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6화
#466. 목선 조각
새벽에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
-과장님, 상황실 조 경산데요. 지금 비상 걸맀심니더. 빨리 나와 보셔야 되겠는데요.
“뭐라고? 무슨 비상인데?”
-이게 일반 비상이 있고 작전 비상이 있는데 대간첩 작전이라고 보면 되니더. 지금 축산항에서 해녀가 새벽에 물질 나왔다가 신고를 했는데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이 발견되었다고 카네예.
“알았어. 지금 바로 나갈 테니까 지프차 준비시켜 줘요.”
-예. 알겠니더.
해안이나 산악을 관할하는 3급지 경찰서는 경비과장하고 서장한테 지프차가 한 대씩 배정이 되어 있었다.
옛날처럼 도로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서 그렇겠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지역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으니 지프차는 사실 별 소용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작전 비상이 걸리면 반드시 지프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영덕에서 근 40분을 달려서 축산항으로 갔다.
이미 현장에는 축산 지서에서 나와 있었고, 대공과장인 주일청 과장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목선이라고 수거해 놓은 것은 폐목선 조각으로 보이는, 시커멓게 불에 탄 것으로 보이는 나뭇조각 대여섯 점이 고작이었다.
“아! 경비과장 나왔소?”
주 과장이 알은체를 했다.
“이게 뭡니까? 아니, 나뭇조각 몇 개 가지고 새벽부터 비상을 건 겁니까?”
김세민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어했다.
“경비과장은 도시에서 있다가 와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기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단 말이요. 자, 여기 함 보라꼬. 나뭇조각이지만 이 부분은 배의 밑바닥이거든? 그란데 여기 글씨 새겨 놓은 거 보이지예?”
[원산 공작소]
“이거는 원산에 있는 배 만드는 공장에서 만들었다는 증거이고, 원산에서 영덕까지 거리가 얼마나 먼데 북한에서 부서진 배가 이곳까지 흘러올 이유도 없고 조류 방향이 맞지도 않고, 그래서…….”
“그럼 공작원들이 타고 와서 여기 상륙을 하고 배를 부숴 버렸다, 뭐 이런 결론입니까?”
“지금으로 봐서는 그게 제일 합당한 설명인 것 같은데, 문제는 저 먼바다에서 이 배를 폭파시키고 나서 공비들은 다 잠수복을 입고 침투했을 건데 그럼 근처에 오리발이나 스노클 같은 장비를 묻었을 테니 그것도 찾아야 하고 어차피 대간첩 작전은 불가피하게 되었단 거지. 우신에 경비과는 지방청에 보고부터 하고 기동대 병력을 최대한 많이 보내 달라고 해서 이 근처 수색부터 해 봅시다. 저기 칠보산이나 팔각산을 거쳐서 청송 주왕산으로 해서 대구로 잠입하는 코스를 잡았실 기요.”
김세민은 어릴 때 들었던 울진 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왜 나무가 이렇게 시커멓습니까? 불이라도 난 건가?”
“아 그거는예, 북한 놈들이 만드는 배가 전부 목선이다 보니까 나무가 방수도 방수지만 쥐나 벌레가 쏠리면 안 되거든예? 그라이까 저노마들 배를 보문 전부 다 이리 불에 그을린다 아잉교. 완전 옛날 사람들이 하는 방식인데 점마들은 아직도 하는 짓이 석기 시대라예.”
옆에서 듣고 있던 대공 2계장 박희정 주임이 그렇게 말을 해 주었다.
지방청 상황실에 보고를 했더니 대번에 경비과장이 기동대 6개 중대를 완전 전투태세로 무장시켜서 보내 주겠다고 했고, 자신도 오후에는 현장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장을 찾길래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서장의 대처가 너무 늦다고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는 것이었다.
평소 다른 치안 업무에서는 별 의욕도 없는 사람들이 간첩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김세민은 이것이 도시와 지방 경찰의 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영덕만 해도 아직까지 전쟁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으니까, 다들 무장 공비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것이겠지.’
연락을 넣고 얼마 되지 않아 정우진 서장이 도착했다.
“어! 김세민이 빨리 왔네?”
“오셨어요.”
“의리 없기는……. 갈 때 깨워서 같이 가든가 하지 말이야, 너무한 거 아니야 진짜?”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세요? 지금 포항에서 안기부 대공 분석팀하고 보안사 대공 분석조가 오고 있답니다. 도착하기 전에 경찰서장님 주관으로 경찰의 대공, 경비 합심조가 먼저 보고를 해 달라고 하는데요.”
김세민이 도경 경비과장한테 들은 얘기를 그대로 보고했다.
“그럼 뭐야, 군부대하고 안기부 애들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우리보고 먼저 1보를 해 달라는 소리 아냐 이거?”
대통령 훈령 28호에 의거, 10인 미만의 대간첩 작전의 지휘와 종결은 경찰서장한테 있었다.
