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1화
#541. 안창마을
식사는 경찰서 뒤편 수정 시장 안에 있는 생대구탕집에서 하기로 했다.
오래된 경찰서라서 그런지 뒤에는 제법 맛집이 많이 있는 편이었는데, 생대구탕집 역시 밖은 허름해 보여도 안에는 방 안까지 손님이 꽉꽉 차 있었다.
김세민 일행도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엉덩이를 맞대고 자리에 앉았다.
바빠서 그런지 식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고, 조금씩 기다림이 지루해질 무렵 정보 2계장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에이 X발, 음식이 와 이래 늦게 나오노? 핫바리 경찰서라고 무시하나?”
“에헤이, 뭔 또 말을 그래 하능교.”
“내 말 틀맀나? 여기는 부산에서 순위로 따지면 끝에서 넘버 3위인 경찰서라, 그라이 우에서도 별 관심이 없는데 이기 X랄 같은 기 서 위치가 하필이면 부산진역 앞이다 보이까 데모 있실 때나 차가 밀리면 맨날 우에서 우리 동부서만 갈구는 기라.”
“아니 정보 투 형님, 그러면 꼴찌 서는 어딥니까?”
이인철 교통계장이 넉살 좋게 물어보았다.
“보자~ 꼴찌는 당연히 영도 아이겠나? 그래도 무전 호출부호는 영도 다음에 우리 동부서다. 우리가 거 140 아이가? 영도는 거 130이거든?”
“그럼 그게 뭐 경찰서 생긴 순서대로 무전 호출부호가 매겨진 겁니까?”
“그래, 그 말이 맞네. 해운대는 180, 금정은 200 마 고게 그리되는 갑다. 그라이 중부서가 110 아이가? 일제 강점기 때도 중부서가 있었거든? 동래하고 말이라. 동래는 120 아이가? 어쨌든 우리 동부서도 옛날에는 북부산 경찰서라고 캤다니 역사가 있기는 있네.”
강청산 대공 2계장이 그렇게 말을 이어 나갔다.
김세민은 마주 앉은 대공 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우리도 갖고 있던 용공 분자들 자료를 다 폐기했습니까?”
“오잉? 아니 그런 건 와 묻고 다니노?”
“물어보면 안 됩니까?”
“수상한데? 형사가 와 그런 국가 기밀을 묻고 다니노?”
“…….”
“근데 그 소리는 어데서 들었소?”
강청산 계장이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김세민은 그동안에 있었던 사건 수사의 진행 정도를 대충 설명해 주었다.
한동안 듣고 있던 강청산 계장이 이렇게 말을 했다.
“그라이까 거제 경찰서 대공과에서 딱 막혔다, 그 말이제? 나는 공식적으로는 대공 2계장이지만 우리끼리는 공작계장이라고 그라요. 대공 공작을 하고 있다는 말이지. 우리는 예산도 우리 경찰청이 아닌 안기부 예산을 가져다가 쓰거든? 아수분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우린 경찰 조직의 상부에서의 압박에는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할 수가 있지. 그라고 우리 상관들이 아무도 대공 분야 근무를 안 해 봤시니 별 관심도 없다 아이가.”
“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시죠?”
김세민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게 물었다.
“내가 이거 우리 대공 조직에 천기누설 같은 건데 당신들 젊은 과장들한테 이바구하는 거는 앞으로 당신들은 승진해가 올라갈 것 아이요? 그라문 절대 우리 대공형사들을 줄이거나 없애문 안 된다는 거요. 우리 존재 자체가 북한 놈들한테 심리적인 압박감을 준다 그 말이라.”
이 얘기는 전에 영덕에 있을 때 주일청 과장한테도 똑같이 들은 적이 있었다.
‘다들 한결같이 대공 파트를 없애면 안 된다고 하네.’
김세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재촉했다.
