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468화 (468/869)

제 468화

#468. Summary Report

“이거 누가 집합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미쳤어? 경정이 무슨 경사한테 집합 보고야?”

“네 눈에는 저게 그냥 단순한 경사 계급장으로 보이냐? 그 뒤에 어른거리는 왕별 네 개는 안 보여?”

“자 자, 계장님들 조용히 해 주시고요. 지금부터 중요한 얘기니까 잘 들으시고 질문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청장님 결재는 사전에 SR이라고 하는 결재 예정 요약 보고서를 먼저 내주셔야 합니다.”

“응? SR? 그게 뭔데?”

“한번 예를 들어 볼까요? 교육계에서 신임 순경 모집 공고를 내고 시험을 친다고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매년 하는 정기적인 일이지요, 교육계장님?”

“예. 맞습니다. 매년 두 차례씩 모집 공고를 냅니다.”

조한휴 계장이 일어나서 설명을 했다.

“그런 경우에 순경 모집 공고 계획이나 시험 응시 계획은 한 번에 다 결재를 내도 됩니다. 또한 매년 실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SR은 한 번만 내고 바로 결재를 들어오시면 되는데 먼저 SR을 내게 되면 청장님이 보시고 이거는 언제 결재를 하겠다는 표시를 해서 저희 부속실에 내려 주시게 됩니다. 그럼 이런 순경 모집 공고 같은 것은 심도 있는 검토 같은 것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바로 SR을 제출한 그날 오후라도 결재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저희가 해당 부서에 미리 유선으로 다 통지를 해 드릴 것이고요. 다음에는 좀 더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결재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사국에서 요새 민생침해사범 특별 단속 계획을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조연희가 이선유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청장님 지시로 그렇게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선유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대답을 하였다.

“이것은 전례도 있겠지만 청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SR 제1보를 먼저 넣는 것입니다. 제1보는 먼저 민생침해사범의 정의와 단속 대상, 범죄의 나열 및 종류, 그 외 단속은 형사들만 할 것인지 아님 경찰서 전 직원을 동원해서 정기적으로 일제 검문검색이라도 실시할 것인지 등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서 먼저 제출합니다. 그럼 청장님이 보시고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충해 넣으시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그것도 보완하고 해서 다시 내려보내면 수사국에서는 또 검토하고 고민해서 SR 제2보를 만들어 올립니다. 그렇게 서너 번 SR 보고를 통해서 청장님과 의견 조율을 어느 정도 마친 후에 청장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때 공문을 정식으로 기안해서 결재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럼 결재가 안 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겠죠?”

“킬킬킬! 이선유 인제 죽었다!”

“지금 저거 조 승지가 이선유 갈구는 거지? X나 웃기네!”

“그럼 업무 진행 속도가 상당히 느려질 텐데요?”

누군가 손을 들고 그렇게 질문을 했다.

“음~ 반드시 꼭 그렇다고는 할 수가 없어요. 예컨대 지금 여기 앉아 계시는 계장님들의 입장에서는 SR 요약 보고서 제출이 오히려 계장님의 부담을 덜어 드린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우리 부담을 덜어 준다고요?”

“그렇습니다. 자, 또 예를 들어 보죠. 청장님 결재가 필요한 어떤 업무를 기안해서 전국 경찰에 하달을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그 과정에서 총경 과장님이나 경무관 부장님, 그리고 치안감 국장님하고 많은 갈등에 부딪칠 것입니다. 계장님들 생각이 자주 무시될 것이고요, 국장님까지 어렵게 승인을 받아서 청장님 결재를 갔는데 부결되면 그때는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요?”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라야지. 밑에서 X 빠지게 공문 만들어 갔는데 이거는 뭐 총경 과장이 고치고, 경무관 부장이 고치고 치안감 국장이 고치고 나면 완전 걸레가 되어 버린다고. 다시 기안할 수도 없고 말이지. 잔뜩 화이트 처발라서 가져가는 공문에 어느 청장이 거기다가 사인을 하고 싶겠어?”

방범기획계장이 자조 섞인 말투로 속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

사실 그동안 방범에서는 모든 공문이 누더기 걸레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각 결재권자로 올라갈 때마다 수정, 또 수정이었다.

“그런 문제를 앞으로는 이 SR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과 청장님을 다이렉트로 연결해 주는 수단이라고나 할까요? 또한 능력만 잘 발휘할 수 있다면 청장님한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번 SR 요약 보고서에는 반드시 작성자 이름을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아니? 작성자 이름을 기재한다고?”

인사계장이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네, 그래야 청장님이 여러분들 이름을 기억하시고, 나중에 승진이나 근무 평점 때도 확실한 기준에 의해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나중에는 다들 저한테 고맙다고 밥이라도 사셔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아, 밥 사야지! 올해 승진하면 다 조 승지 덕분인데 무조건 밥 산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사계장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팁을 드릴게요. 제가 실험적으로 만들어 왔는데요, 한 장씩 가져가세요.”

조연희가 A4용지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어! 이게 누구야? 이선유 아냐?”

