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졸순경이 경찰청장 되기-526화 (526/869)

제 526화

#526. 흐르는 강물처럼

다음 날.

경주역 광장에서 열린 핵 폐기장 반대 경주시민 총궐기대회는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한풀 꺾인 채로 진행되었다.

새로 연합회장이 된 김고랑, 그리고 연합회 고문과 청년 조직을 맡아 전위대를 이끌던 최무는 쪽이 팔렸는지 둘 다 행사장에는 나오지도 않았고 대신 노조의 전위대장이었던 김휴정과 한송이가 행사를 이끌었다.

또한 예정되어 있었던 경주 시내 행진도 반대 성명서 낭독으로 대체하였는데 핵 폐기장의 무기 연기라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고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았고, 투쟁 동력을 상실한 반대 시위는 맥없이 막을 내렸다.

이는 양북 주민들이 핵 폐기장 설치를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을 한 지 보름 만이었다.

경주역 광장 한편에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던 김세민의 옆으로 이인철 경감이 다가왔다.

“인제 한번 맛을 들였으니 앞으로 툭하면 튀어나와서 반대 시위부터 하려고 덤벼들 텐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게 말이야. 저놈들 하는 걸 보면 누가 힘들여서 일하려고 하겠냐. 무작정 떼거리로 모여서 떼를 쓰면 예사로 세금을 빼먹을 수가 있는데 말이야.”

“다 정치인들 잘못이죠, 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냐, 신경은 무슨. 그나저나 어제 또 한바탕한 것 땜에 별말 안 나왔으면 좋겠구만…….”

“아, 하하…….”

김세민은 지난번처럼 부산청 경비과장한테 욕먹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딱 아파 왔다.

행사가 끝나자 바로 부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거 100에서 행사에 종원(동원)된 종모(모든) 물넷장(지휘관)에게 일방 종여섯(일방 지시)! 재고 날 때 산해(현재 시간 해산)하고 각 중방장(중대장)들은 110 미 하나(경주 경찰서장)께서 솔둘(용무)이 종다(있다) 하니 110 미인집(경찰서) 미 하나 사실(사무실)로 주십일(빨리)로 내집 종열(모이도록). 조독(확인)은 생략!”

“그럼 오늘 부산 내려가나?”

경찰대 출신인 해운대 방순대장인 김대휘 경감이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왜? 빨리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마누라 얼굴 보고 싶은 모양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이인철 경감이 한마디를 실실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에이~ 형님도 참! 제가 뭐 어린앱니까? 그래도 집이 좋긴 좋지요.”

김대휘 경감은 아직 신혼이었는데, 먼저 결혼한 이인철의 아내가 자신의 대학 후배를 김대휘에게 소개시켰고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다.

당시 김대휘는 이인철 경감하고 같이 서울 101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신부가 부산 출신이었던 까닭에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에 내려와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101 특별 경호대에서 같이 소대장으로 근무하기는 했지만, 군대 그리고 4년제 대학을 다니다 1년 후보생 교육을 받고 임관된 이인철 경감이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았기 때문에 김대휘는 이인철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

“자, 가 보자고.”

“네, 형님.”

이제는 둘 다 김세민을 보고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김세민은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포북에서 형사계장하고 수사과장한테 무슨 조폭들 사무실 같다고 쫑코를 주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조폭들처럼 형님, 동생 하고 지내고 있잖아? 그렇다고 딱히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지. 에라이 모르겠다. 세상이 다 형님 동생 하면 나도 그렇게 사는 거지 뭐, 별거 있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주 경찰서로 들어갔다.

경찰서 정문 건너편 길가에 주차를 하고 내려서 건물을 쳐다보니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지붕이 좀 특이했다.

‘경찰서 건물에 기와지붕이라고?’

전국의 경찰서 중에서 일급지 경찰서는 다 설계도가 같다고 들었는데 이곳만 관광지라서 그런지 별도로 설계를 한 것 같았다.

경주 경찰서도 일급지이니 서울 강남의 경찰서와 똑같아야 하는데 여기는 일자형의 맞배지붕 형태의 기와집이었고 그 뒤와 옆에는 별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굉장히 좁아서 제대로 서정이나 있나 싶었는데 건물을 돌아가니 넓은 운동장 같은 서정이 나왔다.

후문도 넓어서 버스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걸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세민은 서장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경주 자체가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2층에 서서도 경주 시내 낮은 기와집들의 모습을 한눈에 다 볼 수가 있었다.

간밤에 비가 내렸다가 이제 한낮이 되어 햇볕에 기온이 올라가니 물기에 젖은 기와지붕에서 아지랑이같이 물기가 증발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기와 자체가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 자, 중대장님들! 빨리 들어오세요!”

경무과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깨에는 경정 계급이 붙어 있었다.

경찰서장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중대장들 손을 일일이 다 잡아 주었다.

“아, 수고 많았어요. 수고했어. 어! 자네는 부산 중대장이지? 야! 어제저녁에 내 여기서 다 봤는데 말이라. 캬! 내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고.”

“감사합니다.”

