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2화
#532. 합종연횡
옥 청장의 입에서 김세민의 이름이 나오자 양정식 정보 1과장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청장의 귀에 부산청의 사건 보고가 먼저 들어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거 큰일인데…….’
지금 자신이 밤새 당직을 했던 그 종합상황실 일보에는 부산청 오상섭 경감이 체포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제 이것을 어떻게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청장한테 잘못 보고했다가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청장한테 보고를 한다고 낙인찍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구지? 부산청의 일을 이렇게 당직보다 먼저 청장한테 보고할 수 있는 사람이?’
잠깐 머리를 굴려봤지만 나오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 승지다.’
‘조 승지하고 한판 붙기엔 너무 부담스러워. 분명 부산청에서 허위 보고를 한 것이 틀림없는데……. 강방천 부산청장도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는 허위 보고를 하라고 지시를 한 것이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빠져나갈 길은 부산청에다 미루는 것뿐이었다.
‘부산청에서 보고가 그렇게 올라왔기 때문에 그대로 보고를 한 것이다. 재차 확인을 안 해 본 것은 실수였다. 그렇게 변명이라도 하는 수밖에.’
무엇보다 자신이 겪어 본 조 승지는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많은 경찰 간부들이 거짓 보고를 밥 먹듯이 하고 있었지만 조 승지는 한 번도 자신의 약점이 잡힐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경찰청 내 수많은 경정급 계장들이 조 승지 손에 쥐여서 꼼짝 못 하고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니, 사람이 왜 말을 하다 말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청장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재촉했다.
“아, 네. 이미 보고를 받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중으로 보고드리기가 좀…….”
그렇게 말은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는 보통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오늘은 휴일이니 요란하게 하지는 말고, 부산청에서 큰 사건도 해결했고 하니 간단하게 참모 회의나 하자고. 출근 안 한 사람은 그냥 놔두고 국장이 없으면 심의관이나 과장더러 참석하라고 해. 그도 없으면 계장급이라도 오라고 하든지. 일부러 불러내고 그러지는 말라는 말이야.”
청장이 이미 나와 있는 간부들은 청장실에서 모여서 간단하게 업무를 정리하자고 그렇게 지시를 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그렇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입구에는 어느새 조연희가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하고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청장님.”
“오냐, 너도 일찍 나왔네. 명절 잘 보냈고?”
“네! 잘 놀았어요.”
“그래,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청장님? 여기 상황실 일보예요.”
“응, 그래 어디 보자~ 에잉! 이게 뭔 소리야!”
일보를 들여다보던 청장이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상황실 일보에는 왜 김세민이 이름이 다 빠졌어? 이거 뭐가 맞는 거야?”
“글쎄요, 저도 그게 이상하기는 했는데 여기 종합상황실은 부산청에서 올려 주는 내용만 가지고 보고서를 만들잖아요? 제가 청장님께 드린 것은 부산청 지휘망 무전을 직접 듣고 만든 보고서고요. 실은 저도 그게 이상해서……. 일단 무전 내용은 녹음을 해 두었는데 잠깐 들어 보시겠어요? 마지막에 2중대장이 주동자 체포하고 보고하는 장면만 들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한 5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래 어서 틀어 봐. 하! 이 새끼들 봐라! 사람이 모처럼 기분 좋게 출근했더니 또 눈까리 빼먹으려고 말이야. 내 이번에는 절대 그냥 안 넘어간다.”
* * *
연휴 마지막 날이었지만 청장이 출근을 한다고 하니 국장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전원 출근을 해 있었다.
그래도 휴일이니만치 다들 근무복이 아닌 양복 차림으로 참모 회의에 들어왔다.
“이봐! 조 승지! 오늘 청장님 기분은 좀 어떠셔?”
남강오 정보국장이 기분 좋게 부속실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네, 기분이 좋으세요. 국장님도 명절 잘 보내셨어요?”
“그럼! 인제 송이는 안 주는 거야?”
“또요? 지난번 석굴암에서 난 송이 그거 국장님이 다 잡수셨잖아요? 이제 없어요. 영덕 칠보산 송이밖에는…….”
조연희가 생각 없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의 입을 막아 버렸다.
“역시 우리 조 승지한테 와야 먹을 게 있단 말이지. 크! 송이 한 접시 부탁해?”
“아니 이봐, 무슨 치안감씩이나 되어 갖고 조 승지한테 그리 아부를 하나 그래?”
“어! 우리 경무 성님,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캬! 양복 한 벌 쫙 빼입으셨네요? 어디 명절 따와이 중에 양복 티켓이라도 들어온 것 같습니다? 저도 양복이 낡았는데, 부럽네요, 정말!”