그 말에 이선유는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자신에게 나누어 준 종이를 보았다.

거기에는 SR 보고서 양식이라는 제목 밑의 오른쪽 상단에 작성자 소속과 계급, 성명을 기재하게 되어 있고 자신의 명함판 사진이 흑백으로 복사가 되어 인쇄되어 있었다.

“제가 수사국을 예시로 해서 양식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앞으로 계속 사용해야 할 것이니까 밑의 인쇄실에 가서 각 부서별로 인쇄해서 가져다가 사용을 하시는데, 이렇게 보고서 작성자 사진과 이름을 맨 우측에다가 아예 인쇄를 해 두면 청장님이 보고서를 보실 때 아, 이거는 수사국 이선유가 작성한 것이구나, 하고 대번에 알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니까 다들 그렇게 이해를 해 주시고 사진을 붙이라는 것은 강요 사항은 아닙니다. 얼굴에 자신이 없는 계장님들은 안 붙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헤헤! 그럼 다른 질문이 없으시면 당장 오늘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언제 결재가 올라갈지는 청장님이 지정해 주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정보 1계장이 그렇게 물었다.

“일단은 언제 결재를 올릴 것이다라는 결재 예정일을 적어 주세요. 그럼 청장님 스케줄도 바쁘니까 저희들이 결재 시간을 최대한 맞추어서 조정을 하겠습니다. 일종의 결재 예약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또 다른 질문 없으세요?”

“처음에는 뭐 하러 귀찮게 이런 짓거리 하나 싶었는데 우리 조 부장 얘기 들어 보니까 상당히 일리가 있고 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계장님들이 다 모여 계시지만 그동안에 우리 계장들이 청장님 결재 한번 받아 내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우리가 직접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위에 총경 과장들이 온갖 갑질을 다 하는데 이거는 중간 과정을 다 뛰어넘고 우리가 바로 청장님 결심을 받아 낼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전 아주 좋다고 찬성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올해 총경 승진 0순위라고 다들 인정하는 경무계장이었다.

“조 부장이 아니고 조 승지라고 불러야 한다는데도 경무계장님은 아직 그런 감은 좀 부족하셔!”

“와하하! 킬킬킬!”

그렇게 농담을 건네는 사람은 형사계장이었다.

“자, 그럼 다른 이의가 없으면 이대로 시행합니다?”

조연희가 그렇게 말을 끝내자 다들 좋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즉각 시행에 들어갔는데 다들 대만족이었다.

우선에 쓸데없는 업무가 팍 줄었다.

아침에 소 참모 회의에 들어갔다 온 총경 과장들이 지시 사항이 있으면 일단 A4용지 한 장에다가 요약을 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총경이나 경무관, 치안감들이 그 한 장짜리 보고서만 겨우 고치기 일쑤였다.

그래 봤자 웃어른들이 실컷 입맛대로 고치고 나면 새로 깨끗하게 타자 한 장을 쳐서 부속실 조 경사한테 가져다주는데 그러면 빠를 때는 당일 오후에, 늦어도 3일 안으로는 청장이 직접 사인펜으로 수정한 안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청장이 직접 수정한 안을 맨 뒤에 첨부해서 가지고 가면 어떤 총경이나 치안감도 거기에 손을 대지 못했다.

감히 청장이 직접 수정한 것을 손대겠다는 바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결재는 일사천리였다.

그전에는 기껏 머리를 짜내서 공문을 기안해서 들고 가면 총경이나 경무관들은 먼저 내용도 보지 않고 사인펜부터 꺼내 들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뭔가 아랫사람이 들고 온 것을 수정을 해 주어야 자신의 역할과 권위가 산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걸 조연희가 싹 다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영덕에 있는 김세민의 지시에 의해서였지만 그에 의해 경찰청 결재 풍경이 바뀌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경찰청 계장급들한테 조연희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건들 수가 없었다.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청장도 청장대로 갑자기 일에서 해방이 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전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과장들이 결재판을 들이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당황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다.

또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외국의 사례나 타 부처의 사례 등도 충분히 살피면서 업무에 임할 수가 있었다.

인제는 갑작스럽게 들이미는 결재의 공포에서 해방이 되었다.

이 모든 게 조 경사 덕분이었다.

처음에 경무국장의 말대로 시원찮은 남자 직원 하나 데려왔더라면 아마도 자신은 여기서 10년은 더 바싹 늙어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조연희는 조연희대로 경찰청의 모든 업무를 관장할 수가 있었다.

청장 결재는 일단 자신의 손을 다 거치게 되어 있으므로 대한민국 경찰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연희만큼 환하게 꿰뚫고 있는 경찰관도 없었다.

8개국 3개 담당관들의 모든 업무가 자신의 수중에 완벽하게 장악이 되어 있었다.

인제 어느 국의 계장 업무 능력이 어느 정도이고 다음에 총경 승진은 누가 되어야 한다는 정도까지도 충분히 청장한테 조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각 부서의 업무와 간부들의 능력을 환하게 꿰뚫고 있었다.

* * *

영덕의 한가로운 화요일 오후.