“금마들이 말로는 무신 환경 단체라꼬 카지만 우리끼리 하는 말로 다 건달들 아이가? 내 말 맞제?”

서장이 안쪽에 서 있는 과장들한테 자신의 말이 맞는지 동의를 구했다.

“맞니더. 어제 여기 부산 중대장한테 작살 난 놈들이 전민연이나 전가모 회장을 하던 놈이시더. 완전 건달 중의 상건달이지예.”

정보과장인지 사복을 입은,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과장이 그렇게 웃으면서 말을 해 주었다.

“자, 이번에 중대장들 고생은 했는데 말이라, 아무 성과가 없다 아이가. 환경 단체 점마들은 저거가 승리했다고 X랄들 떠는데 저거도 떨떠름한 기라, 원래 계획대로 하면 저거들이 마지못해서 동의한 것처럼 하면서 원전에서 양북 마을에 맡긴 돈을 찾아서 갈라 묵어야 하는데 돈은 손도 못 댔거든? 그라이 점마들이 언제라도 틈만 보이면 또 달라들 기라 이 말이지 내 말은. 덕분에 월성 원전만 이번에 X 됐지.”

서장의 말이 길어지니 정보과장이 탁자 위에 놓인 대봉투를 들어서 서장한테 주었다.

“서장님, 다들 돌아가기 바쁠 텐데 이거 먼저 주입시더.”

“아 참, 맞다. 줄 기 있시문 그거부터 줘야 하는데 말이라. 내가 정신이 없다. 자, 이거는 원전에서 주는 기라. 각 중대당 백만 원씩이다. 내가 따와이한 거는 아이고 원전에서 그 뭐고, 며칠 전에 핵연료 수송할 때 그때도 부산 중대가 잘 막아 줬다문서? 원전에서도 감탄을 했다고 카더라. 혹시나 싶어서 완전무장한 해병 수색대 연대 병력까지 동원해 놨다고 그라더라. 표창은 중대장은 지방청장 표창이 돌아가 있시문 체송 편에 다 전달이 될 기고 나머지 우리 직원들 표창은 내가 다 경찰서장 표창으로 어제 밤새 경무계 직원들이 다 만들었다. 하나씩 갖고 가서 직원들한테도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전해 주소! 다들 멀리서 우리 경주서 일 때문에 와서 고생들 했는데 밥도 제대로 한 끼 대접 못 하고 이리 보내서 내가 참말로 섭섭하요. 자, 손이나 한번 잡아 봅시다.”

그러면서 일일이 악수를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래도 일급지 경찰서장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네…….’

경찰서장실을 나오니 경무계장이 와서 중대 버스는 전부 다 경찰서 뒷길에 세워 두었으니 후문으로 나가라고 말을 해 주었다.

커다란 후문의 철제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후문에서 마주 보이는 흰색의 4층 건물 두 동 중에서 오른쪽 경찰서 가까운 건물이 경주 지청이고 그 옆이 경주 지원이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서 후문에서 지청 옆에 나 있는 쪽문을 보니 어느새 이미라 검사가 나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전화도 안 되고 답답해서 원……. 그나저나 활약이 대단하던데, 다친 데는 없어요?”

“응? 그걸 다 봤습니까?”

“이 좁은 동네서 그 난리를 쳤는데 소문이 안 났을 것 같아요? 우리 지청장님도 다 보셨어요. 서울에 이문호 중수 1과장한테 보고도 하시던데요?”

김세민은 이문호 검사가 중수 1과장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문호 차장님이 언제 중수 1과로 옮겼습니까?”

“얼마 안 됐어요.”

“그렇군요, 중수 1과라면…….”

“정권의 부패를 향해 칼을 겨누는 곳이죠. 결과에 따라서 수직 출세를 할 수도 있고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자리라고나 할까요.”

“겁나는 동네네요.”

“뭐, 어디나 다 그렇죠. 지금 출발하시는 건가요?”

“네,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부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배웅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보시다시피 경찰서와 지청이 딱 붙어 있으니 다들 가족처럼 잘 지내는 편이죠. 경찰서 소식도 금세 듣는 편이고요. 그럼 조심히 내려가세요, 전화 드릴게요.”

* * *

근 보름 만에 다시 돌아온 용당 기동 2중대장실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집에 왔다는 느낌에 한결 마음이 푸근해졌다.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교통과장실 소 참모 회의에 참석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교통과 간부들을 향해서 김세민은 거수경례를 했다.

“와따야! 이거 2중대장 아이요? 참말로 오랜만에 보네. 그래 활약이 대단했다문시로?”

그래도 전임 교통계장인 시설계장 배환섭 경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활약이랄 게 뭐 있습니까? 남들 다 하는 것만큼 하는 거죠.”

“아니요, 지금 이게 전국에 다 소문이 퍼졌어요. 2중대장이 데모 주동자를 다 혼자서 때려잡았다고 말이죠. 어제는 본청장이 우리 부산청장한테 전화도 해 오고 했답니다. 귀대하면 격려라도 잘해 주라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 계장들끼리도 의논을 했는데 이거는 인제 추석도 다 되고 했시니 마 조금 앞당겨서 명절 인사 하는 셈 치고 우리 계장들 성의를 모았시니 받으이소. 고생했는데 직원들하고 식사라도 하이소.”