경무국장은 속이 뜨끔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정보국장 입에서 따와이 양복 소리가 나오면 그것은 뭔가 자신이 이번에 명절 선물로 받은 양복 티켓에 대한 소문이 들어간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거 봐! 국장 입에서 따와이가 뭐야? 따와이가, 체신머리없이. 그래 내가 밑에 내려가서 찾아보고 남는 것 있으면 보내 주지. 명동에서 우리 먼 친척이 양복점을 한다고. 오래되었어. 옛날에는 광교에 양복점이 많았는데 말이야. 인제 다 죽어 버렸다고.”
“어이구! 제가 늦었습니다. 다들 오신 것 같은데 들어가시죠.”
도민제 경비국장이 뒤늦게 와서는 너스레를 떨었다.
“청장님,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청장님, 잘 쉬셨습니까?”
국장들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거수경례를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조 경사의 말과는 달리 청장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 앉은 채로 차렷! 집합 끝!”
경무국장이 일어나서 집합 보고를 하였다.
“뭐 하러 쉬는 날인데 다 출근을 했어? 이러니 경찰 마누라가 앞장서서 경찰 욕을 하는 거야. 근데 경비국장!”
“넵! 치안감 도민제!”
경비국장이 자세를 바로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차려 자세를 취했다.
아직 치안감 중에서는 제일 서열이 낮기 때문에 군기가 든 행동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종합상황실이 당신 소관이지?”
“넵! 그렇습니다.”
“근데 상황실에서 아침에 나한테 준 보고서가 사실하고 좀 다른 것 같아? 당신 이거 제대로 확인은 해 본 거야?”
“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도민제 국장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최대한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아침에 부산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을 없었던 일인 척 청장 앞에서 내색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강방천 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는 대뜸 하는 말이, 지금 부산 형기대장이 용국 마피아인데 진급이 늦었으니까 특진을 시켜 주면 어떻겠냐는 말을 해 왔던 것이었다.
도민제 국장도 그 요청에는 꽤나 곤란했던 것이, 자신도 용국 마피아 출신이 맞기는 하지만 경감이 경정으로 특진을 하는 것은 보통 간첩을 직접 잡았다든지 하는 경우 외는 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시위 주동자에 불과한 놈인데 표창이면 몰라도 특진을 시켜 주자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고, 정 부탁을 하려면 자기가 직접 본청장한테 전화를 하면 될 것이지, 자신의 등을 떠미는 것도 수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선배가 하는 말이어서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한 뒤 상황실에는 부산청에서 올라오는 대로 보고서를 청장한테 넣으라는 지시를 해 둔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부산청장이 마지막에 묘한 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야! 경비국장! 너 상황실 보고할 때 말이야, 보안 유지 잘했다가 아침에 청장님 나오시면 바로 넣어야 해.
-굳이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나 이런, 답답해서! 절대 조 승지 손에 들어가면 안 된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아, 예…….
일단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지금과 같은 체계에서 조 승지 손을 안 거치고 청장한테 다이렉트로 보고서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같은 용국대 마피아인 정보 1과장을 어제 당직으로 바꾸라고 지시를 하고는 아침에 청장을 독대하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했는데 청장 입에서 먼저 김세민의 얘기가 나오니 정보 1과장이 기겁을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가 도민제 국장이 참모 회의 들어오기 전에 파악한 내용이었다.
부산청 경비과장한테 전화를 해 보니 더욱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왔다.
-아! 국장님, 고거는 말이라예, 형기대장하고 2중대장이 같이 합동 작전을 해서 검거를 했는데 아무래도 형기대가 사복 체포조이다 보니 더 비중이 크지 않았겠심니까? 그라고 김세민이도 체포한 것에 대한 공은 다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즉, 그 말은 형기대장한테 양보한다는 말이 아니겠심니까? 형기대장을 특진시켜 준다고 해서 김세민이가 문제 삼고 그라지는 않을 거라예. 김세민이가 버르장머리는 없어도 입은 무겁심니다. 지가 그거는 보장하지예.
감쪽같이 조 승지의 눈을 속였다고 생각을 했는데 조 승지한테 선수를 빼앗긴 것이 되어 버렸다.
‘X발, 모르겠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청장님, 일단 저희 상황실에서는 부산청에서 보고가 올라오는 대로 보고서를 만들 수밖에는 없습니다. 밤새 사실 확인을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입니다. 오늘 중으로 다시 확인을 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경비국장! 당신도 그 뭐이고, 용국 마피아지?”
느닷없이 청장 입에서 용국 마피아란 소리가 나와 버렸다.