김세민은 울진 김순철 과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아! 울진 수사과장 김순철 경감이올시다.

“무슨 경비 전화를 그렇게 받아요? 그러다가 또 감찰한테 찍히면 어쩌려고. 하여튼 대책이 없어요.”

-누고? 영덕 김 대감 아이가? 캬! 요새 김 대감 연락이 없어가 내가 살짝 삐치기 일보 직전인데 전화가 왔네. 그래 어떻소? 잘 지내요? 재미는 좋고? 따와이는 잘돼 가고 있소?

“따와이는 무슨 따와이입니까? 전 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경찰청 수사국 수사 1계장 이선유 경정이라고 이번 주 휴가를 동해안으로 옵니다. 어제 속초 콘도에서 잤을 건데 내일 울진을 통과해서 여기로 내려옵니다. 만약에 울진 백암 온천에 호텔 하나 예약이 되면 백암에서 온천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한번 확인 좀 해 주시고 가능하면 예약을 해 주시고 안 되면 제가 여기서 방을 구할 테니까 그것만 좀 알아봐 줄 수 있습니까?”

-아 되지, 예약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고. 호텔 사장 불러다 놓고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카고 겁 한번 주고 나서 고마 방 한 개 특실로 내놔라 하문 되지. 그기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라무 수사 1계장 핸드폰 번호나 연락처 이런 거 하나 주소. 내가 백암에서 내일 열두 시 해가지고 잘 대접해가 모레 후포 검문소에서 우리 인수인계합시다. 캬! 이거 무신 군사작전 같다! 키키!

“아니 그렇게 확인도 안 해 보고 나중에 방이 없니 마니 하면 어떻게 해요? 확실하게 해야 한단 말입니다. 내가 이번에 서울에 수사 지휘 과정 교육 가는데 이선유 계장 덕을 좀 봤어요.”

-오잉? 김 대감 당신이 수사 지휘 과정 교육을 간다고? 그거 6개월짜리 아이가? 햐! 이거 이거 재주가 비상하네! 그란데 이거 경북에서 경감 자리가 하나 줄어서 안 보내 줄라꼬 칼 낀데 우째서 발령이 나요? 참말로 당신 재주 하나는 대단하요! 나 김순철이 로비 잘한다고 평소 큰소리 뻥뻥 치고 다니지만 우리 김 대감한테 비하면 난 쨉도 안 되네. 소리 소문 없이 살짝 서울 집에서 교육 다니면서 유배 살이 기간 다 채우고 말이라. 이거 참말로 서운하네. 아니 그리 좋은 교육이 있시문 당연히 당신이 나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우찌 나는 쏙 빼고 당신 혼자 서울에 간단 말이오? 인자 내 혼자 겁나구로 여기서 우찌 버티라고 참말로 서운하네.

“서운한 거는 뭐고 겁나는 거는 뭡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일 방이나 확실하게 잡아 줘야 합니다?”

-알았소. 알았다고. 어차피 나도 부산 내려가면 수사 지휘 과정 교육을 받아야 형사과장이라도 함 해묵을 꺼 아이가? 이참에 나도 로비 좀 해야겄소.

이틀 후 아침 영덕 경찰서 참모 회의 석상.

“야! 여기 영덕서장 자리는 전국 경찰서장 자리 중에서 제일 명당일 거야. 저기 저 갈매기 날아오르는 것 좀 봐? 난 서울 중부서 형사과장 하면서 말이야, 내 방 창문에는 맞은편 건물 벽만 보였다고. 그것도 여름에는 에어컨 실외기 뜨거운 바람 때문에 문을 제대로 열어 놓지도 못했는데, 여기는 얼마나 좋아!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도 그것대로 시원하다고. 아무 냄새도 안 나고 말이지.”

정우진 서장은 이 뜨거운 여름에도 찬 에어컨 바람이 싫다면서 늘 선풍기만 멀찌감치 틀어 놓고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지냈다.

자신은 자연풍이 좋다고 하는데 다들 할 말이 없었다.

어서 참모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서장님, 오늘도 특별한 일은 없으니까 다른 과장님들은 그만 내려가시고 저하고 독대 좀 하시죠?”

“뭐야? 이거 독대하자니까 겁나는데?”

김세민은 다른 과장들이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을 했다.

“오늘 경찰청 수사국 1계장 이선유 경정이 이리로 휴가 내려옵니다. 지금 울진에서 출발했으니까 아마 점심때쯤이면 영덕으로 들어올 건데 제가 고래불 해수욕장에 민박집은 잡아 놨습니다. 서장님은 저녁에 나오시죠. 민박집이 넓어서 거기서 고기 구워 먹으면 파도 소리 들어 가면서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그래? 이선유가 내려온다고? 이야, 이거 잘됐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말이야. 그럼 저녁까지 기다릴 거 뭐 있어. 지금부터 나가서 놀지.”

“그래도 서장님은 자리를 지키셔야지, 대낮부터 놀러 다닌다고 소문이 나면 되겠습니까? 영해 쪽이니까 퇴근하고 천천히 올라오든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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