이제 여기서 최종 검토를 마친 다음 경찰서장 판단하에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미 모든 어선들의 출입항과 해안선에 사람들을 통제시켰으므로 생업에 꽤 큰 지장이 생길 것은 피할 수 없었다.
“X발, 어떡하지? 작전 계속 해 말어?”
골치가 아파진 정우진은 주변 간부들에게 답을 구했지만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괜히 의견을 냈다가 어디선가 불쑥 무장간첩이라도 나타나면 그야말로 X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공과장 생각은 어때?”
“저한테 물으셔도…….”
“대공과장이 여기 토박이고 대공만 30년 가깝게 맡아서 해 왔는데, 전문가 아니야? 나야 뭐 군에서 공수부대에서 뛰고 훈련한 것밖에는 군 경험이 없는데 내가 뭘 알겠어. 경비과장! 자네 생각은 어때?”
“일단은 대간첩 작전을 염두에 두고 시작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이게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보고를 할 뚜렷한 물증도 없고 하니 일단은 그렇게 시작을 하고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안 그럼 몇 달 동안 대간첩 작전에 매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김세민이 일단 시작은 간첩 침투로 하고 나서 사실은 그냥 단순한 표류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고 의견을 냈다.
“그럴듯하네, 일단 경비과장 말대로 해 보자고. 대공도 이의 없지?”
“예.”
“그럼 경비과장! 뭐부터 시작해야 돼?”
“네? 아니, 서장님이 결정하셔야지 왜 자꾸 저한테 묻습니까?”
“이게! 서장이 이야기하는데 빨리 대답 안 하고 자꾸 그럴 거야?”
“에휴……. 설마 지금 갈구는 건 아니죠? 확 감찰에 찔러 버릴까 보다.”
“마음껏 찔러, 그래도 일단 의견은 내고 나서 찌르라고.”
김세민은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선 여기 축산 지서에 합동 상황실을 만들어서 경비하고 대공에서 작전 기간 동안 24시간 운영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매시간 도경에다가 상황 보고를 유지하고요. 우선 발견된 장소를 중심으로 영덕서 직원들만 데리고서 일단 광범위하게 수색을 해야 합니다. 오리발이나 스노클 같은 상륙 장비를 찾아야겠지요. 발자국이나 돌무더기, 풀이 발에 밟혀서 누운 흔적 같은 것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캬!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경비과장이 다 해 주네! 내 말이 딱 그 말이라고!”
정우진이 김세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근데 서장님.”
“응?”
“서장님 공수부대 출신이라면서요.”
“그런데?”
“은밀하게 침투하는 훈련이랄지……. 뭐 많이 해 보셨을 것 아닙니까?”
“뭐, 질릴 정도로는 했지. 근데 그건 왜 물어?”
“그럼 이 상황에 적의 입장에서 우리가 착안해서 수색해 봐야 할 사항 같은 것은 없습니까?”
“아 진짜 모르는 소리 하네, 공수부대에 그런 게 어딨어? 우린 그냥 시키면 낙하해서 목표 지점에 있는 걸 다 때려 부수는 게 임무인데. 우린 은밀히 침투하고 그런 것은 없다고, 기껏해야 주간에 은신할 비트 정도 파는 게 다야.”
“아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꼬?”
대공과장이 갑자기 이마를 탁 하고 쳤다.
“경비과장! 저기 칠보산하고 팔각산에 나중에 도경에서 기동대 오면 산악 수색 하입시더. 임마들이 낮에는 다들 비트 파고 안에 들어가서 자고 있실 기라예.”
“글쎄요, 그건 무장간첩이 정말로 침투를 했을 경우에 하는 얘기고 제 생각에 지금 상황은 단순히 우리를 떠보려고 하는 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조사는 해 봐야겠지요.”
김세민은 속으로 이것은 여기 나와 있는 고첩이 우리의 해안 방어 상태와 대간첩 작전 수행 능력을 체크해 보기 위해서 벌이는 위장 작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포항에서 군과 안기부 합심조 요원들이 도착을 했고 대구에서 도경 기동대와 해병 1사단에서도 병력이 지원되어서 오후부터는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돌입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저녁 늦게 다들 축산 지서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먼저 안기부 대구 지부 대공수사단장인 길전식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자, 다들 모였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결론이 나야 합니다. 우리가 합동 분석조니까 위에서도 지금 우리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먼저 해병 1사단 작전참모께서 말씀하시지요.”
“해병 1사단 작전참모 강룡 중령입니다. 전 오늘 결론을 내는 것은 너무 빠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직 전 구역에 대해서 충분한 수색을 하지 못했고 아니 할 말로 저놈들이 바다에서 배를 파괴하고 이리로 흘려보냈지만 반드시 여기에 상륙을 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수색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 영덕만 해도 해안선 길이가 80킬로를 넘는데, 동해안을 전부 다 수색을 하자는 얘기요? 뭐요?”
도경 경비과장이 펄쩍 뛰었다.
청와대에서는 적당히 빨리 확산되지 않게 묻으라는 지시를 받고 왔는데 군에서 반대를 하면 그것 또한 곤란한 것이었다.
