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5화
#495. 기동 2중대장으로 발령받다
2층 계단에서 내려오는 입구에 서 있던 인사계 직원이 뛰어와서 소리를 질렀다.
“청장님 내려오십니다.”
“전체 차려잇!”
앞에 선 경정 계급의 서울에서 내려온 지휘자가 소리를 질렀다.
경정급이 앞에 서고 경감은 가운데에서 뒤쪽이었다.
이윽고 강방천 청장이 참모들을 대동하고 천천히 걸어 들어와서 참모들은 옆에 횡대로 벌려 서고 청장만 혼자 단상으로 올라갔다.
“임석상관에 대한 경례!”
사회자 마이크를 잡은 인사계장이 그렇게 말을 했다.
오늘 지휘를 맡은 중부서 경비과장이 뒤로 돌았다.
“청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충성!”
치안정감이라고 장성가를 세 번이나 울렸다.
청장이 천천히 손을 올리고 좌, 우로 고개를 돌려서 경례를 받은 후 천천히 무게를 잡고 손을 내렸다.
“바로!”
다시 중부서 경비과장이 뒤로 돌았다.
“그럼 지금부터 타 시도 전입 경정 및 경감에 대한 보직 신고가 있겠습니다. 보직 신고!”
“청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바로!”
“신고합니다. 전입 경정 이치호, 중부서 경비과장!”
“동! 염원제, 해운대 경비과장!”
…….
“전입 경감 김세민, 기동 2중대장!”
“동! 김순철 남부 방순대장!”
…….
“동! 김! 대! 휘! 해운대 방순대장!”
맨 마지막 신고자는 자기 이름을 한 자씩 끊어서 분명하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야 맨 앞에 서 있는 지휘자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 48명은 부서지 근무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청장님께 대하여 경롓!”
“충성!”
“음~ 부대 편히 쉬어.”
“부대 편히 쉬엇!”
지휘관의 명령을 복창한 지휘자가 다시 뒤돌아서 구령을 내렸다.
“전체 열중쉬엇! 쉬어 편히 쉬어 쉰 채로 청장님께 주목!”
“아, 먼저 이 자리에 모인 우리 경찰의 중견 간부들에게 몇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이 자리에는 서울에서 승진을 해서 내려온 사람들도 있고 또 작년에 타 시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간부들도 있습니다. 다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인데 가족이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단신으로 부임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견 간부들을 이렇게 승진을 빌미로 해서 타 시도 간 교류를 하는 것은 서로 간에 업무의 효율성도 높이고 또한 자신을 한번 되돌아볼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 매년 이렇게 교류 근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부산 경찰의 발전을 위해서 서울 경찰의 노하우를 많이 전수해 주시고, 또 타 시도에 나갔다가 연고지로 다시 돌아온 부산 경찰 간부들은 그동안의 공백을 빠른 시간 내에 메우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이상!”
“전체 차렷!”
“충성!”
“훈시 끝!”
♬ 무궁화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
고귀한 우리 겨레
살고 있는 곳 ♪
스피커에서 약하게 경찰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청장이 단상을 내려와서 맨 앞 경정들부터 차례로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중부 경비과장 경정 이치호!”
“음, 수고하게.”
…….
“악수를 마친 전열 일보 앞으로!”
인사계장의 말이 울렸다.
…….
“기동 2중대장 경감 김세민!”
“김세민?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가만있자, 내가 어디서 들었더라…….”
청장이 갑자기 악수를 하다 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맞아! 자네가 그럼 청장 부속실 조 경사의 사수인가?”
[웅성웅성]
[저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부산 시경의 그 많은 간부들을 앞에 두고 청장 입에서 사수 운운하는 말이 나오자 김세민도 적잖이 당황했다.
미리 조 경사가 사전에 전화해 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뭔 실수를 해도 했을 것인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곧 진정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과거에 서울 탄천 면허 시험장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 같이 근무한 적은 없고?”
“그렇습니다.”
“요새도 연락하나?”