“네? 마……피아 말씀이십니까?”
“맞아, 아니야!”
“아, 아니 저는…… 대학은 용국대를 나온 것은 맞지만 마피아란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일단은 잡아떼고 볼 일이었다.
“당신도 말하는 것 보니 안 되겠구먼. 이봐! 감사 담당관!”
“예!”
“아니, 당신도 마피아였지. 이거 뭐 온 천지에 마피아 아닌 놈이 없어! 조 경사! 조 경사!”
청장이 참모 회의를 하다가 느닷없이 조 경사를 소리쳐 불렀다.
“연희야! 지금 청장님 부르는 소리 아니야? 빨리 들어가 봐! 나머지는 내가 구울게.”
양영미가 송이버섯을 굽고 있는 조연희한테 급하게 들어가 보라고 말을 했다.
“네, 청장님,”
조연희가 문을 조금 열고 청장 앞까지 걸어가서 두 손을 모으고 부동자세로 섰다.
지금 스무 명의 경무관급 이상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감찰과장이 후보생 출신이지? 그 자식도 마피아야?”
느닷없이 청장이 감찰과장의 출신 성분을 조연희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태민호 총경은 그냥 일반 후보생 출신입니다.”
“대학은?”
“지방 대학을 나온 것으로 압니다.”
청장의 물음에 조연희는 마치 써 놓은 것을 보고 읽는 듯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흠……. 그럼 지금 감찰계장 중에 경찰대 출신이 누구지?”
“네. 감찰 3계장 이태근 경정이 경찰대 출신입니다.”
“그럼 가서 그 둘 데리고 와. 지금 바로 나한테 오라고 그래.”
“네!”
지금 이 장면을 보고서는 앉아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본청 고급 간부들의 신상을 저렇게 컴퓨터처럼 줄줄 꿰고 있는 것은 인사계장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들 조 경사의 영리함에 혀를 내둘렀다.
조연희의 연락을 받은 감찰과장과 3계장이 헐레벌떡 뛰어서 올라왔다.
“야! 조 승지! 이게 다 뭔 일이야? 왜 참모 회의 중에 우릴 불러?”
감찰과장이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합종연횡…….”
뜬금없이 조연희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자 이태근 계장이 이해가 안 되는 듯이 오현수 부속실장에게 그렇게 물었다.
“오 실장, 지금 조 승지가 뭐라는 거야?”
감찰계장이 경찰대 선배이니만치 말은 아래로 깔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 들어가세요. 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속실장 자신도 지금 조연희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난번에 자신에게 말했던 순경들의 손을 잡으라는 뜻인 줄 알고 일단은 두 사람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청장님, 충성! 감찰과장 총경 태민호!”
“감찰 3계장 경정 이태근!”
그러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부동자세로 섰다.
청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사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말이야. 경찰청장인데 경찰의 총수인 내가 믿을 사람이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
“전부 다 패거리로 모여 다니면서 나한테 거짓 보고를 하니, 나도 인제 진실을 좀 알아야겠다고. 이걸 좀 보라고. 하나는 부산청에서 올라온 보고, 또 하나는 내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직보 사항이야. 둘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지.”
“……그 말씀은…….”
“뭐가 진실인지 밝혀 보라고. 저기 감사 담당관이 자네들 상관이긴 하지만 이 건은 내가 직접 지시를 한 것이니 감사 담당관한테도 보고하지 말고 나한테 와서 직접 보고를 하라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넵! 알겠습니다!”
“진실은 아무리 묻으려 해도 절대 묻히지 않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실을 숨기고 감추려 하는 자는 언젠가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고. 난 자네들을 믿어. 그러니 날 실망시키지 말고 제대로 진실을 밝혀 줬으면 해.”
청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손을 잡아 주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부속실로 나온 태민호 감찰과장은 숨을 돌리더니 조연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연희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면서 맞받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러자 태민호 감찰과장도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난 사람들이 조 승지가 영악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말이야, 도대체 부속실에 근무하는 여경이 영악하면 얼마나 영악하다고 그런 말을 다 할까 하는 늘 그런 의문이 들었거든? 근데 아까 조 승지가 한 말을 듣고는 의문점이 다 풀렸어.”
“…….”
“합종연횡이라, 하핫. 그 말은 나같이 마피아 출신이 아닌 후보생, 그리고 경찰대 출신이 순경 출신인 김세민이와 손을 잡으라는 소리 같은데? 맞나? 아님 내가 잘못 짚은 거야?”
“글쎄요, 저는 청장님이 지시하신 일만 충실히 할 뿐입니다. 다른 의도로 한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