“우신에 우리는 공작 A, B, C가 있는데 A공작이 걸리면 예산이 무한대로 나오요. 그 말은 즉, 일 년에 A공작 한 건만 하면 경찰서 대공과 살림을 다 살 수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말이 알아들을 듯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안 되게끔 강 계장이 말을 흘리고 있었다.
김세민이 강청산 계장의 두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니 마지못해 이야기를 이어 갔다.
“B급은 월 오백만 원, C급은 월 이백만 원이 나오는 기라. 그란데 B급을 공작해 보니 뭔가 작품이 될 것 같단 말이지. 구체적으로 북한과 접촉한 정황도 있고 말이지. 그래서 A급으로 격상해야겠다고 안기부에다가 상신을 올리면 대번에 사건을 안기부로 넘기라고 지시가 내려온단 말이지. 하기야 요원들 자질이나 장비나 모든 면에서 안기부가 대공 수사 하기는 딱이지. 그라이 우리는 맨날 B급이나 C급만 붙들고 앉아서 구라나 치는 기라.”
“구라를 치다니요?”
“적당하게 공작비 나올 정도만 보고서를 내는 거지. 안기부 저놈들도 다 알아. 이 보고서가 구란지 아닌지 말이라. 그래도 그것 가지고 형사들이 밥 사 먹고 활동비 쓰고 하니 다 알면서도 우리 목줄을 잡고 있으려고 찔끔 공작비를 던져 주고 하는 기라. 한마디로 경찰서 대공 수사는 안기부 애완견 노릇이나 하는 기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속이 상하는지 강청산 계장이 앞에 놓인 소주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김세민은 조금 찜찜해서 재차 물었다.
“아까 거제 경찰서 얘기하면서 뭔가 안 한 말씀이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요.”
“아인데? 기분 탓이겠지.”
“정말입니까?”
김세민이 그렇게 물으면서 강청산의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마주 응시하던 강 계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따 내 소문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 우리 김 과장 보통이 아인 것 같소! 좋소 좋아! 오랜만에 경찰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내 한마디만 해 주지. 거제 경찰서로 인계를 하고 끝이 났다고 했소? 그라모 직접 거제 경찰서로 한번 가 보소. 잘하면 그 폐기되었다는 서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폐기되어야 할 서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김세민은 귀가 솔깃해졌다.
“아니 그럼, 여기도 용공 관련 서류는 다 폐기가 안 된 겁니까?”
“어데? 공식적으로 내려온 지시를 그렇게 막 대놓고 깔아뭉개지는 못하지. 형사들 중에서 반공의식이 투철한 형사들은 겉으로는 폐기했다고 하고 개인적으로 다 숨겨 놓았다고. 그래야 만에 하나 세상이 뒤집어졌을 때 다 그놈들이 기어 나올 텐데 어느 놈이 나쁜 놈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이요? 그래가 형사들 대부분이 자기가 담당했던 대공 특이분자들 명단을 갖고 은퇴를 한다고.”
“그럼 그 말은 거제 경찰서에서 은퇴한 대공형사들 중 누군가는 자료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있단 얘기네요?”
김세민이 그렇게 물어보자 강청산 대공 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왜 대공형사들의 국가관이 투철하다는 얘기를 하는지 알겠소? 우리는 여기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소위 말해서 대공과 짝사랑을 한다 아이요?”
“짝사랑이라면?”
“안보를 위해 너무 걱정을 많이 하다 보니 고마 직장 내에서 승진이나 출세 이런 것들은 다 하찮게 보이는 거라. 여기 좁은 동구에 말이오. 동구 주민 수가 한 8만 정도 되나? 그란데 말이오. 용공 관찰 대상자가 천오백 명이 넘는다고 하면 믿어지겠소?”
‘그럼 전체의 2% 정도인데, 그렇게 많은 인원한테 대공 혐의점이 있다고?’
