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0화
#530. 보이지 않게 맞지 않게
-네~ 별장입니다~
“여! 우리 홍 마담 어떻게, 명절은 잘 보냈고?”
강 청장은 홍지수의 얼굴이 한번 보고 싶어서 대학 총장 핑계를 대고 직접 전화를 걸어 본 것이었다.
그것도 참모 회의 중에 다른 능구렁이 같은 과장들이 다들 지켜보고 있는 데서 말이었다.
-청장님 아니세요? 웬일이세요?
“웬일은, 명절인데 홍 마담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해 봤지.”
-어머, 청장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명절 인사 받아 보기는 처음이네요. 완전 감동이에요.
“추석에도 바쁜가? 손님 좀 모시고 가려는데.”
-어쩌죠? 지금 주방이고 연회실이고 애들이 아무도 없는데. 저하고 동생뿐이거든요.
“하긴, 추석이니 그럴 만도 하지. 곤란한데, 어떻게 한다…….”
-음……. 청장님도 서울 못 가시고 혼자이신 것 같은데 오늘 같은 날 어디 밥 사 자실 데도 없으니 이리 오세요. 제가 찬은 없어도 그냥 집밥처럼 차려 드릴게요.
“캬! 역시 우리 홍 마담이야. 대번에 내가 전화한 의도를 알아맞혔네.”
-동행이 있으시다고 했죠? 몇 분이나 오세요?
“보자~ 네 사람 정도? 저녁에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그냥 된장찌개 해서 따끈한 법주나 준비해 줘.”
-네, 기다릴게요.
“근데 너무 민폐 끼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음식 하려면 장도 보고 해야 할 텐데, 추석이라…….”
하고 싶은 말은 실컷 다 해놓고 끝에 가서 양심 있는 척하는 모습에 홍지수는 좀 언짢아졌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명절이라도 뒤에 온천 시장은 문을 열어 둔 곳도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오늘은 그냥 제가 서비스로 차려 드릴 테니 부담 없이 오시구요.
“햐! 역쉬 홍 마담이 최고야! 명불허전이다!”
-뭘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허허허!”
난데없이 청장이 농담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니 앞에 앉은 참모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리둥절해했다.
‘청장이 별장의 홍 마담하고 그렇게 친하단 말이야?’
‘참모 회의를 하다가 대놓고 농담 따먹기라…….’
‘이번 겨울에 승진 청탁은 별장 홍 마담한테 가서 로비하는 게 더 빠르겠는데?’
다들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정보 투가 심 총장을 데리고 별장으로 와. 오늘 저녁에 심 총장의 결심을 받아 낸 후에, 내일이 연휴 마지막 날이잖아? 내일 중으로 학교에서 다 끌어내자고. 오늘 기동대, 방순대 다 연락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그래. 그리고 저녁부터는 학내에 우리 비둘기(정보 형사)들이 미리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고.”
청장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보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장님, 지금 자리에서 그런 말씀은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참모 회의를 끝내시고 별도로 경비, 정보만 회의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보과장이 청장이 공식 석상에서 대학교에 비둘기를 투입하라는 지시를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을 하였다.
이제 그 어떤 대학에도 경찰관이 총장의 승인 없이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언을 한 바 있어서 자칫 말이 새어 나가면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그날 저녁, 동래 별장 청란실.
강방천 청장이 심홍 총장과 정보 투, 그리고 학생처장과 조촐한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거 추석 명절에 별장에서 상을 받아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것도 우리 홍 마담이 손수 다 차렸다고 하니 영광이올시다.”
학자 타입의 점잖은 심 총장이 홍지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말을 했다.
자개 상 위에는 노릇하게 기름이 잘잘 흐르게 잘 구워진 커다란 굴비 네 마리가 놓여 있었고, 탕국에는 전복까지 들어 있었으며 명절이라고 부쳐 낸 전에는 송이전까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경주 최씨 집에서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로만 만든다는 교동법주였다.
순수하게 찹쌀과 밀누룩, 그리고 최씨 집 뜰의 우물물만 사용해서 시어머니에서 맏며느리로만 이어진다는 술이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고 실제로 구하려면 아무리 돈을 줘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씨 집안에서 빚는 양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데다가 빚은 지 일주일 안에는 먹어야 한다는 보존의 문제 때문에 시중에 유통이 안 되고 있는 것도 있었고,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까지 되는 바람에 더욱 구하기가 힘들어진 것이었다.
술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고 있었으며 홍지수가 한 잔씩 따라 올리자 곡주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방 안에 가득 찼다.
“캬! 이거 냄새 죽이는데요?”
“허허! 어찌 이런 호사를 제가 다 누린답니까? 아니 홍 마담! 내 그동안에 몇 번 왔어도 이 교동법주는 오늘 처음인데?”
심 총장이 신기했는지 홍지수에게 물어 왔다.
“네. 저도 처음이에요. 마침 제 동생이 추석이라고 내려왔는데 저걸 몇 병 들고 왔더라고요. 저희는 술을 잘 안 마시니 혹시 마음에 들어 하실까 싶어서 내 봤어요.”