“경찰 의견은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안기부 대공수사단장이 물어 왔다.
“아, 그거는 우리 경비과장이 전문가라서 대신 대답을 할 겁니다.”
정우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는 쏙 빠졌다.
‘전문가는 무슨? 간첩 잡는 데 무슨 전문가 타령이야?’
김세민은 일단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내색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이 사건은 북한의 위장 공작이라고 봅니다.”
“……!”
“무장 공비들이 상륙하지도 않았고 그저 우리 해안 방어 태세를 점검해 보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증거는?”
대공단장이 김세민을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우선에 증거로 떠밀려 온 목선의 파편이 먼바다에서 침투 후에 파괴되어 떠밀려 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 목선 조각은 틀림없이 북한의 상어급 정도의 잠수함에 실려 와서 해변 가까이에서 우리 쪽을 향해서 밀어내었을 것입니다. 목선 파편이 한두 개가 떠밀려 오면 모르겠지만 지금 제법 파고도 높은데 무려 일곱 개나 되는 파편이 함께 떠밀려 왔다는 것은 인공적인 것이라는 것이 경찰 생각이고요, 여기 목선의 조각을 보시면 폭탄으로 파괴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화약 냄새도 없고 말입니다. 그리고 절단면이 너무 깨끗합니다.”
“그럼 누군가 사람이 인공적으로 배를 뜯었다는 소리네?”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오산에 있는 미 공군에 의뢰를 하면 북한의 전 지역을 커버하는 위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남포나 신포에서 북한의 상어급 잠수정이 출항한 기록이 있는지 미군한테 협조를 구해 보고, 다음에는 아마 이 근처에서 북한 고첩들이 사용하는 단파 송신량이 엄청 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안기부에서 확인을 해 보면 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여기 영덕 해안은 오늘 새벽부터 하루 동안 전 해안 80킬로를 경찰관과 기동대 6개 중대를 동원해서 이 잡듯이 뒤졌는데 발자국이나 발자국을 지운 형태 등 아무것도 발견을 못 했습니다. 이 정도면 최소 3, 4명이 상륙을 했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3, 4명이 움직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송과 울진 검문소도 아무것도 발견을 못 하였다고 하고, 영덕, 청송, 울진 이 3개 군이 오늘 저녁에 긴급 반상회를 했는데 거수자를 보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결론은 북한의 위장 공작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기부의 감청 결과는 어땠습니까?”
김세민이 마지막으로 안기부의 단파 송신 감청 결과를 물었다.
이미 안기부에서도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괜히 벌써 알고 있으면서 훈련이라도 시키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 우리 영덕 경비과장님은 전에 어디 대공 파트에서 근무를 많이 했습니까? 우리 업무를 소상히 알고 있네요? 아직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과거에 안기부하고 합동 작전을 많이 했습니다.”
“어쩐지……. 그래서 우리 단파 집전기나 감청 장비를 알고 계시는구나, 맞습니다. 오늘 새벽부터 여기에서 두 가지 호출 부호를 가진 단파 송신이 급증했습니다. 우리 안기부에서도 요원들을 새벽에 급파를 해서 흔적을 찾았는데 아무것도 못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에 신포에서 북한의 상어급이 한 척 출항한 것을 좀 전에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전은 지금 시간부로 종료를 합니다.”
* * *
경찰청 수사국 수사 1계 사무실,
조연희가 호기롭게 수사국의 묵직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정면을 향해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저 왔어요!”
산뜻한 짧은 소매의 하 근무복을 입은 조연희는 오늘따라 더 상큼하고 발랄했다.
그동안 올림머리를 하던 것을 날씨가 더워서 짧게 커트를 한 것이 더 잘 어울렸다.
“어! 조 승지다!”
“조 승지님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입구에 앉아 있던 수사 1계 정 형사가 알은체를 하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서 이선유 계장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계장님! 조 승지님 오셨는데요?”
“아이 씨 진짜, 왜 또 왔어? 이봐 조 부장! 우리 자주 안 만나기로 했잖아! 오늘은 뭔데?”
이선유가 잔뜩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계장님은 제가 오는 것이 하나도 안 반가우신가 봐요?”
“그럼 반갑겠냐?”
“어허, 이렇게 문전박대를 하시다니, 제가 선물이라도 들고 왔다면 어쩌시려고…….”
“선물 좋아하네, 필요 없으니까 꺼져, 사라지라고.”
이선유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놓고 싫은 티를 팍팍 냈다.
그러자 조연희가 얼굴을 이선유 앞에다가 바짝 들이밀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그럼 올해 교육도 포기하시는 거죠?”
“응?”
“내년에도 아마 어려울 텐데? 수사국이 좀 바빠야 말이지. 수사 1계장은 필수 보직이라서 교육은 일선에 나가서나 다녀오라고 확 펌프질이나 해 버릴까…….”
“교육? 야! 그게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요. 교육계장님이 풍양 조가인 건 알고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