“숫자가 너무 많은데요? 통계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잘못된 거는 하나도 없소. 여기 다 떨어진 경찰서에 대공 2계장으로 경감이 온 것을 보면 모르겠소? 지금 해운대 같은 서세가 제일 큰 경찰서의 대공과장을 경감이 맡아 봅니다. 해운대는 이제 신설된 도시이기 때문에 불순 세력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고 봐야지. 집값도 비싸니 돈도 없는 껄베이 같은 북한 놈들이 해운대에 아지트를 잡기는 어려울 거요. 하지만 여기는 전쟁 때부터 피난민이나 반공 포로들이 정착을 했고 특히 여기 망양, 성북, 범내골이나 안창마을 같은 곳은 숨어 지내기 딱 좋지. 북에서 내려온 통일교주 문선명이도 저기 안창마을 토굴에 숨어 있으면서 통일교 경전을 집필해서 여기서부터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요? 지금은 기념관인지 성전인지 건립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있다 아이요?”
동부 경찰서 관내가 보기보다는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럼 계장님 말대로 제가 거제로 직접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뭐, 그것도 좋겠지……. 이왕 갈 거면 가서 사람부터 먼저 찾든지 하소.”
“무슨 사람 말입니까?”
“그만둔 대공형사 말이야. 대공형사 한 우물만 판 사람.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 정년퇴직했을 경우 아마 자료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지. 그런데 쉽게는 안 보여 줄 거야. 당신이 잘 설득을 해야 돼.”
“알겠습니다. 오늘 덕분에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김세민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 계산을 하러 나가는데 조사계장이 따라 나왔다.
“김 계장, 뭐 바쁜 일 있나?”
“아뇨?”
“그라모 잠깐 이야기 좀 하고 가지.”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조사계장 홍범수 경감은 순경 출신이었는데 조사 전문이었다.
이번에 직속상관으로 경찰대 출신 변상호 수사과장이 오는 바람에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수사 간부 연수소 출신을 우선으로 수사 간부로 발령을 내라는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임 경정을 형사과장으로는 발령을 낼 수가 없으니 김세민을 형사로 내고 경찰대 출신은 조사가 있는 수사과장으로 발령을 내준 것이었다.
“아, 이게 경감은 경찰서 인편 부대 중대장을 해야 하거든? 그라이 경비과에서 우리 다섯 명이 의논해서 한 사람을 불러 달라고 그러더라고.”
“인편 부대 중대장이라면…….”
“경찰서에 방순대도 있지만 경찰서 직원들만으로 구성되는 후속 부대인 인편 부대가 편제되어 있다고. 경감이 중대장을 해야 하는데 동부서는 여기가 부산역도 있고 시내로 향하는 데모대가 늘 통과하는 길목이니 대학교 개강 중에는 자주 출동 대기가 걸려서 말이지. 그리고 인편 부대도 나중에 일 년에 두 번 저기 삼락 운동장에 직원들 데리고 가서 검열도 받아야 하고, 그전에 한 일주일은 저기 범일 국민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훈련도 시켜야 한단 말이지.”
“그럼 차출 순위는 따로 없습니까?”
동원하는 거라면 간부들도 차출 순위가 있을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정보 투가 옆에서 듣다가 끼어들었다.
“차출 순위로 따지면 여기 교통이 제일 나이도 젊고 하는 게 맞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에법 중요도가 있단 말이지. 그리고 본서는 대부분이 형사들이 많다고. 형사들이 자기네 과, 계장이 아니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그래서 이번에 인편 부대 중대장은 형사계장이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다, 우리 동부서를 위해서 하는 말이오.”
가만히 보니 동부서를 위해서라고 들먹이면서 자기네들은 빠지고 김세민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듣던 이인철이 나섰다.
“아, 제가 하지요. 전 중대장을 오래 해서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야, 형사들이 많다면 당연히 내가 해야지. 넌 교통이나 잘 챙기도록 해.”
앞에 있는 능구렁이 같은 고참 경감들의 속내가 다 보이기는 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어서 김세민은 흔쾌히 자신이 하겠다고 말을 했다.
식당에서 나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있는데 대공 2계장이 잠깐 자기 방으로 가자고 하였다.
대공 2계장을 따라서 김세민은 대공계로 들어갔다.