그때 마침 홍은수가 쟁반에 숭늉 그릇을 받쳐 들고 와서 상 아래에 숭늉 그릇을 내려놓았다.
“제 동생이에요. 은수야! 청장님이셔,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청장님, 김포공항 100호실에 근무하는 홍은수 경장이라고 합니다.”
“그래? 우리 경찰 가족이었어? 야! 이거 반갑군그래! 그래서 홍 마담이 두말 안 하고 명절인데도 상 차린다고 했구먼. 크! 좋네, 좋아.”
“사실 반찬은 전부 다 언니가 했답니다. 전 그냥 옆에서 거들기만 했고요. 많이 드세요.”
“그렇구나, 수고했다. 나중에 한번 놀러 와!”
“네, 그럼 전 물러가겠습니다.”
“지금 학교에 들어와 있는 화물 연대 때문에 염려가 많으시지요?”
청장이 그렇게 먼저 운을 띄웠다.
“말도 마세요, 생각만 해도 골치가 딱 아픕니다. 학교가 무슨 여관도 아닌데 저리 떼거리로 수천 명이 몰려와서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니 청소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모레 또 학생들이 등교하면 제대로 수업이나 되겠습니까?”
총장도 골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내일 하루밖에는 시간이 없는데 우리가 들어가서 다 끌어내야 하겠습니다. 모레 학생들이 등교하게 되면 같이 어울려서 더 큰 불상사가 날지도 모르니 총장님이 협조를 좀 해 주시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여기 우리가 요청서를 다 만들어 왔습니다. 사인만 해 주시면 우리가 알아서 내일 중으로 다 끌어내겠습니다. 지금 청와대에서도 그렇게 우리가 알아서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총장님도 내년에 연임을 하셔야지요?”
청장이 은근하게 당신도 내년에 한 번 더 해 먹으려면 청와대 요청을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
“그래도 지금 총장 선출은 일단 교수 전원 회의에서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학교에 경찰을 투입시켰다는 일부 교수들의 반발도 무시 못 할 건데요?”
총장이 일부 교수들의 반발을 우려해서 그렇게 말을 꺼내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강 청장이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교수들 반발은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지들이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닐 테고 말입니다. 자, 그거 꺼내 봐. 말 나온 김에 사인 받아야지.”
청장이 수행한 정보 투에게 경찰력 투입 요청서 양식을 꺼내 들었다.
당황한 심 총장이 느닷없이 홍지수를 쳐다보았다.
사인해도 괜찮겠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홍지수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살짝 미소를 흘려 주었다.
마침내 심 총장이 경찰력 투입 요청서에 사인을 하였다.
* * *
밤 12시에 금정 경찰서 장전 3파출소에서 심야 작전 회의가 열렸다.
기동대 및 방순대는 전원 비상 출동으로 장전 3파 주변으로 신속하게 집결했다.
장전 3파출소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파출소 뒤에 별도의 건물이 신축되어 있었는데 정보 C.P로 활용을 하고 있었다.
B 대학에 출입하는 정보 형사들이 주로 이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보 C.P에서 심야 작전 회의가 열렸다.
먼저 진입 작전의 최종 책임자인 금정서장이 일어나서 모두 발언을 했다.
“오늘 기동대 방순대 전부 20개 중대가 동원이 되었는데 배치표는 나중에 확인을 해 보면 될 것이고 우선에 오늘 새벽에 기습을 해서 저놈들을 다 끌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끌어내도 또 학내에 들어갈 수가 있는데 이게 문제입니다. 다들 좋은 생각이 없습니까?”
“그럼 주거 침입이나 뭐 이런 걸로 잡아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기동 5중대장이 손을 들고 이야기하자 금정서 정보과장이 반대 의견을 냈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어제 청장님이 총장을 간신히 설득해서 경찰이 학내 진입할 수 있도록 요청서는 받았지만 고발장은 못 받았습니다. 점마들을 주거 침입이나 뭐 이런 걸로 조사를 하려면 학교 측에서 고발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언제부터 주거 침입이 친고죄가 되었어?”
5중대장이 자리에 앉으면서 구시렁거렸다.
“아아아,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고, 논점만 흐리니 말이야. 지금 저놈들이 전부 다 학생 회관에 몰려 있다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진압할 것인지 그것만 신경 쓰라고. 2중대장! 김 경감이 한번 얘기를 해 봐! 경험이 많잖아.”
지방청에서 대표로 참석한 길전수 제1부장이 느닷없이 김세민을 지목해서 발언권을 주었다.
김세민은 속으로 불만이 있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일어나 C.P에 걸린 B 대학 지도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일단 주동자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문은 우리 2중대가 선봉에 서고 5중대는 구정문으로, 그리고 사복 8중대는 북문에서 진입을 해서 최대한 소리 없이 접근을 합니다. 물론 세 군데 선봉 중대 뒤에는 뒤를 받쳐 줄 방순대가 붙어야 하겠지요. 그런 다음에, 학생 회관이 상당히 뒤편에 있습니다. 경사로도 심한 편이고요.”
“그럼 일단 포위부터 하자는 얘기인가?”
길전수 부장이 그렇게 물었다.