‘아, 이거 X발 뭐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어제 발령 난 것 축하한다는 전화는 받았습니다.”
“그렇구만. 조 경사 그 친구 대단한 친구야.”
청장이 난데없이 조 경사 얘기를 꺼내자 옆에서 따라가던 제1부장인 길전수 경무관이 이렇게 물었다.
“청장님, 조 경사가 누굽니까?”
“아, 본청장님 부속실에 있는 수행 여경인데, 본청에 가면 말이야. 경정들은 아예 조 경사한테는 다들 꼼짝 못 한다고! 완전 밥이야 밥! 경정이 뭐야? 총경이나 경무관도 슬슬 눈치 봐야 해! 어찌나 영악한지 말이야, 나도 그놈의 울진 금강송이 때문에 아주 고문을 받았다고! 허허!”
“울진 금강송이가 뭡니까?”
청장의 옆에 서 있던 정보과장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그런 게 있어. 나중에 여기 2중대장한테 물어보라고. 이거 매일 오후만 되면 송이 굽는 냄새를 피워 대는데 이거는 고문이 그런 고문이 따로 없다고! 허허허! 아주 재밌는 친구야. 아무도 못 당한다고!”
청장 입에서 금강송이 얘기가 나오고 송이 굽는 냄새 때문에 고문을 받았다는 소리가 나오자 김세민은 이내 모든 상황이 다 짐작이 되었다.
‘조 경사 이 자식이 치안감이나 경무관들 골려 준다고 매일 냄새를 피웠구나! 하여튼 이 자식을 그냥……. 그보다 오늘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쪽을 다 팔았는데 이제 조 경사 사수라는 사실이 부산청에 다 소문이 났잖아? 이걸 그냥 확 팰 수도 없고……. 어휴!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신고가 끝나고 다들 오랜만에 타 시도에 갔다가 만나게 된 간부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환담을 하는데 김세민은 쪽팔리기 싫어서 옷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오니 젊은 경사 한 사람이 다가왔다.
“2중대장으로 발령 나신 김세민 경감님이시지예? 지는 2중대 행정계장 송일도 경사라예. 오늘 대장님 모시려고 왔심니다.”
그러면서 각 잡힌 거수경례를 하였다.
“아, 그래요? 잘되었네. 차가 있습니까? 내가 차를 안 가져왔는데.”
“예, 당연하지예. 대장님 지휘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김세민의 옷을 받아서 밖으로 안내를 해 나갔는데 행정계장이 나오는 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저기 안쪽에서 검은 지프차가 한 대 다가와서 김세민 앞에 정차를 하였다.
김세민이 기동 2중대장을 하면서 앞으로 타고 다닐 지휘 차였다.
검은색 지프차 위에는 경광등이 달려 있었고 유리는 검게 선팅을 해서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기동 2중대가 위치한 시경 제3별관은 용당 오거리에 있었다.
부산 문화회관을 지나 오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니까 4층짜리 회색 건물 두 동이 서 있었는데 오른쪽은 전투 경찰로 구성된 기동 5중대와 7중대였고, 왼쪽에 있는 건물을 밑의 2개 층은 기동 2중대가 사용을 하고 위의 2개 층은 남부서 방순대가 사용을 한다고 하였다.
‘아이고, 이제 김순철 경감하고 매일 보게 되겠구만…….’
차에서 내려 1층의 대장실로 가 보니까 소대장 세 사람이 서 있다가 각 잡힌 거수경례를 하였다.
소대장 세 사람은 전부 다 경찰대 출신이었다.
그것도 다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서 와 있다고 하였다.
결국 여기 기동 2중대에서 제대로 된 경찰관은 김세민과 행정계장, 그리고 경사급 각 소대 부관들과 경장 분대장들뿐인 셈이었다.
“자, 앉읍시다. 난 그동안에 지방청이나 해운대, 동래에서만 근무를 해서 이곳 남부서 관내는 또 처음이니까 서로 잘 협조해서 일합시다. 2중대는 특별하게 주어진 임무가 있습니까?”
