 이상은 안 된다는 기준에 못이 박혀서 인원을 늘릴 생각은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사실 아직 파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시인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요……. 잠깐 전화 좀.”

조연희가 전화를 들더니 부속실장 자리 번호를 눌렀다.

“실장님, 저예요 조 경사. 전에 경찰대에서 교육받으실 때 말이에요, 제일 큰 강의실이면 한 몇 명이나 수용할 수 있어요?”

조연희는 경찰대 출신인 부속실장 오현수 경감에게 전화해서 대뜸 강의실 크기를 물었다.

-제일 큰 강의실? 외래 강사 오면 사용하는 중강의실도 큰 편이고 대강의실은 그보다 더 큰데…… 중은 한 100명 정도, 대강의실은 150명 정도라고 볼 수 있지. 갑자기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난 조연희가 이렇게 방안을 제시했다.

“그럼 이번 마지막 하반기 기본 교육은 중강의실에서 하는 걸로 제가 청장님한테 승낙을 받겠습니다. 공문 기안해서 결재를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소년계장도 거기에 넣어 주세요. 그럼 다른 사람이 대신 밀리지가 않으니까 불만도 없을 테고.”

“그럼 대학교 기숙사 문제는 어떡합니까? 학교에서 여유분이 없다고 늘 얘기를 하던데…….”

“경감 이상은 고급 간부 교육이니까 밤에 비간부들처럼 점호하고 그럴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오는 간부들은 다 출퇴근을 시키는 거예요. 희망자에 한해서 그렇게 하고 만약에 희망자가 많으면 기숙사도 자리가 많이 날 것이고 희망자가 적으면 그때는 경찰대학에서 가까운 집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출퇴근을 시키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은데요? 그것도 같이 기안해서 결재를 받아 줄게요. 어때요? 그럼 오케이?”

청장한테 대신 결재까지 받아 주겠다는 말에 교육계장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또한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는 교육을 보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아직 들어주지 못한 경감 교육 희망자 49명이 떠올랐다.

‘가만있자, 얘 말대로만 되면…… 내 재량으로 교육 보낼 여유가 생길 테고…… 그럼 걔네가 봉투 하나씩은 다 갖고 올 거 아냐?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데?’

조 경사 덕분에 교육 따와이를 할 수 있게 되는 마당에 제안을 거절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지금 바로 기안해서 청장님 결재를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요.”

‘X발 또 뭐야?’

속마음과는 다르게 온화한 표정을 짓느라 이마에 식은땀까지 흘렀다.

“네.”

“영덕 경비과장님 말이에요, 이번 9월에 수사 지휘 과정 교육은 어떻게 수사국에서 협조문이 넘어왔는지 그것도 한번 확인해 주세요.”

조 경사는 교육계 온 김에 김세민의 교육까지도 확인을 해 보고 싶었다.

덜렁거리기만 하는 이선유 경정의 말을 다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김세민 경감요? 안 그래도 이선유 계장이 부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내일 교육 발령 공문이 내려갑니다. 9월 1일에 동대문에 있는 경찰 수사 연수소에 입소해서 신고하시면 됩니다. 이분들은 수사 연수소에 기숙 시설이 없어서 간부들은 전원 다 출퇴근을 하게 됩니다.”

“잘되었네요. 그리고 내년에 저도 기본 교육을 가야 하고 김세민 경감님도 또 가야 하니까 계장님 여기 계실 때 다 챙겨 주세요. 제가 보답은 해 드릴게요. 나중에 교육 인원 추가 계획 공문 기안해서 과장님 결재만 받고 부속실에서 검토한다고 가지고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저한테 바로 들고 오세요. 제가 청장님한테 직접 결재받으실 수 있도록 해 드리죠.”

“아니 제가 청장님한테 직접 들어가서 결재받도록 해 주신다고요?”

“네. 그렇게 해야죠. 나중에 저하고 같이 들어가서 결재받아요. 그래야 청장님께서 우리 대사성 나리 얼굴도 한번 보시고 기억하실 거 아니에요?”

교육계장 조한휴 경정은 그만 감격을 했다.

본청에서 일 년 넘게 있었지만 인사교육과장이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 탓에 자신이 직접 청장의 결재를 들어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사교육과장도 경무관 승진을 바라보고 여기에 눌러앉았기 때문에 다들 한 번이라도 청장의 얼굴을 더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이었다.

* * *

한가로운 영덕 경찰서에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아아, 경무과장이시더. 조금 전에 도경에서 신임 서장님이 출발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심니더. 빨리 식사들을 하시고 13시까지는 전원 직원들은 3층 회의실에 모여 주시고 각 과장님들은 현관에 나와서 서장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 주시기 바라니더. 서장님 도착하시는 대로 바로 간부들 신고를 마치고 나서 회의실에서 신임 서장님 취임식을 하도록 하겠심니더. 이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