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3화
#523. 함월산 송이
수차례의 협상이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처음에 내걸었던 환경 보전을 위한 핵 폐기장 설치 반대 얘기는 이제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다들 인구 숫자대로 돈을 나누느냐, 아님 가구수대로 나누느냐, 그리고 신청일 이후에 전입한 세대는 무효이다는 등의 논점만 부각이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언론에서도 차츰 다루는 빈도수가 줄어들었고, 환경 단체는 다시 꺼지고 있는 투쟁 동력을 살리기 위해 물밑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했다.
논의 끝에 이번에는 원전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할 게 아니라 경주 시내 한복판에서 시위를 대규모로 해야 한다는 자체 결정이 났다.
장소는 경주역이었다.
일단 결정이 나자 경주를 향하여 전국의 한가락 하는 시위꾼들이 다 모여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스님 복장과 알 수 없는 토착 종교 복장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경주에 때아닌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 *
5중대장 이인철 경감은 매일 양남 지서 앞 바윗가에 앉아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아무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세민도 지서 앞에 세워 둔 자신의 지휘 지프차에 앉아 경제학 원론을 읽으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 읽는 중인데도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6개 중대 모두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 양남 지서 손 순경이 김세민의 지프로 와서 차창을 두드렸다.
“대장님, 빨리 전화받아 보시소. 서울 경찰청장 부속실이라고 캅니더.”
“아, 고마워요. 네. 2중대장입니다.”
-어라? 관등성명은?
“……장난하냐?”
-어허, 김세민 경감! 지금 누구한테 함부로 반말을!
“……뒤질래?”
-티 났어요?
“청장 부속실에서 너 말고 나한테 전화할 사람이 있겠냐? 쓸데없이 전화한 거면 끊는다.”
-아유, 성격도 급하셔라! 그리고 바쁜 척은? 인제 데모도 없잖아요?
“있어, 바쁜 일이.”
-헤에, 우리 사수님한테 내가 모르는 바쁜 일이 있을 리가?
“그게 아니고, 공부해야 돼. 기동대 있을 때 경제학 정도는 어느 정도 다져놓고 나가고 싶어서 말이지.”
-흐응…….
“반응이 왜 그래?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놈이 경제학 강의 한 번 안 듣고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니 막막해서 그런다. 왜? 뭔 일이야?”
-아, 그게 청장님이 어제 사수님 월성 원전 앞에서 데모 막는 것 보시고 표창 주라고 하셨거든요.
“그래?”
-두 명까지니까 사수님 말고 또 한 사람 더 불러 주세요. 저 안 시켜도 잘하죠?
“난 됐고, 우리 부관 하나 주자. 부산에서 올라온 6개 중대 중에 기동대하고 방순대하고 해서 다 같이 3개 중대가 왔는데 나만 받기는 그렇잖아? 그리고 난 지난번에도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넣어 줘.”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청장님이 사수님 주라고 콕 찍어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넣어요? 일단 제가 상훈계장한테 가서 한 장 더 내놓으라고 얘기는 해 볼 테니까 빨리 한 사람 추천해 주세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어떤?
“청장 표창 넉 장으로 하자. 그래야 기동대 두 장, 방순대 두 장 이렇게 사이좋게 나누지. 안 그럼 표창 가지고 서로 맘 상한단 말이야. 아 참, 토함산 송이는 제대로 갔어?”
-맞다, 안 그래도 그 말도 하려고 했는데! 저번에 울진 금강송이 맛있게 먹었잖아요? 근데 울진에 사람도 다 바뀌었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수님이 딱 보낸 거예요, 송이를! 어제 청장님 구워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세요. 여기 치안감님들도 냄새 맡고 계속 부속실에 기웃거리시네요. 좀 더 보내 주시면 안 돼요?
“음……. 한번 구해 볼게. 그리고 아까 말한 거, 잊지 말고.”
-걱정 마시고 표창 받을 사람 이름이나 불러 주세요.
“근데 말이야, 처음부터 되는 거였으면서 왜 어깃장을 놓고 그래? 너도 송이에 넘어간 거냐?”
-글쎄요? 근데 맛은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래, 아무튼 보이는 족족 보내 줄 테니까 배 터지도록 한번 먹어 봐.”
전화를 끊고 바로 양남 시장으로 나갔더니 마침 5일장이 서 있었다.
제법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니 몇몇 아주머니들이 절에서 입는 회색 절 바지를 입고는 송이를 앞에 놓고서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 이거 토함산 송이입니까?”
“아이구! 우리 처사님이 토함산 송이를 다 아시네. 맞니더. 이기 토함산 송이라예. 그라고 이거는 함월산 송이.”
“함월산 송이도 유명한 모양이지요?”
“함월산에는 유명한 기림사 절이 있다 아잉교? 그 절이 신라 문무대왕 노제를 지낸 절이시더. 그라고 부처님 진신 사리도 모셔져 있다 아잉교? 그래 갖고 저기 동해 바다에 떠 있는 대왕암에 태양이 솟아오르면 맨 처음에 토함산 석굴암 대불에 먼저 태양이 비치고, 그다음에는 함월산 골굴암 부처님 얼굴에 태양이 비치는 거라예. 그라고 맨 마지막에 기림사 대적광전에 있는 창문에 태양이 들어온다 아입니껴? 통도사 가 보셨지예?”
