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478화 (478/869)

제 478화

#478. 블러핑

“황 형사! 빨리 가서 호텔 지배인 김성식이 잡아 와요! 도망가면 안 돼!”

“알겠니더! 야! 가자!”

김세민이 김하명의 입에서 호텔 지배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바로 잡아 오라고 지시를 했다.

김성식은 멀리 도망가지도 않았다.

아직도 불에 그슬린 호텔 내부를 정리하는 인부들을 감독하고 있다가 황 형사가 다가가자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스스로 수갑을 찼다는 것이었다.

“야! 우리 숩게 숩게 가자? 니 누구 지시로 호텔에 불을 낸 거고? 김 의원이 시켰제?”

황 형사가 바로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자 김성식은 펄쩍 뛰었다.

“아이시더. 김 의원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기라예. 마, 지가 옆에서 지켜보이 의원님이 요새 돈에 쪼달리가 고생하시는 것 보이 내가 총대 메고 불이라도 확 싸질러야 보험금이라도 쪼매 나오문 호텔이라도 새로 지아 올리고 그랄 수 있지 않겠나 싶어 갖고 지 혼자서 그리한 기라예. 지는 이제 할 말 다 했시니까 맘대로 하시소.”

“야! 그럼 호텔 투숙객은 어떻게 된 기고? 너거들이 잘 대피시켰다 안 캤나? 근데 실제 그날 투숙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문서? X발 도대체 뭐가 맞는 기고?”

“예~ 맞니더. 지가 구라 쳤니더. 아무리 보험금 때문에 불을 낸다 캐도 사람이 다치문 안 된다 아잉교? 그래가 지가 그날은 아예 손님을 안 받았심니더.”

“밑에 나이트는 또 우예 된 기고? 단속도 다 경찰서 풍속반하고 짜고 친 기가?”

“아이시더. 짜고 친 거는 아이고예, 지가 마 아는 아들을 나이트에 와가 놀아라 카고 나서 밑에 아들 시키가 경찰서 상황실에다가 신고 전화를 했니더. 그라이 방범지도계에서 바로 나와가 단속하던데예?”

“그런데 니들이 단속했다는 그 학생들 말이야, 우리 형사들이 가서 확인해 보니까 아예 학교에 그런 애들이 없던데, 어떻게 된 거야?”

옆에 있던 김세민이 그 부분이 궁금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거는 지도 마 모리겠니더. 지가 학생들한테 가라로 인적 사항 불러 주라꼬 카기는 했는데 마 방범지도계에서 지대로 확인을 안 해 본 것 같심더. 지는 그 애들 옳은 이름도 몰라예. 고마 그날 죽도 시장에서 노는 아들 불러다가 용돈 좀 주고 시킨 것뿐이라예.”

짜 맞춘 진술 냄새가 솔솔 났다.

김세민은 그동안 지배인이 부인할 것에 대비해서 온갖 자료를 다 모았지만 본인이 전부 시인하고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누전 차단기도 미리 내렸지?”

“야~ 맞니더. 지가 다 했니더. 인자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하시소. 배도 째이소!”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쿵쿵쿵쿵]

밑에서부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언적 의원이 씩씩거리면서 들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김성식 지배인의 뺨을 갈기는 것이었다.

철썩!

“크억!”

“야 이 미친 새끼야, 뭘 지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석이 내 생각 해 준다꼬 호텔에 불을 내노, 내길? 인자 우째 수습을 할 끼고! 하! 이 자석 이거! 내가 마 돌아 삐겠네.”

“……적당히 하세요. 다 의원님 지시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김세민이 쇼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뭐라꼬? 당신 지금 뭐라 했노, 어? 뭐라 했냐고!”

김 의원이 소리를 뻑 질렀다.

이제 약점을 잡았으니 이걸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이미라 검사도 순간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한국말 모릅니까? 잘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죠. 우리는 지금 김 의원님이 이 모든 방화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상당한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표현은 우리 형법상 판례로 널리 인정되는 이론입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상의 불심검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가 있죠. 주위 상황을 파악하여 거동이 수상하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거나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혹은, 이미 행하여진 범죄 행위에 대하여 그 사실을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이라고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 의원님은 지금 이 방화 범죄에 대해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정이 되거나 혹은 범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했다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우리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합리적 의심입니다. 이걸로도 충분히 영장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뭐라꼬? 합리적 의심? 상당한 의심? X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라모 자네 말은 내가 다 시켜서 임마가 불을 냈다는 소리가? 증거가 있나? 있으모 내놔 봐라! 내놔 봐!”

김 의원이 배까지 내밀고서 김세민을 압박했다.

“너무 많아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뭐, 뭐라꼬?”

“우선에 시너를 구입해서 여기 지하 주차장에 넣은 것부터 시작해서 나이트에 위장 단속을 시킨 것 하며, 또 누전 차단기를 미리 내린 것도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고요, 투숙객 명부를 일부러 소각하여 투숙객이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것도 다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뭔데!”