그러면서 제법 두툼한 봉투를 하나 꺼내어 주었다.

아마도 시설계장이 총대를 메고 각 계장들이 조금씩 갹출해서 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교통과라서 이런 여유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어! 2중대장 들어왔네?”

"아, 교통과장님."

참모 회의를 마치고 교통과장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앉아서 기다리던 계장들이 전원 일어섰다.

“아아, 앉아 있어. 그리고 자, 이거 받고!”

“이게 뭡니까?”

“이건 청장님이 격려금으로 주시는 거. 경비과장이 오늘 출동 부대를 다니면서 격려하게 되어 있는데 2중대는 매일 청에 들어오니 경비과장이 2중대까지 가기 싫다고 나한테 2중대와 5중대 몫을 같이 주더라고. 그러니 돌아가서 5중대장한테도 건네주도록. 우리 2중대장이나 5중대장이 경비과장한테 단단히 찍혔나 보다. 이거 우짜노? 허허허!”

교통과장이 웃긴다고 껄껄거리고 다른 계장들도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사람이 나잇살이나 묵어 갖고 말이지, 한창 젊은 우리 2중대장 앞에서 맨날 거기 뭐 하는 짓거리라예? 자기 직속 부하인데 잘하면 이뻐해 줘도 모자랄 판에 맨날 짜증이나 내고 참 피곤한 사람이네.”

남부 면허장장이 그래도 김세민의 편을 들어 주었다.

“자자자, 다른 사람 얘기는 할 거 없고 청장님도 충돌 부대는 푹 쉬라고 했시니 2중대도 추석 끝날 때까지는 푹 쉬라고.”

“아니 주간 교통 근무는 안 해도 됩니까?”

“아, 그거는 말이야. 안 해도 된다고. 추석 끝나면 바로 단체장 선거도 있고 또 추석 밑에 주차 위반 스티커 끊으면 서로 싸움밖에는 안 난다고, 사람들이 다들 차를 끌고 나와서 시장도 보고 해야 하니 우리는 이때 좀 쉬자고, 애들 외박도 좀 보내 주고 말이야. 추석 끝나고 나서 교통 단속 하든가 하면 되지.”

안전계장의 말에 김세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어, 그간 너무 조였으니 좀 풀어줄 때도 되었지.'

교통과를 나온 김세민은 그래도 자신이 청에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경비과장한테 인사도 안 하고 나가면 또 괘씸죄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이나 잠깐 비추고 돌아가기로 했다.

경비과장실로 가려고 안쪽 복도로 방향을 틀었는데 뒤에서 시설계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2중대장! 어데 경비과장실에 가려고?”

“네. 다녀왔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럼 뭐 명절 봉투라도 준비를 했소?”

“네? 무슨 봉투 말입니까?”

“하! 사람이, 내 그럴 줄 알고 불러 세웠지. 아, 오늘부터는 인제 본격적으로 명절 인사 다닌다 아이요? 그란데 봉투도 없이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말로만 인사한다고 얼굴 내밀면 고거는 뺨 맞을 짓이라. 고마 돌아가 갖고 명절 봉투 하나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서 인사하는 기라. 그래야 후반기에 별일 없이 잘 지내 갈 거고. 인자 내 말이 뭔 말인지 알겠소? 행정계장한테 이바구하면 봉투 하나 만들어 줄 기라. 그럼 내는 간데이?”

그러면서 손을 흔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뭐, 생각해서 해 주는 말 같기는 한데…….’

그래도 자신이 교통주임을 할 때 챙겨서 시설계장으로 보내 준 것이 고마워서 그런지 배환섭 경감은 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챙겨 주었다.

부대로 다시 돌아온 김세민은 행정계장과 소대장들을 모아 놓고 기동중대 소 참모 회의를 열었다.

“우리가 맨 말단 소참이지?”

“예.”

“내가 시경에 갔다 와야 시작하니까……. 오전은 그냥 허송세월하는구만. 자, 이거는 교통과 간부들이 주는 것, 또 이거는 청장님이 주는 거야. 그리고 이건 5중대 몫이니 중대장 갖다 주고, 직원들하고 회식을 하든지 나눠 쓰든지 하라고 해.”

“그럼 중대장님은요?”

“나는 됐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교통 근무가 없대. 추석이고 하니 대원들 전부 다 집에 한 번 다녀올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데……. 집이 멀리 있는 애들은 한 3박 4일쯤 보내 주고 부산에 집이 있는 애들은 2박 3일 정도로 해서 다 보내 주도록 합시다.”

김세민이 외박 얘기를 꺼내자 행정계장이 다른 의견을 냈다.

“대장님,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요. 멀리 있는 애들은 4박 5일, 부산도 3박 4일 하면 어떠십니까?”

“응? 그건 왜?”

그러자 1소대 부관인 강갑도 경사가 그렇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아~ 알겠다. 인자 보이 행정계장, 명절 쇨라꼬 구카는가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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