김세민이 먼저 그렇게 물었다.
중대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었다.
“예, 2중대는 교통 중대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대장님은 지방청 교통과장실 소 참모 회의에 매일 참석을 하셔야 하는 거라예.”
“매일 지방청 교통과장실 소참에 들어가야 한다고?”
“예, 이제까지 그리해 왔심니다. 아침에 9시까지만 가시면 됩니다. 청장님실의 참모 회의가 9시는 되어야 끝이 나니까 거기서 회의 내용 듣고 안전계장이 우리 단속할 구간을 정해 줍니다.”
“무슨 단속을 하는데?”
“지들은 주로 주차 위반만 단속을 하는 거라예. 다른 단속은 의경이 할 수가 없고 지금 시내 간선 도로에 불법 주, 정차가 성행하니까 그걸 단속을 합니다.”
“그럼 의경들이 직접 스티커를 끊습니까?”
“아니 의경들이 직접 하지는 않고예, 의경들 데리고 다니는 분대장 경장들이 있지 않습니껴? 의경들은 고마 호루라기 불고 주차하는 차량들 내쫓고 하는 그 정도고, 도저히 못 봐줄 만큼 정도가 심하면 분대장들이 보고 현장에서 스티커를 발부하는데 실적을 그렇게 따지지 않으니까 하루 소대당 한 다섯 장 정도만 발부하면 안전계에서도 암말 안 하는 거라예.”
소대장 중에서 제일 경찰대 선임인 송 주임이 그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때 경비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기동 2중대장 김세민 경감입니다.”
-아, 김 대장! 이거 반갑소! 나 시설계장 배 경감이요.
“아, 네. 계장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제가 자주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허허! 그거는 되었고 오늘 신고 끝나고 교통과장 방에 따로 와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아마 우리 김 대장이 2중대가 교통 중대인 줄 몰라서 그냥 간 것 같다고 내가 말은 그렇게 해 놨시니까, 내일은 늦지 말고 지방청 교통과장실로 들어오소. 일요일 빼고 매일 들어와야 할 거요. 우리 교통과 서무주임도 했시니까 잘 알 거 아이요? 그럼 내일 봅시다!
“네. 오늘은 제가 잘 몰라서 실례를 했습니다. 제가 서무주임 할 때는 교통 중대라는 개념이 없어서…….”
-괜찮소! 내일 낮에 점심이나 과장님 모시고 하입시다. 밥은 내가 살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참석만 해서 우리 과장님한테 아부나 좀 하모 되는 기라. 나도 우리 2중대장 덕에 시설계장 하면서 잘 지낸다 아이요? 그라이 인자 은혜는 갚아야지. 안 글소?
직원들하고 대충 인사를 마친 후에 김세민은 1소대장을 데리고 청사 순시를 하였다.
자체적으로 식당도 있고 취사장도 있었으며 내무반도 한 침상을 분대 전체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법 널찍하니 괜찮아 보였다.
옆에 서 있던 행정계장이 이렇게 말을 했다.
“방순대는 경찰서 경리계에서 예산 집행을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지만 우리는 파출소처럼 도급경비를 받아서 집행하기 때문에 훨씬 여유가 있심니다.”
곧 그 말은 예산에서 빼먹을 소지가 많다는 뜻으로 들렸다.
‘맞아, 김순철도 어제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 * *
“에이 X발, 방순대가 아니고 내가 기동 5중대를 가야 하는데 말이라, 햇또를 잘못 굴맀다 아이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김순철이 대뜸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기동대보다 방순대가 더 편하다고 해서 나이 든 사람들은 방순대로 배치를 한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거는 맞는데 기동대는 예산을 중대장이 단독으로 집행한다꼬 안 그라나? 그라이 월말 되문 행정계장이 예산 따와이해서 매달 한 50만 원은 중대장 쓰라고 판공비로 준다고 카더라. 방순대는 얄짤없이 서장이 다 닦아 묵고 말이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꼬 카디만 내가 그거는 와 몰랐실꼬?”