“양산에 있는 통도사 말입니까?”
김세민이 얼핏 들은 얘기 같아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맞니더. 통도사도 부처님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시니까 법당에 부처님이 안 모셔져 있고 고마 사리를 모신 부도 탑을 향해서 창문만 나 있다 아잉교? 기림사도 마찬가지라예. 기림사 대적광전에 나 있는 열린 창문을 통해서 향불이 산으로 빠져나가고 그 향불을 맡으면서 자란 송이가 바로 이 함월산 송이시더. 이기 다 부처님 가피(加被)를 입고 자란 송이라서 자시면 복이 절로 굴러들어 오니더.”
‘말은 청산유수네……. 구라는 아니겠지?’
일순 의혹이 일었으나 따지고 들기 귀찮아서 그냥 전부 사기로 했다.
“이거 다 주세요.”
그러자 아주머니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구~ 오늘 처사님 진짜로 복 받으신 거시더. 성불하시소!”
“…….”
* * *
경찰청장 부속실.
아침 참모 회의 시간이 되기도 전에 각 치안감 국장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 모여든 것은 아침부터 조연희가 또 송이를 굽는다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냄새를 피워 댔기 때문이었다.
“아휴우! 조 승지 저거 때문에 사람 미치겠네!”
“X발! 아침부터 저리 송이 굽는 냄새를 피워 대면 우리는 뭐 어쩌라는 거야?”
각 국장 부속실에서도 난리가 난 건 마찬가지였다.
집무실 안에 있던 국장들도 더 이상 냄새를 참지 못하여 하나둘씩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야! 이거 또 조 승지 저 자식이 송이 굽는다고 아침부터 냄새 피우는 거야?”
정보국장인 남강오 치안감이 웃으면서 맨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국장님,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요?”
정보국장실 여직원인 정민희가 생글거리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할 수 없지, 뭐. 저렇게 냄새를 피워 대는데 염치 불구하고 좀 얻어먹어야지. 별수 있어? 하여튼 김세민이 이 자식은 말이야, 하필이면 저런 여우 같은 것을 부사수라고, 재주는 좋은 놈이야. 키키키!”
남강오 정보국장이 부속실로 들어서자 이미 수사국장인 원종길 치안감이 송이를 얻어먹고 있었다.
“아니 선배님? 아직 참모 회의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수사국장인 원 국장은 남강오 국장의 후보생 1년 선배였다.
“허! 이거 아침부터 우리 조 대감이 이리 냄새를 피워 대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자 자, 오늘은 저기 안에 있어도 준대. 이게 경주 함월산 송이버섯이래. 청장님은 토함산 송이버섯을 자시고 우리는 함월산 송이래.”
“야! 조 승지!”
“네?”
“너 송이 가지고도 사람 차별하는 거야? 토함산과 함월산 송이 차이가 뭔데?”
“토함산 송이는 석굴암 부처님이 직접 가피를 내려 주셔서 자란 것이고요, 아주 귀하답니다. 그리고 함월산은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대적광전에서 흘러나온 향불로 자란 송이랍니다. 둘 다 복은 받으신답니다.”
“캬! 이거 그러니까 이 송이 한 점 먹으면 부처님 가피를 받는단 그 말이지? 쥑인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들어오는 사람은 도민제 경무국장이었다.
도민제 국장은 유일하게 전국에서 순경 출신 치안감이었지만 아쉽게도 나이가 많아 연말이 정년이었다.
그래도 다들 순경으로 들어와서 치안감까지 올라왔다고 대단해했지만 따지고 보면 경무국장은 간부 후보생 출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경으로 들어와서 경장을 달자마자 다시 공부해서 후보생 시험에 합격하여 1년 교육을 받고 경위를 달았으니 후보생 출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국장님, 이거 잡수세요.”
조연희가 경무국장한테는 따로 접시에 담은 송이를 내밀었다.
“응? 나만 특별 서비스인데? 이거 뭐 또 부탁할 게 있어 그러지?”
“청장님이 양남에 가 있는 부산 중대가 어제 진압을 잘했다고 표창을 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나중에 상훈계에서 올라가면 빨리 결재해 주세요. 많이 잡숫고 팔에 힘이 있을 때 [샤샥] 하고 사인 한번 멋지게 해 주시면 좋구요.”
그렇게 말하면서 조연희가 경무국장의 얼굴 앞에다 자신의 웃는 얼굴을 바짝 들이대었다.
“하여튼 요거 조 승지, 넌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이리 냄새 피워 대는 것은 날 불러내서 니 사수인가 하는 놈한테 표창장 빨리 내려보내 달라고 지금 아부하는 거구나?”
“후훗.”
“에이구! 난 등X이네. 젊을 때 술 빨고 돌아다니지 말고 이런 부사수 하나 키워 놨으면 나도 저 토함산 송이를 한번 먹어 봤을 텐데 말이지. 아쉽네, 아쉬워.”