동부서 3층 뒤편 전체를 대공 1계와 2계가 나누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대공 2계는 전체 사무실이 한 공간으로 합쳐져 있었고 사무실 가운데에는 캐비닛이 3열 횡대로 놓여 있었다.
사무실 책상이 어림잡아 한 50개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대공 2계장은 경감인데도 자신의 별도 사무실 없이 캐비닛을 사이에 두고 직원들보다 좀 더 큰 책상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신기하나?”
김세민이 두리번거리자 뒤따라 들어온 강청산 2계장이 피식 웃었다.
계장 책상 앞에는 기능직 여직원이 한 사람 앉아 있었는데 2계장이 들어오니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계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당연하지! 여기는 새로 오신 형사과장님이시다.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자, 이리 앉으소!”
“아니 근데 뭔 캐비닛이 이렇게나 많습니까?”
“이거요? 요시찰인 명부가 들어 있다 아이요. 요시찰인도 A급은 부산을 벗어날 때면 다 우리한테 신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가 있는데 요즘 세상에 그거 지키는 놈이 어디 있겠소? 그걸 감시할 만한 인원도 인제는 없고.”
“그건 좀 문제네요.”
“예전에는 대공형사가 근 백여 명이 있었소. 그란데 인자는 자꾸 줄어들어서 서른 명밖에는 안 남았지. 그것도 틈만 나면 줄이려 드는데……. 우리 대공 간부들은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니까 막느라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인자 얼마 안 남았소. 우리 같은 놈들 막차 타고 제대해뿌모 대공과 자체가 아예 없어질 기라.”
“에이,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아까 이 동네에만 관찰 대상자가 천 명이 넘는다면서요. 근데 어떻게 없애겠습니까?”
“모르네, 그게 안 그렇다니까? 인자 앞으로 두고 보소. 완전 개판 오 분 전 될 끼라.”
강청산이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며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회색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저 빈 책상 있잖아, 누구 자린지 아나?”
“글쎄요.”
“없어.”
“예?”
“임자가 없는 기라. 인자는 젊은 순경들도 대공과는 안 들어올라고 카고 늙다리들만 여기 앉아 있는데…… 실제는 그라면 안 돼. 일일이 가서 요시찰인들을 만나 보고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젊고 빠릿빠릿한 놈들이 해야지, 우리 같은 노땅들이 할라카니 힘이 딸린다 아이가? 그라니까 다들 오전에는 여기 앉아서 전화만 돌린다 아이요? 계속 그라다 보니까 점마들도 다 아는 기라. 오전에 집에서 담당 형사 전화 받고 나면은 그다음부터는 지 맘대로 돌아다니는 거지. 불시에 한 번씩 찾아가 보기도 하고 뭘 해 처먹고 사는지도 눈으로 확인을 해 봐야 하는데 인제는 그랄 사람이 없어.”
“근데 한번 전향한 사람들인데 꼭 그렇게 우리가 일일이 사람을 붙여서 감시를 해야만 합니까? 그 사람들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이념이나 그런 것은 차츰 멀어지는 것 아닙니까?”
김세민이 왜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별생각 없이 물었더니 강청산이 정색을 하고는 김세민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김 과장! 당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요?”
“네?”
“나중에 당신도 여기 동부서에 근무하다 보면 전향한 사람들 많이 보게 될 텐데 물론 당신 말대로 완전 전향해 가지고 이념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많소. 그란데 어떤 놈들은 말이오. 겉으로는 고분고분하고 여기 사회에 잘 녹아든 것처럼 행세를 하는데…… 묘한 느낌이 있어.”
“무슨 느낌 말입니까?”
“뭔가 이질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말이라. ‘내가 지금은 니한테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머리 숙이지만, 전쟁이라도 나면 그때는 내가 니부터 아작낼 끼다.’ 딱 그런 느낌이라. 아무튼 평범한 놈들은 절대 아니야. 당신도 한번 만나 보면 내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바로 안다.”