빼박 증거라는 소리에 인제는 완전 풀이 죽어 버린 김 의원이 놀란 표정을 하고 이미라 검사를 쳐다보았다.

좀 도와 달라는 표정 같았는데 좀 전의 당황했던 표정과는 달리 이미라 검사도 이젠 좀 느긋해졌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예전에 법률지에 기고했던 칼럼을 인용해서 합리적 의심으로 밀어붙이는 김세민의 모습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자신도 기고문을 쓰고는 잊어버린 것을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적절하게 현장에서 꺼내어 인용을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 빼박 증거가 뭐요?”

이제는 김 의원이 더 애가 달아 말꼬리를 내리면서 의자에 앉아 옆에 있던 생수병을 따서 벌컥거리고 마셨다.

“김성식 지배인, 호텔에서 일한 지 몇 년 정도 됐습니까?”

김세민이 느닷없이 지배인 근무 이력을 물었다.

“올해로 만 15년이 되었니더. 처음에 객실 보조로 들어와가 지배인까지 의원님이 키워 주셨지예.”

“이 마이더스 호텔은 법인 명의죠?”

“당연한 걸 왜 묻소?”

“지금 김 지배인은 이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모든 일을 호텔의 업무와 관련해 이 법인의 대표자인 의원님의 지시에 따라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지배인은 이 호텔의 보험금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즉, 지배인의 행위는 전부 다 법인의 대표자인 의원님이나 이 호텔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법인의 대표자인 의원님의 지시를 받고 불을 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인 것입니다. 지배인이 자기가 15년 동안 몸 바쳐 일해 온 이 호텔에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불을 질렀겠습니까? 따라서 의원님이 부인을 하셔도 지배인의 방화 행위는 이 호텔 법인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인의 처벌에는 양벌 규정이란 게 있습니다. 법인에 속한 개인이 처벌받는 것 외에 법인이나 그 대표자도 같이 처벌을 받는다는 뜻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라 검사를 쳐다봤는데 고개를 좌, 우로 살짝 흔들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너무 나간 모양이구만.’

김세민은 이번에는 민법 규정을 들먹였다.

“민법에는 신의 성실의 원칙이란 게 있습니다.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이죠. 그 신뢰를 위반하면 절대 소송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즉, 이번 경우에 대입을 해 보면 상대 보험사는 이 호텔의 지배인이 스스로 불을 내서 보험 사기 범죄에 가담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법인 호텔의 지배인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하에 보험 갱신을 해 준 것이죠. 그런데 스스로 이 원칙을 저버렸으니 상당한 피해 배상은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한참을 멍하니 김세민을 지켜보던 김 의원이 정신을 차리더니 우물쭈물 대답을 했다.

“지금 내가 변호사도 없고 해서 솔직히 자네가 말하는 것이 뭔 소린지 하나도 모리겠시니까 인자 내가 뭘 해야 되는지 그것만 알아듣기 숩게 이바구해 보소! 내가 나중에 내 변호사하고 한번 의논해 보께.”

“제가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이 부장검사님도 그렇고요. 포북서장님이나 영덕서장님, 울진 본부장님, 그리고 김성수 의원까지 전화가 왔더라고요, 경북청장님도 부산청 1부장을 통해서 잘 봐달라고 얘기를 해 왔습니다. 현재로서는 지배인이 다 안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으니까 저희들이 여기서 더 추궁할 생각은 없습니다. 보험사와의 민사적인 문제는 저희들이 간섭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아 보이고요. 그러나 만약에 지배인이 구속되고 나서 재판정에서 의원님 지시를 받아서 불을 질렀다는 내용이 나오면 그때는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해야 합니다. 더 이상 추가 진술이 안 나오면 그동안에 저희들이 수사했던 모든 사안을 지배인이 다 자기가 했다고 시인했기 때문에 이걸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송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우……. 내사 마, 당신 하는 말이 너무 어려버서 무신 소린지 지금도 하나도 모리겠다. 그란데 내 한 가지만 묻자. 당신 영덕서 경비과장이라고 했제?”

“네. 그렇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경찰이란 작자들을 많이 만나 봤는데, 당신 같은 소리 나불대는 작자는 아직 한 번도 못 봤어, 당신 어데 고시 공부하다가 들어왔나?”

“아닙니다.”

“그럼 간부후보생?”

“……순경 출신입니다.”

“순경 출신이라꼬? 진짜로?”

“…….”

“하따야, 순경 출신이 이리 똑똑한 사람이 있단 말이가? 허 참!”

어이가 없는지 김 의원이 헛기침만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지배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 지배인! 마 사정이 이리됐시니까 우짜겠노? 시간이사 금세 또 지나간다 아이가? 내가 최대한 빨리 빼내 줄 테니까 쫌만 참고 있어라.”

“예 의원님, 지가 다 책임을 지겠니더. 아무 걱정 하지 마이소.”

“오냐, 니도 너거 X끼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다 보살피 줄 기다.”