경무국장이 장탄식을 했다.
그때 청장 집무실 안쪽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아니 이봐! 아직 시간도 안 되었는데 뭐 하러 일찍 와서 시끄럽게 난리야!”
옥민식 청장이 부속실 바깥이 떠들썩하니까 뭔 일인가 싶어서 나와 본 모양이었다.
“하! 청장님, 이게 아침부터 조 승지가 이리 냄새를 피워 대니까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오늘은 냄새 따라서 모이다 보니까 자연히 일찍 모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은 좀 일찍 참모 회의 하시죠?”
정보국장이 미안해서인지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그러지 뭐! 다들 들어와!”
그렇게 미리 모인 치안감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조연희는 놀라서 아직 안 온 치안감들을 세어 보았다.
그러고는 경비국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네. 경비국장실 강연수입니다.
“연수야! 부속실 조 언니인데 지금 국장님 빨리 참모 회의 들어오시라고 전해. 오늘 좀 일찍 시작했어.”
-네, 언니!
잠시 후 경주 핵 폐기장 반대 시위 상황을 챙겨서 참모 회의 준비를 하던 도민제 경비국장이 지금 참모 회의를 한다는 말에 기겁을 하고 뛰어왔다.
도민제 국장은 이제 치안감으로 승진해서 아직 경찰청 국장급에서는 막내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용국 마피아였다.
“왜 이래? 왜 이렇게 참모 회의를 10분이나 일찍 시작하는 거야? X발 인제는 조 승지가 참모 회의 시간도 결정하는 거야?”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경비국장이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갔다.
바쁜 사람한테 일일이 변명하고 대꾸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어서 조연희는 일어나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그냥 웃어 주었다.
속으로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 같은 용국 마피아쯤이야 한 방에 보내 버릴 수도 있어! 괜히 계급 높다고 너무 폼 잡지 말라고.’
참모 회의는 다른 일상 업무 보고는 다 생략을 한 채 먼저 정보국장이 보고를 했다.
“청장님, 내일 핵 폐기장 반대 시위대들이 경주역 광장에서 대대적으로 마지막 시위를 한다고 합니다. 대략 해서 한 2만 명 정도 몰릴 것으로 예상이 되고요. 우리는 이미 지원 나가 있는 기동대 병력을 총동원할 예정입니다. 오늘 청와대 산업 비서관하고 산자부 국장이 나가서 경주에서 대책 회의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 그 친구들 요구 사항이 뭐야? 반대하면 계속 반대만 하면 되지, 무슨 자꾸 요구 사항이 있다면서?”
이번에는 청장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예, 그게 웃기는 것이 지금 전국에서 한 60여 개의 시위 단체가 모였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양남하고 양북 주민들이 보상금을 공평하게 나눈다면 자기네들은 다 철수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답니다. 근데 양남에서는 양북에 지금 정체불명의 외지인들 수천 명이 전입신고를 하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렇게는 돈을 나누지 못하겠다, 이렇게 갈라서 있는 실정입니다.”
“결국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을 시위대 저놈들이 돈을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사태를 이렇게 키운 것이구먼. 그래, 이제 경비에서는 어쩔 건데?”
청장이 경비 대책을 묻자 도민제 경비국장이 보고를 했다.
“지금 우리가 지원해 준 기동대 병력이 총 15개 중대로 이천 명 정도 됩니다. 그걸로는 혹시 부족하거나 만약에 벌어질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광주하고 대전에서 10개 중대를 더 지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총지휘는 경주 경찰서장이 직접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럼 원천 봉쇄인가? 시가지 행진은 어떻게 막을 거야?”
“원천 봉쇄를 하게 되면 오히려 충돌의 위험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시내를 한번 돌아다니게 하고 그다음에 해산하지 않으면 작전해서 해산시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경비국장이 원천 봉쇄는 어렵다는 말을 했다.
“그 뭐야, 광주에서 지원받는다고 했나?”
청장이 그렇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말이야, 광주는 자칫하면 경상도하고 지역감정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광주 기동대는 경주 T.G 근처에서 대기만 하다가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되면 투입하기로 하고 시내에는 투입시키지 말도록. 괜히 자극시킬 필요는 없단 말이지.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으면 영, 호남 간에는 서로 병력을 보내지 말라고. 서울에 지금 상황이 없잖아? 서울 중대를 보내면 된다고.”
청장이 영, 호남 감정이 이번 시위에 악용이 되면 안 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이게 토함산에서 딴 송이라고? 난 어제도 먹어 봤는데 말이야. 작년에 먹었던 울진 송이하고는 또 다른 깊은 맛이 있더라고. 이게 조 경사 얘기 들으니까 부처님이 중생한테 베푸는 가피라고 하던데, 허 참, 경찰 일 하면서 별 걸 다 먹어 보네? 그래도 김세민이 그 친구는 대단해. 청장실에 참모 회의 때 맛보라고 송이를 해마다 보내 주고 말이야. 전국 경감 중에서 어느 누가 그러겠어? 다들 차출 보낸다고 욕만 끓어 부을 텐데 말이지.”
옥민식 청장이 약간 아쉬운 듯이 그렇게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