“참 나, 인제 경감까지 달았는데 아직도 따와이 타령입니까?”
“허! 당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여기 부산에 서장들치고 돈 안 밝히는 놈이 누가 있더노? 다들 밑에 놈 촛대 뼈 골아 갖고 하나라도 더 빼묵을라꼬 눈을 시뻘겋게 해가 쳐다본다 아이가? 당신은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고마 행정계장이 월말에 봉투 하나 갖다 주면 모린 체하고 받아가 챙기라. 당신이 안 받아 봤자 그거 다 행정계장 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기라.”
* * *
사무실로 돌아온 김세민이 행정계장을 찾았다.
“행정계장!”
“예!”
“여기 다른 소대장들도 다 있으니까 내가 분명히 얘기합니다. 난 절대 애들 식비 예산 가지고 개인적으로 행정계장한테 용돈 받아 쓸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까 예산 집행은 철저하게 제대로 하시고 매달 집행 내역은 대원들이 다 볼 수가 있도록 부대 들어오는 현관 옆 게시판에다가 붙이도록 하세요. 그리고 대원들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외박을 나갈 테니 그 식비는 좀 아껴 놨다가 직원들 회식이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고, 나도 과거에 방순대 행정계장을 해 봤으니까 대충은 다 압니다.”
“예. 안 그래도 대장님 소문은 지들이 많이 들었심니다. 절대 따와이는 안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뭐? 따와이?”
“하하하! 허허허!”
다들 그렇게 웃으면서 정리를 했다.
이제 경찰대학을 나온 초임 경위들과 따와이 얘기를 하게 되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젊은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지금 김세민의 모습을 보고 알게 모르게 배우고 따라 하게 될 것인데 순경 출신 간부지만 그렇게 부패하지 않은 간부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기동대 직원들을 데리고 나팔꽃으로 갔다.
“어머! 이게 누구야?”
“오랜만.”
“오셨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안 그래도 궁금해서 전화라도 해 볼까 했는데……. 옆에 분들은? 이제 같이 근무하실 분들인가 봐요?”
“그래. 오늘은 내가 신고를 해야 하는 날이니까 맛있는 걸로 부탁해.”
“맡겨 둬요. 자 자, 어서 앉으세요, 이쪽으로.”
저녁만 간단하게 먹고 새로 이사를 한 신도시 장산 아파트를 찾아서 올라갔다.
늦은 저녁인데도 새로 들어오는 이삿짐 차량이 워낙 많아 분주한 느낌이었다.
‘도로 정비도 아직 덜 된 것 같고……. 제 모습을 갖추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는걸?’
신도시가 워낙 커서 김세민은 아직 길이 헷갈리고 있었는데 운전하는 윤종수 상경은 꽤 능숙하게 길을 잡아 갔다.
“이봐 윤 상경.”
“예.”
“이 동네 지리가 빠삭한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희 집도 이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 그랬어? 부산이 고향인 모양이지?”
“네. 이곳에서 대학까지 다니다가 왔습니다.”
“그렇구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덧 아파트 입구에 차가 멈춰 섰다.
“내일 보자. 안전 운전하고.”
“옙! 대장님 충성! 편히 쉬십시오!”
[딩-동]
[누구세요?]
“나야.”
연희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문을 열었다.
“오빠! 밥 먹고 온다더니, 일찍 왔네?”
“아, 좀 피곤해서. 연우는?”
“부엌에. 밖에서 먹는 게 좀 변변찮을 것 같아서 우리가 뭐 좀 만들고 있었거든.”
“그래? 맛있는 냄새가 나긴 나는데?”
“빨리, 손 씻고 와서 앉아요.”
* * *
모두 잠든 새벽.
정적을 깨는 요란한 전화 소리가 울렸다.
“으음……. 누구야……. ……네.”
-아, 대장님, 2소대장입니다.
“……아, 2소대장. 오늘 당직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출동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출동? 갑자기?”
-지금 바로 나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딘데?”
-인천으로 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