“네, 최대한 가까이 접근을 해야 하는데 아마도 저놈들이 경계병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벽에 이렇게 버스를 동원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아마 알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이 회의 끝나면 신속하게 들이쳐야 합니다. 안 그럼 지도부가 다 도망을 가고 나면 또 며칠 뒤에 학내로 들어오기 때문에 오늘은 절대 개스는 쏘지 말고 최대한 가까이 가서 발각이 되면 바로 쫓아가서 잡아야 하고 현재 약 2천 명이 있다고 하니 최대한 각 경찰서에 분산 수용해서 전 조사 요원들을 동원해서 적극 가담자 여부를 추려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 가담자는 가족들한테 앞으로 절대 시위에 참가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훈방해 주면 됩니다. 노조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참석한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김세민이 거기까지만 얘기를 하자 길 부장이 추가로 질문을 했다.
“그럼 뭐야, 자네 말대로 주동자는 어떻게 우리가 찾아내나?”
“네, 그것은 일단 비둘기들이 우리한테 지휘망 무전으로 날려 줘야 합니다. 어디에 무슨 색깔의 옷을 입은 남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게 아니면 각 중대장들이 현장에서 데모대를 지휘하고 있는 놈을 찾아내서 바로 검거를 해야 합니다. 주모자는 금정서로 인계를 하고 나머지 단순 가담자는 여기 대기하고 있는 기동대 버스에 태워서 가까운 경찰서부터 인계를 하면 되겠습니다. 아마도 절반 이상은 다 도망을 갈 것입니다. 여기 B 대학은 뒤가 금정산으로 다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산으로 숨어 가는 놈들은 잡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럼 경찰서에서는 인계받은 놈들을 다 훈방하면 되는 건가?”
금정 서장이 그렇게 물어 왔다.
“일단 가족한테 신병 인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만약에 그 과정에서 거칠게 반항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놈들은 주거 침입이나 퇴거 불응으로 형사 입건 해도 됩니다. 둘 다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의 고발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처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차라리 즉결로 보내는 것이 더 간단하고 낫지 않아?”
이번에는 금정 정보과장이 다른 의견을 냈다.
“즉심 항목에 빈집 등에 침입이라는 경범죄 처벌 항목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관리하고 있지 않은 빈집이라는 구성 요건이 있기 때문에 즉결 심판의 대상은 안 된다고 봅니다. 그에 반해서 여기 학생 회관은 학생들이 수시로 출입을 하고 또 관리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학생 회관은 틀림없이 학생증을 소지한 대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학칙에 그렇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학생이 아닌 일반 근로자가 들어갔고 또 총장의 축출 승인까지 떨어진 마당에 실제 학교 측의 고발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김세민이 거기까지 설명을 하자 길전수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자, 더 없지? 일단 우리는 잡아다가 경찰서에 인계만 해 주면 자세한 법리 검토는 또 형사 파트에서 하면 되니 우리는 해산시키고 주동자는 잡는다! 딱 그것만 기억하라고. 지금이 01시 40분이니 배치하는 데 30분, 반드시 걸어서 이동을 하라고! 다들 자기 장소에 도착하면 무전해 주고, 02시 10분에 학내 진입 작전을 시작하자고. 오늘 개스는 안 쏜다. 지금 한밤중이고 명절 연휴 중인데 개스 쏘면 시민들이 다 들고일어날 거다. 자, 다들 알겠지?”
“옙!”
김세민도 부대원들을 데리고 걸어서 정문으로 향했다.
중대원들에게 기둥 옆과 담벼락에 은폐를 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는데 1소대장 김인규 경위가 다가오더니 엉뚱한 질문을 했다.
“중대장님, 은폐와 엄폐의 차이가 뭡니까?”
“……학교에서 안 배웠어?”
“한번 들어 보기는 했는데…….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더라고요. 저희들은 경찰 교육만 받아서 군대 쪽은 잘……. 하핫!”
“보이지 않게, 맞지 않게.”
“예?”
“딱 이렇게만 기억을 하면 돼. 나도 군대에 있을 때 헷갈려서 우리 소대장한테 물어봤더니 그렇게 알려주더라고.”
“그럼 은폐는 보이지 않게, 엄폐는 맞지 않게, 그런 겁니까?”
“맞아. 은폐는 적의 관측으로부터 내 몸을 숨기는 거야. 그리고 엄폐는 적의 사격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것이고. 지금 우리는 저기 시위대의 경계병들로부터 우리 몸을 숨겨야 하니 은폐가 맞는 거겠지?”
“머리에 정말 쏙쏙 들어오네요.”
그때 지휘망 무전이 나왔다.
“아, 여기 명둘(제1부장)인데 종모 종일곱했어(배치되었어)?”
“칠팔입니다!!”
“정문에 2002부터 돌격하고, 5분 후에 2005과 2008이 진격한다!!”
“아, 칠팔 했습니다. 그럼 2002 물넷부터 먼저 들어갑니다?”
“아! 줄줄 사하나(계속 수고).”
김세민은 1부장의 공격 신호가 떨어지자 뒤에서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는 중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 돌격! 뒤처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