보고 있자니 삼류 싸구려 신파극을 보는 것 같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김 의원을 배웅하고 들어온 이미라 검사가 김세민에게 눈을 흘겼다.

“왜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황 형사님, 김 지배인 데려가서 나머지 조서 받고 영장 치세요!”

“예, 알겠니더.”

황문조 형사가 지배인을 데리고 옆방으로 건너가자 이미라가 손을 들어 김세민의 등을 한 대 후려쳤다.

[짜악]

“아야, 왜 때려요?”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왜요, 이유나 좀 알고 맞읍시다.”

“아니, 무슨 그런 이상한 법 이론을 들이밀고 그래요?”

“뭐가요.”

“법인의 책임은 그야말로 민사책임인데 왜 법인의 대표자한테 책임이 있는 양 그런 식으로 말을 하냐구요.”

“어라, 듣고 보니 그러네…….”

“어휴, 이 자리에 상대 변호사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음, 톡톡히 망신당할 뻔했다고요.”

“뭐, 결과가 좋으면 됐죠 뭐.”

“하여간 무모하다니까!”

“안 그럼 저 영감을 굴복시킬 방법이나 있습니까? 마침 변호사가 옆에 없는 것을 보고 생각나는 대로 막 떠들었는데 그게 먹혀들어 가네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김 의원이 자기 변호사한테 가서 지금 한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방금 이 자리에서 듣고도 무슨 소린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이 어떻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옮깁니까? 너무 쫄지 말아요.”

“계급이 높아질수록 간이 콩알만 해진다더니, 이건 완전 배 밖에 나온 수준이야.”

이미라 검사가 졌다는 듯 혀를 내두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정애란 경감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푸훗!”

“하하하!”

* * *

호텔 지배인 김성식은 조사를 마치고 포항 북부서 유치장에 입감을 시키고 나서 형사 5반 직원들과 도경 감식반 직원들, 그리고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죽도 시장으로 회식을 하러 나왔다.

그때 김세민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죽도 시장 근처에 수많은 리어카 노점상들이 있었는데 전부 다 판매대 앞에다가 ‘해병 OO기’라는 조그만 팻말을 붙여 두고 있었다.

“저게 다 뭡니까?”

김세민이 남 경사한테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저거예? 저기 뭐라고 해야 되겄노. 마, 여기 포항은 해병 도시다 아잉교? 여는 저런 포장마차 하는 사람도 해병대 안 나오면 설 자리가 없는 기라예. 그라이 저리 다 써 붙여 놓는다 아입니꺼? 그라모 지나가던 선, 후배들이 보고 ‘아, 니는 몇 기구나!’ 이리 생각하고 물건도 많이 팔아 주고 다들 그리 묵고산다 아잉교?”

‘그러고 보니…….’

좌판에 생선 파는 아주머니들도 좌판 앞에다가 우리 아들이 해병 몇 기라고 다 써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정말 해병의 도시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자. 뭐 자실랑교?”

황 형사가 그렇게 물어 왔다.

“요즘은 뭐가 좋습니까?”

“마, 철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죽도 시장 왔시문 멸치회를 잡숴야지예. 그리고 여름이니까 삼치회하고 구이, 고래가 금복주 대감 한잔 쫙~ 하면 최고시더.”

일행들은 시장통 안에 30년 동안 한 곳에서만 장사를 했다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비릿한 생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창문을 통해서 보니 죽도 시장 끝에 자리한 부둣가에서 어선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거기서 횟감을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봉윤 서장이 포북으로 간다고 했을 때 왜 영덕의 수협에서 그리 전별금을 갖다 주러 왔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멸치회도 강구의 미주구리 회처럼 벌겋게 무쳐서 나왔다.

비릿하고 물컹거리긴 했지만 쌈 채소에 싸서 먹으니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사실 김세민은 미주구리도 그렇고 지금 먹는 멸치회도 그렇고 횟감이 물컹거리는 것은 별로였다.

그러나 방금 연탄불에 구워서 나온 삼치구이는 달랐다.

보기에도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것이 입에서 군침이 돌았고, 한 점 젓가락으로 먹어 보니 기가 막혔다.

이미라 검사도 먹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맛있는 모양이지요?”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도 대답도 않고 연신 젓가락을 바삐 놀리고 있었다.

모처럼 거하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다음 날, 호텔 방을 정리하고 다시 영덕으로 올라왔다.

휴가철이 피크를 이루면서 동해안 7번 국도가 완전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공사 구간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2개 차선도 길이 꽉 막혀 차가 더 이상 나가지를 못하였다.

남정까지 와서는 차는 지서에 놔두고 직원이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경찰서까지 태워다 주었다.

‘뭔 놈의 차가 이렇게나 밀려?’

툴툴거리면서 아침 참모 회의에 올라갔더니 다들 김세민을 보고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경비과장 왔소? 아따야! 인자 우리 살았네.”

“무슨 일 있습니까?”

“일단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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